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혼자의 방

경기도는 외부에서 인구 전입이 제일 많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에도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한다.


 


학생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학교를 더 지어야하고,


 


교원도 늘려야하고,


 


교육전문직의 숫자도 늘려야한다.


 


그런데 이번에 교육전문직의 정원을 늘려주지 않았다.


 


일선 교육청의 직제가 확대되어 장학관이 필요한데  TO를 늘려주지 않아서


 


우리 교육원의 장학관 TO를 빼내어 일선 교육청에 배치하였다.


 


우리 교육원에 후임 장학관을 발령내지 않고


 


현재 있는 인원을 가지고 교육행정을 해나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내가 장학관 직무대리로 임명되었다.


 


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다.


 


직무대리?   음…..가라 or 마이가리 장학관 이구나 ㅎㅎㅎ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공직에 들어온지 생전 처음으로 내 방을 갖게 되었다.


 


 


사실 교장을 나갔으면 벌써 독방을 가졌을 것이지만…….


크지 않은 아주 작은 방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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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한 번으로 족하다.


 


교육원에서 송별연이 있었다.


음식점에서 전체 직원이 모였다.


가시오가피술과 소주를 마셨다.


 


나는 젊은 시절에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20대 대학시절에 선배들이 주는 술을 맛도 모르고 마셨다.


그런데 소주 반병 이상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괴로웠다.


속이 메스꺼워 토하기 위해 손가락을 목에 깊이 넣어도


넘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속시원이 토하기라도 한다면 몸이 덜 괴로울텐데


나이 50중반에 이르도록 단 한번도 술먹고 토하기를 성공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정신이 멀쩡한 것이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은 필름이 끊겼느니 어쩌니 무용담처럼 말하는데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에게 말했더니 설먹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더 먹으면 어느 순간에 필름이 끊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주 반병이 정량인 나로서는 너무 괴로워 그렇게 많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사가 되어 성인 집단에서 회식을 하게 되면서 부터


술잔을 돌리는 문화에 속하게 되었다.


역시 술자리는 나에게 고역이었다.


선배교사에게 술을 권해야 하는데 그러면 선배가 따라주는 술을 또 받아야하니


그것이 고역이었다. 권하지 않고 구석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면


왜 술을 따르지 않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런 내가 교감을 거치고 장학사를 하면서


술자리가 많아지고 서서히 술이 늘게 되었다.


 


어제 드디어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송별연 자리에서 여러사람에게 술을 권하고 잔을 받았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특별하게 많이 마셨다는 생각은 없었다.


드디어 필름이 끊긴것이다.


음식점에서 다음에는 노래방을 갔는데


문제는 내가 어떻게 음식점에서 나와 노래방으로 이동했는지 그 과정이 생각나지 않는다.


음식점은 2층이고 거기서 내려와 한참을 걸어야 노래방이 있다. 걸어간 기억이 없다.


 


내가 노래방 소파에 앉은 기억은 난다.


여러사 람들의 몸이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나를 보고 많이 취했다고 말을 건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내가 토하는 기색이 보였는지 누가 나를 옮겼다.


내가 옆방으로 가서 바닦에 토한 기억이 난다.


놀랍게도 시원하게 내용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한 번 토했는데


아침에 물어보니


 


노래방에서 토하고


 


노래방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토하고


 


노래방에서 나와 택시를 기다리면서 토했다고 한다.


 


두번째, 세번째 토한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택시를 기다린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정현선생이 나를 택시에 태워 교육원 관사로 온 모양이다.


 


택시에서 내린 생각은 안나고 내 방에 들어온 생각은 난다.


방에 들어와 옷을 벗고 그리고 방바닥에 다시 토했다. 이것도 생각난다.


 


일어나니 아침이다.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전화가 여러통이다.


장학관님과 동료들이 내가 없어졌으니 찾은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1차 음식점- 2차 노래방- 3차 호프집- 4차 교육원관사


이렇게 4군데를 거쳤다고한다. 정말 많이 먹는 사람들이다.


