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오웅진 신부

 

오늘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에 와서 오웅진 신부님을 만났다. 봉사체험을 위해 꽃동네를

방문했는데 우리 일행을 위해 바쁘신 분이 1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분은 살아있는 성자였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여

러 차례 눈물이 났고, 세상에 이렇게 세상을 사는 분도 있구나!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하

는 자책감이 들었다. 신부님은 거지 4000명을 데리고 사는 왕초거지라고 하셨다.

오웅진 신부!

그는 1976년에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무극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는

데 어느 날 해질 무렵, 성당 앞을 지나가는 걸인 최귀동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뒤를 따라가게 된 신부님은 성당 뒤 용담산 기슭에 있는 움막 속에서 동냥도

못 나가고 사는 걸인들에게 자신이 얻어온 밥을 먹여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신부님은 그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도하며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

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튿날 주머니돈 1300원을 몽땅 털어 시멘트를 구입한 신부

님은 무극성당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시멘트 블록을 찍기 시작, 마침내 용담산 기슭에 방

다섯 칸 부엌 다섯 칸짜리 시멘트 블록집(사랑의집)을 짓고 무극천 다리 밑에 살던 걸인 18

명을 맞아들였다. (1976. 11. 15) 꽃동네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웅진 신부! 그는 살아있는 예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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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은솜이의 방문에 대한 답글

은솜아! 예쁜 은솜이가 왔네!

전교 1등을 놓쳐서 마음이 답답하다고?

전혀 그럴 필요 없단다.

학교성적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특히 중학교에서의 성적은 별 의미가 없단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일까?

광범위한 인문적 교양을

높이는 일이란다

왜냐하면 인격은 인문적 교양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단다.

인문적 교양이란

세상을 이해하고 문화를 알며

진리의 세계를 살피는 노력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란다.

은솜아

글을 쓰는 능력도 마찬가지야

독서에서 오는 것이야

특별하게 잘 쓰려고 애쓰지 말아라

책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글이 잘 써진단다.

그리고 생각도 깊어지게 된단다.

엄마가 이문열의 삼국지를 사주셨다고?

엄마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시구나!

이문열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작가 중에서

가장 유려하게 글을 쓰는 분이지

그래서 샘도 좋아해

방학중에 이문열 삼국지 10권을 꼭 읽고, 개학하면 샘하고 이야기해야지!

물론 독후감을 쓸 필요는 없단다

은솜아 안뇽!(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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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10만원

Father

아버지!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잔정이 없으신 분, 구두쇠! 엄한 표정에 별로 웃으시는 적이 없다. 친구들이 놀러와도 아버

지를 보고 무서워 슬금슬금 눈치를 보거나 도망갈 정도였다. 정말로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자식의 친구에게 친절하기로 맹세하였고, 지금은 아들 친

구가 오면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고, 먹을 것을 챙겨주며, 공자가 친구의 방문을 찬미한 유붕

자원(有朋 自願……)을 들먹이면서 환대한다.

내 성격이 오늘날 이정미 선생님처럼 밝고 아름답지 못한 것은 아버지 탓이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평생 딱 한번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

지가 밤길에 내 손을 잡고 걸은 적이 있는데 그 때의 불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왜 이러

시나? 너무나 불편하였다.

아버지는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한 1924년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초등학교

에 다닐 때 학교에서 돌아와 솥을 열어 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괜찮은데, 솥 안에 아무것

도 없으면 눈물이 났다는 말씀을 하실 때면 나도 동정이 간다. 밥도 먹지 못했는데 호연지

기(浩然之氣)와 사단(四端)이 형성될 기회가 있겠는가?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일제의 강제

징병으로 2차 대전에 일본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우들은 모두 죽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일

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후 부모가 사는 원산에 가서 3년 정도 살다가, 거기서 6.25를 만

났는데 이미 군대갈 나이가 지났으나 인민군에 강제 징집되어 훈련을 받던 중, 부대를 탈출

하여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이 북상할 때, 북에 두고 온 부모가 걱정

되어 전선을 따라다니다가 인원 부족으로 허덕이는 국군에게 붙잡혀 전선에서 현지 입대되

어 결국 국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여 휴전할 때까지 HID요원으로 활약한 전쟁영웅이다.

아버지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 이렇게 3번이나 입대하였고 생사를 건 2차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하셨다.

한국전쟁이후 충청도에 정착하였으나, 그 때부터는 가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죽음보다 무서

웠던 가난의 연속! 가난은 하루 세끼를 위해 미래를 포기하게 했고, 전쟁

은 아버지를 막살게 했다.

