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자화상

지난 해에 자화상을 그렸다.

사진을 보고 그렸는데 정확히는 2003년 8월에 우리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밝는 햇살을 찾아 찍다보니 마당에서 찍게되었는데

그런 연유로 배경은 담벼락이 나왔고 담위에 쇠창살과 그 위로 아무렇게나 자란 호박잎이 널렸다. 만으로 48세의 나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필로만 그렸다. 얼굴의 아래부분이 약간 축소된 느낌이 있다. 실제의 내 얼굴은 그림 보다는 약간 살이 더 찌지않았나 생각된다.

흰 셔츠를 입었으며 셔츠 속으로 메리아스가 비치고 있다.

내 얼굴을 그린다는 것이 조금은 생소한 면도 있었으나 모든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데 나는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어 마음먹고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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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21.0975km

두 달 전에 대전 한밭대학 중문과 학과장으로 있는 남기완 교수한테 수원마라톤에 함께 출전하자는 전화가 왔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현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담배를 끊었고 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남교수는 오래 전부터 테니스로 몸을 만들었고, 나는 작년 1월부터 헬스장에 나갔다. 처음에는 둘이서 출전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친구 송기원을 끌어들였다. 우리 셋은 35년 이상을 사귀어온 벗이다.

마라톤 전 날 저녁,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냥 지날 수 없어 맥주를 한 병씩 마셨다. 그리고 송기원 집에서 함께 잤는데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잔다. 3시간 정도 잤다. 마라톤 하기 전 날 술을 마신 것도 잘못이고 잠을 덜 잔 것도 잘못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지인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쌀쌀하였지만 런닝복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자못 의기충천하였다.

운동장에 모인 2000명 정도의 인원이 함성을 지르니 천지가 떠나갈 듯하였다. 우리는 출발선의 맨 앞에 자리를 차지하였다. 10Km까지는 셋이 함께 뛰고, 그 이후부터는 각자 개인의 능력대로 달려 기록을 내기로 하였다. 나는 내 체력을 잘 알기 때문에 오버페이스 하면 낙오할 것 같았다. 절대로 오버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출발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출발하면서 나를 추월하였다. 내버려 두었다. 나는 도저히 그들처럼 스피드를 낼 수는 없었고,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달리면서 추월을 허용하였다. 수 백 명이 나를 앞질러갔다. 모든 사람에게 추월을 허용하고 내 페이스대로 달리다가 아차 하는 사이에 나는 남교수와 송사장을 잃어버렸다. 그 두명의 친구도 나를 추월하여 달려 나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추월은 허용해도 그 두 명을 놓쳐서는 안 되는데 그만 방심하는 사이 친구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온힘을 들여 뛰어도 앞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두 명의 친구는 이미 내 시야에서 너무 앞에 있었다.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계속해서 추월을 허용하기만 했지 내가 추월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으니……

이렇게 가다가는 제한 시간인 2시간 30분을 넘길 것 같았다. 2시간 30분을 넘기면 경찰관의 도로통제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차량에 강제로 탑승해야한다. 불길한 예감은 계속되었고, 급기야 배가 약간 나와 보이는 몇 사람을 페이스메이커로 선정했으나 그 들 모두 나를 추월하였다. 만만해 보이는 여자선수를 세 번이나 페이스메이커로 선정하고 그녀들을 따라갔으나 그녀들 모두 나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10킬로미터를 통과할 때 시간을 보니 53분이었다. 세상에! 그렇다면 작년에 참가한 10킬로 대회보다 3분이나 단축시킨 것이다. 작년 대회 때는 10km를 56분에 완주하였었다. 약간 희망을 갖기도 했으나 작년에는 10Km 대회이고 오늘은 21.0975Km이다. 아직 가야할 거리가 너무 멀었다. 계속 추월을 허용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가는 것 같았다. 정말 이러다가 내가 맨 꼴지면 어떻하나 하는 불안감은 점점 더 커갔다.