나는 1차 음식점에서 뿅 간것이다.


내가 1차에서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게 많이 마셨나?


꼭 그런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컨디션이 나빴는지 모르겠다.


 


어렵쇼! 핸드폰을 보니 내가 아내와 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아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드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잔뜩 취한 음성으로 무엇을 먹고 살것인지, 어떻게 살것인지 걱정하지 말거라


네 뒤에는 항상 아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여라 뭐 이렇게 말했다한다.


 


음….평소에 늘 하던 이야기구나. 둘째는 더 황당했다고 한다.


아빠가 전화를 걸어 옆 동료를 무조건 바꿔주었단다.


아마도 이정현 선생님을 바꾸어 준 모양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내와 두아들에게 전화를 걸은 것이 전혀 기억이 없다.


 


아침을 먹으면서


동료들에게 무릉도원에 갔다왔다고 자랑하였다.


필름이 끊긴것이다.


이상한 것은 필름이 끊겼다 이어졌다 왔다갔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아주 작은 순간이 기억 나는 것이다.


 


나는 어제 처음으로


도화경에 빠졌었다.


그것 한번으로 족하다.


 


앞으로는 술을 줄여야겠다.


더 이상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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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워낭소리 할머니 끝내줬다.


 


 



 


내가 워낭소리에서 최고의 인물로 뽑은 것은


할머니다. 할머니 연기 정말 대단하였다. 할아버지가 일하다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나를 고생시킨 죄값이라며 눈을 흘기면서  고소한 마귀할멈같은 미소를 짓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워낭소리….


오랜만에 가족이 영화를 보았다.


 


밤10:40분에 4명이 수원역 극장에 갔다.


 


1억들인 영화가 100만 관객에 육박한다 했다.


 


 


보통 소는 20년 사는데 40년동안 살았으니 인간으로 치면 120살을 살은 셈이다.


그런 소와 함께 질곡의 인생을 살아가는 노부부를 그렸다.


 


어려서 소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아주 기대되는 영화였다.


인간과 소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충열 감독은 43살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이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늙은 소와 늙은 부부가 함께 어우러져 산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과 소와의 깊은 교감을 더 부각시켰으면 하는 점이다.


실제로 소는 주인의 말을 다 알아듣고 또 거기에 자신의 감정도 나타낼줄 아는데


그런 면은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다.


 


 


몇 장면은 화면이 아주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는데


전체적으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 그랬는지 너무 힘들고 지저분한 장면이 많았다.


아마도 주인공이 장애인이기때문에 주거나 생활이 정갈하지 못한것은 이해하지만


어짜피 영화는 인위적 장면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이 보기에 아름답고 좋아야한다.


노인이기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이해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아파 아파 하는 것은


영화보러 간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다큐멘타리의 범주를 벗어나 영화라면


관객에게 좋은 화면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


그것이 기쁨이든지 슬픔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설령 슬픔이라해도 슬픔의  정서를 아름답게 만들어 서비스해야한다.


 


노인을 양옥집에서 찍으라는 것이 아니고


소를 키우는 외양간이라 해도 얼마든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만들수있다.


예를 들어 소의 얼굴 주변을 묶은 줄이나 코뚜레 주변도 필요이상으로 지저분하다. 


실제로 저렇게 지저분한 소는 거의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소와 인간과의 깊은 교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괴물이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관객을 모았으며


최고의 영화로 추앙받는것은 거기에 가족간의 휴머니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모래시계, 친구, 신라의 달밤 등 각목 휘드르고 칼질하는 영화를 만드는


강호순이와 다를 바 없는 쓰레기 같은 감독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워낭소리가 100만에 육박한다 하니


이충렬 감독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고 그의 후속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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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추기경은 리더였나?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떴다.

추모객이 40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각계인사들이 추기경의 별세를 애도하며 추기경을 기리는 좋은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 무조건 동참할 수 없다.

