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살고 가족도 사는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사회 이전에 가족적 동물이다.  가족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사랑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내 생각에 이러한 가족애적 특징은 여성에게 더 강하다. 모성애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것이 아닐까? 물론 자식을 버리는 여성도 있다. 

동물의 경우 숫사자는 새끼가 있어 교미하지 않으려는 암사자 때문에 새끼를 물어죽이기도 한다.

내가 부성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어머니를 보면 모성애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  

그것은 남자에게 필연적인 오이디프스컴플렉스가 있어서 내가 모성애를 부성애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두아들을 가벼이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인영, 석영은 나에게도 끔찍한 아들이다.   

 

 가족을 위한 경제적 활동보다  자신의 개인 생활을 중시하여 직업생활을 그만두려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 가치 를 중시하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책임이나  인내의 부족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심각한 결함이다. 직업이 주는 물질적, 사회적 안정이 개인의 행복을 이루는 토대가 되는데 그것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런식으로 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소중히 여겨온 개인적 삶마저 위태롭게 된다. 

이 길이 내길인가? 지금이라도 새로운 일을 모색해야 하는게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거의 모든 직장인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매우 일반화된 문제다. 

그렇다면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통째로건 가치로운 전생애적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상에 매몰되어 자기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파묻어 버리는 것도 문제다. 용기와 비전이 부족하여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상상만 하다가 세월을 허비하는 것도 비겁한 일이다. 결국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것은 자식을 돌보는 책임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자식에 대하여는 무한책임을 져야한다.

아니 그것은 책임이 아니고 사랑이다. 미국 포드 대통령이 16살 때 아르바이트 하는 현장을 찾아와 같이 살자고 말하는 생부를 매몰차게 내치고 다시는 찾지 않았다.

평생 자신을 사랑한 양부에게 감사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80살이 된 생부가 만나자고 여러차레 메일을 보내도 연락도 취하지 않는다.

스티브잡스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가난한 양부모가 자신을 사랑으로키워준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부는 스티브잡스의 생모에게 대학을 보내기로 약속한 것을 지키기위해 평생 모든 돈으로 스티브잡스를 대학에 보냈다.

양부는 자동차를 수리하며 살아가는 생계수단인 차고를 스티브잡스가 애플을 창립할 때 선뜻 내주었고

손님에게 차를 끓이고 청소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사업을 도왔다. 스티브잡스는 양부모가 양부모라고 불리우는 것도 싫어했다.

 

아들은 딸과 달라서 어떤 때는 없는 것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행동하는 때도 있다. 그것이 수컷의 한계다. 수컷은 원래 아버지를 어머니를 쟁탈하기위한 경쟁자로 생각한다.

나는 다행히(?)양부가 아니고 행복한 생부다.  그리고 나는 다행이 이미 어른이다. 우리가 숫사자 처럼 살 수는 없다.

인간은 가족적 동물이다. 그러나 개인적 생활도 역시 중요하다. 자아 실현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내 가족도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살고 가족도 사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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