술을 한잔하시면 서정적인 유행가를 구성지게 부르는 것을 보면 아버지도 괘 낭만적이고 정

적인 분이시다. 아버지는 천부적인 미술솜씨도 있다. 내가 그런 대로 음악을 좋아하고 그림도

그리는 것은 아버지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아버지의 인생이 불쌍하기도 하다. 1924년 생! “묻지 마라 갑자 생이다” 이런 말

도 있지 않은가? 현재 살아있는 세대 중에서 가장 고생한 세대이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배달하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던 어느 가을날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학교에 다니기를 권유하셨단다.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 하여튼 내가 다시 학교에 가는 것을 원하셨다.

오늘 월급을 탔다. 항상 생활비를 어머니에게만 드리고 아버지는 특별한 때

만 드렸는데 오늘부터는 아버지에게 별도로 매달

10만원씩 드리려 한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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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선의지’

아래 그림은 제가 15살 때까지 살던 충청도 고향을 떠나기 전 날 밤에 착찹한 마음으로 마을을 한바퀴 돌았는데 훗날 1987년에 32살이 되어 15살이던 그 밤의 느낌을 그린 것입니다.

 

선의지(善意志)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긴 겨울방학에 우리들의 놀이문화는 없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이전이었으니 겨울 농한기에 어른들도 할 일 없이, 사랑방에 모여 투전과 술로 시간을 보내

며 개울이 봄으로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어른이 화투치러가서 집에 아이만 남

은 집을 아지트로 삼아 눈을 피해 소위 ‘뽕’이라 불리는 투전을 했다. 그런데 재종형제인 나

이가 한 살 더 먹은 아무개(나이는 한 살 많지만 같은 학년 같은 반)는 투전판에서 사탕 장

사를 하였다. 참으로 영악한 아이였다. 시내에 가서 사탕 한 봉지를 사다가 투전판에서 이문

을 붙여 낱개로 파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날 나에게 천안시내로 물건 사러 가는데 같이 가

서 주인을 혼란하게 하고 훔칠 수 있다면서 꼬드꼈다. 8km를 걸어서 갔다.

아!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천안 시내 큰 재에 있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대성상회!!

당시로는 큰 상점이었다 나와 재종은 주인에게 이런저런 말을 시키고 혼란하게 한 뒤, 옷

을 열고 앞가슴에 물건을 넣었다. 문턱을 넘어오는데 뒤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

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한다. 가게를 나와 천천히 걸음을 옮긴 후 20m를 벗

어 난 다음 전봇대 10개가 지날 때까지 뛰었으니 500m는 족히 뛰었다. 나는 앞가슴을 열고

오리온 별사탕을 내보였다. 삼각형의 비닐봉지에 빨강, 노랑, 파랑색 별모양의 사탕이 들어

있는 10원짜리 ‘오리온 별사탕’!! 내가 세상에서 최초로 한 도둑질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겨우 그거냐면서 잠바를 여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 과자가 꽉 차있었다. 50원짜리 사탕봉지

가 10여 개 나왔다. 나는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자랑삼아 그 날의 전과를 말씀드렸더니 아

버지에게 일렀고, 아버지는 그 집에 다시 가져다주고 용서를 빌라고 하셨다. 도저히 갖다줄

수가 없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모두 먹어버리고 갖다 주었다고 거짓말까지 하였다 . 이 사건

은 남의 꼬임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에는 순수한 내 의지만으로 도둑질을 하였

다. 중학교 1학년 때 교실 청소 후 남이 두고 간 우산을 훔쳤고, 역시 청소 후 책상 속에

두고 간 플라스틱 필통을 집으로 가져왔다. 우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나서 버렸지만……

아! 문제의 그 필통! 겉에 다보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던 그 필통! 썩지도 않고, 녹슬지

도 않으면서…… 참으로 오랫동안 나의 양심을 괴롭혔다. 나는 카인의 후예로 생각되었다. 선

천적으로 나는 악인일 수밖에 없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세 번에 걸쳐서 남의 물건을

훔친 사실로 인하여 아주 오랜 세월동안 괴로움에 시달려야했다.

나는 칸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는 출신성분부터 다르다고 생각되었다.

칸트가 말한 ‘선의지’란 이성(理性)의 가르침에 따른 옳은 행위를 , 그 행위의 결과가 어떠한

것이든 관계없이 단지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는 의지이다. 결과에 대

한 고려나 자연적인 경향과는 추호도 타협함이 없이, 도덕률(道德律)을 준수하는 것이 우리

에게 주어진 절대적 의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의무의식에서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

를 가리켜 Kant는 선의지(善意志) 라고 하였다.

