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는 그의 책에서 이청준을 말하면서 연령 차이는 벗해도 허물되지 않을 만큼 크지 않았지만
그 분의 명성과 업적에 압도되어 허투루 친밀감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청준의 [소문의 벽]을 읽고 치유된 줄 알았던 정신적 상처까지 건드리며 나를 소름돋게 했다고 말했다.
하여 어제 문제의 [소문의 벽]을 읽었다. 젊은 날 읽었던 책인데 박완서씨의 글을 읽고 다시 읽었다.
“당신의 소설작업과 관련하여 당신은 어떤 곳에서 공포스러운 간섭을 받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는 없는가”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은 소문 속에 있다.” “소문이라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실제로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정체를 밝히지 않기 위해 소문의 옷을 입고 있는것 뿐이다. 그래야 그것은 우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고문할 수 있을 것이다.”
” 게다가 사람들은 원래 그런 소문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는 늘 두꺼운 소문의 벽을 쌓아 두고 있는 것이다.”–본문중에서
[소문의 벽]에서소설가 박준은 자신의 말이 진실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다른 이의 판단에 의해서 진실 혹은 거짓이 판가름나는상황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작품은 개인의 신념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적인 억압, 사회적인 편견이 예술의 자유를 빼앗아 간 상황을보여준다 .
인간에게는 권력의 억압을 받지않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청준은 그것이 설령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것이라 해도 그 자유를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문학이 추구할 시대적 사명을 벗어난 것이라 해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작가의 의견에 완전히 동조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만 시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져야하며 공익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