김수환씨는 내가 어릴적부터 추기경이셨다.

그런데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국민에게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방향 제시를 들어본 적 없다. 내눈에는 느릿 느릿한 침묵의 방관자였으며

그저 서로 사랑하라는 말 뿐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 봉사했다고 하는데

그런 봉사활동이야 추기경으로 당연한 임무가 아닌가?

한국천주교 수장이면서 젊은신부들의 정치적 행동에 훈수 한 번 둔적없다. 늘 강건너불구경이다.

광주사태와 박종철 고문사망 때 몇마디했다고 정의 편에 섰다고 치켜세우는데 

추기경이 그것도 아니면 그게 추기경인가?

더 적극적으로 정의의 편에서 추상같이 갈기를 세웠어야한다고 본다.

나는 추기경을 보면서 최규하대통령을 떠올리곤 했다.

느릿한 행동이 비슷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점도 닮았다.

이런 사람이 무슨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가?

리더는 항상 정의의 편에서서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김수환의 죽음에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면 정말 이 시대에 영웅도 없고 지도자도 없다. 

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이 느릿한 추기경의 죽음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언론에 나타난 각계의 애도 반응을 모았다> 동아일보에서 퍼옴

▽김형오 국회의장=모든 신앙인의 표상이시며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큰 족적을 남기신 추기경의 영전에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 민족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의 등불을 밝히신 고인께서 부디 하느님의 품 안에서 고이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우리 시대의 큰 별이 졌다. 1960, 70년대의 어두운 시기에 우리 사회의 큰 기둥이 되어 주신 분이다. 국회의원 시절 국회 가톨릭신도회를 통해 추기경을 자주 만났다. 그때마다 김 추기경은 정치인들이 앞장서 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분이 남겨 놓은 민주화와 사랑의 씨앗을 잘 키워야 한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종교계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지도자이며 국민을 가장 사랑한 국민의 위대한 친구가 떠나서 매우 슬프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 현대사의 큰 별이셨다. 어두웠던 시절에는 빛이었다. 그분의 삶은 사랑이셨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원한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깊은 신앙과 삶의 철학, 사회와 나라에 대한 통찰과 따뜻한 사랑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었다. 이러한 위대한 영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 국민과 나라의 안전, 미래를 걱정했고 나라를 위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의 말씀은 바른 길을 가리키는 등불로 남아 있을 것이다.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우리 종교계의 큰 스승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불교계 사부대중과 함께 애도한다. 천주교인의 슬픔과 함께하며, 이웃과 고통을 함께 나눈 고인의 지표가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정의채 몬시뇰=수난의 민족사에서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기에 종교지도자로서 용기 있게 일어나 독재정권과 맞섰다. 사심 없이 시대의 바람을 읽고 거기에 응답했기에 현대사에서 중요한 계기를 만든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권오성 목사(총무)=김 추기경은 개신교와 가톨릭과의 대화에 애를 쓰셨고, 민주화와 사회정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사랑을 베푸셨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평화와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을 앞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함께 이뤄가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최희범 총무=사회 통합과 정의를 위해 애쓰신 김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한다. 한국사회가 그 뜻을 이어받아 더욱 약자들을 보호하고 행복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불교 경산 장응철 종법사=종교계 큰어른으로 온 국민이 존경했던 김 추기경의 선종에 원불교도와 함께 충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평생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종교 간 대화와 일치, 도덕성 회복, 민주화에 공헌한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민족의 큰 별이셨으며 정신적 지도자로서 그동안 국가 사회발전에 기여하셨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명쾌한 길을 안내해 주셨고 민주화 과정에서도 크게 이바지하셨다. 추기경의 선종을 충심으로 애도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던 2006년 5월 아내(송현옥 씨)와 함께 추기경을 찾아뵈었을 때 덕담과 함께 묵주를 주신 일이 생생하다. 당시 추기경께서는 “시정을 하게 되면 시민들이 편안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셨다. 시장이 된 뒤에도 뵐 때마다 시정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려울 때마다 지혜를 주셨던 큰어른의 선종이 안타깝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종교를 떠나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 큰 사회의 지도자다. 어려운 시절 보여준 용기가 잊히지 않는다. 큰 별을 잃었다.

