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08_13%20Birthday%202006[1].jpg](https://anbindr.com/wp-content/uploads/xe_files/60/728/061/04_08_13%2520Birthday%25202006%5B1%5D.jpg)
우리 집에는 마당이 있다. 요즈음 마당 있는 집도 드물다.
1975년에 아버지와 함께 지은 단독주택에서 44년째 살고 있다. 당시에 개인 건축에 레미콘을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인부를 사서 시멘트를 삽으로 비벼 등짐으로 날라 집을 지었다. 집안 곳곳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체취가 있다.
아버지 생전에는 마당에 몇 가지 과실나무를 심고 야채를 심어 먹었다.
마당이라기보다는 텃밭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철마다 나오는 야채를 식구들이 먹었다.
마당은 아버지의 물리치료의 장이었다. 채마밭을 가꾸면서 아흔이 넘도록 몸에 근육을 유지하셨다.
재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농사 경험이 없는 나는 텃밭 대신 마당에 잔디를 깔고 일 년 내내 꽃을 보기 위해 여러 가지 화초를 심었다.
눈이 녹기도 전에 제일 먼저 수선화가 꽃대를 올린다. 이른 봄에는 살구가 피고, 5월에는 빨간 덩굴장미가 호화롭다.
장미가 지고 나면 마당의 주인공은 온 동네에 향을 널리는 백합 잔치가 된다. 백합의 끝 무렵에 칸나가 피는데 흰 백합과 붉은 칸나의 조화는 정말 아름답다.
6월이 되면 각시원추리와 보라색 도라지가 꽃대를 높이 올리고 7월 말이 되면 잎이 마른 맨땅에서 상사화가 기운차게 움을 틔운다.
이 때 옥잠화가 피는데 나는 옥잠화의 향을 좋아한다. 백합과는 다른 오묘한 옥잠화의 향에 취해본 사람은 그 맛을 안다.
청포도도 주렁주렁 열린다. 그리고 역시 7월에 시작하여 백일 동안 핀다는 30년 된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9월이 되면 붉은색이 온 세상에 번지듯 꽃무릇이 피어나는데
나는 꽃무릇을 보면서 神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神이 아니고서 어떻게 저런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오늘 아침 마당에서 잡풀을 뽑았다. 정확하게는 달걀후라이 모양의 꽃이 핀 개망초였다.
귀화 식물인데 얼마나 번식력이 강한지 여름철 우리나라 온 산하가 개망초 밭이 되었다.
어머니가 개밥을 주러 나오셔서 나를 보시더니 그냥 두지 왜 뽑냐고 하신다.
어머니 개망초가 쓸데없이 자라서 뽑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냥 두라고 하신다.
매사가 그런 식이시다. 어머니는 잡풀을 뽑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물론이고
벌레 한 마리 잡지 못하게 하신다. 그게 모두 생명이라는 말씀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언급한 것 중에서 성선설과 성악설이 유명하다.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는데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선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과 대립되는 이론이다.
맹자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고 한 중용의 내용을 계승해 성을 만물에 내재된 하늘의 작용, 즉 천명으로 파악함으로써 만물은 성,
즉 천명을 중심으로 볼 때 모두 하나라고 하는 만물일체사상(萬物一體思想)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하늘의 작용이 천지 자연의 대조화(大調和)를 연출하고 있으므로
그 하늘의 작용을 성으로 이어받은 인간도 성의 움직임을 따르면 인간 사회는 저절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의미에서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하늘의 작용인 천명은 만물을 낳고자 하는 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맹자에 의하면 이 천명의 작용은 여천지동류(與天地同流)로 표현된 바와 같이
유(流) 즉 ‘흐름’의 개념으로 파악된다. 모든 존재자의 근저에서 흐르고 있는 이 ‘흐름’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다.
맹자에 의하면 모든 존재자의 존재하는 현상들은 이 ‘흐름’에 편승하여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유지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흐름’을 존재의 본질로서 이어받고 있는 인간의 성은 남을 사랑하는 작용으로 나타나는데,
만물을 낳고자 하는 천명이나 남을 사랑하는 인성(人性)은 모두 인간의 의식이나 감정의 밑바닥에서 흐르는 인간 행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인성의 내용으로서 설명되는 구체적인 예는 맹자에 의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설명된다.
인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나타나는 바탕이 된다.
측은지심의 구체적인 예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즉,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 하는 것을 언뜻 보면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측은지심과 같은 성의 작용은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을 초월해 존재하는 만인 공통의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를 천명이라 설명하는 것인데, 이러한 성이나 천명의 작용을 맹자는 선(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성선이라고 했을 때의 선은 인간의 의식이나 생각이 개입된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도덕적 행위를 표현한 말이 아니라,
의식을 초월해 그 밑바닥에서 흐르고 있는 성의 움직임 그 자체를 표현한 말이다.
어머니는 올해 90세밖에 되지 않으셨는데 죽는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하긴 열 분의 동년배 친목회에서 두 분만 남으셨다.
개밥을 주면서도 나에게 당부하신다. 저 개가 나보다 더 오래 살 터이니 내가 죽거든 끝까지 잘 먹여서 수를 다하게 해달라는 말씀이다.
내가 어려서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때는 부엌에서의 설거지물이 뒤란으로 나갔다.
특별한 배수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뒤란으로 동네 도랑과 연결되어있었다.
그 도랑에 물고기가 살았다. 어머니는 뜨거운 설거지물은 식혀서 버리셨다.
배수구에 살고 있는 물고기, 지렁이 등도 귀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나도 어머니의 그런 성정을 닮았는지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는 날이면 저녁을 먹지 못하고 밖에서 빙빙 돌았다.
사실 닭은 사람을 따르지 않지만, 집에서 기르는 닭은 모이를 주려고 부르면 달려온다.
구구구구~하고 닭을 부르면 멀리 있던 닭까지 달려와 모이를 받아먹는다.
닭도 먹이주는 주인을 따른다. 그런 닭을 아버지께서 식솔들에게 고기 맛을 보여주려고 목을 비틀 때 나는 집을 나갔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이게 모두 어머니의 성정을 물려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인데 어머니에게 있어서 홍익인간의 이념은 자연의 미물에까지 미치셨다.
인간만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동물과 식생에까지 이르렀다.
어머니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하시고 야학에서 한글을 깨우친 것이 전부인데
어떻게 저런 마음을 가지셨을까! 이 대목에서 맹자의 성선설을 생각한다.
어머니는 도덕적 판단과 관계없는 타고난 성선의 개념에 더하여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미물과 식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애틋한 마음을 가지셨다.
그런 어머니를 가진 것이 감사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