♠일상일기♠ 조광조와 노무현




 


최인호는 그의 신작소설 유림(儒林)에서 정암 조광조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면서 다루고 있다. 나는 유림의 조광조 편을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머릿속으로 계속 노무현대통령을 생각하였다.


 


이율곡은 조광조를 동방4현이라고 부르며 평생 존경하였고,  이황도 조광조는 학문에 뜻을 두어 옳은 정치를 하였으나 공의 뜻이 너무 속히 하고자 하는 데에 잘못이 있었다고 하였다. 성리학자 송시열도 평생 조광조를 흠모하였다.




그러나 조광조는 공자의 사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애를 썼던 구도자였다. 격랑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쳐 유가의 도를 실현하려다 산화한 유교적 이차돈인 것이다. 따라서 조광조의 실패는 정치적 실패가 아니라 구도의 궁극(窮極)이었으니 조광조야말로 순교자인 것이다.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조광조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면서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의 개혁 중심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낡은 풍습과 사상을 유교적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왕도정치에 따라 왕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이 몸소 유교의 이념을 실천 궁행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이다. 그러나 조광조의 급격한 개혁은 보수파인 훈구세력의 반발로 하루아침에 전라도 능주에 유배되고 그곳에서 37살의 젊은 나이에 사사됨으로써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노무현 대통령……


그는 고졸의 학력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으나 법조인의 길로 들어선 이후 주변인의 신세였을 것이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문제에 깊숙이 관심을 갖게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행보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가난한자, 힘이 약한자, 사회적 소수의 입을 대변하려 애썼다.




김영삼대통령의 천거로 정치에 발을 들이고,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인으로서 나섰다. 국회의원 당시 안전하게 다시 당선될 수 있었던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민주당 간판으로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부산에서 출마하여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정서를 온몸을 던져 타파해보려고 했지만 낙선하였다. 이 낙선은 지금도 인구에 희자되는 장열한 전사였다.




그러나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여러 가지 급진적인 개혁노선을 추구하였다. 토지공개념, 종합부동산세,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행정복합도시육성, 공무원노조의 허용,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법 등 주로 분배의 정의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을 시행하여 블루칼라층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신설, 확충하고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으며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일에도 힘을 기울여 최초의 한명숙 여성총리가 태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유경쟁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역할이 위축되고, 경제가 침체되고, 경제운용이 좌파적이라는 논쟁을 일으켰으며 언론에서는 공공연히 좌파정권으로 규정지어졌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작은 나라에서 과연 균형발전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의심스러우며 노무현 정권의 수도이전과 지방혁신도시 육성에 따른 땅값 상승은 전국을 부동산 투기 지역으로 만들었고,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집값은(서민용이라는 32평 국민주택 강남구 대치동 아아파크 아파트 15억)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만큼이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햇볕정책을 계승한다면서 미국의 정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실험이 인공위성이라고 우기다가 미사일로 판명된 후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남한을 공격할리 없고, 미국까지 가기에는 너무 거리가 짧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황당한 발언으로 안보불감증과 퍼주기식 대북정책을 합리화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언제까지 미국의 바짓가랭이나 붙들고 있을것이냐는 발언으로 자주성을 높이려했지만 세상에 자주하기 싫은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왕위 계승에서 중국황실의 승인을 받지못할까하여 전전긍긍한 것은 또 얼마였던가! 미국에는 작전권 단독행사하겠다고 큰소리 치면서 왜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는 수세적인가? 고구려는 물론, 백제와 신라까지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중국에는 왜 과감하게  대처하지못하는가? 지구상에 혼자서 자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나라는 없다. NATO의 회원국들이 우리나라만 못해서 집단방위체제를 역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놈의 헌법 발언이나 , 쪽팔려서 단임제 대통령 못해먹겠다. 는 등의 발언은 그렇다 치고,  대통령이 선관위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낸것은 억울한 백성은 누구든지 와서 두드리라는 신문고를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이 억울해 못살겠다고 두들기는 격이니 참으로 보기에 딱하다!


