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 5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추방된 후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사후수습을 위해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영국 등이 모인 것이 빈회의이다.
프랑스가 포기한 영토 등을 나눠먹기 위한 회의였다.
빈 회의의 기본원칙은 정통주의와 세력균형이었다.
정통주의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에 중단되었거나 바뀐 왕통이나 영토를 가장 정통적인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세력균형이라 함은 유럽의 여러 나라, 특히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영국이 유럽대륙의 패권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해지지 않도록 힘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등은 유럽 질서 재편작업에 착수한다. 그해 9월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다. 90개 왕국과 53개 공국(公國)이 회의에 참가한다.
장소는 쇤브룬 궁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버금가는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합스부르크가의 별궁이다. 그런 유서 깊은 곳에 각국 대표단이 모였지만 회의다운 회의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다자(多者) 회의인데도 참가국 전체가 모인 경우는 10개월 뒤 빈 회의가 폐회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궁전은 시끌벅적했다.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메테르니히가 연일 성대한 무도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폴란드와 작센의 처분문제로 의사진행이 지지부진한 데다, 메테르니히는 회의가 난관에 부딪치면 향연과 무도회를 베풀어 국면의 타개만을 도모하였으므로 당시의 광경을 본 오스트리아 장군 폰 리뉴는 “회의는 춤춘다(Der Kongress tanzt)”고 말하여 회의에 진전이 없었음을 꼬집은 명언을 남겼다.
1815년 2월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여 전승국을 긴장시키자 빈회의는 다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회의는춤춘다-그래도 회의는 해야한다.
지난 금요일(6월30일)아침 08:30-13:00까지 회의가 이루어졌다.
그래도 회의는 해야한다!
06:30 집에서 출발
07:30 고양교육청 도착
07:30-08:20 전자문서시스템에서 오늘 처리할 공문을 읽고 하루를 계획함
08:30-09:00 중등교육과 협의회
09:00-10:53 월례회의(7월의 행사내용을 과별로 발표)
-초등교육과 장학관 발표
-중등교육과 장학관 발표
-평생교육체육과장 발표
-관리과장 발표
-재무과장 발표
-시설과장 발표
09:53-10:13 교육장님 말씀
공직자로서 책임을 다할것, 변화무쌍한 정보화 사회에서
먼저 정보를 취하고, 스스로변화하고 혁신할것 혁신(가죽을 벗끼는것)
안다고 자만하지 말고 내 직무에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가 될것
10:13-11:00 교육장님과 국장 과장회의
11:00-13:00 교육장님 주재 하에 교육장 정책과제 협의
나는 일찍 출근하여 아무도 없는 1시간 동안(07:30-08:30)일했다.
그 후에는 계속되는 회의에 참석하였다.
나는 그래도 회의는 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의논하지 않으면 일의 계획성이 없다.
혹자는 회의가 길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의논을 해야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고 보완할 수도 있다.
내가 속한 가장 작은 조직은 4명의 직원이 있는데
우리는 매일 짧게 회의를 한다.
너무 바쁜 날은 서서한다.
이른바 standing 회의다.
그날을 계획하는 회의를 10분하면
하루를 아주 효율적으로 보낼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