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인문학아카데미를 지난 달에 수강하였다.
이번에 2기 강좌를 연다고 하여 어제 저녁에 강의를 들었다.주제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왜 사는가” 그것이 주제였다. 이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평생 화두가 아닌가?
강사는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도정일씨였다.
강의 요체는
아무도 정답을 주지 못하는 인문학의 기본 질문 5가지가 있는데
1. 나는 누구인가?
2.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3. 왜 사는가?
4. 어떻게 살것인가?
5. 내 삶의 의미, 가치, 목적은 무엇인가?
위 5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신이 찾아야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에게 답을 주려하지 말고(답을 준다고 이러쿵 저러쿵 훈수를 두면 꼰대 소리를 듣게됨)
5가지 질문을 스스로 찾도록 이해시키는 것이 인문학 교육이라고 하였다.
무리하게 시원한 답을 기대하고 갔던 내가 잘못이었나? 소득이 미미하다. 세상에서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그 누가 명쾌하게 말할 수 있으랴? 바르게 사는 것이나 뜻있게 사는 것에 대한 답은 많지만 더 근원적인 왜 사는가? 에 대한 답은 정말 어렵다.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습니다. ” 이런 폐르시아 말도 있다……..


수성교회는 주택재개발 지역공사가 진행되어 임시로 지하상가 건물을 임대하여 예배보고 있다.
임시 예배당으로 쓰고 있는 상가건물을 멀리서 찍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고등동 성당이다.
그저께 크게 아프셨는데 오늘 성당에 가시겠다고 해서 모셔다 드렸다.
성당 정문 앞에 검은 에쿠스가 내 차다.
파리바게트에서 오전 빵 나오는 시간에 따뜻한 빵을 샀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사람, 아산이,나 이렇게 5명이 빵을 먹었는데
부모님은 아주 조금만 드셨다.
빵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집사람이다. ㅎㅎㅎ~
수원의 대표적인 산은 광교산이다.
아들과 등산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 거의 한적이 없다.
아내와는 가끔 산에 오르지만 아들과는 시간이 맞지 않았고
오랜동안 외국생활을 한 아들과는 함께 등산할 기회가 없었다.
지난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함께 등산하였다.
토요일에는 광교산에 일요일에는 칠보산에 올랐다.
공기도 좋았고 느낌도 좋았다. 함께 해준 아들에게 감사한다^-^
광교산의 봉우리 중 하나인 형제봉에 올랐다.
칠보산 등산 중 중간 쯤 되는 곳에서 한 컷!
칠보산 정상에서 바라본 수원시 서부지역 전경
칠보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서수원 지역 하얗게 보이는 아파트 단지 뒤에 상촌중학교가 있다.
역시 칠보산 정상이다. 집사람의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너무 멋있다. ^-^
나는 여름철 등반에 선크림을 바르는 대신 커다란 밀집모자를 쓰고 다닌다.
좁은 산길에서 밀집모자가 다른사람에게 부딫칠까봐 둘레에 밤색 천을 둘렀다. ^-^
아내가 밀집모자 쓰고 칠보산 중턱을 오르는 모습이다.
667년 (신라 문무왕7년): 대마도에 백제식 산성인 금전산성 축성
1246년 고려고종33년: 종중상이 백제계 아비루씨를 내쫒고 대마도주가 됨
1389년 고려 창왕2년, 1차 대마도정벌
1396년 조선 태조5년 2차 대마도정벌
1419년 조선 세종1년 3차 대마도정벌
1420년 세종2년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
1607년 선조40년 1차 조선 통신사를 대마도에 파견
1764년 영조40년 조선통신사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가져옴
1811년 순조11년 마지막 조선통신사 파견
1876녀누 일본이 대마도를 나가사키현으로 편입시킴
1906년 의병장 최익현 대마도에서 순국
1931년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 대마도주 종백작과 혼인
1948년 미군정시기 입법의원 본회의에서 허간용외 62명 대일 강화조약에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복귀 결의안 제출
1948년 이승만대통령 정부수립 직후 대마도 반환촉구 성명
1949년 이승만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요구(이후 1950년까지 60여회 반환 요구)
대마도는 원래 한국땅이다!
이원호씨의 소설 대마도1,2권을 읽었다. 대마도는 과거 1400여년 동안 우리땅이었다.