15Km를 지나면서 지쳤다. 나는 사실 10Km 이상 뛰어본 경험이 없다. 17킬로를 지나면서 걷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나도 걷고 싶었다. 1분정도 걷다가 다시 뛴다면 기록이 1분 늘어나는 것이지 완주만 하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걷지는 않았다. 여태까지 뛰어온 거리가 너무 아까워 걸을 수 없었다. 여기서 기권하면 아버지를 믿고 사는 어린 두 아들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5Km 쯤 달리는데 뒤에서 남교수가 나를 불렀다. 아니 그렇다면 내가 제일 앞서서 달렸단 말인가! 세명 중에서 내가 제일 꼴지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출발선에서 나갈 때 친구들은 나보다 더 뒤쳐져서 달린 것이었다. 남교수는 아직 힘이 남아있었다. 나는 먼저 나가라고 말했다. 나는 이미 지쳤으니 남교수는 빨리 튀어나가 기록을 단축하라는 의미였다. 남교수는 같이 뛰겠다고 했다. 그렇게 100미터 정도 같이 뛰다가 내가 나가라고 재촉하니 남교수도 어쩔 수 없이 속력을 내기 시작하였다.

남교수는 천안중학교 육상부 출신이다. 1970년 천안중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런닝셔츠 차림으로 육상부 기념촬영을 한 남교수의 사진이 있다. 남교수는 어려서부터 달리기에 소질이 있었다. 나와는 체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운동감각을 선천적으로 타고 난 사람이다. 가끔 발바닥에 문제가 있다고 엄살을 피우지만 나는 그 말을 신뢰한 적이 없다.

멀리 사라지는 남교수를 보면서 나는 패잔병처럼 처참한 심정으로 천근같은 다리를 들었다.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나오는 마지막 장면,로버트조단의 운명처럼 처절한 심정이 들었다. 다리가 앞으로 나가질 않았다. 다리가 나가지 않으니 할 수 없이 몸을 수직으로 점프하면서 그 탄력으로 다리를 앞으로 내 디뎠다. 보폭이 30cm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말이 뛰는 것이지 걷는 산보 보폭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리를 뛰고 있었다. 남교수가 나를 추월한 지점부터 결승점까지는 가파른 언덕이었다. 하지만 20Km를 돌파한 상태였기에 기권할 수는 없었다. 하프는 완주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풀코스는 뛰지 못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프코스도 이렇게 어려운데 풀코스를 뛴다면 죽기 아니면, 기권하기 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승점을 300 미터 남겨두고 마지막 스퍼트 하였다. 휘니시 라인을 향해 내 달렸다. 아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약국하는 제자 오연숙과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그리고는 주저앉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송사장은 11Km에서 기권하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차량에 올라탔다고 한다.

기록은 2시간 09분 26초99/ 21.0975km 였다.

2시간 내에 들어오고 싶었는데 기록으로는 실패하였다.

힘은 들었어도 어쩌면 내 인생에서 다시는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성취감에 기쁘다. 함께 뛰어준 두 친구에게 감사하고, 아내에게도, 그리고 축하해주기 위해 결승라인 까지 나온 제가 오연숙에게도 감사하다. 함께 점심이라도 할 것을 말도 못해본 것이 후회된다.

내가 중병의 신호를 접한 것은 2년 전이다. 그러나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그리고 아직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프마라톤 완주로 증명하였다.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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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하는 여학생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로 여성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강의한다. 여러 해 동안 똑 같은 말을 해왔다. 우선 교실에 들어와 칠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쓴다.

< 여성이여 도도하라! >

< 여성이여 거만하라! >

< 여성이여 콧대를 높여라! >

아마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예부터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해 온 우리나라 전통적 가치관에 변화를 시도하려는 생각도 있고, 20세기에 들어와 민주주주의가 확산되면서 여성에게도 정치적 자유와 참정권을 부여한 이래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세계적 추세에 적응하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이유는 내가 가르친 여학생들이 제대로 대접받고,

행복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

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여성들이 살아가기에

는 좋은 환경이 아니다. 가사를 여성이 혼자 독점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민