마흔 여덟이나 먹은 오늘

이제는 나도 정언명령에서 나오는 선의지(善意志)대로 살고 싶다.

정말 선의지(善意志)로만 실천하고 살고 싶다. 행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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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月問溫泉


월드컵 성공개최 기념으로 임시공휴일이 지정됨에 따라 연휴를 지내게 되었다. 일요일 하루

는 빈둥거리며 지냈다. 사실 ‘빈둥거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빈둥거림 보다 더 좋

은 것은 없다. 밥먹고, 방바닥에 뒹굴며, 텔레비젼 보다가 인터넷도하고 커피 마시고, 수박먹

고, 전화하고, 낮잠자고……빈둥은 넘 좋다.

연휴 둘째날, 아내는 온천에 가자고 하였다. 이 더운 날에 하필이면 온천이라니! 그러나 아

내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최근에 아내를 위해 특별한 의식(?)을 마련한 적이 없는 나로

서는 물리칠 수 없는 요구였고, 온천이야 뭐 그냥 들어가서 삶은 달걀이나 먹으면 되는것

아닌가! 그정도야 뭐 누워서 떡먹기지! 그래서 택한 곳은 화성시의 월문온천! 그곳에 가면

꼭 온천욕을 할 필요도 없다. 온천 옆에서 부동산을 하는 친구 사무실에가서 담소를 나눌수

도 있고,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할 수 도 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지나다 보니 사무실 문은

닫혀있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꼼짝없이 온천욕을 하게 생겼다.

월문온천 로비에서 아내와 헤어질 때, 아내가 나에게 준 시간은 2시간 30분! ” 잘 씻고 나

와요” 세상에 뜨거운 탕안에서 2시간 30분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탕을 열고 들어서니 50

명정도의 남자들이 저마다 몸을 씻고 있었다. 나도 샤워를 하고 탕안에 몸을 담갔고, 정성스

럽게 때를 밀었다. 사우나도 세번이나 들락거렸다. 물은 매끈거렸고, 온천의 분위기도 좋았

다. 온천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로 다시 때를 밀고, 그래도 시간은 남고, 할일이 없으니 다시 탕안에 들어가 허공을 보

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게되었다. 나는 인체 크로키 작업을 하지만 남자 모델을 쓴 적은 없

다. 남자 모델을 쓴다면 어떤 사람을 쓸까? 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역시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 몸이 보기에 좋았다. 넓은 어깨 아래로 가슴근육이 융기하고, 아랫가슴에서 허리로 내

려가면서 얕은 배꼽을 경유하여 가늘어지다가 엉덩이가 가볍게 발달하고, 이어서 허벅지 근

육이 넓적하게 펴지고 내려가면서 무릎관절을 지나 다시 단단한 장딴지로 이어지다가 가는

발목으로 향하는 몸이 보기에 좋았다. 음……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온천욕 중 1시간 30분은 거의 초인적으로 버틴것이다. 탈의

실에 나와 몸무게를 재보니 62.60kg이었다 들어가기 전보다 400g 줄었다. 그래도 체중을 줄

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밖에 나온 후 자동차 안에서 읽을 거리를 구했으나 오늘따라 시집

한권 없었다. 작은 스켓치북이 한권 있어 야외용 의자에 앉아 소나무 숲을 스켓치하였다. 무

료하진 않았다.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아내가 나왔다.

우리는 보리밥을 먹으러 갔다. 보리밥은 좋았고, 보리밥집 앞의 2000여평의 묵은 밭에는 백

색 야생화가 군무를 이루며 넘쳤다. 망초꽃이었는데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웠다. 아내

는 “달빛을 받으면 은하수처럼 널리겠다”고 탄성을 지었다. 야호!!!! 온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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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내가 anbindr 인 이유

충청남도 천안중학교에 입학해보니 초등학교에 없었던 교실 두 칸 규모의 도서실이 있었

다. 오늘날의 현대식 도서실보다는 못하지만 35년 전인 것을 감안하면 무시 못할 규모였다.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대출을 받는 학생의 줄은 복도를 지나 도서실 밖으로 한바퀴를 돌렸

다.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운 정경이다. 내 평생 그렇게 활발하게 운영되는 도서실은 없었다.

