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방향을 모르는 편지

몇번이고 쓰다말다를 반복하다가

글을 남깁니다…,

선생님이 낳아주신 저희를 항상 생각해 주시고 계시는거져?

www.cafe.daum.net/acrotheater

저희 4회 공연 꼭 와주시고여…,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하는 제자 ( )에게

나에게 보내는 메일을 몇 번이고 쓰다말다를 반복하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제자가 스승에게 글을 올리는데 망설일 이유가 무엇이냐

네가 나를 진정한 스승으로 생각했다면 망서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내가 너희들을 (그리고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연극부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너에게 할말이 있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만 그 때는 너도 나이가 어려서 그랬을 것이다.

공연히 끝난 후 재학생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네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았다. 물론 나도 그 자리에서 있었는데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어린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교사로서 바른 태도가 아니기 때문에 마시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그 때 내가 너를 나무라면서 조금 후에 식당을 나와버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로도 나는 연극공연이 있다고 연락이 오면

너무나 반가웠고, 학교를 찾아가 공연을 보았고, 격려하곤 했다.

그 후에 또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너는 나에게 전화로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내용인 즉, 스승을 초대한다기 보다는 너희 친구들에게 보내는 초청내용을 나에게 한꺼번에 메세지로 보내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너희들끼리 만나는 모임메세지를 스승에게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나를 오라는 것인지? 알고 있으라는 것인지? 도대체 알수 없었다.

따로 보내기가 번거로워 스승에게도 친구들에게 보내는 내용을 그냥 보냈다고 말한다면 나는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런 메세지를 보고는 갈 수 없다.

네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초청하거나, 최소한 개인적인 메세지를 보냈더라면 벌써 구경하러 갔을 것이다.

요즈음 네가 두번의 인터넷메일을 보내면서 전화메세지 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가능한 가겠다고 대답은 했다만 ,사실 확실히 대답한것은 아니다. 가능한 가겠다고 답장을 쓴것은 그런 뜻이다.

나는 너희들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정중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할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너희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연극부를 만들었으며

정말로 어려운 여건에서 내 온몸을 던져 너희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너희들이 지역사회 문화발전에 공헌하는 연극 공연을

수년에 걸쳐 하고 있는것에 대하여 마음 뿌듯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너희들의 공연을 너무나 보고싶다. 고맙게 생각한다.

사랑하는 제자 ( )야!

당부하건데 나를 초청하려거든

그동안의 일을 정중하게 사과하고 정식으로 나를 초청하여라

From : 맹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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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

며칠 전에 내 방에 텔레비젼을 치웠다

여러번 망서리다가 내린 결정이다

아내는 그대로 두자고 했지만 내가 없애자고 적극 주장하였다

그리고 오늘 인터넷도 끊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막내 아들의 수행평가를 해야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인터넷을 끊었다.

이대로 살 수 많은 없다.

나에게 지루한 오늘 하루는

하루밖에 생명이 남지 않은 환자에게는 얼마나 금쪽같은 시간인가!

책도 볼것이 많고, (정말 나는 그 동안 책을 소홀히 하였다)

글도 써야 하고

또 가족과 대화도 필요하다

이렇게 살 수 만은 없다……

신문에서 텔레비젼 보지 않기 운동이 소개되고

텔레비젼 안보는 사람들끼리의 동호회도 있는 모양이다.

나하고 아내는 사실 학교에 출근하면 인터넷을 할 수 있으니

인터넷을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이제 인터넷을 할 수 없다.

인터넷과 완전히 단절된 것은 사실 막내 아들이다.

고3 학생이니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텔레비젼이 없고 인터넷이 없는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나는 지금 아주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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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조금 더 일찍 보았더라면……

붕우 남기완 교수에게!

잘 지내고 계신지?

그러니까 얼마전 겨울방학 시작하고 나서

지인들과 함께 구례 화엄사에 다녀왔다네

사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사찰은 대부분 구경했네만

유독 화엄사는 처음이었네 화엄사에 국보가 여러개 있었는데

4사자3층석탑은 국보 35호로써

부처님에게 차 공양을 드리는 것으로

드물에 보는 스토리가 있는 탑인데

문제는 설명이 너무 많고

군더더기가 많네, 탑은 탑 자체로서 완성되어야지

그것으로 이야기를 역는 다는 것이 무리였네

그러다 보니 탑의 비례도 맞지 않을 뿐만아니라

예술적 표현이 뒤떨어졌네

각황전은 국보 제67호로써 우리나라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건축수법이 웅장하고 보는 이를 압도하였네 다만 정유재란때 소실되었던 것을 숙종 때 중건하였고, 그리고 터를 비좁게 차지하여 스카이라인이 완연하게 드러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까웠네 한참을 서서 보았네만 두고 두고 생각해도 가람의 배치를 설계한 사람에게 아쉽움이 남네

