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담아온 봉투이다. 학생은 봉투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겸손해 했으나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편지봉투를 만들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편지 전문을 과감하게 공개해본다. 중학생이 글씨도 예쁘게 썼다.
작년에 받은 편지가 설합에 들어있구나.
그것도 여기에 올려본다. ^-^
편지를 담아온 봉투이다. 학생은 봉투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겸손해 했으나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편지봉투를 만들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편지 전문을 과감하게 공개해본다. 중학생이 글씨도 예쁘게 썼다.
작년에 받은 편지가 설합에 들어있구나.
그것도 여기에 올려본다. ^-^
마당에 오랜만에 장미가 피었다. 40년 전에 기르던 장미가 어느날 수명을 다하여 없어졌다가 재작년에 다시 심었는데 그동안 시원찮게 피다가 금년에 제대로 피었다. 나름대로 장관이다. 아래층에서 2층 난간까지 피었다.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기르셨다. ^-^
희방폭포 앞에서 기념 촬영! 배가 약간 불룩하게 나온 것이 흠이지만 사진 구도가 좋다^-^
고광나무 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향이 대단하였다.
천남성이다. 꽃대가 올라오고 있다.
독이 있어 만지는 것은 삼가해야한다.
야생의 과일로는 내가 그토록 사모하는 다래에 꽃이 피었다.
다래꽃 피는 계절이어서 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신비 그 자체다.
희방사 지장전 앞 뜰에서 도마뱀을 보았다. 장지도마뱀으로 보인다.
녀석이 사진을 찍는데 도망가지도 않는다. 고맙다^-^
계곡에 수서생물을 보러 내려갔다가
대박!!! 함박꽃나무를 보았다.(산목련이라고 부르기도한다.) 북한의 국화인데
꽃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희고 아름다운 꽃이다.
우리가 보통 함박꽃이라 부르는 것은 여러해살이 풀인 작약이다.
북한의 국화는 함박꽃나무라고 부르는 교목이다. 내 생각이 그런데 아마 맞을듯하다.
제자 오연숙선생이 예쁜 난을 보내왔다. 감사한 일이다. 역시 옛날에 가르친 제자들이 꽃을 사들고 교장실에 왔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내가 그냥 허투루 교사를 하지는 않았나 보다. 아직도 사도의 길은 멀고 제대로 할 일도 못하는 것 같은데 나이먹은 제자들이 대접을 해주니
이 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으랴!
스승의 날은
1958년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RCY)학생들이 은사의 날이라고 부르던 것을 1965년 RCY전국연합에서 스승의 날로 고쳐볼렀고 날짜를 5월15일로 정하였다.
5월15일이 우리민족의 스승이라고 칭해도 손색이 토를 달 사람이 별로 없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세종은 정말 훌륭한 군주였다. 측우기 들을 발명한 것은 우리나라의 기후를 정확하게 알아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백성을 잘 먹이는 방법을
늘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농사책도 중국것을 보고 농사를 지으니 우리 풍토와 맞지않았다. 그래서 최초 우리의 농사책인 농사직설을 발간한것이다.
세종 때 역사상 가장 많은 간척사업을 벌인것도 백성을 먹이기 위함이었다. 최윤덕과 김종서에게 4군과 6진을 개척하고 여진족을 몰아내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한
우리나라의 국경을 확정한 것도 세종이었으면 이종무를 시켜 왜구를 소탕하고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그 뿐이랴
세종은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면 대궐마당에 초가집을 짓고 멍석을 깔고 덮으며 잤고 반찬은 3가지 이내로정하였다.
신하들이 눈물로 말려도 듣지 않으셨다. 실록에 나온다. 비가 오지 않는 것도 임금이 부덕한 탓이라는 정자정야(政者正也)의 사상이었다.
어는 민족이건 그 민족이 존경하는 스승이 있어 그의 가르침이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1807년 나폴레옹에게 베를린이 함락당했을 때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이 독일인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미국에 가보니 제퍼슨과 워싱톤에 대한 미국인의 존경은 보기에도 좋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고, 워싱톤은 영국과독립전쟁시에 독립군 사령관이었다.
워싱턴은 1, 2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종신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거절하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3대 대통령이 바로 제퍼슨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근대의 영웅이 근대의 스승이 없다.
세종과 이순신을 민족의 스승으로 삼기에는 너무 오래된 사람들이며 역사인식과 정부형태가 현대와 너무 다르다.
근세에 민족적 스승을 만들지 못한 것은 민주주이 역사가 너무 짧고, 냉전시대에 국민들의 이념적 대립이 너무 심했으며
왜래적 정치체제를 잘 받아드릴 만한 국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근세 민족의 스승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이승만을 꼽는다.
배재학당 졸업 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를 열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다
황국협회와 일제의 탄압으로 6년이나 감옥살이를 했으며 민영환의 도움으로 풀려나 일본을 거쳐 미국에 밀항하여
외교적으로 일본의 간섭을 밀어내려 미국대통령을 만나려 했으나 을사늑약으로 조선이 외교권을 상실하게 되자
선교사의 추천으로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고학으로 하바드대학 석사, 프린스턴대학 박사를 취득하고
미국의 여러대학에 교수로 초청되었으나 거절하고 일본의 부당한 침략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에 몸을 던지게 된다.
그는 힘으로 일본을 당할 수는 없고 외교적 노력으로 독립해야한다는 주장을 폈다. 김구와는 조금 다르지만
나는 이승만의 생각이 맞다고 본다. 일본의 패망 후 군정이 시행되다가 끝나고 북한에서 먼저 괴뢰정권이 수립되었다.
유엔은 남한만의 총선거를 의결하였으나 김구가 여기에 반대하였고 김구의 남북협상은 실패한다.
1948.5.10총선거와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초대대통령이 된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이승만의 애국심은 문제다.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이승만의 책임도 또한 크다.
그러나 그가 아니었으면 남한까지 공산화 되었을 것이다. 6.25북한의 남침전쟁 때 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남한 거주미국인을 모두 죽이겠다고 미국을 협박하는 배짱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다. 6.25반공포로 석방!
6.25 휴전을 반대하며 서명하지 않고 휴전의 댓가로 발을 빼려는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낸 것도 그가 아니면 어려웠을 것이다.
상호방위조약이라는 것이 상대가 침략받으면 도와준다는 것인데 미국이 침략받으면 우리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는 학생들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미련없이 하야하였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3.15부정선거는 이승만 때문이 아니었다. 야당의 대선후보 조병옥 박사는 이미 선거 일주일 전에 위암수술로 미국에서 사망한 상태였다.
장면을 떨어트리고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려했던 부정선거가 바로 4.19의 도화선인 3.15부정선거였다.
망명지 하와이에서 죽기전에 조국에 돌아오고 싶다고 박정희에게 탄원하였지만
박정희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박정희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해도 나는 우리의 근세 스승으로 이승만을 추천한다.
우리집 마루에 이승만의 사진이 걸려있다.
스승의 날에 이승만을 다시 생각해본다.
왼쪽부터 가수 허소용, 시낭송가 맹기호, 경기명창 박경원, 성악가 김미현교수, 바리톤 박무강선생이다.
아버지는 회냉면
어머니는 물냉면
나는 비빔냉면
냉면을 드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나는 사진 찍느라 이 화면에 없다. ㅎㅎㅎ~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