내가 천안중학교 도서실에서 읽은 책은 몇권 안되지만 그나마 독서의 구력이 짧은 나로서는

책을 활발하게 읽은 시기로 기억된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나의 독서는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아라비안나이트, 중국동화

집 몽테크리스토백작 등의 이야기책을 읽다가 괴도루팽, 셜록홈스 등의 탐정소설을 읽었고

녹색우주인, 달로켓트의 비밀, 해저2만리 등의 공상소설을 읽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에 와서 그런 흥미위주의 책이 식상하였다. 그 때 눈을 돌린 것은

고전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독서의 수준이 조금 높아졌고,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 문학

적으로 커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데미안, 좁은문, 부활, 죄와 벌, 폭풍의 언덕, 대지, 까

라마조프 형제를 읽었으며 세익스피어를 읽었다. 그리고 부잣집 아들이었던 친구 집에 가서

책꽂이에 있던 헤밍웨이 전집을 빌려다가 모두 읽었다. 그 시절 헤밍웨이는 나의 우상이었

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읽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주인공 로버트조단과 마리아가 쫓아오는 적을 앞에 두고 이별을 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우리나라의 소설도 읽었는데 김동인, 김동리, 염상섭, 황순원, 등이었을 것이다. 김소월과

노천명을 읽었고, 한아훈의 ‘보리피리’를 슬프게 읽었다. 운현궁의 봄이 깊게 추억에 남는다.

그리고 춘원 이광수 전집을 읽었다.

춘원 이광수! 자칭 국보이며 향가를 해독한 무애 양주동 박사는 우리나라의 문학을 쌀 한

가마니 라고 한다면 그 중에 아홉 말은 춘원의 것이고 나머지 한말 중에서 아홉 되는 자신

의 것이라고 했으며, 나머지 한 되를 가지고 수많은 문인들의 몫으로 나누어야한다고 하였

듯이 춘원은 훗날 친일적 행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문학의 거봉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이광수의 사랑을 읽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진한 감동으로 눈 앞이 부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왜 눈 앞이 부옇게 흐려졌을까?

한번도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생각하니…… 아마 사랑

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책 속의 주인공 이름이 안빈(anbin)이다. 그런데 메일을 등록

하려했더니 이미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다. 안빈의 직업이 의사(dr)였다. 나는 의사가 아니

니 앞에 붙이지 않고 뒤에 붙였다. anbind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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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악마 기행’


나는 어제 수원 만석공원에 가서 한국과 포루투칼의 축구경기를 응원하였다.아내와 함께

붉은 악마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데 우리 동네 골목에서부터 화제였다. 옆집의 새댁은 우리

를 보고 넘 부러워하였다. 시내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파이팅’ 하면서 말을

걸었다.

저녁 7시 30분, 만석공원에 도착하니 경기가 시작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5만

명 정도가 모여있었다. 나와 아내는 붉은악마단에 섞여 열심히 응원을 하였다.

함성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다. 일찍이 이런 광경은 보지 못했다. 나는 1970년대 김대중씨

의 대통령 후보연설에 모인 청중도 보았고, 1980년대 초의 김영삼씨의 대통령 후보 연설회

에 모인 많은 청중도 직접 보았으며, 1980년대 민주화 시위 현장도 보았지만 붉은 악마 집

회는 그런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과거의 집회는 민주화를 위한 민중들의 모임이었기

에 한스러웠고, 투쟁적이었으며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의 집

회는 유럽의 시민혁명에서나 있음직한 절대주의 시대 군주에 대한 민초들의 항쟁 같은 것이

었다. 그러나 붉은 악마 응원은 모두가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율동이여 함성이었다.

모든 스포츠 중에서 축구가 가장 이변이 일어나기 쉬운 경기라 한다. 축구는 그 날 선수들

의 정신력과 응집력에 승부의 관건이 달린 경기다. 객관적인 전력은 우리가 열세였다. 1994

년과 1998년 세계청소년축구를 우승한 포루투칼은 그 때의 주역들을 출전시켰고, 현재

FIFA 세계랭킹 5위의 월드컵 우승 후보였다. 태극전사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정말로

멋진 명 승부였다. 운도 따라주었다. 상대의 슛팅은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이미 탈락이

확정된 폴랜드가 난데없이 미국을 잡아주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16강에서 이탈리아와 붙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우리의 다음 경기에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우리 나라는 반세기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수원 시내의 모든 차량은 붉은 악마 박수 리듬으로 경적을