괘불탱화는 국보 제301호로써 높이 13m, 폭은 8m인데 괘불은 마(麻) 바탕에 채색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서 효종 4년(1653) 5월에 지영ㆍ탄계ㆍ도우스님 등이 조성하였는데 거대한 규모이면서 짜임새있는 아름다운 탱화였네 다만 고려의 탱화가 아니고 조선시대의 것이어서 연대가 짧은것이 흠이었네만 규모의 크기나 아름다운 조화는 세계적 명품임에는 틀림없었네

석등은 국보 제12호로써 신라 문무왕17년(677)에 의상조사께서 조성한 것으로이 탑의 높이는 6.36m이며 우리나라 최대의 석등이네 꽃잎 형태는 우담바라화로 이 꽃은 3천년만에 한 번 핀다고 하네 꽃의 8잎은 8정도(正見,正念,正精進,正命,正業,正語,正思惟,正定), 4개의 火窓은 사성제(苦集滅道)와 부처님의 광명, 북의 모습은 진리의 소리이니, 즉 팔정도로 수행하여 사성제의 진리의 이치를 밝히고 광명을 놓으시며 진리의 소리를 중생들에게 들려 주시어 마음의 등불(自燈明 法燈明)의 세계를 밝혀 주시는 부처님의 참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석등이었네

4가지의 국보중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석등이었네 나는 석등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네

그 것은 단순히 불을 키는 용도가 아닌

어떤 신앙의 대상물이었네

세상에 그렇게 잘 생긴 석등은 처음보았네

통일신라시대로 제작연대도 높거니와

단아한 기품,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한 디자인

보는이을 압도하는 장중함,

전제적으로 흠을 잡을 수 없는 비례의 완벽함

더도 덜도 없는 완벽함과 간결함’

내가 조금 더 일찍 이 석등을 보았다면

석등을 보는 안목을 깊게 길렀을 것을….하는 아쉬움이 생길 정도로

정말 대단한 것이었네

사찰에 가면 대웅전과 탑을 주로 보고

석등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석등이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면

신앙의 대상물인 탑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구조물이 무엇이든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엄숙한 느낌과 종교적인 신앙심을 느끼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네

유홍준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

화엄사 석등을 언급 하지 않은것이

이상하네 내가 보기에는 정말로 대단한 석등이었네

다보탑이나 석가탑에 뒤지지 않네

집사람에게도 내가 구경한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보고싶다고 했네

언제 한번 함께 구경가세나!

뒷산의 동백나무 숲도 일품이었네

사진은 실물보다 어림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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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파도

얼마 전 동해안의 경포대에 갔었다.

겨울설악산에 가는 길에 경포대에 들린 것이다.

넓은 해수욕장에 서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몸으로 받았다.

그 곳에서 딱 한 줄의 시를 썼다.

[ 파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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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내가 떡볶이를 먹으면 아들과 가까워 질 수 있을까?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에 갔다(홈플러스) 대형마트에 가서 이리 저리 물건을 고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저것 살펴보고, 바구니에 담고, 아내와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도 한다. “어머니! 광어회가 싱싱한데 살까요? 아니면 홍탁(홍어 삭힌 것)이 나왔는데 살까요?” “생선회는 그만 두고 홍탁이나 사와”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초고추장이 떨어졌답니다. 초고추장 생산하는 업체에 불이 낫답니다. 세상에 뭐 이런 일이 다 있습니까! 집에 초장은 있지요?” 뭐 대충 이런 식이다.

매장 한가운데에 튀김, 국수 등을 파는 음식코너가 있었다.

그곳에서 머리 허연 아버지와 아들이 떡볶이를 맛나게 먹고 있었다. 그 광경을 한참동안 지

켜보았다. 나는 떡볶이를 먹지 않는다. 도대체 족보가 불분명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깨끗하고 기품 있는 떡이면 이름조차 흰떡이겠는가! 흰떡은 가래떡이라고도 불리우며 분명

히 용도가 정해져 있고, 먹는 때도 정해져 있다. 해가 바뀌어 조상에 차례를 지내면서 떡국

으로 먹는 음식이다. 조상에 대한 감사는 물론이요, 어떤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먹는 음

식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볼성사납게 뻘건 고추장을 걸쭉히 발라 어묵과 함께 뒤섞

어 저으며 익혔다가 접시에 내어 놓는다. 고추장을 뒤집어썼으니 본연의 제 색깔도 잊어버

린 셈이다. 고추장 국물에 빠져 허우대는 흰떡을 보노라면 처연한 생각이 든다. 그토록 고

고한 자태의 흰떡이 고추장 국물에 익사하여 그야말로 떡이 된 형국은 목불인견이다. 용도

도 잃고 색도 잃고 완전히 족보 없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80년대에 들어와 학교 앞

