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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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맹석영!
어제 오늘 음성에서의 일은

내가 처음 겪어보는 메뉴였단다.

 잠자리도 새로 마련하고,

준비도 많이 했더라.

 감격스런 프로그램이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등갈비도 좋았고, 짜장밥도 맛있었다.

너희가 살아가는 모습도 보기에 아름다웠다.

언제까지나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여

날로 새로움을 맞도록하여라.
사랑과 존중은

우리를 구원하고 자유롭게 한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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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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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단독주택에서만 살아와서 그런지 아파트가 낯설다.

그렇치만 그래도 낯설지않은 충청도 작은읍 아들의 아파트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기형도,  최영미 시집을 읽고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려면 최소 4시간은 지나야한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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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어 찜

집사람은 학교 모임이 있다면서 서울에 갔다.

조금 일찍 나가서 친정어머님께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과거 근무했던 교원들을 만나서 저녁 먹고 집에 늦게 올것이다.


저녁밥을 해먹기 귀찮아서 동네 백반집에 갔다.

어머니와 둘이서 상을 받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덤으로 병어찜을 내온다.

치아가 부실한 어머니가  보들보들한 병어를  잘 드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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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 행단


채찬석 교장이 충남 아산에 마련한 토지에 농막을 지었다.  6평짜리 작은 콘테이너 하우스를 가져다 놓은 것인데

나는 언제 저런것을 마련하나 부럽기만 하다. 채교장이 한 번 다녀가라고 하여 찾아가게 되었다.

전철을 타고 온양역에 내렸고 채교장은 온양온천 역까지 나를 데리러 차를 갖고 나와주었다.


채교장은 가까운 곳에 맹씨 행단이 있는데 함께 가보자고 하여 찾아갔다.

맹씨 행단은 여러번 갔으나 이번처럼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다. 주변이 많이 변해있었다.

고불 기념관도 있고 주차장도 아주 넒고 좋았다.

해설사를 찾아갔는데 해설 시간이 아니라 해주지 않았다.

내가 대강 알고 있으니 그냥 둘러보아도 문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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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 행단 건물이다.

행단 [] 이란 학문 배워 익히는 이르는 말이다. 공자 은행나무 에서 제자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원래 최영장군이 사시던 집이다. 맹사성의 조부는 최영의 손녀와 혼인하였는데 그런 연유로 맹사성이 이 집에서 살게 되었다.

집은 27평의 아주 작고 소박한 양식이었다. 정승을 지낸 분이 살았다고는 믿기지 않은 정도로 소박한 민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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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넓이도 좁거니와 사각 기둥 위에 공포가 하나 뿐인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기둥은 3개 였는데 중앙 기둥에만 공포를 얹었다.

이렇게 단순한 공포도 드물거니와 하나를 올린 것은 처음 보았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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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 마루 위 대들보를 보고 특별한 것을 발견하였다.

대들보 위에 단아한 공포를 올린 것이다. 원래 공포는 힘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다.

상부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기둥 위에 올리는 것인데  대들보에 얹은 공포는 처음 보았다.

바깥 쪽 기둥 위 공포보다 약간 멋을 부렸다. 대들보 위 공포를 처음 본 것도 그렇고 아주 신비한 생각이 들었다.

정승집을 소박하게 짓다 보니 대들보에 멋을 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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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앞에서 사진을찍었다. 고불 맹사성이라고 쓴 글씨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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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밑에 일반인을 상대로 청백리 교육을 담당하는 강의당을 보았다.

깨끗하고 단아하다. 나도 저런 집을 짓고 살고 싶다.

이렇게 살 수 만은 없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나는 이미 장년기에 들었다. 아니 노인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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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 맹사성 기념관에서 찍은 강호사시가다.

아름다운 4계절의 서경을 노래한 시가여서 아주 좋다.

그런데 알고보면 강호에 묻혀 임금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는 사군이충의 내용이어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나 그 시대에의 시가는 모두 그런 내용이니 어쩔 수 없다. 이해하는 수 밖에…..

초장 중장의 아름다운 부분에 만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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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기념관 돌담이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담을 쌓은 솜씨가 예솔이다.

훗날 나의 전원주택을 짓는다면 저런 담을 쌓고 싶다. 아~~ 나의 전원주택이여! 아니 주말 주택이라도 좋다. 어디에 있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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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 행단 뒤에 세덕사가 있다.

조상의 위패를 모신 것이다.

맹사성이 살던 행단과는 달리 제대로 격식을 갖춘 집이다.

팔작지붕에 겹쳐마, 둥근 기둥에 기둥마다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의 집이다.

작지만 기품이 있고 격식를 제대로 갖춘 멋진 목조건축이다.

채찬석교장을 세우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도 잘 나왔다^-^


채교장의 환대가 고마웠고

맹씨 행단, 봉곡사, 맛있는 돼지고기 목살, 맛있는 라면과 맥주, 또 소주! 농막에 노래방까지

나는 유행가와 가곡 등 여러 곡을 불렀다. 늘봄 채찬석교장은 송창식의 푸르른날과 조덕배의 노래를 불렀다.