 


그러나 한편


좌파세력이건, 반미세력이건, 참여정부 실패세력이건 모두다 합쳐 한나라당과 1:1로 사생결단으로 정면 승부를 해야한다고 훈수하는 DJ에 대해서도 그것은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다시한번 편승하려는 것이며, 결국 호남을 고립시킬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노무현을 보면 지역감정 타파에 목숨이라도 걸듯한 그의 대국적인 면을 본다.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친북, 좌파, 반미로 규정하는 노무현정권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20%를 밑돌고, 현직대통령의 임기가 7개월이나 남아있는데 노무현과 결별하는 것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살길이라고 대통령이 만든 정당에서 보트피플 처럼 뛰어내리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오늘 나는 조광조가 훈구파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은 것과 노무현 대통령의 실책을 동일계열에 놓고 생각하게 된다.


 


옳은 정치가였지만 너무 일을 속히 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이황의 조광조 인물평을 떠 올리면서 


노무현 대통령도 진보노선과 함께 대책은 부족하면서 무조건적 자주로  대변되는 그의 급진적 개혁정책이 적절한 시기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실패한 정치가 조광조……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


지금 20% 대의  지지도를 놓고 보면 노무현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인 것 같다.


그러나 더 자세한 평가는 조광조처럼 후세의 역사에서 보게 될 것이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나들이

3박 4일간 나들이를 했다.


아내가 방학이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작은 아들도 방학이라 놀고 있어서


3명이 함께 속리산에 다녀왔다.


 


속리산 법주사 옆에  동생이 쉬기 위해 집을 한채 사놓았는데


나보고 아무때나 와서 편하게 쉬고 가라고 해서 그동안 서너차례 다녀온적이 있다.


수리를 말끔하게 해서 사용하기 편하고, 주변의 산세가 수려하며, 무엇보다 물과 공기가 좋다.


 


동생의 별장에서 3박4일간 빈둥거렸다.


나는 법주사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국보 제55호 팔상전은 정말 아름다운 탑이기 때문이다.


팔상전은 하나의 목조건물이지만 전체가 하나의 목탑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목탑 중에서 제일큰것이다. 


 


법주사는 벌써 여러번 다녔고, 또 다음번에 들르면 되기 때문에


이번에는 주로 방에서만 있었다.


아래의 법주사팔상전 사진은 작년에 별장에 갔을 때 법주사에 들려서 찍은 것이다. 


 


뒹굴거리면서


나, 아내, 아들 이렇게 3명이 놀았다.


밥해먹고, 술도 적당히 마시고, 단잠을 잤다.


 


둘째 날은 3명이 하루 종일 책만 읽었다.


나는 복직 문제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으나……가족여행은 좋았다.


 


편도 2시간 30분 거리여서 거리가 조금 먼것이 흠이지만


동생은 좋은 별장을 마련한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한옥집이 보이면


무턱대고 찾아들어가 집이 좋습니다. 구경해도 될까요? 라고 물으면


모두 반가워하며 집안으로 들여 구경기켜 주었다. 3집이나 구경했는데 비교적 마음에 드는 집도 있었다.  


10년 후에는 내가 살 집을 지을 것이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전투



 


 



인간의 치아는 사랑니를 빼면 28개인데 보건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나 65-74세 인구의 평균 잔존 치아 수는 12개 이며, 75세 이상은 평균 2.46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치아 28개 중에서 상실한 치아가 하나도 없다. 몇 개는 금으로 씌우거나 때우기는 하였지만 원래의 이는 하나도 뽑지 않으셨다. 올해 84세이니 치아 복은 타고난 듯하다. 그리고 양치질을 정성스럽게 하신다.




나는 다행이 아버지를 닮아서 치아는 건강하게 타고 났다. 나는 28개 모두 건강한 이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씌우거나 치료한 이가 없다.




오늘 아버지를 모시고 치과에 갔다가 기다리기 심심하여 치과 진료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충치가 한개 있었다. 놀라웠다. 이유인즉, 치솔질을 잘못하여 잇몸쪽의 치아 밑부분이 붉게 드러났는데 그 부분에 음식물이 끼고, 그러다 보니 충치가 생겼다고 했다. 옆이 아닌 위아래로 하는 칫졸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하여튼  치아 건강은 자신하고 있었는데 충치가 있다니! 나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니……




마취를 하고 충치를 긁어내고 치아 색깔 나는 것으로 메웠는데 우연한 기회에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면 이미 치과질환이 상당이 진전된 상태이기 때문에 치아의 신경을 죽이고, 금속으로 씌우는 치료를 하게 되는데 나는 오늘 충치 조기발견으로 때우기만 하였다.