조선말 국력이 약할 때 정확히 말해 무력을 앞세운 일제가 조선을 억압하여 굴욕적인 강화조약을이 맺은 1876년에 일본은 강제로 대마도를 나가시키현으로 편입시켰다.
이승만 대통령은 60여회에 걸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였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이유는 독도를 분쟁화하여 대마도의 반환요구를 없애려는 수작이다.
금년 1학기말로 정년 퇴직하는 교장선생님들을 축하하는 저녁 모임에 참석하여 술을 적당히 마셨다.
모임에서 한잔 할 요량으로 차를 갖고 가지 않았다. 모임장소가 경기도청 옆이면 우리 집에서 도보로 가능한 길이기도 했다.
스스로 불콰하여(ㅎㅎㅎ) 끝나고 걸어오면서 기분이 좋았다. 태워 준다고 권하는 교장이 여럿있었지만 나는 그냥 걸었다.
집에 거의 다왔을 즈음 문자가 오길래 보았더니 대리운전회사에서 보내는 스팸문자였다.
문자를 보니 갑자기 심사가 뒤틀려 몇가지 메뉴를 눌러 문자를 지웠다.
문자 하나 지우는데 시간이 길게 걸린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에 취소할까 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아뿔싸! 이미 때는 늦었다. 1300여명의 연락처가 날아갔다. 저장된 전화번호를 모두 삭제한 것이다.
휴대폰 대리점에 연락했지만 방법이 없단다! 정말 낭패다!
큰 아들 아산이가 인터넷으로 들어가 복구해본다고 열심히 하더니 500명 정도는 복구하였다.
복구시점이 언제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복구된 번호가 일관성이 없다. 어떤 번호는 복구되고 어떤 번호는 없어졌다.
정말 낭패다! 전화가 와서 번호가 떠도 누군지 모른다. 그러니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맹기호입니다” 이런 식으로 받는수밖에 없다.
이제 하는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기를 기다려 새로 저장하는 수밖에 없다.
한편 생각하면……1300명의 번호가 다시 만날 사람도 아니고, 이제는 이쯤해서 정리할 필요도 있겠다.
채근담에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숲은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난 과거는 잊으라는 뜻이다. 번호 잘 날아갔다!
수덕사 대웅전은 1937년~1941년에 해체수리하였는데 이 때 건립과 관련된 묵서가 나왔는데 1308년에 건립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1308년 이렇게 확실한 연대를 절대연도라고 한다. 수덕사 대웅전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사모하는 고려 때 목조건축물이다. 아름다운 속살이 드러난 옆면의 면분할은 건물의 백미다.
맞배지중에 겹처마, 정면3칸, 측면3칸, 주포식 건물이다. 지붕이 단순하면서도 웅장하고 경건한 맛이 있다.
봉정사극락전이다. 1972년 해체수리 당시 136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보통 절집을 중수하는데 150년 정도마다 하기때문에 거슬러 올라가면 1363-150=1213년에 건립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그리하여 아마도 봉정사 극락전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봉정사극락전은 맞배지붕에 주포식, 정면3칸의 아주 단아한 건물인것이 매력적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1916년 해체 수리당시 서북쪽 귀공포에서 나온 묵서에서 1376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역시 150년 정도에 한번 중수한다고 했을 때 1376-150=1226년에 건립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부석사무량수전은 팔작지붕, 정면3칸, 측면3칸, 주포식건물이다.
무량수전도 아름답다. 팔작지붕의 스카이라인도 아름답거니와 무량수전의 공포는 베토벤의 음악처럼 장중하고 두터운 느낌을 준다. 유연한 배흘림기둥의 선도 아름답다.
봉정사극락전 1213년, 부석사무량수전 1226년 수덕사 대웅전 1308년에 건립되었는데 극락전과 무량수전은 추정치여서 어느 건물이 가장 오래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다만 추정한다면 1. 봉정사극락전>2. 부석사무량수전>3. 수덕사대웅전이다.
이상으로 결판냈다. 이렇게 추정치까지 동원하다보니 수능시험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건축물은 어느것인가? 라는 문제는 절대 안나온다! ㅎㅎㅎ~
그런데 건립연도가 확실한 절대연도를 놓고 보면 수덕사 대웅전이 1308년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