족의 영원성을 이루어주는 출산이라는 엄청난 일을 책임지고 있으며 특히

육아의 대부분은 여성의 몫이고 유년기가 지난 자녀들이 교육적 책임도 대

부분 여성의몫이다. 자녀가 문제를 일으킬 때 아버지 들이 자주 쓰는 말

이 ” 도대체 엄마라는 사람이 집에서 애들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이모양

이야!”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은 여성이 살아나가기에 참으로 고달픈 나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

내의 가사일을 열심히 도와주는 남편이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시어머니 시

아버지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남편이 아내의 일을 도와주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것도 나의 핑게에 불과하다.나도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어쨌거

나 나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내가 가르친 여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여성

이 스스로 자신을 귀한 존재로 여길것을 원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어떤 여학생은 질문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 그러다가 시집못가면 어떡해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아니다 거만한 여성은 매력적이며

그렇게 하면 오히려 시집 잘 가고,

설혹, 못 간다 해도 밑질 것이 없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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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Vinca minor

<망포중학교 전체직원회 시간에 선생님들에게 한 말이다. 아름다운 봄을 맞는 기쁨으로 일상일기에 올린다>

망포중학교 선생님께 전합니다.

신 학기를 맞이하여 여러가지로 수고가 넘 많습니다.

알릴 말씀은 다름이아니오라

본관 건물 1층 화단에 보면 키 작은 소나무 (반송) 밑으로 땅바닥을 기면

서 자라는 키 작은 식물이 있는데 유럽이 원산지인 ‘빈카마이너’라는 꽃입

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구 20일전부터 다섯장의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는데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제일 먼저 온 것을 자랑하는 폼이 가관입니다. 여간

도도하질 않습니다. 데이트 신청하는 총각이 옆에 오면 당장 물을 끼얹을

태세입니다. 키도 작은 것이 2-3센치의 새싹을 있는 대로 곳추세워 하늘

을 찌를 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주제 파악이 덜 된 듯 합니다. 아마도

다른 멋진 꽃들이 번성하는 본격적인 4월이 오면 고개를 숙일까요?(후후)

하도 요란을 떠니 눈길 한번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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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장모님으로부터 온 편지

너무 과분한 편지를 방명록으로 받았다.

길이 두고 새기기 위하여 편지 원문과 답장을 일상일기에 올렸다.

할렐루야!!

새학기를 맞이하여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나?

그러나 건강이 제일이니 먼저 건강을 챙기시게,

나는 자네를 위하여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릴 뿐일세 .

온 가족들을 위해 기도드리며 특히 카나다에 유학 중인 인영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 드린다네. 보고싶은 손자 ….여름방학에나

보겠지…지난 번에 보낸 교회 소식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

쓰지 말게, 그냥 나의 마음을 자네에게 털어 놓고 싶어서 노파심에서

보낸 것이니 그리 알고 이 늙으이를 이해해 주길 바라네.그럼 이만.

장모 —이한임 전도사

Re: 할렐루야 2004/03/23 (14:10:17)

존경하는 장모님!

이 곳을 방문해주신 분 중에서 가장 귀한 분이 오셨습니다.

장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제 아내에

대한 감사함 때문입니다. 장모님께서는 딸을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이 반

듯하게 길러주셨습니다. 동서양의 고전을 두루 섭렵하여 광범위한 인문적

교양을 갖추었고, 음악을 포함한 문화에 대한 인식에도 편견이 없으며 이

해가 깊습니다. 어느 자리에 가서도 나서지 않으면서 뒤에 서길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상황에 따른 바른 판단은 언제나 저로 하여금 제가

설 자리를 알게 해줍니다. 약간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것은 제가 돈을 많

이 벌어오지 못함을 크게 탓하지 않으니 그 점도 저에게는 우군입니다.

더구나 저에 대한 기도와 제 아들에 대한 기도를 놓지 않으신다니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감히 측량하기 두렵습니다.

지난 번 편지에 시신을 의학 발전을 위해 기증하신다는 말씀은 저로 하여

금 다시한번 장모님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저도 시신을 기증할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존경하고 존경하는 장모님!

