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창밖을 보니 가랑눈이 온다. 소리 없이 온다. 어찌 보면 눈도 아니다. 반은 비처럼 내려 자칫하면 비로 착각할 정도였으나, 바람이 내리치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허공에 점선을 흩뿌리는 것을 보면 눈이라 불러야 맞다.
한 참 지난 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있는 김기명 이병이 소리친다. 교감선생님! 눈 많이 와요! 그제서야 다시 창밖을 보니 어린시절 목화밭을 지날 때, 고개는 먼 산에 두고, 허리 아래로 손을 내려, 주인 몰래 슬쩍 따서 입에 넣던 목화 송이만한 것이 승무 추는 스님의 소매 자락처럼, 파도위에 실린 종이배처럼 너울대며 내려온다. 아! 오랜만에 눈이 오시는 구나! 예쁘게도 오시네!! 가히 분분한 낙화로고!!
갑자기 오늘 퇴근 후에 병원에 모시고 가기로 한 아버지 생각이 났다. 저렇게 눈이 내리면 교통체증이 생겨 병원에 가기 어렵지 않을까? 병원에 전화를 거니 아버지가 신뢰하는 의사는 인기가 있어 4시 이후에는 진료예약을 받지 않는단다. 오늘 진료예약이 끝났다는 것이다. 아뿔싸! 내가 방심했구나! 차라리 아침에 모시고 나올 것을……아침에 모시고 나오려 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오전은 병원이 혼잡하니 오후에 가자고 하셔서 미루었는데 눈이 오는바람에 낭패를 당했구나! 아버지에게 오늘은 진료 받을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내일 오전에 받기로 예약하였다.
5시에 퇴근하면서 석영이 생각이 났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걸어서 집에 오려면 힘들겠다 싶어서 픽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수원고등학교에 도착하니 5시 23분, 허둥지둥 1학년 심화반을 찾아서 교실에 얼굴을 넣고 두리번거리니 석영이가 알아보고 교문에서 기다리란다.
석영이를 태우고 집에 오는 길에 석영이의 비염을 이번 겨울방학에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가자고 하니 싫다고 한다. 억지로 차를 병원으로 돌렸다. 석영이는 자동차안에서 실내등을 켜고 수학문제를 푼다. 고등학생이 되더니 참으로 고생이 많다. 오늘 저녁에 오는 고종누이가 내준 수학숙제를 다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아빠 차가 도착한 것이 집이 아니고 병원임을 알고는 골을 부린다. “석영아 10분이면 된다”. 강제로 차에서 내려 의사에게 보이고 “코가 막혀 숨을 입으로 쉬고, 코를 흘리는 것을 보니 아비로서 불쌍해서 못 보겠습니다. 고쳐주십시오.” 2주일 동안 약을 열심히 먹으면 낳을 수 있단다. 집으로 데리고 와서 저녁을 먹은 후에 약을 먹였다. “석영아 시간 맞추어 약을 챙겨먹고 이번에는 꼭 병을 낮도록 하자.”
내일 출근길이 걱정된다. 아침마다 석영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는데 기온이 급강하 하여 길이 얼어붙고 있으니 내일은 나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하고, 석영이도 걸어서 학교에 가야한다고 일렀다. 아침에 6시에 일어나 고구마를 먹었다. 오늘부터 체중을 줄이기 위해 아침을 먹지 않고 고구마 반개정도를 먹기로 하였다. 아침 샤워를 하고 석영이를 깨우니 일어나지도 않는다.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다그쳤다.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도 결국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하는 수 없이 차에 시동을 걸고 빙판을 출발하였다. “약은 챙겼니?” 방에 두고 나왔단다. 차를 세우고 집에 뛰어 들어가 ‘점심’이라고 써있는 약봉지 하나를 가지고 다시 핸들을 잡았다. 수원고등학교가 보였다. 이미 등교시간은 지났으나 빙판길에 대부분의 학생과 선생님도 오늘은 지각을 할 것이니 별문제 없으리라. 석영이가 내리기 전에 물었다. “아침 약은 먹었겠지?” “아니요 안먹었는데요.” 이런 낭패가 있나 진작에 그렇게 말했으면 아침약도 가져올 것을……”석영아 아버지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약을 잘 챙겨 먹도록하여라 참으로 답답하구나!
