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2월말에 귀국한 이래 집안에 분란이 생겼다.
큰아들의 눈에 보기에 우리집 환경이 너무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하긴 건축한지 43년된 집이니….43년 동안 이사가지 않고 여기서 살았다.
나도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으나 90세가 되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어서 간섭하지 못했다.
하나 아들은 달랐다. 영국런던과 뉴욕맨하탄의 빌딩숲에서 근무하다 온 아들의 눈에
우리집 마당에 얼기설기 지어놓은 개집과 마당의 구조물 등은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1924년 생으로 기미독립 운동이후 일제의 무단통치하에서 어린 시기를 보내셨고 6.25 북한의 남침전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신 분이다.
말해무엇하랴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2차대전에 일본군으로 참전하셨고 6.25 북한의 남침전쟁 때는 군에갈 나이가 지났는데도 전쟁터에서 국군에 강제 입대되어
6.25북한남침전쟁에 국군으로 참전한 용사이시다.
그 할아버지는 소일거리로 마당에 농사를 지으신다. 이게 손자의 눈에 못마땅하게 보인것이다.
할아버지의 터전을 놓고 손자와 할아버지가 대결하였다.
내가 중간에서 중재하느라 애를 썼지만 아들이 물러서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서로 감정을 많이 다쳤다.
나는 두사람간을 조율하면서 집 수리공사를 진행하였고
결과는 어느정도 아름다운 집으로 바뀌었다.
사실 아들의 잘못은 없다. 즉 손자의 잘못은 없다. 손자가 집을 부신것도 아니고 손자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집이 날라가게 된것도 아니다.
손자는 그저 집을 아름답게 꾸미자고 한것인데 말씀드리는 방식이 우격다짐이었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집은 아주 아름다워졌다. 동네 사람 모두가 예쁘다고 난리다 ㅎㅎㅎ~
이번에 큰 아들의 주장으로 마당을 크게 수리하였다.
할아버지가 농사짓는 부분과 통로 및 차고를 분리하는 흰색 펜스를 설치하였다.
흰색으로 페인트를 칠하고 보니 보기에 아주 깔끔하였다. 마당에 칸나와 백합을 심었다.
남들은 아파트로 바꿔치기 하여 돈을 벌었어야지 너무 주택에 오래 살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다. 43년동안 이 집에서 살았으니 내 인생의 모든 추억이 이 집에 서려있다.
나는 이 집에서 결혼을 했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다녀와서 부모님께 인사를 올린 집도 여기며
아내가 산기가 있어 병원으로 달려갈 때도 이 집에서 였다. 큰 아들이 말벌에 쏘였다고 학교에 울면서 전화한것도 이 집이며
두 아들이 넘어지고 무릎이 깨져가면서 자전거를 배운 것도 이 집 곡목에서 였다.
나는 이 집을 사랑하며 이 집의 골목도 사랑한다.
아파트가 뭐 대수냐? 별거냐? 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