내가 태어나 치과 치료를 받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충치 치료 후 간호사가 강권하여 예정에도 없던 스케일링을 했다. 


정말이지 이건 전투다! 돌아가는 기계음에 신경은 곧추서고,  이는 시리고, 끝나고 나니 아랫도리에 땀이 배었다. 스케일링! 안하고 살수는 없나.? 이놈의 전투!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Kant


 




 


 


18년 전에 접시를 여러개 만들었는데


 


우리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주기도 하고, 사용하다가 깨지기도 해서 이것 하나가 남았다.


접시가 크기 때문에 주로 과일을 깎아 담아낼 때 쓴다.


 


 


오늘 다시 보니 옛날 필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은 이렇게 쓰지 않는다. 그 동안 내 필체가 많이 변했다


 


언제 한번 도자기에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는 작업을 다시 하고싶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7076205 CALVIN 30 M2

< M1 소총>

<CALVIN 30 M2  소총>

나는 ROTC장교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놈의 키가 문제였다. 키가 작아서 지원할 수 없었다. 최소한 164cm는 되어야하는데 내 키는 정확하게 163cm으로 1cm가 모자랐다. 하는 수 없이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여 3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육군 병장으로 전역하였다.

 

훈련소에서는 한국전쟁 때 쓰였던 M1소총을 지급받았는데 미군병사들이 쓰던 총이어서 무겁고 힘들었다. 다행히 훈련병 시절을 마치고, 소속부대에 와서는 CALVIN소총을 지급받았는데 아주 가벼워서 좋았다.

 

점호시간에는 부대장이 여러 가지를 묻는데 개인화기번호를 묻기도 하였다. 그때의 내 대답이 생각난다.

 

옛! 총번호 7076205 CALVIN 30 M2 !

 

군인이 자기 총의 고유번호를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전쟁이 나면 총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CALVIN 역시 6.25때 M1소총과 함께 쓰이던 미국 소총인데 CALVIN 30 M2는 가벼워서 좋고 자동으로 연속 발사되는 좋은 총이었다. 따따따따!

아! 7076205는 오래전에 폐기되었을 것이다. 칼빈소총은 키가 작은 나에게 딱 맞는 총이었다.

 

자식들이 나를 닮아서 역시 크게 자라지 못하였다.

큰 아들은 176cm로 평균은 될성 싶은데 하필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다 보니, 사진을 보면 서양아이들 틈에서 작은 키로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둘째이다. 173cm여서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보니 제일 앞 줄에 서있었다. 자식들이 나보다는 10cm가량 크지만 그래도 요즈음 젊은이들의 키에서는 작은 편에 속한다. 작은 아들은 키 크는 클리닉에 보내 달라고 조르기도 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검사해보니 이미 성장판이 닫혔다고 해서 그만두었다. 지난 달에 아버지가 입원하느라 병원에서 키를 쟀는데 놀랍게도 나와 똑같은 163cm였다. 음……내가 그래서 163cm였구나!

 

 

인식론에서 경험론을 주장한 철학자 로크는 사회계약론에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은 침해당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을 가진 상태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화로운 사회에서도 분쟁과 불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로크는 이러한 분쟁을 막고 인간의 자연권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해 인간들이 상호간의 계약에 기초한 정부를 구성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는 오직 동의에 의해서 부여된 위임에 따라 입법권이 제정하는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는다고 하였다.

결국 자연권 즉,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고 공동의 법을 만들었다는 것이 사회계약론의 요체이다.

나는 어디 가서 말싸움을 해도 시쳇말로 씨가 잘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싸움을 잘 하지 않는다. 덩치가 작으니 힘이 약할 것으로 생각하는지, 크게 소리를 내도 내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저 법이 보호해주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혹자는 키 작은 사람들이 더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강감찬  157

등소평  158

볼테르 160

제임스 메디슨 (미국대통령) 163

찰스1세 (영국의 왕) 163

피카소163

오나시스165

박정희 160

남기완교수 163

 

그러나 이것은 모두 키 작은 사람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말속임이다. 위의 사람들은 키만 작고 능력은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키가 크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에 방해가 되었다는 예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나는 내 키를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내 키가 한 뼘만 더 컷더라면, 그래서 183cm라면, 무엇이 돼도 됐을텐데……

 

엊그제 국방부에서 장교가 되는 요건을 완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뒤져보았더니

키를 164cm에서 162cm로 내렸다고 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키가 더 큰데? 그것도 인권인가? 요즈음은 웬만하면 다 인권에다 갖다 붙이는 세상이니 하여튼 요즈음 같은 기준이라면 내가 장교로 복무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을 보고나서 키로 품평한다.

