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Dark age……

1970년 1월 18일 아침

나는 충청남도 아산에서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왔다. 그 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다.

당시 천안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했으나 이사오는 연유로 인하여 등록금을 내지 않고 입학을 포기하였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천안여중을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근처에 사는 어머니 친정으로 인연이 있는 과수댁의 집에 맡기고 학교를 계속 다니게 했고, 막내인 남동생은 수원세류초등학교 5학년으로 전학시켰다.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온 아버지는 도시 생활에 여러가지로 걱정이 많으셔서 나를 챙기실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시골에 토지를 거의 그대로 두고왔기 때문에 도시 생활에 실패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셨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잘못인지도 몰랐다. 모든 가산을 정리했다면 도시생활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었으며 과감한 투자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밑을 것이 땅밖에 없었던 아버지로서는 그렇게 하실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16살의 어린 나이에 수원의 역전시장으로 이사오신 아버지를 따라 장사를 시작하였다. 업종을 결정하는데도 아버지는 나와 깊이 상의했으며, 거의 모든 일을 함께 하였다. 낮에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물건을 배달하였다.

그 시절에 사귄 친구는 철물가게인 개풍상회에서 배달하는 아이,

쌀가게인 이천상회에서 쌀배달하는 아이 등 주로 시장바닥에서 남의 집 종업원을 하는 아이들이였다. 지금은 모두 철물가게, 쌀가게 주인이 되었다.

당시에 나는 우리집 가게부를 썼다.

어느 날의 가게부이다.

콩나물 10원,

꽁치 두마리 30원…..

하루 총지출 120원

월세를 내고 장사를 하던 그 가게가 우리 소유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 집을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모든 관심사는 돈을 버는것이었고, 앉아서 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혼자서 궁리한 끝에 온양에서 생산하는 종이끈을 사다가 자전거에 가득 실고 수원시내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그 때만해도 폴이에칠렌(비닐)끈이 흔하지 않은 시절이어서 포장용 끈으로 종이실을 썼다. 장사는 신통치 않았으며 비가 오늘 날에는 물건을 버리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오토바이는 물론 자전거를 아주 잘탄다.

짐을 실는 커다란 자전거에 비닐장판 6자 원단 50m를 북문 화물운송회사에서 역전시장까지 실어나르곤 하였다. 한번 넘어지면 혼자서는 자전거를 세울 수도 없는 무게였다. 당시에는 도로에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서 다닐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다. 6자 원단을 세로로 자전거에 실으면 그 넓이가 자동차 넓이보다 훨씬 길으니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무게또한 60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것이었다.

얼마전에 책꼿이를 정리하다가

오래된 괴퇴의 시집이 눈에 띄었다.

책 뒷장에 젊은 남여가 노래를 부르면서 걸어가는 그림을 그렸고

그림 배경으로 전봇대가 서있었으며, 낙엽하나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 밑에

수원시 매산로 1가 57번지 동신비니루상사 맹기호

1970년 8월 26일 이렇게 써있었다.

그 암울했던 시절, 아니 암울한 것이 무엇인지도 물랐던 그 시절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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