분식점 등에서 학생들에게 값싸게 제공되던 것이 오늘날 버젓이 음식의 한 장르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나는 마땅치가 않다. 더군다나 나는 위장이 약해서 빵이나 떡을 싫어하는 사람이

니 떡볶이를 먹을 리가 없다. 그런데 머리가 허연 청바지를 입은 신사가 20대의 아들과 함

께 떡볶이를 먹는데, 아들이 먹는 것을 옆에서 조금 맛 보는 것이 아니라 저녁 식사 대신

먹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적극적으로 먹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아들이 핫

바를 사려고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기에 내가 물었다. “아버지와 함께 떡볶이를 먹는 모

습이 보기 좋아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혹 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지요?” 젊은이는

처음에는 조금 놀라다가 “58세이십니다.” 세상에 나보다 7살이나 더 먹은 분이 저렇게 맛

있게 떡볶이를 드시다니 아내에게 말했더니 “당신 아들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는 음식인데

떡볶이를 그렇게 천대합니까?” 라고 말하였다. 주인에게 떡볶이 1인분을 싸달라고 말하였

다. 집에 있는 둘째아들에게 주려고 샀다. 음……나도 떡볶이를 먹으면 아들과 가까워 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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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마이클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에 갔다(홈플러스)

아들이 겨울방학에 가있던 친구(캐나다 마이클)집에 보낼 선물을 사려고 갔다. 겨울방학은 20일 정도여서 귀국하기에는 너무 짧다. 재작년 겨울방학에 귀국했을 때 보니 오는 날부터 헤어질 걱정을 했다. 그래서 겨울에는 귀국하지 않는다. 기숙사를 비워야하니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민 가정인 친구(마이클)를 사귀어 신세를 지고 있다.

보낼 물건을 적어본다.

고추장

된장

참기름

김

미역

깻잎(통조림)

고춧가루

그리고 해태 ‘맛동산’을 한 봉지 샀다.

나로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과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샀다. 된장과 깻잎은 두벌을 샀는데 그

것은 우리가 집에서 먹어보고 검증이 되면 보낼 것이다. 10킬로그램 정도의 무게가 나갔다.

아들이 20일 가까이 묵었다 하니 답례 치고는 너무 적다. 그러나 마이클의 할아버지 할머니

도 손자를 키우는 분이니 이해하리라 믿는다. 아들의 친구 마이클은 지난여름 우리나라에

왔을 때 우리 집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온 것이다. 함께 문화답사(백제 문화권)를 다니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점에 데리고 다니

기도 했다. 마이클은 핸섬한 외모에다 아주 단정한 매너를 지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

움을 느끼게 하였다. 대학 2학년인데 한마디로 신사였다.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문화적으로

는 완전한 앵글로아메리카인데 어쩌면 그렇게 예의가 바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더 잘해주었어야 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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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11

전에 같은 학교에 함께 근무한 박건웅 선생님은 시인이다.

지금은 명퇴하셨고 교회에서 일요일 주일 예배 시간에 가끔 만난다.

선생님은 이해찬 교육부 장관시절 정년이 갑자기 단축되어 명퇴하셨는데

명퇴식에서 내가 무명교사예찬을 읽어드렸다.

시를 아주 쉽게 쓰는 분인데 새로 7번째 시집을 냈다면서 한권 주셨다

그 시집을 읽다가 [숨어버린 마을]이라는 시가 너무 좋아 수십번 읽었다

산방의 벽에 써서 붙이고 싶다. 우선 여기에 원문을 옮겨본다.

-숨어 버린 마을-

수수 울타리 사이로 오손 도손

이웃 정 나누며 살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비대한 몸집에 밀려

마을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멀리 계양산을 타고 내려온

빨간 저녁노을이

마을에 앉으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남정네는

황소의 방울소리와 함께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마을을 향해

마을을 향해

들길을 걸어왔고

검불에 불지피며

저녁밥 짓는 아낙은

방울소리 기다리며 몇 번이나

울 너머로 그 하얀 목을

학처럼 빼곤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노을이

자리를 밤에게 양보하고

마을을 떠날 즈음

남정네가 마당으로 들어서면

무엇이 그리 수줍은지 아낙의 볼은

방금 떠나간 노을마냥 빨개졌고

아이는 싯누런 콧물을 소매로 훔치며

아빠를 반겼고

삽살개도 덩달아 꼬리를 치며

마당을 뛰어다녔다

밤하늘의 총총한 별빛이 실비처럼

쏟아져 내리면

멍석 가까이 매캐한 쑥불연기 오르고

할머니 무릎 베고 누운 손자녀석

나무꾼 선녀 이야기해 달라고 칭얼거릴 때

수수울타리 위로 하나 둘

반딧불이 날았다

어른들 아이들 가족 모두가

옥수수 감자를 야식으로 먹으면서

얘기꽃 웃음꽃 피우느라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단란한 마을이었는데

이제는 옛 마을 흔적조차 찾을 길 없고

차량의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매연이 안개처럼 거리에 흐르고

타이 맨 남자와 양장한 여자들

그리고 예체능학원명이 새겨진

가방 든 아이들이 활개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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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10