 

키도 크더라

키만 크더라

키도 작더라

키만 작더라

키는 크더라

 

한 음절 밖에 안되는 단어 ‘키’ 하나만 갖고 모든 품평이 충분하다!

정말 키는 대단한 단어가 아닌가!

 

내가 20대 후반에 혼인 말이 오갈 때,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키를 이야기 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그들이 한말은 물어보지 않아도

 

키도 작더라!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이야기♠ 실수의 연속


 


뻔히 잘못인줄 알면서


순간을 참지 못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만다.  한 두번이 아니다.


뼈있는 말을 하고 나면 다 후회스럽고 결국 그것으로 인하여 낭패를 본다.


그러나 매양 참을 수는 없다. 결국 인간관계가  실수의 연속이다.




며칠 전 평생을 교우하는 친구들과 식사자리에서 뼈있는 말을 했는데 자꾸 후회가 된다.


바라건대 내가 악의가 없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쨌거나 하고 싶었던 말을 했더니 속은 후련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가인 선생님은 내가 존경하는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그 분의 시를 적어두었는데 오늘 생각나서 옮겨본다.




<네 마음대로 해봐>  -가인 김루어-




천황산 몇 번째의 등서리


벼랑 위에 뿌리내려 어깨를 떨던


오리나무, 새싹의 촉이 보인다




두껍고 단단한 각질을 비집고


비음(悲音)의 바람소리에 올랐다가


하늘 틈서리의 맹목적인 자유(自由)와


살을 섞으며 진저리친 결과인 게야




그동안 힘들었지?


이젠, 네 맘대로 해봐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이야기♠ 정원 님

정원님께서 내 식성에 관한 글을 읽으시고 나와 비슷한 입맛을 가지셨다면서


글을 보내오셨다. 정원님은 지난해 수필집을 내셨는데 글이 유려하고 아름다워 문단에서도


오랜만에 좋은 수필이 나왔다고 축하하고, 독자들도 많이 확보했으며,


너도 나도 좋은 책이라고 돌려가며 읽는다는 소문이다.


정말이지 정원님이 나에게 글을 보낸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정원님의 글>


 


선생님의 글을 보다보면 사고방식도 그렇고, 오늘같이 음식에 관한 글을 접할 때도 저랑 많이 비슷함을


느껴 마치 동지애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ㅎㅎ


 


저는 바다가 인접한 인천이 고향인데도 불구하고, 날생선은 아예 먹어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익힌 생선들은 좋아합니다. 특히나 갈치, 조기, 우리 자랄 땐, 밴댕이 구이도 좋아했구요.


엄마가 아지라는 생선 졸임을 자주 해주셨구요. (고등어와 비슷한데, 고등어보다는 약간 작습니다.


고등어보다 비린내가 덜하지요.가격도 저렴하구요) 뱅어포 구이도 자주 해주셨고…


가자미, 박대, 망둑어/ 같은 생선을 주로 파, 마늘, 양파 등을 잔뜩넣어 졸여주시는 걸 잘해주셔서


그런 생선들을 맛있게 먹으며 자란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선은 당연히 굽거나 졸여서 먹는 걸로만


알고 자랐어요.


 


아버지는 황해도 옹진이 고향이신데, 음식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소간을 날로 드시는 걸 즐기셔서 시력이 나빠지는 저에게도 권유해서 억지로 눈을 감고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도저히 비릿하고, 피색깔이라 울먹이며 안먹는다고 떼쓰다가 살짝 프라이팬에 구워서 먹었던 생각도 나고…


낚시를 좋아하셨으니 회도 즐기셨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집에선 생선회를 드신 기억이 없습니다.