▽시인 신달자 씨=낮은 곳에서 언제나 사람으로서 부를 수 있는 모든 이의 아버지셨다. 그분은 너무나도 친숙한, 혈육의 아버지보다 또 다른 영성의 아버지 같았다. 치유의 은사가 계셨다. 평범한 말도 그분이 하면 감동을 준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같이 행사도 하고 식사도 하고 했었다. 첨보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셨다. 신앙이 있건 없건 모든 이의 길잡이가 되셨고 신앙을 초월하신 분인 것 같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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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명품

친구들과 천태종의 본산 충북 단양의  구인사를 구경하고 입구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식당은 많고 어느 식당을 들어가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동네 사람에게 물었더니 저기 금강식당에 가면 맛이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둘러 금강식당으로 갔다. 텔레비젼에 몇번 나왔느니 어쩌지 하는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붙은 집이었다.


 


나는 그런 집을 별로 신용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방송국에서 먼저 제의가 온다.


 


텔레비젼에 맛있는 집으로 소개해줄테니 돈을 내라는 식이다.


 


방송국 직원이 직접하는 경우는 드물고 외주업체가 제작하고 돈을 요구한다.


 


처음부터 섭외하는 사람이 외주업체다. 하여튼 마땅한 집이 없어 금강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금강식당 주인 남자가  메뉴를 권하면서 설명하는데


 


이사람의 깊은 내공이 보이는 것이었다. 자기 식당의 음식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주인이 권하는 대로 음식을 시켰다.


 


이름하야 쟁반냉면!


 


세상에! 나는 쟁반냉면을 저렇게 정갈하고 아름답게 내놓는 식당은 처음보았다.


 


쟁반 안에 음식의 배치를 보라!  예술이다! 야채가 서로 섞이지 않도록 원주율을 따라 배치하였다.


 


원래 비빔밥을 내놓을 때도 나물을 볶을 때부터 따로따로 볶고, 그릇에 담을 때도 나물이 섞이지 않도록


 


배열하는 것이 맞는것이다. 요즈음은 나물을 뒤죽박죽 섞어서 내놓은 비빔밥 집이 대부분이다.


 


그냥 온통 대강대강이다. 하여튼 쟁반냉면이 나를 감동시켰다.


 



 


더덕백반도 시켰는데 사각의 반찬 그릇을 배치하는 것도 예술이다! 아름답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 서서 금강식당 전경을 찍었다. kbs 6시 내고향 어쩌구……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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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일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내가 근무하는 교육원에서 7분 정도 거리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이 있다.


 


맞배지붕에 운치있는 황토집을 짓고 있어서 지나는 길에 차를 세우고


 


구경하러 왔다고 하니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자세히 보니 안채가 따로 있었고, 황토집은 별채로 짓는 것이었다.


 


아내가 병이 깊어 아내를 위해 황토 기와집을 짓는 것이라고 햇다.


 


음….부인을 극진히 위하는 사람이었다.


 


경주에 가서 300년 된 헌집을 뜯어다가 다시 짓는 것이었는데


 


목재는 헐어서 버리고 기와만 살렸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니 옹기기와였다.


 


전체적으로 너무 규모가 컸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호화로운 집이다.


 


그러나 제천에서 본 아내 직장 동료의 전원주택 보다는 운치가 있었다.


 


내가 집을 짓는다면 형태는 이와 약간 비슷하되 면적은 더 작게 지을 것이다. ^-^


 


일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집을 지어도 제대로!


대강 흉내만 내는 것은 안된다! 제천을 두고하는 말이다.


 



 


안채을 정면에서 찍었다. 40평은 족히 되어보였다.