부디 세상 일에 마음을 가벼이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일만 생각하시어

언제나 평안한 시간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rom :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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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my son

아들을 본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전화로 음성을 들은지도 오래되었고……

메신저로 연락을 한지도 오래되었다.

메일을 보내면 읽는것 같기는 하다.

아마도 공부하느라 바쁜것 같다.

거의 매주 마다 시험을 본다고 한다.

시험 문제가 어렵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본 평생의 시험 중에 최고로 어려운 시험의 연속이라고 대답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학과는 달리 서구의 대학은 입학하기보다 졸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토론토 대학은 캐나다 전체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대학이고 그리고 토론토대학 공과대학은 토론토 대학 내에서도 입학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학과이다. 결국 캐나다 전체에서 최고로 들어가기 어려운 학과를 다니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아들은 학과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 통화에서 아들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녀석의 이름을 아버지에게 적어보내면 “장회빈이 했던 방법처럼 내 방에다 Tom, Johnson 등으로 이름을 벽에 적어놓고 화살을 쏘겠다” 고 말했더니 아들은 웃고 말았다(후후)

아들은 가끔 묻지도 않았는데 돈을 아껴쓰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규모있게 사는 것은 중요하다. 절약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돈이 많았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텐데……하는 서글픈 마음이 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던가!

아들은 잘 있을것이다.

아들아 사랑한다!

2004년 3월 18일에 아버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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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내가 타락할 때……

내가 최고로 타락하면 가는 곳이 노래방이다.

그 이상은 가지 않는다.

노래방에 가서 내가 부르는 곡은

한곡만 부를 경우

조용필의 ‘Q’를 부른다.

두곡을 부른다면

장원의 ‘허무한 마음’을 부른다.

그런데 장원이라는 가수는 얼굴도 모른다.

세곡을 부른다면

현미의 ‘보고 싶은 얼굴’을 최백호 버전으로 부른다.

네곡을 불러야 한다면

백지영의 ‘부담’을 어렵게(?) 부른다.

부담을 부르면서 고려가요 가시리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생각한다.

그래도 또 불러야 한다면

‘향수’

‘그건 너’

‘사랑이여’

‘My Way’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장현의 ‘미련’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과꽃’을 부른다.

소찬휘의 tears는 마음은 있지만 너무 높아 시도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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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감사합니다!!

영통에 사는 동생이 어머니 74회 생신을 자기 집에서 준비하겠다고 해서 그러마라고 했다. 어제 밤이었다. 서울에 사는 여동생 내외도 모였고, 모든 집안 식구들이 모였다. 아버지가 생선회를 좋아하시니 주 메뉴는 생선회였고 한우 갈비찜도 준비했는데 맛이 좋았다. 촛불을 켜고 케익을 자르면서 기타를 멋들어지게 치는 내 동생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고, 모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갈비를 씹던 어머니가 갑자기 자지러지며 아파하셨다. 갈비를 드시다 이를 다치신 것이다. 어머니의 치아는 수십 년 동안 어머니를 괴롭혔다. 열아홉살 때 동네 처녀들과 찐돌이 놀이를 하다 넘어져 앞니의 방향이 뒤틀린 것을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약간 사이가벌어진 것을 결혼 직후 아버지가 손을 보는 것이 좋겠다 하여 돌팔이(야메)치과의사가 이를 갈아내고 보철을 한 것부터 잘못되기 시작하여…… 그 후에도 또 돌팔이의사가 잘못을 했고, 또 동네 치과의사에게 여러 번 치료했으나 그것도 잘못되고, 이치과, 홍치과 김치과 등 여러 병원을 다녔어도 소용없었고……유치과를 다니면서 두 달 동안 치료를 했다가 막상 이를 해 넣을 때는 야메 치과의사에게 했다는 등 그야말로 소설을 써도 될 정도이다. 어머니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사람만 제대로 만나면 야메 치과의사라고 정식의사만 못한 것이 없으며……치료는 정식 치과에서 하고 이를 해넣을 때는 야메한테 하면 값이 아주 싸다는 등……

어머니 생신날인데 어머니가 갈비를 드시다 이가 아프다고 절절 매시는 것을 보고는 모든 가족이 마음이 아팠다. 여간해서 속내를 보이지 않는 어머니가 치통으로 턱을 쥐고 어쩔줄몰라하셨다. 동생들도 어머니가 아프시니 마음이 편치 않았으리라. 나는 내일 날이 밝으면 어머니를 모시고 치과에 가서 무슨 결판을 내리라 마음먹었다.