 


언젠가 집에서 친구분들끼리 개를 잡았다고 해서 우리집에서 보신탕을 끓여 친구분들에게 나눠 줘서


보신탕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시뻘건 색인데… 저는 처음엔 보신탕인줄 모르고


소고기랑 비슷한 고기라고 해서 조금 맛본 기억으로는 살이 매우 부드럽고, 소고기 살처럼 담백했던


기억이 나네요. 개고기란 얘기를 듣고는 입에 손가락을 넣어 토해내려고도 했어요. ㅎㅎ


 


여름같은 복날에는 백숙을 해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엄마 따라 시장갔다가 닭을


잡는 광경을 자주 봤기 때문에 닭고기 또한 먹지 않았어요. 저는 고기란 소고기 국과 김치찌개에 넣는


돼지고기, 석쇠에 구워서 먹는 돼지고기/ 정도만 먹은 기억이 납니다.


닭고기는 겉껍질이 징그러워서 살로만 발라서 조금은 먹었던 것 같구요.


 


직장 다니면서부터는 회식 자리가 많아 소갈비와 돼지갈비 등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지만,


생선회를 먹으러 가는 날은 반찬만 집어 먹다가 혼자만 멀뚱멀뚱 앉았다가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ㅎㅎ


그때 저는 실은 매운탕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매운탕에 넣는 고추기름이 시뻘겋게 둥둥 떠있는 것과


산초같은 향이 짙은 양념 때문에 먹지 않았지요.


 


어찌보면 은근히 음식을 그렇게 가리던 제가 모든 음식을 거의 먹기 시작하게 된 것이 결혼을 하고


부터였나 봅니다. 시아버님이 워낙에 생선회를 비롯해서 육회를 즐기시는 분인지라 남편도 회를


즐기더라구요. 남편은 고기는 별로 안좋아하는데… 닭고기를 유난히 싫어합니다.


산낙지를 비롯해서 회를 참 좋아해요. 담백하고 깔끔해서 좋다나요? 결혼 날짜잡고 시댁에 놀러갔는데,


어머님이 안 계신 날인데… 아버님이 느닷없이 육회를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해서 기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소고기와 오징어를 내밀면서 저보고 육회와 오징어를 날로 채썰어서 가지고 오라더라구요.


‘ 어떻게 날로 그런 걸 먹느냐고? ‘ 남편이 옆에서 이것저것 양념을 넣는 걸 가르쳐줘서 만들어 가긴 했는데…


그때 난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징어는 제가 데쳐서 가져갔어요. ㅎㅎ 아버님 친구분들이


오셨었는데…  못한다고 할 수도 없어서…


 


결혼하고도 한참을 그런 것 때문에 많이 힘들더라구요. 시아버님이 집에서 꿩과 참새를 잡아서 구워서 드시는 것도


봤는데… 아무리 시아버님이지만, 도무지 그분의 그런 걸 이해하기 힘들어서 한동안 그런 것 때문에


정말 많이 힘들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여자는 시집가면 그 집 구신이 되라는 옛말처럼, 꾹꾹 참아가며


결혼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시댁의 그런 음식 문화를 차츰 접하면서 이제 저도 회를 즐기지는 않지만,


남들 먹을 때, 옆에서 조금씩 먹는 정도는 되었네요. 그러나 아직도 저는 회가 맛있는줄은 잘 모르겠어요.


아주 배가 고플 때, 입에서 부드러운 살 맛이 느껴지기는 하나 즐기지는 않는답니다.


 


음식이란 자라온 환경과 사고방식에서 많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이것이 먹는 음식이다 / 라고 생각하면


못 먹을 건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못먹는 사람의 심정은 이해해줘야 될 것 같아요.


몇달 전, 오이도를 같이 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소고기 국도 기름기가 있어서 먹지 않던 친구여서


제가 별종/ 이라고 생각도 하고 그랬었는데… ㅎㅎ 이제 그 친구도 결혼하더니 고기를 잘 먹더라구요. 하하.


 


그러나 아직까지 저는 보신탕은 싫더라구요. 수술을 몇번씩 해서 의사 선생님이 보신탕을 먹으라고


권하기도 했는데, 그런데도 저는 먹지 않았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쭉~ 먹지 않을 것 같네요. ㅎㅎ


추어탕도 시아버님 덕분에 억지로 먹어봤고… (이거 먹으면 설사해서 싫더라구요. ㅎㅎ )


 


선생님처럼 그냥 나물 반찬, (이것도 지금은 상추니 깻잎이니 날로도 먹지만, 예전엔 생거로는 먹지도 않았어요. ㅎㅎ)


깻잎을 양념에 재서 살짝 쪄서 먹는 반찬을 제가 참 좋아하는데… 지금은 날거로도 잘 먹지요.