사진으로 보면 대강 지은 집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정성들여 지은 집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이다. 정원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꾸몄는지


아마도 건물보다 정원에 더 많은 돈이 들어갔을 집이다. 함께 간 곽봉준 장학사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안채를 측면에서 찍었다.


 



병든 아내를 위해 지었다는 바같채 황토흙집이다. 맞배지붕으로 운치가 있다.


제천의 대강 지은 집에 비하면 제대로 지은 집이다.


돌로 기단을 만들었고 주춧돌을 다듬은 손길도 정성이 보인다.


나무 또한 제대로 대패질을 했고 다듬었다.


장작도 아름답게 쌓아놓았는데 불 때는 부엌을 아무 가림막 없이 노출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황토기와집의 전면이다. 함께간 최은숙 선생님이다.


맞배지붕의 옆면도 이만하면 좋은 모양이다. 풍판을 댄것보다 훨씬 간결하고 깔끔하다.


 



황토기와집의 부엌인데….외부에 노출시킨 것이 흠이다. 비바람 치는 날 힘들게


장작을 지피는 것을 지나가다 본 적이 있다. 담을 둘러쳐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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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틀렸다!

부부동반으로 충북 단양을 다녀오는 길에


 


아내가 학교 동료 선생님의 전원주택에 들르자고 한다.


 


내가 훗날 전원에서 살겠다고 버릇처럼 말했더니


 


그 동료의 집처럼 지으면 전원으로 가겠다며 꼭 보여주고 싶단다.


 


여기에 그 집의 사진을 올린다.


 


[보고 난 내 느낌]


 


틀렸다!


 


왜냐하면 우선 규모가 너무 크다. 아랫층 30평, 윗층 15평으로 45평은 너무 크다.


 


그리고 품위가 없다. 크기만했지 기둥을 삐뚤게 지어 기품이 없다.


 


내가 지을 집은


 


단층 30평의 양옥집이며(한옥으로 지으면 좋지만 공사가 너무 힘들고 번거로우며 관리하기 힘들다)


 


여기에 더하여 마당에 장작을 때는 구둘방 5평짜리를  한동 더지으면 족하다.


 



 


너무 크고 품위가 없다……


 



 


실내에서 내다보이는 넓은 창으로 멀리 저수지가 보인다.


참으로 전망이 좋은 집이었다.


 



난방을 심야전기로 하고 있는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실내 면적이 크다보니 나무 난로를 병행하여 쓰고 있었다.


난로가 마음에 들었다. 고구마를 구어먹을 수 있는 난로이다. 아내는 군고구마를 무척 좋아하는데 ㅎㅎㅎ


 



 


손님이 왔다고 농사지은 곡식을 내놓았다.


 



뜰에 내려 기념 촬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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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無題

보헤미안[Bohemian]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를 말한다.

오늘 문득 그런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너무 번잡하고 신경쓸 일이 너무 많다.

오늘 강화도 초피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조선말의 문인 이건창 생가에 들렸다.

캐논 카메라로 찍었다.

이건창 생가의 문학비에 일생의 벼슬살이가 마음에 맞는 것보다는 몸만 고달펐다 라고 써있었다.

                                                       <이건창 생가>

화면에 우물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은 곽봉준, 유시형 장학사 이다. 두 분 모두 내공이 깊은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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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고양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던 2006년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는 나라이다.


그리고 내수시장도 좁다.


그러면 우리가 살길은 자명하다.


수출을 해야 먹고 살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의 바탕에는


반드시 수학과 과학이 있어야 한다.


 


인문학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나라는 미래가 없다. 


 


고양교육청에서 과학, 수학 관련 장학사를 담당하던 시절


과학을 장려하고 과학과 친숙한 생활을 하기위해


과학적 실험을 직접해보는 축제를 열었다. 


 


6만평의 광활한 지역을 선정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기획, 진행의 사령탑이었다.


모든 것을 혼자서 기획하였다.