석영이를 수원고등학교에 내려놓고 집으로 다시 왔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야한다. 내 생각에는 치과에 가셔야 되는데, 지금 드시고 있는 내과 약을 먹은 후 이가 아프니 내과의를 만나 이를 상하게 하는 약을 준 것은 아닌지 물어보아야한다고 하셔서 내과에 갔다. 나로서는 어이없는 일이었으나 아버지의 고집을 누가 꺾으랴! 내과 전문의를 만나서 청진을 하고 아버지가 “선생님이 주신 약을 먹은 후 이가 아프니 혹, 이를 상하게 하는 약을 처방하셨는지요?”라고 물었다. 다행이 의사는 싫은 내색하나 하지 않고 “할아버지! 이는 연세가 많으셔서 아프신 것이고 우리 병원에서 처방한 약은 치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아마도 신사인 아들이 옆에 있으니 친절하게 대하는 듯하다. 나도 의사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의사는 아버지 얼굴은 보지도 않고 나만 보고 설명을 하며 동의를 구한다. “치과에 가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도 민망한지 “치과에 가는 길에 들린 것입니다”. 하고는 진찰실을 나왔다. 간호원에게 물으니 처방도 없고 진료비도 없단다.
이번에는 차를 몰고 치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교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아버지가 아프셔서 병원에 모시고 가기 때문에 출근이 늦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또 “네 어머니도 이가 많이 아프시단다. 요즈음 무먼허(야매)의사에게 치료받고 있다.” 이 소리를 들으니 또 가슴이 철렁한다. 세상에 아들이 명색이 교감인데 야매치과를 다시신다니! 아버지 말씀이 또한 기가 막힌다. “야매치과도 다 기술자여 그 사람들도 치과 의사 밑에서 배운 사람들이여 기술이 뭐 별거여 누구든지 옆에서 보면 배우는 거지!”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아버지는 치과 다니시고 어머니는 야매로 한다니 말이 됩니까? 몇천만원이 들어도 좋습니다. 어머니 이는 제가 제일 좋은 것으로 해드릴 것입니다.” 아버지도 미안하신지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시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어머니 이는 한 두개가 아니고 거의 몽땅 절단났으니 이를 새로 하려면 돈이 많이 들것이다. 정식 치과의사에게도 물어보셨겠지……세상이 두쪽이 나도 어머니 이는 내가 해드려야지!!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가 이상하시다. 나를 보고도 본체만체하시고 얼굴빛이 좋지 않으시다. 무엇인가 못마땅한 것이 있으시다. 무엇일까? 아니면 무슨 다른 고민이 있으신가??
한사랑치과는 지난달에도 온 곳이다. 아버지는 남달리 치아가 건강한 분이지만 나이가 있으니 예전 같지 않다. 한 달 전에 어금니가 상해서 금으로 해드렸다. 오늘도 의사는 엑스레이를 3장이나 찍더니 상한 이가 있다고 때우겠단다. 이를 때우고 나서 아버지가 “찬물을 먹을 수도 없고 딱딱한 것을 마음 놓고 씹을 수도 없습니다.” 라고 말하니 의사는 “할아버지! 4도 이하의 물과 40도 이상의 물은 정상인도 이가 시립니다. 저도 이가 시립니다. 할아버지 연세에 이정도면 최고로 치아가좋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마셔요. 다만 충치를 조금 먹은 이가 있어서 이것을 때우겠습니다.” “이가 시린 것은 충치 때문이 아니고 나이 탓입니다. 3일치 약을 처방해줄 터이니 드시면 낳아질 것입니다.”
다시 집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아버지가 하시는 말 “다시는 치과에 오지 않으련다. 이제 별 수 없다. 이를 살살 달래가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 내가 늙은 탓이다. 나이가 팔십이 넘었으니 의사말대로 잇몸이 낡은 것이다.”
아버지를 집에 모셔 드리고 나서 드디어 출근을 했다. 자동차에서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출근하면서 행정실장에게 핸드폰을 때렸다. 행정실 식구들과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그러고 보니 행정실장과 점심을 같이 한지도 오래되었다. 광우병도 있고, 조류독감도 있다고 하니 고등어구이나 먹을까?
차창을 열고 찬바람을 쏘였다. 시원하다. 가슴까지 시원하다! 겨울은 이렇게 추어야 제맛이지 야! 춥다 추워, 내 아들이 있는 토론토는 영하 30도라는데……녀석은 잘 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