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21.0975km

두 달 전에 대전 한밭대학 중문과 학과장으로 있는 남기완 교수한테 수원마라톤에 함께 출전하자는 전화가 왔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현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담배를 끊었고 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남교수는 오래 전부터 테니스로 몸을 만들었고, 나는 작년 1월부터 헬스장에 나갔다. 처음에는 둘이서 출전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친구 송기원을 끌어들였다. 우리 셋은 35년 이상을 사귀어온 벗이다.

마라톤 전 날 저녁,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냥 지날 수 없어 맥주를 한 병씩 마셨다. 그리고 송기원 집에서 함께 잤는데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잔다. 3시간 정도 잤다. 마라톤 하기 전 날 술을 마신 것도 잘못이고 잠을 덜 잔 것도 잘못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지인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쌀쌀하였지만 런닝복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자못 의기충천하였다.

운동장에 모인 2000명 정도의 인원이 함성을 지르니 천지가 떠나갈 듯하였다. 우리는 출발선의 맨 앞에 자리를 차지하였다. 10Km까지는 셋이 함께 뛰고, 그 이후부터는 각자 개인의 능력대로 달려 기록을 내기로 하였다. 나는 내 체력을 잘 알기 때문에 오버페이스 하면 낙오할 것 같았다. 절대로 오버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출발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출발하면서 나를 추월하였다. 내버려 두었다. 나는 도저히 그들처럼 스피드를 낼 수는 없었고,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달리면서 추월을 허용하였다. 수 백 명이 나를 앞질러갔다. 모든 사람에게 추월을 허용하고 내 페이스대로 달리다가 아차 하는 사이에 나는 남교수와 송사장을 잃어버렸다. 그 두명의 친구도 나를 추월하여 달려 나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추월은 허용해도 그 두 명을 놓쳐서는 안 되는데 그만 방심하는 사이 친구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온힘을 들여 뛰어도 앞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두 명의 친구는 이미 내 시야에서 너무 앞에 있었다.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계속해서 추월을 허용하기만 했지 내가 추월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으니……

이렇게 가다가는 제한 시간인 2시간 30분을 넘길 것 같았다. 2시간 30분을 넘기면 경찰관의 도로통제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차량에 강제로 탑승해야한다. 불길한 예감은 계속되었고, 급기야 배가 약간 나와 보이는 몇 사람을 페이스메이커로 선정했으나 그 들 모두 나를 추월하였다. 만만해 보이는 여자선수를 세 번이나 페이스메이커로 선정하고 그녀들을 따라갔으나 그녀들 모두 나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10킬로미터를 통과할 때 시간을 보니 53분이었다. 세상에! 그렇다면 작년에 참가한 10킬로 대회보다 3분이나 단축시킨 것이다. 작년 대회 때는 10km를 56분에 완주하였었다. 약간 희망을 갖기도 했으나 작년에는 10Km 대회이고 오늘은 21.0975Km이다. 아직 가야할 거리가 너무 멀었다. 계속 추월을 허용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가는 것 같았다. 정말 이러다가 내가 맨 꼴지면 어떻하나 하는 불안감은 점점 더 커갔다.

15Km를 지나면서 지쳤다. 나는 사실 10Km 이상 뛰어본 경험이 없다. 17킬로를 지나면서 걷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나도 걷고 싶었다. 1분정도 걷다가 다시 뛴다면 기록이 1분 늘어나는 것이지 완주만 하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걷지는 않았다. 여태까지 뛰어온 거리가 너무 아까워 걸을 수 없었다. 여기서 기권하면 아버지를 믿고 사는 어린 두 아들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5Km 쯤 달리는데 뒤에서 남교수가 나를 불렀다. 아니 그렇다면 내가 제일 앞서서 달렸단 말인가! 세명 중에서 내가 제일 꼴지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출발선에서 나갈 때 친구들은 나보다 더 뒤쳐져서 달린 것이었다. 남교수는 아직 힘이 남아있었다. 나는 먼저 나가라고 말했다. 나는 이미 지쳤으니 남교수는 빨리 튀어나가 기록을 단축하라는 의미였다. 남교수는 같이 뛰겠다고 했다. 그렇게 100미터 정도 같이 뛰다가 내가 나가라고 재촉하니 남교수도 어쩔 수 없이 속력을 내기 시작하였다.

남교수는 천안중학교 육상부 출신이다. 1970년 천안중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런닝셔츠 차림으로 육상부 기념촬영을 한 남교수의 사진이 있다. 남교수는 어려서부터 달리기에 소질이 있었다. 나와는 체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운동감각을 선천적으로 타고 난 사람이다. 가끔 발바닥에 문제가 있다고 엄살을 피우지만 나는 그 말을 신뢰한 적이 없다.

멀리 사라지는 남교수를 보면서 나는 패잔병처럼 처참한 심정으로 천근같은 다리를 들었다.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나오는 마지막 장면,로버트조단의 운명처럼 처절한 심정이 들었다. 다리가 앞으로 나가질 않았다. 다리가 나가지 않으니 할 수 없이 몸을 수직으로 점프하면서 그 탄력으로 다리를 앞으로 내 디뎠다. 보폭이 30cm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말이 뛰는 것이지 걷는 산보 보폭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리를 뛰고 있었다. 남교수가 나를 추월한 지점부터 결승점까지는 가파른 언덕이었다. 하지만 20Km를 돌파한 상태였기에 기권할 수는 없었다. 하프는 완주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풀코스는 뛰지 못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프코스도 이렇게 어려운데 풀코스를 뛴다면 죽기 아니면, 기권하기 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승점을 300 미터 남겨두고 마지막 스퍼트 하였다. 휘니시 라인을 향해 내 달렸다. 아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약국하는 제자 오연숙과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그리고는 주저앉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송사장은 11Km에서 기권하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차량에 올라탔다고 한다.

기록은 2시간 09분 26초99/ 21.0975km 였다.

2시간 내에 들어오고 싶었는데 기록으로는 실패하였다.

힘은 들었어도 어쩌면 내 인생에서 다시는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성취감에 기쁘다. 함께 뛰어준 두 친구에게 감사하고, 아내에게도, 그리고 축하해주기 위해 결승라인 까지 나온 제가 오연숙에게도 감사하다. 함께 점심이라도 할 것을 말도 못해본 것이 후회된다.

내가 중병의 신호를 접한 것은 2년 전이다. 그러나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그리고 아직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프마라톤 완주로 증명하였다.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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