 


관내 100여개 초중학교에 공문을 보내


과학축제에 참석하는 학생은 학교출석으로 인정한다고 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으나 3만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정말 대단한 축제였다. 과학실험부스 130개를 설치하였으며


부스마다 신기한 과학 실험을 관람객이 직접 해보는 것이 축제의 핵심이었다.


진행요원으로 교사 300명을 배치했으나 행사장은 매우 혼잡하였다.


 


너무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고 누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mbc에서 기자가 나와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당시 현장에는 교육장님과 국장님과 장학관도 있었지만


내가 나서서 담당 장학사라고 했더니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래서 저녁 9시 mbc뉴스데스크에 나오게 되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축제는 아름다웠다.


개막식 직후에는 한꺼번에 사람들이 실험부스에 몰려 혼잡했던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실험목표를 채운 학생들이 돌아가기 시작하였고,


하루 종일 열린 행사였기 때문에 이내 질서가 잡혔으며


오후에는 여유롭게 진행되어 기다리는 줄도 없었으며 한산하기 까지 하였다.


지금도 내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축제가 혼잡하다는 것이 9시 뉴스와 일간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일로 나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일을 열심히 하고도 욕을 먹었다.


친구들은 뉴스에서 내 얼굴을 보고도 참혹하여 차마 나에게 전화를 하지 못했다.


 


다시 보니 세상에! 내 얼굴도 이상하고 말씨도 어눌하다!


천하의 맹기호가 카메라 앞에서 쫄았나?


 


기자의 편집 의도에 걸린것이다.


좀 과학적 시각으로 보면 안되냐?


 


과학과 수학교육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람 좀 몰리고 혼잡하면 어떠냐!!!!!!!!!!


 


덤빌라면 덤벼라! 씨! 나는 지금도 mbc 뉴스 안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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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에 가도 줄서는데 명색이 과학축제에 줄 좀 서면 안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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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쫏겨나지 않으려면 미리 훈련시켜야 한다.

우리 집은 3 대가 한 집에 사는 확대가족이다.


 


주방은 어머니와 아내 몫이다.


 


아주 오래 전 어느날  저녁의 일이다.


 


어머니가 어디 나가셔서 내가 아내에게 저녁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설거지 하는 모습을 식탁에서 차를 마시면서 물끄러미 바라다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때 밖에서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내가 설거지 하는 모습이 보기 싫으셨던지 ” 네가 부엌데기냐” 하시며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셨다.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3끼를 매일 먹으면서 어떻게 여성에게 음식 만들기를 100%의존한단 말인가?


 


음식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겨우 설거지 한 번 한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은 무엇인가?


 


그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나의  두 아들 역시 설거지 한번 하지 않는다. 그저 먹고 일어서면 그만이다.


 


어느 날 아내가 말한다. “아들을 이런 식으로 키우면 나중에 이혼당하기 십상입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맞는 말이다. 내가 모범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나는 설거지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요즈음은 아버지를 제외한 우리 3명의 남자들이 번갈아 설거지를 한다.


 


내가하고, 다음은 큰아들, 둘째아들의 순서로 설거지를 한다.


 


오늘 저녁 설거지 당번은 나였다.


 


가족의 저녁식사가 끝나면 모두 주방에서 나가라고 한다.


 


아내도 2층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내 설거지가 이어진다. 사실 나도 좀 귀찮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아들의 무난한 결혼생활을 위해 길들이는 것이라면 해야지 할 수 없다. ㅎㅎㅎ


 


 



 


 



 


 




 


 


설거지 하다 보니


 


언젠가 내가 관광지에서 사온 도자기 주걱이 보였다. 벌써 여러 해 쓰고있다.


 


플라스틱 주걱으로 밥을 푸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 대나무로 된 주걱을 사왔는데


 


보통 나무주걱 보다는 낫지만 아무리 대나무라해도 나무로 된것은 물기에 약하다.


 


그런데 도자기 주걱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샀다. 사길 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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