이것도 결혼하고 나서의 일입니다. ㅎㅎ ) 끓인 국이나 찌개, 익힌 생선 등이 좋은 것 같아요.


선생님이 날거를 싫어하는 이유가 저도 마찬가지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원글보다 답글이 더 길어지는 모양이네요. 에구… 죄송해라.


선생님 글을 보다보니 자꾸만 저도 생각나는게 많아져서 그런가 봅니다.


실례를 용서하시구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휴일 잘 보내세요.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이야기♠ 댓글란을 따로 정리하면서

 계획을 진행하다가


비효율적인 점이 발견되면


시행 도중에 고치는 경우가 있다.


대개의 경우 고치는 시도는 적합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또 고친다.


문제점은 늘 생기게 마련이다.


주변환경이나 상황 또는 사물에 대한 인식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인헤겔은


모든 인식과 사물은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발전한다고 하였다.


 


일상일기가 개인의 일기같은 느낌을 주어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약간 거리감을 느낄것 같아서


일상이야기로 제목을 바꾸었고, 독자들이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하였더니


많은 독자들이 먼저대로 환원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후퇴도 발전인가? 후퇴도 정-반-합인가?


이런 때는 후퇴가 아닌 르네상스같은 재상, 부활, 즉 다시 돌아가는 발전인가?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공개된 일상일기는 읽는데 부담도 없고, 비밀일기의 성격도 아닌 그야말로


살아가는 주변이야기여서 일상일기 라는 제목도 별 문제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런것 같기도 하고, 원래대로 환원하라는 요구가 많아서


오늘 그 동안 올라온 댓글을 지우기로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따로 별도의 공간에 저장해놓고 보고싶을 때는 


읽어볼수 있도록 하였다.  


이미숙, 송을석의 글을 따로 보관하면서 또 한편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미숙의 글은 아름다웠고, 을석의 섹소폰 소리는 정말 감미로웠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이야기♠ KOREA : 휴머니스트가 살기 어려운 나라



 


 



나는 생선회를 먹지 않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동료들과 회식을 할 때 주변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교감을 할 때도 선생님들이 회식할 때 나 때문에 일식집을 피하곤 했다. 하여튼 나는 문제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내가 날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첫째는 충청도 내륙지방에서 자란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은 문화이다. 문화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통해 가진 공통된 생활양식 또는 행동양식이다. 결국 개인이 어떤 음식에 맛을 들이고 좋은 감정을 갖는 것은 음식문화의 기초단위인 가정에서 비롯되고, 나아가 그가 속한 향토의 문화에 길들여지고, 오늘날처럼 문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시대에는 음식도 대중문화의 성격을 갖고 개인에게 스며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란 가정은 날 생선을 먹지 않았다. 신선한 생선이 내륙으로 들어오기 어려웠기 때문에 소금에 절인 생선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후배교사가 나를 대접한다고 횟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산 낙지를 젓가락에 둘둘 말아서 머리부터 통째로 먹으면서 먹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신경질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산낙지 전문점에서 정력에 좋은 산낙지를 대접하는데 자신의 성의를 몰라준다고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정력에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는 속물인가? 정말 기가 막혔다.




둘째는 아마도 나의 타고난 인도주의(Humanism)정신일 것이다.




나는 어려서 시골에서 자라면서 토끼와 닭을 키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그 수가 제법 늘어서 토끼 50마리, 닭 100마리가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토끼가 먹을 풀을 뜯으러 들로 나가는 것이 주요 일과였다. 닭도 역시 지금처럼 사료를 먹여 키우는 것이 아니고, 내가 들에 나가 닭이 먹을 풀을 뜯어오고, 추수가 끝난 논으로 닭을 내어 몰아 이삭을 먹게 하고, 닭을 풀어놓으면 닭 스스로 집 주변의 땅을 발로 헤쳐 여러 가지 유기물과 벌레, 풀씨 등을 먹으며 저절로 자라는 시절이었다.  토끼는 밥을 주는 나를 보면 뛰어오고, 닭도  싸레기 쌀을 뿌려주면 나를 졸졸 따라오곤 했다. 멀리있는 닭을 부르려면 나는 고고고고–소리를 내곤 하였다. 




