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제자 오연숙!!
시골의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니 20년도 더 넘은 일이다.
오연숙, 그녀는 정말 특별한 제자이다.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18살 쯤 되었을까?) 담임을 맡았고, 고3도 역시 내가 맡았다.
내가 27살 때이니 젊은 나이었고, 학생들을 정말 열심히 가르쳤다. 오연숙은 전교 1등이었고, 친구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전 과목에 걸쳐 골고루 공부를 잘했고, 항상 표정이 밝았다. 몸에는 건강미가 넘쳐흘렀다. 지금도 기억한다. 교내체육대회 때 우레탄이 아닌 흙으로 된 운동장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농구를 하던 모습을……억척같이 공을 빼앗아 골인시키던 장면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내 머리에 남아있다.
물론 예의도 바르고 행동이 반듯한 학생이었다.
송제선, 이정희, 이런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 들도 모두 훌륭한 학생들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가지 않으려는 것을 내가 억지로 설득하여 약학대학에 진학시겼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여 여러 번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다녔다. 지금은 수원시 연무동에서 약국을 하고 있는데 친정부모와 시부모를 잘 모시고 여러 동생들을 거두고 있다. 참으로 대견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성격이 멋있었다. 항상 밝은 얼굴이었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굽히지 않았다. 선생님에게도 굴하지 않고 덤비기도 하였다. 물론 나에게 덤빈 것은 아니고, 역사 선생님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너무 억울해서 신체마비증세까지 와서 숙직실에 뉘고, 여학생인지라 내가 손을 대지 못하고 친구들로 하여금 몸을 주무르게 하였다. 몸이 점점 굳어가서 너무나 놀랬다. 급히 의사를 왕진시켰는데 놀랍게도 의사는 “히스테리” 라고 하였다. 쉽게 말하면 제 성질을 못 이겨 넘어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성질이 고약하다고 말 할 수도 있으나, 나는 지금까지 그 날의 기억을 아주 멋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 그에게 잔다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대쪽 같은 성미가 잔다크나 유관순을 연상시킨 것이다. 대학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빨간색 투피스 한 벌을 사주었는데 입혀놓고 보니 날렵한 모습이 마치 건강한 야생마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그 모습도 분명히 기억한다.
4년전인가? 내가 아프다고 전화를 했더니 즉시 신랑과 함께 학교로 달려왔다. 교무실에서 나에게 약을 먹이고 신랑이 내 머리통에 정성스럽게 침을 놓았는데 너무 감사하여 눈물이 났다……
지금 아마도 40살쯤 되었을 것이다.
항상 나의 건강을 걱정하고, 우리 집 식구들의 건강을 모두 챙기며 보약도 여러 번 받아먹었다. 매년 스승의 날에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식사대접을 하는데, 얻어먹는 것이 한 두 번도 아니고 염치가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랑이 전화를 하여, 돌아오는 토요일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물론 우리 부부와 연숙이 부부 이렇게 4명이 항상 만난다. 어떤 때는 가뭄에 콩나 듯 내가 음식값을 내보기도 하지만 음식값보다 훨씬 큰 선물을 또 주니 내가 밥값을 낸다는 명분도 없다. 부담스럽기도 하여, 한 동안은 연락을 끊고 만나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같은 수원시에 살면서 원수진 것도 아닌데 벽을 쌓고 살수도 없고, 갑자기 내가 아프면 밤늦게 전화를 걸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약을 갖고 달려오고……또 한참을 안보면 그들 부부를 보고싶기도 하여 결국 서로 연락을 하게된다. 오연숙 그는 정말 특별한 제자이다.
그녀가 더욱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