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밤에 신경림씨가 쓴 노천명의 시와 생애를 읽었다.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이나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이 시에서 사슴은
모가지가 길고, 언제나 점잖은 편이고, 무척 높은 족속이고,
물속에서 잃었던 전설을 생각하고,
말할것도 없이 사슴은 노천명을 의미하며
한마디로 노천명 자신이 귀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먼 데 산은 노천명이 가고픈 유토피아이다.
노천명은 1912년 황해도 장연군 비석리에서 부농 집안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를 따라 서울에 와서 진명고녀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다.
졸업 후 신문사 기자 및 잡지사 기자로 10여 년 간 복무하면서 엘리트 의식을 갖게 된다.
내 생각에 27세에 첫 시집을 내면서 귀족의식은 더해가는 것 같다.
신문사에서 남자들이 한담하면서 선배 여기자를 화제로 험담을 하는 것을 보면서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고 했는데 결국 남성들이 보기에
노천명은 찬바람이 휭휭 부는 것 같은 여자라고 해서 접근하지 않아 결혼하지 못하고 처녀로 살았다.
천연두로 못생겼을 것이라는 소문은 완전히 헛소문이고,
어려서 홍역으로 사경을 넘었다하여 천명(天命)으로 개명하였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니 아주 예쁜 얼굴이다.
재생불량성뇌빈혈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하였다가
호전되자 입원비 조달이 어려워 집으로 퇴원했다가 운명하였다.
아마도 요즈음 백혈병이 아닌가 한다.
1957년 6월 47세의 아까운 나이로 외롭고 쓸쓸했던 삶을 끝마쳤다.
그의 고독(孤獨)이라는 시가 마음에 와 닿는다.
고고한 처녀로 살았으니 얼마나 고독하였을까?
이 시가 내 마음에 와 닿는다……
[고독]
노천명
변변치 못한 화(禍) 를 받던 날
어린애처럼 울고 나서
고독을 사랑하는 버릇을 지었습니다.
번잡(繁雜)이 이처럼 싱크러울 때
고독은 단 하나의 친구라 할까요
그는 고요한 사색의 호숫가로
나를 달래 데리고 가
내 이지러진 얼굴을 비추어 줍니다.
고독은 오히려 사랑스러운 것
함부로 친할 수도 없는 것
아무나 가까이 하기도 어려운 것인가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