토요일! 출근해서 아침부터 바빴다. 입학식을 점검해야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 비가 온다고 했으니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아 강당에서 하는 입학식을 동시에 준비했다.

정보부장을 불러서 강당 빔프로젝트를 활용하기위한 파워포인트를 제작하라고 지시했고,

과학부장을 불러서 방송장비를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교무부장에게 입학식에 학부형에게 나누어줄 유인물을 인쇄하라고 했고,

학부형을 상대로한 오리엔테이션은 내가 맡기로 했다.

사서교사를! 면접했고,

교무부장에게 사서교사 임용결재를 지시했고,

행정실장에게는 사서교사 1년 계약건, 체육강사, 물리강사 수학기간제교사 계약 건을 마무리지으라고했다. 교무실에 목재 캐비넷 6개를 배치했고, 부서마다 할당하였다.

마지막으로 생활기록부를 점검하려 했으나 토요일은 짧았다.

이미 퇴근시간이 되어 어머니를 모시고 치과에 가기위해 집으로 왔다. 치과에서는 3시까지 오라고 했다.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핸드폰으로 집사람에게 내가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으니 김밥을 아무렇게나 말아주면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길에 차안에서 운전하면서 밥을 먹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치과에 갔다. 차안에서 김밥을 먹는데 참치를 너무 많이 넣어서 이게 김밥인지 참치 통조림을 생으로 먹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평생 동안 참치김밥은 먹지 않기로 맹세했다. 어머니는 어느새 씨레기나물 까지 준비했는데 차안에서 씨레기나물을 먹는 것은 아주 좋았다. 운전을 하면서도 포크로 김밥을 척척 잘도 먹었다.

운전하면서 계산해보았다. 임플란트 치아 한개에 250만원, 인간의 이빨은 24개, 그렇다면 6000만원! 나는 6천만원을 들여 어머니의 이를 고치려고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치과의사는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다. 두달전에 아버지도 모시고 가서 그 의사에게 충치치료를 하고 금으로 씌웠다. “어머니가 치아 때문에 너무나 고통이 심합니다. 도저히 옆에서 볼 수가 없습니다. 6천만원을 들여서라도 이를 고쳐드리고 싶으니 정확한 진단들 내려주시고 우리 어머니가 음식을 마음대로 드시고 이가 아프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라고 애원하였다.

의사는 치아 엑스레이를 3장이나 찍은 후 어머니 이를 검사하더니 “다른 이는 별로 문제가 없고 제일 안쪽의 이가 아주 많이 썩어서 아프셨을 것입니다”. 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세상에! 그렇게 치과를 자주 다니신 분이 썩은 이가 있는 것을 몰랐다니! 나는 혹, 건질 수 있는 이를 빼는 것은 아닌가 하여 다시 물었다 “나중에 틀리를 할 경우 옆에 걸어서 지지할 수 있도록 살려보는 것이 좋지 않을 까요?” 의사는 “너무 썩어서 아무 쓸모가 없는 이라면서 당장 뽑아야한다” 고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돈좀 많이 벌어보려했더니 틀렸다면서 어머니의 치아 상태는 임플란트를 할만큼 나쁜 상태가 아니고 치료하면 큰 문제 없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이를 뽑고, 치료하고, 스케일링을 했으며, 병원을 나서면서 “앓던 이를 뺀 기분이다 아주 시원하고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말씀하셔서 나를 기쁘게 했다. 약국에 들려 처방전을 내고 약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난데없이 “갤러리아 백화점에 가자고 하신다.” 어제 아침에 조선일보에 끼워온 갤러리아 백화점광고지에 7만원짜리 순모정장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듣고 아들의 양복을 사고 싶은 것이다. 그런 광고를 믿고 가보면 대부분 거짓인 경우가 많다. 괜찮다고 했으나 어머님은 성화였다. 백화점에 갔으나 예상대로 광고는 거짓이었고, 7만원짜리 양복은 어느 곳에 진열되어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한 벌에 세일해서 68만원이었다! 세상에! 가장 싼 것이 32만원……나는 지난 겨울에 22만원짜리 한 벌 사고 , 동성아울렛 페업한다는 광고보고 5만원짜리 양복을 샀다. 결국 5만원짜리 양복은 몇 번 입으니 보플이 일어나서 더 이상 입을 수 없었다.