울렸고, 젊은이들의 승용차는 문을 내리고 창문 밖으로 대형 태극기를 휘둘렀다. 길거리마다

대-한민국 소리가 울렸다. 정말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10시 30분에 경기가 끝난 후 나와 아내는 버스를 타고 수원역에 와서 흥분이 가시지 않은

대학생 붉은 악마 응원단에 합류하였다. 거리 응원단에는외국인도 함께 섞여있었다. 11시가

되자 아내가 집으로 가자고 할 때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응원단 대열의 중앙으로 파고들면

서 마지막 응원을 한다는 것이 그만 아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열심히 응원대열에 있다보

니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아내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본 그 동안 집회는 모두가 투쟁적이고, 한스러운 것이었는데 붉은 악마 집회는 전혀

달랐다. 부르는 노래도 모두 좋았다. 애국가로 시작하여 붉은 악마 응원가, 즉, 코리아팀 응

원가, 그리고 구호 등이 전부였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집회라면 얼마든

지 좋다. 이것은 축제였다. 아!!!!!!!!!!!!! 축제의 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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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절제된 서정

군대제대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때가 27살 이었습니다.

시골의 고등학교에 근무했는데, 학교 앞의 하얀집에서 하숙을 했지여. 하얀

집은 지붕에 슬레이트를 이고 있었고 벽에 흰페인트가 칠해진 집이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white house’라고도 불렀습니다. 하숙집 할머니는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면서 솔잎을 긁어모아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읍니다. 음식은

아주 깔끔했지만 반찬은 별로 신통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신통찮은 반

찬을 보완하려는 마음에서인지 어떤 때는 콩나물 국에도 후추를 뿌리곤 했

습니다. 시집갈 나이가 된 둘째 딸은 통기타를 지며 비교적 기품있게 노래

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 하숙집에서 27살부터 그림을 그리고 詩를 썼습니다. 미술을 전공하지

못한것을 늘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여. 그러나 평생을 통해서 해온 작업

치고는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했다기 보다는 남는 시간에

그렸다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또 지종근 선생님처럼 몸을 던져서 그릴

만큼, 교사의 생활은 시간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

다. 지종근 선생님의 정열에 비하면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주말마다 스켓

치 행차를 하신다구여! 저는 2주에 한번 나갑니다. 지종근 선생님의 그림

은 아주 독특하고 아름답습니다. 지난번 전국모임때 전시된 그림을 보고 금

방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감히 선생님의 그림을 입에 올리는 것이 주제넘

은 일인줄 알고 있으나 너무나 선생님의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 말씀

올린다면’ 선생님이 모든 것을 다 그리지 않고 간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을 보고 저는 절제된 서정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색채에서도 절제의 느

낌은 보입니다. 실경을 위주로 하는 것도 순수한 서정을 위함이겠지여.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는 동안 아주 행복하고 편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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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종말’

< 문화 상업주의의 종말이 두렵다 >

오늘날 물질숭배 시대에 모든 것은 돈과 직결되어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하다하겠으나 문화가 이윤만을 추구하여

상업주의에 흐르게 되면 문화의 저질화를 가져오게된다.

한국영화가 모래시계 이후 , 친구, 주유소 습격사건, 조폭마누라, 나쁜

남자 등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모두 천박한 상업주의의 결과이다. 나쁜 남

자가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는 것을 보면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수 없다. 도대체 순진한 여대생이 사창가에 납치되어 길들여진 후 포주

를 사랑하는 해괴한 사랑의 논리를 만들어 무엇하려하는가?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건전한 가정을 파괴할 목적으로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만들고 같

은 목적으로 만든 ‘위기의 남자’ 앞에 40代들이 월화 드라마 시간에 넋을

잃는다.

정보의 바다로서의 기능을 가진 인터넷도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성

인사이트 접속건수 ‘세계 1위’가 보여주듯 어린 청소년을 포함한 수백만명

의 젊은이들은 늦은 밤까지 포르노를 헤메고 낮에는 학교와 일터에서 졸고

있다. 어린 학생의 E-mail에 포르노 사이트 주소가 올라오고 나의 핸드폰

에 ‘오빠 빨리 전화해’ 라는 문자메세지가 뜬다. 우리는 음란물로 대변되

는 저속한 상업주의에 너무나 쉽게 노출되어있다. 나의 어린 아들도 학교에

서 돌아와 부모가 없는 시간에 음란물을 본다. 물론 나도 접속한 적이 있

다. 뒤늦게나마 나도 후회하고 ADSL에서 유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유

해사이트를 차단시켰다. 나는 다시는 음란물을 보지 않을 것이다.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음란물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한 뒤에 배우자를 인격체로 존

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란물에서 볼 수 있는 행위는 실제 가정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판단력이 미숙한 청소년들은 음란물에서 본 내용

을 현실에서 발생하는 상황으로 잘못인식하는 것이다.