아버지가 토끼와 닭을 잡는 날은 나는 거의 밥을 먹지 못했다. 고기가 귀한 시절이라 단백질 부족으로 뼈와 근육의 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내가 기르던 토끼와 닭을 차마 먹을 수 없었다. 고기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음성을 뒤로 하고 뒤뜰에 가서 소리 없이 울곤 하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식구 수대로 닭을 5 마리나  잡았으니 안 먹은 표시가 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아버지의 외숙이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하여 소를 팔았던 날 텅빈 외양간을 보면서 서럽게 울던 기억이 난다. 나는 타고난 휴머니스트였다.




나의 동물에 대한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연에 까지 미쳐 식물을 볼 때도 그러했다.  지나가다 물을 먹지 못하고 고통 받는 화분을 보면 나는 아무리 바빠도 물을 준다. 그냥 간다면 집에 가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것이다. 평생 한 번도 목마른 화분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교감을 할 때도 방학하는 날 교실에 남는 화분이 있을까 염려하여 담임선생님들에게 교실에 있는 화분을 학교 현관에 내놓을 것을 알리고, 학생들이 하교 후 전 교실을 순회하여 남아있는 화분을 손수 들고 내려오며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의 이러한 행동을 강박관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나는 감히 이것을 나의 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위와 같은 연유로 생선회도 먹지 않는 것이다. 익힌 생선은 먹느냐고? 물론 맛있게 먹는다. 날생선과 익힌 생선이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것은 분명히 다르다. 날고기는 그대로 피를 보는 살생을 의미한다. 날 고기가 입에 들어올 때 입안의 내 살과 만나는 느낌을 나는 견디기 어렵다. 물컹한 날고기와 내 날고기와의 만남은 그대로 원시이며 식인종이 날로 인육을 먹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화식은 고기를 먹기는 먹되 종이로 싸서 잘 안보이게, 덜 보이게 처리하고 먹는 것이라고 정의하려한다. 물론 나도 “화식은 그래도 휴머니즘이다” 라는 것이 약간 어폐가 있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날고기를 먹는 것과는 다르지 않는가!




엊그제 돼지갈비집을 지나다 보니 간판에 돼지가 앞치마를 두르고 어서오세요 라고 웃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돼지가 이것을 보면 어떨까? 말이 길었지만 하여튼 내가 휴머니스트 인 것이 날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셋째 내가 육회를 포함한 생선회를 먹지 않는 것은 그것이 위생적인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익히지 않고 날로 먹는 것은 대장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세균과 기생충을 함께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성능이 좋은 구충제가 잘 발달되어있지만 그래도 기생충은 가벼이 볼 수 없다. 특히 서양에서는 여름철에 회를 먹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있다.  월 이름에 R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 달, 즉 즉 May, June, July, August에는 생선회와 굴을 먹지 않는다. 이 기간이 여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름철에는 익힌 생선도 조심해야한다. 익혀도 상한 조개나 생선의 독소는 조금도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김아무개 교장선생님의 사모님은 재작년 여름에 이웃집에서 보내온 삶은 조개를 드시고 패혈증으로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 서울대학병원으로 달려갔지만 패혈증에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도 가끔 그 분을 뵙곤 하는데 인생 말년에 독신으로 사시는 것이 너무나 쓸쓸하고 안돼보였다. 삶은 맛살조개의 독 때문에 배우자를 잃다니……




회충을 포함한 기생충약은 여러 번 먹어서 안심이지만 여러해 전에 사무실 동료가 강권하다 시피 하여 간디스토마 검사를 했더니 놀랍게도 보균자였다. 디스토마구충제를 먹었는데 일반 구충제와 달리 먹는 방법도 특이했고 까다로웠다. 민물고기 회와 생간은 조심해야한다. 얼마 전 지인이 생간을 먹으면서 같이 먹으라고 나에게 권하였다. 나는 익혀야 먹는다고 했더니 생간을 먹고 구충제 먹으면 된다고 약을 보여주면서 걱정 없다고 했다. 약을 보았더니 간디스토마구충제가 아니고 회충약이었다. 세상에! 회충약이 독약인 것도 모르나? 많이 먹으면 회충만 죽는 것이 아니고 사람도 죽는다. 그리고 간디스토마에 웬 회충약을! 




