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 진취적이길 바란다. 과거에 연연해 하지 말고 서 있는 현재에 가치를 두고 매진하길 바란다.
다행이 아들은 나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이다. 그는 끊임없이 추구하고 변화하려 한다.
아들이 보고싶어 마땅한 사진을 찾으니 없다. 그의 대학 졸업날 사진이 있어 올려본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과거지향적인 면이 너무 많다.
우선 고향이라는 개념에서 그러하다.
고향을 떠난 지 40여년이나 되었고,
지금 그 고향에는 내가 놀던 강변의 모래톱도 없고,
소에게 풀을 뜯기던 들판도 없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고향의 정감 어린 정서가 동영상으로 잠재한다.
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노래를 불러도 나는 과거 지향적이다.
즐거웠던 그날이 올수 있다면 아득히 멀어저간 옛날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그 동안 이따위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제 다시는 부르지 않겠다.
지금은 별로 생각하지도 않지만
가끔 젊은 날에 교우했던 사람들이 생각나는 수가 있다.
대상이 절친했던 남자 일수도 있고, 이성으로 사귀었던 사람도 있다.
지금 그걸 생각해서 무엇한단 말인가?
가끔은 죽은 사람이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30여년 이상 만나지 않은 사람은 이제 기억 속에서 지워야 한다.
아니 10년 이내에 만나지 않은 사람도 모두 잊자!
모두 깡그리 지워버리고 잊자,
그들은 기억할 필요도 없다.
그 기억 장치에다가 현재와 미래의 계획을 넣자
지나간 일들에 미련을 두지 말자.
과거에 연연하여 얻을 것이 무엇인가?
롱펠로우의 인생찬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과거는 죽은 것이다. 죽은 과거는 죽은채 덮어두자.
오늘 나는 감히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앞으로 현재에 의미를 두고 살며,
미래를 기대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생각할수록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
오늘 나의 과거를 화형에 처한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도
기러기가 지나가고 나면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