감사한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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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숲길 충남 아산 봉곡사


충남 아산의 천년고찰 봉곡사를 다녀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친구 채찬석교장이 마련한 아산의 농막을 방문했다가 그 친구가 주변에 볼거리를 안내한다 하여

통일신라 고찰인 충남 아산의 ‘봉곡사’를 가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대웅전 앞 마당이 꽤 넓은데도 불구하고 석등이나 탑이 없었다.

그나마 절 입구에 무량수전 앞의 국보 석등을 정확하게 모조한 석등이 있어 나를 기쁘게 하였다. 

모방한 작품도 정확하게 만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어설프게 만들거나 중국 풍의 냄새가 나면 쳐다보기도 싫다.

절집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입구의 송림은 정말 대단하였다.

숲의 이름이 “천년의 숲”이라고 명명되어있었다. 소나무에는 일제가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에 생채기를 내 흔적이

처절하였고 이런 양태는 강화의 정족산에도 있었는데 여기처럼 이렇게 송진 채취 흔적이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다.

왜놈들이 강토를 강탕하던 시절에는 소나무의 고초도 이루 말할 수 없었구나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쓰렸다.

절집 주변의 꽃들이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있어 주지스님이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약, 옥잠화, 범부채, 도라지, 접시꽃, 붓꽃, 섬초롱꽃, 군자란, 국화 등르 키우고 있었다.

열심히 찾았는데도 모란이 보이지 않는 것은 또 이상하였다. 작약은 여러포기 있었는데 모란이 없었다.

절 뜰에 있는 정자에는 셀프라고 써놓고 아무나 차를 마시게 해놓은 것도 보기 좋았다.

여러종류의 차를 준비해놓고 커피포트도 옆에 놓았다. 관리하는 사람도 없이 그냥 셀프라는 간판만 보였다.


삽살개가 있어 쓰다듬어 주려했더니 절집을 지키는 아주머니 한 분이 만지면 문다며 말렸다. 혼잣말로 ‘ 절집에 왜 무는 개를 키우나 그냥 된잘 바르면 될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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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봄 채찬석교장의 포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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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박경리


경기문학포럼에서 원주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왔다.

박경리!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을 나타내는 한국의 대표 문학가이다.

박경리 문학관은 비교적 단촐하였다. 치악산이 바라다 보이는 조용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박경리는 지역 사단장의 관사로 쓰였던 건물을 사서 만년을 보냈다. 식구가 많치 않는 사람이 살기에는 꽤 큰 집이었다.

해설사는 놀랍게도 박경리가 살던 집 안으로 우리를 안내하였고 거실 주방 그리고 집필하던 방까지 들어가 보게하였다.

나는 박경리의 집필실 탁자에 앉아 사진을 찍는 호사를 누렸다.

박경리가 살기에는 비교적 넓은 집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다녀가는 기념관으로는 넓지 않았다.

박경리가 주는 문학적 넓이를 생각하면 사후에 더 크게 집을 넓혀 방문객을 맞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시던 집을 그대로 유지하고

방문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정말 좋았다. 크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좋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요즈음 전국 여러곳을 다녀보면 지자체 마다 기념관 같은 시설을 너무 크게 확장하여 고유의 의미를 손상키는 현장을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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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개업


5년이나 남의 집 종살이를 하던 막내가 내 품을 떠났다.

자금이 부족하여 도시에서 개업하지 못하고 지방 소도시로 갔다.

개업식 하는데 오늘 어머니 상태가 좋으시고 손자 가게를 보시겠다고 하여 모시고 다녀왔다.

첫눈에 보이는 것이 진짜라며 신장개업에 맞는 몇가지 도움말을 했더니

돈이 부족해서 바꾸지 못했다고 알아서 하겠다며 짜증을 낸다.

그래 알아서 해라. 괜히 말했다.

12:50에 도착했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다.

경리아가씨가 민망했는지 농번기라 손님이 없어요 라며 묻지도 않는 말을 한다.

아니 모내기 끝난지가 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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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불


어머니의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오늘 쇠고기 등심을 넉넉히 샀다.

마당에 자리를 깔고 숫불을 피웠다.

아주 맛있게 드셨다.

아버지가 49년 전에 지으신 집에서 여지껏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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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밥하기 귀찮는 날이 있다. 아침 먹고 얼마되지 않아 점심 때가 되면 더 그런 경우가 있다.

도시에 살면 가까이에 식당이 많아서 좋다. 몇 발만 떼면 식당이 나래비로 서있다.

우리 동네에 새로 우동과 김밥을 파는 집이 생겼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우리 셋은 마음이 동했다. 가자! 개업집으로

하여 오늘 점심에 새로 개업한 식당을 갔다.

김밥, 잔치국수, 콩국수를 시켰다.


가끔은 김밥집의 가벼운 점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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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런던 윈스톤 처칠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처칠은 영국의 제42·44대 총리. 자유당 내각에서 통상장관·식민장관·해군장관 등을 지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장관을 맡았고, 전후 정계에 입문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해군장관에 임명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 1945년 8월 포츠담 회담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53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을 지도했던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군인이자 정치인이었으며, 작가이고 역사학자이고 예술가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갖기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의 동상은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매우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헤비스모커였는데 90세까지 살았다.

아마도 지금 세상에서 살았다면

합리적인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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