어제 40년 지기 친구들과 점심을 횟집에서 먹었다. 어린시절부터 평생을 함께하는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내가 회를 먹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먹겠냐고 묻지 않았다. 자연스레 횟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바다에 왔으니 그럴 법도 하겠지 하면서 따라갔다. 나는 익힌 생선은 얼마든지 먹는다. 매운탕을 너무나 좋아한다. 나는 별도로 매운탕을 시키려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서둘러 생선회로 정했다. (한 두 번 겪은 일도 아니다. 맹기호는 음식이 까다롭다느니. 매운 것을 먹지 못해 함께 식사하기 불편하다느니 이런 소리를 한 두번 들은 것이 아니니 이젠 만성이 되었다. 하긴 내가 금연하기 전에는 밀가루 음식과, 커피, 매운 것을 먹지 못했고, 늘 주머니에 소화제와 활명수를 넣고 다녔으니 내가 위장이 나빴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다 낳았다. 음……내가 친구들에게 불편을 끼친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냥 따라가기로 했다. 생선회의 스끼다시 즉, 보조반찬을 먹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조개국, 꽁치구이, 도다리찜 이렇게 3가지를 먹었다. 보조반찬 중에서 가리비조개회, 회무침, 아나고회, 멍게회, 개불회, 산낙지회, 키조개회 등은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 않았으며, 메인메뉴로 나온 도미회, 광어회도 한첨도 먹지못했다. 회를 뜨고 남은 뼈로 매운탕을 끓여 먹으면 될것이니까 문제없다고 생각하였다. 드디어 매운탕이 나왔다. 그런데 주인이 밥을 몇 개 드릴까요? 하고 물으니




친구 왈


7 명인데 회 먹어서 배부르니


4개만 주세요! 우리 거의 다 먹었어요.


세상에! 나는 매운탕 뼈다귀하고 이제 먹기 시작하려는데……


이정도면 폭력이다.




조금 미안한지 끝나고 나오면서


나에게 한마디 묻는다 너 게장은 먹냐?


그래! 나 게장 안먹는다!


어쩔래! 




(혹, 네가 잘 먹는 음식이 무엇이냐? )


이렇게 물어야지! 만약 나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다.




하도 기가 막혀서 40년 동안 참았던 말을 했다.


다음에 단 한번만 나에게 무엇을 잘 먹느냐고 물어달라고……




나는 개고기도 먹고, 민물매운탕도 먹고, 추어탕도 먹고, 오리고기도 잘 먹는다.


내가 무얼 그렇게 편식한다고! 단지 날고기만 안 먹을 뿐인데!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이야기♠ 오늘



 


 


<오늘>

 


05:00 기상


05:00-06:20 엑셀의 수학함수 공부


06:20 아내 깨움


06:20-06:40 아침식사(삶은 감자 2개, 사과 껍질 채 1개, 블랙커피 1잔)


06:40-07:20 양치질, 화장실, 조간읽기,


07:20-07:30 수원역에 아내 태워다 주기


07:50-10:05 헬스장(스트레칭, 달리기, 근육운동, 사워)


10:30-11:20 스프레트시트 공부하기


11:20-11:40 크라운 베이커리에서 맛있는 빵샀음 ₩5100


              (일본여행에서 돌아와 오늘 집에 오는 작은 아들을 위함)


11:40-12:00 아래층 위층 이불 모두 햇볕에 널었음(아들에게 보송한 이불의 느낌을 주기 위함)


12:00-13:00 점심(된장찌개, 호박부침, 가지무침, 현미잡곡밥 1공기, 콩자반, 맛조개삶은것 5개, 후식으로 커피 1잔과 수박)


13:00-14:30 홈페이지 일상이야기에 글쓰고, 청와대에 같은 내용의 건의문 올림, 첼로음악들음


14:30-15:30 스프레트 시트 공부하기


15:30-17:00 소설책 읽기


17:00-18:00 집안 청소


18:00-19:00 저녁식사(아버지, 어머니, 아내,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둘째아들, 나)


19:00-19:30 안방에 가서 아버지와 대화하기


19:45-20:20 텔레비전 연속극보기


20:20-10:20 소설책보기


10:20-12;00 자유시간


12:00 취침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