양복 사러 갔다가 엉뚱하게 아식스에서 런닝화를 10만원에 사고

석영이 먹을 빵을 사고, 고구마 만원어치 사고, 콩나물, 생선을 샀다. 어머니는 갑자기 포기김치를 사셨다. 사먹는 김치 맛이 어떤지 궁금하신 것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행복하였다. 걸음이 불편하기는 하시지만 아직 보행하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양복 입은 신사가 장바구니를 들고 늙은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정겹게 대화를 나누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모양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도 “어머니 내리셔야 합니다” 라고 말하면 주변사람들이 모두 놀라 쳐다보았다. 저렇게 나이 든 아들과 쇼핑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표정들이었다. 어머니는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면 무조건 물건을 사신다. 아마도 보행이 불편하셔서 혼자서 멀리 있는 매장에 갈 기회가 별로 없으신 탓이다. 돌아와 저녁을 드시면서 “이가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말씀하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주여 감사합니다.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여! 영광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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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적송(赤松)

초등학교 동창회에 다녀왔다.

운전하기도 싫고 술을 한잔 마셔야 할것 같아 시외버스를 타고 다녀왔다.

고향의 옛집을 지나는데 내가 열한 살때 심은 소나무를 보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랜만에 시를 지었다.

적송(赤松)

-맹기호-

저와 함께 사랑한 날을 기억하시나요

저에게 해주신 맹세를 기억하시나요

그렇게 바람따라 가신 날부터

봄이면 송화가루 비단처럼 날리어

님 오시는 길 영접하였고

가을 마다 편지에 날개 달아

소식을 보냈습니다.

그 길에 앉아 50년

세월 흘러 곱던 얼굴 그늘 서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온몸 붉게 물들었습니다.

끝끝내 님 오시지 않는다면

끝끝내 님 오시지 않는다면

새봄 오기 전에

이제는 제 마음 가져가시고

남은 숨도 거두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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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캄보디아 여행 2


캄보디아의 주택은 특이했다. 주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비를 가리는 정도였다. 갈대줄기로 지붕과 벽을 만들고 바닦에는 대부분 대나무를 깔았다. 열대기후여서 특별히 추위를 막는 시설이 필요없었다.

다만 기후가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지고 우기에는 여러 달에 걸쳐 비가오기 때문에 불어나는 물에 대비하고, 땅바닥의 습기에서 벗어나기위해 1미터 이상의 높이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방 아래에는 돼지가 마음껏 뒹굴며 살고 있었고 오리와 닭도 가족처럼 살고 있었다. 내가 본 돼지 중에서 그렇게 편한 자세로 생을 즐기는 돼지는 처음 보았다. 인간과 가축의 생활공간이 구분되어있지 않고 함께 살고 있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세계의 평화! 그 자체였다. 내가 본것은 평화였다.

인간과 동물이 같은생활공간에서 살면서 어떻게 돼지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정은 방한칸이 전부였고, 그 방에서 대여섯 식구의 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맨발이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문명인이 행복한가?

그들이 꼭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본 캄보디아는

앙코르왕조의 영화는 간데 없고

가난한 백성만 남아있었으나

행복하다고, 또는 불행하다고도 볼수 없는 그들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생활방식을 누리고 있었다. 이른 바 문화의 상대성 논리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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