음악도 그러하다. 안방의 텔레비젼에서 대중 가수의 의상과 몸짓, 그리고

가사는 이미 위험 수준을 넘었다. 저급한 상업주의가 가요에서 판을 친다.

가수는 더 감감적이고, 향락적인 말초신경을 자극시키려 애쓴다.

어제는 윌드컵 개막 경기로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가 열렸는데 양팀선수

들이 사력을 다하는 것은 좋으나 심한 몸싸움과 반칙이 난무하였다. 상대선

수의 옷을 잡고 팔을 잡으며 심지어는 다리까지 붙잡고 고의적인 폭력도 불

사하였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며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룬다는 스포츠 정신

은 올림픽에서도 찾기어렵다. 올림픽에 프로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하면서 예

견된 결과이다. 스포츠는 마지막 남은 신사의 문화였다. 그러나 2002월드컵

을 보면서 나는 소리없는 전쟁을 본다. 월드컵 중계료가 7억$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오늘날의 스포츠는 문화가 아니고 돈이요 전쟁이다.

아!!!!! 과연 이 시대에 진정한 문화가 있는가?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 요즈음 젊은 아이들은 예절을 모른단 말이

야, 어른들에게 인사할 줄도 모르고……”라고 개탄하였다고 한다. 그러

나 그 후에도 세계는 건재하였듯이 오늘날의 세계도 잘 흘러갈 수 있을

까? 내가 괜한 걱정을 하나?

아닐 것이다. 요즈음의 상황은 심상치 않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 상업주의에 물든 문화의 저질화가 우리에게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로마가 망한 원인을 곱씹어보게된다. 로마는 향락과 퇴폐문화로 망했다. 정

말 걱정된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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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Stop smoking is more important than I have ever achived.

Stop smoking is more important than I have ever achived.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한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담배를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나는 담배를 좋아한다.

나는 비교적 합리적인 사람이다. 담배의 해독을 미리 알았더라만 절대로 담배를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담배를 처음 배울 시절에는 정부에서 조세수입을 목적으로 담배의 해독성을 홍보하지 않았다. 스무살 때 내가 담배 피우는 것을 알게된 아버지는 “음…….너도 담배피울 나이가 되었다” 는 식으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담배 한 개피로 중독되었다. 대학 1학년 때 담배피는 친구에게 하나 달라고 해서 피웠더니 냄새가 너무나 고약하였다. 나는 즉시 양치질을 두 번이나 했다. 그런데 20분 쯤 지나고 나니 다시 담배를 피고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나는 금연을 홍보하면서 담배 한 개피도 피지 말 것을 주장한다. 한 대면 중독되기 때문이다. 나는 애연가이다. 그리고 니코친 중독자이다. 담배를 피운지 20분이 지나면 내 혈관에서 담배의 농도가 떨어지고 강한 흡연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핏속에서 땡긴다. 담배는 마약이다. 나는 필로폰을 한 대맞으면 평생 끊지 못할 것이다. 담배를 끊는 일도 그렇게 힘들었든데……나는 금연에 목슴을 걸었다. 목슴을 걸고 끊었다. 지금은 흡연의 욕구에서 벗어났다. 금연한지 4년 되었다.

내가 금연을 한 이유는

건강하며, 청결하고 아름다운 몸을 갖고 싶다.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내 어린 자식들을 생각 할 때 오래 살아야겠다.

내 몸과 입, 주머니의 담배 냄새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을 줄 수 없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서 학생들에게 금연하라고 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부산의 지종근 화백님의 외로운 금연투쟁을 멀리서 후원하며

그 분이 금연에 즈음하여 남긴 명문을 여기에 적어본다.

억장(億丈)이 무너질 아픔 이지만..

그녀를 잊어야 할 일이 생겼다.

진정한 무사의 자비는..

정확히 급소를 겨냥 해

단숨에 숨통을 끊어 준다는 거..

이별을 용단 할 때..

결코 무딘 칼은 꺼내지 않는 다는 거..

언제나 힌 옷을 즐겨입고 날 유혹했던 날씬한 그녀

하루에도 수십번 내 입술과 맞 닿기를 원 했던 그녀…

이제 난 그녀를 단숨에 내려 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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