산방의 사진을 올려본다

아직 수리하려면 몇군데 손을 더 보아야 하지만

더 미룰수 없어서 올린다. 87세되신 할머니가 안채에 혼자 사시고

나는 논어에 나오는 글로 대련을 써붙인 바깥채에 산다.

보기에는 헌집이지만 내부를 수리했기 때문에

장작을 때면 방이 설설 끓는다.

나에게 딱 맞는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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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9

교육계에서 내가 제일 은혜를 많이 입은 정무학교장 선생님께서 시집을 내시는데 영광스럽게도 내가 서문을 써드렸다. 둔탁한 문장이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동안 아주 즐거웠다. 가능한 짧게 쓰려고 애썼다.

[서문]

시, 음악, 춤은 원래 삼위일체의 혼합예술이었는데 문화가 점점 진보되면

서 이 세 가지가 분리되었고 리듬은 아직도 중요한 공통요소로 남아있다.

孔子도 『論語』泰伯篇에서 “興於詩立於禮成於樂”(시에서 보편적 정서를

일으키고, 예에서 의범을 세우고, 악에서 조화를 이룬다)이라고 하였고, 헷

세(Hermann.Hesse)는 소설 “『어느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에서 시를 배

우려면 우선 음악에 통달해야함을 역설하고 있다.

정무학 시인의 詩 世界에 있어서 그 기초는 철저한 음악성이다.

고향집 마당에 달빛 걸리면/

어깨춤 덩실 덩실/덩실 할머니

서울로 유학 간 손자 사리문 열고 들어서면/

덩실 덩실 춤을 추던/덩실 할머니

–<덩실 할머니> 부분

여기서 보여주는 음악성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노래한 민요조의 운율(韻

律)과 함께 역동적인 율동(律動)을 나타내고 있다. 어느 독자가 이 시를 읽

는다고 해도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리고 흥겹게 된다. 정무학 시인은 여기

서 분리되었던 시와 음악과 춤을 교묘히 다시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음악성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평생에 걸쳐 시를 써왔으면서도 현역에서 은퇴하는 시점에서 시집을 내

게 된 것은 아마도 공직에 더욱 충실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두고

온 것을 그리워하며 자연을 사랑했고, 가족을 사랑했던 정무학 시인은 이

제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남양에 마련한 농장으로 돌아간다. 그 곳에서 또

다른 풍요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05년 1월 비봉 쌍학리 산방(山房)에서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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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8

산방의 난방은 온돌이다. 그러니 땔감을 구해야한다. 김정일 형이 동네 산에서 감벌하여 통나무를 한차 가져왔다. 나무를 처마 밑에 쌍아 놓고 보니 나이테를 드러낸 가지런한 둥근 단면이 뽀얀 처녀 속살같이 수줍음을 드러내고 있다. 문을 열고 보면 뒤뜰을 돌아오는 바람이 진한 송진 내음을 그리움으로 방에 전한다. 아! 정말 얼마만인가!

요즈음 세상에 흔한 것이 나무이다. 출근 길에 버린 나무토막이 눈에 보이면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 싣는다. 어떤 때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지런히 묶은 나뭇단을 얻은 적도 있다. 별로 땔감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매일 불을 때는 것이 아니고 열흘에 한번 정도 산방에 기거하다보니 불을 웬만큼 지펴서는 방이 더워지지 않는다. 자동차 트렁크 두개 정도에 들어갈 나무를 때야 방이 덥다. (사실 더운 정도가 아니고 설설 끓는 다고 해야 옳다)

그리하여 틈만 나면 장작을 구해 쌓아놓고 처마 끝까지 쌓일 장작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만에 山房에 가보니 나무가 많이 줄었다. 아궁이를 보니 불을 땐 흔적이 있었다. 할머니에게 물으니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와서 불을 때면 쉽게 더워지지 않음을 걱정하여 매일 조금씩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세상에! 아니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시다니!

나를 위해 한 일이니 더 이상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다시는 사람 없는 방에 불을 때는 일이 없도록 당부하였다. 사실 할머니는 지난 번 朋友들이 왔던 날 새벽에도 몰래 일어나 내 방에 불을 지피셨다. 혹, 새벽에 추울까하여 새벽 군불을 땐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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