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내 버킷리스트가 18개 인데 8가지는 실현하였고 아직 열 가지가 남았다.  그중 하나가 주말에 쉴 곳을 마련하는 것이다. 계획을 오래전에 세웠다가 구체화하지 못했는데 드디어 적당한 자리를 구했다. 장소를 물색하면서 느낀 것인데 자꾸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 같은 환경을 구한다는 것을 알았다.  현대적으로 멋진 설계를 한 집도 보았는데 영 정이 가지 않았다. 사람은 먹을 것도 어릴 때 먹던 것을 찾는다고 하더니 살 곳도 그러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시골집을 구하면서 자주 꿈을 꾸었는데 꿈에 고향 집을 자주 보았다. 그런데 자주 꾸다 보니 기존 고향 집에다 내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추가되어 꿈은 발전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고향집에 물은 없었는데 꿈 속의 고향 집은 집 주변으로 작은 물이 흐르고 거기에 가재가 자라고 있었다.  맑은 물과 가재는 영원한 나의 로망이다.

내가 태어난 충청도 두메산골의 집은 뒷산이 서풍을 막아주는 아늑한 삼태기 같은 지형으로 마을 윗쪽에 샘이 있었다.  이번에 내가 찾은 곳도 산 밑 집이고 마당에 샘이 있다. 집주인은 찬물이 솟고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난 이 집을 보자마자 어머니 품속 같은 느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처음 집 어귀에 들어서면서 붉은 저녁노을을 등에 지고 싸리 울타리 너머로 그 희고 긴 목을 뽑으며 소 몰고 나간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보았다.

나의 유년 시절은 사람하고 지낸 시간보다 소와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 고향 집도 동네 끝에 떨어진 산 밑 외딴 터여서 친구도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9살 때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를 몰고 강변 풀밭으로 나갔다. 송아지가 아니고 작은 트럭만 한 성년의 암소였다. 쟁기를 끄는 일을 익힌 소였기에 농삿집에 소중한 자산이었다. 소 꼴을 베어다 먹이는 것보다 소를 끌고 풀밭을 다니면 소는 제가 좋아하는 풀을 골라 먹으므로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 아버지 지론이었다. 어린 날의 시간은 길었다. 학교에서 배운 노래 스무 곡을 부르고 클레멘타인을 다시 불러도 해가 남았다. 햇볕과 바람밖에 없는 강변 풀밭에서 소년의 외로움은 시퍼렇게 쌓였다. 나는 조숙한 편이었나 보다. 넓은 풀밭에서 여러 시간 있으면서 고독한 시간을 보냈고 인간 유한성을 자각하고 무서움에 떨었다.

시골에 쉴 곳을 마련하고 깨끗이 청소하였다. 창을 활짝 열고 물걸레질을 열 번이나 하고 나서 마루에 큰대자로 누웠다. 아무도 없다. 혼자다. 혼자 편하다. 어린 시절 강변 풀밭에서도 혼자였다. 홀로 외로움은 글쟁이의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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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아래 사진은 어머니와 둘이 코다리찜을 먹으러 갔는데 종업원이 찍어주었다.  사진이 좋아 어머니 얼굴만 따로 잘랐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좋은 사진을 만났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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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화선양분과에서 추최하는 출판기념회가 대구에서 열려 다녀왔다.

나는 이 분과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일년에 동인지 한 권을 발행하는데 이번에 2022년 동인지 출판기념회가 열린 것이다.  기념식이 끝나고 이상화고택과 김원일 소설가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를 발표한 이상화 시인!

그는 대접 받을 만 하다! 훌륭한 분이다. 명복을 비는 묵념을 했다. 이처럼 글쟁이는  옳은 신념으로 나라와 겨례가 어려울 때 정직한 글을 써서 민중들에게 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모인 회원들이 모두 조심하고 겸손한 작가들이었으며 아주 품격이 높은 분들이었다. 감사한 히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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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오늘 아내는 서울 교사 모임에 가고 저녁에 온다.  내가 저녁 반찬을 위해 시장을 보고 마음 먹고 반찬을 했다. 양도 거의 일주일 먹을 정도로 많이 했다. 인간의 치아 구조를 보고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원래 초식동물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사실 구석기 시대 수렵,  어로,  채집  등으로 식량을 조달했다고 하지만 인간의 동작으로 생쥐 한 마리 잡기도 쉽지 않다.  사냥으로  고기를 먹어보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희박한 일이었을 것이다. 대부분 풀과 나무 열매 등을 먹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특히 동양인의 장이 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길다는 말도 있다.  오늘날 육식으로 장에서 오래  머물러 있다고 보니 여러가지 장 질환 병이 많아졌다는 내용도 신문에서 읽었다.

하여 오늘 완전 채식 식단 요리를 했다.  날로 먹는 것도 아닌데 식초에 20분 담갔다가 헹구어 찜판에 찌고, 고추장 양념으로 무쳤다.

저녁에 아내가 보고 놀라워했다.  뭐! 이정도 갖고 놀라나 ^^

집사람에게 호박 쌈을 먹기 위해 쌈장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두부를 넉넉히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조금 넣고 짜지 않게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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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

친구 남기완교수가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딱 어울린다. 벽에 제대로 자리하고 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하루에 한 가지 착한 일을 하고,  세 번 반성하고,  백 글자를 쓰고 일 천 글자를 읽으며, 일 만 보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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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 학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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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모임

 

 

노조 망국으로 가는 귀조노조 민노총에 대항하기 위한 세력으로 자유우파 진영에서 설립한 ‘국민노동조합’이 서울 종로에 있습니다. 노조의 주인이 국민이란 뜻입니다. 여기는 노조의 목적이 국가와 국민의 이익입니다! 오늘 경기 자유 우파 모임을 국민노동조합 사무실을 빌려 모였습니다.

사진 오른쪽에 우남의 젊은 시절 모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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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ing

오늘 경기수필가 협회 사람들이 나의 우거를 방문해주셨다.  모두 글을 쓰는 분으로 인품이 좋은 분들이다. 이창식 선생님은 사진 찍는 순간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자고  제안하셨다. 감사한 일이다.

밭에 나가 내가 심은 옥수수를 삶아서 먹었는데 첫 수확이었다.

과연 세계 최고 품질 대학찰옥수수 명성대로 최고의 맛이었다.

가는 길에 옥수수를 따서 개인당  12 개 씩 봉투에 담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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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 1000년 넘은 그릇을 만지면서 숨결을 느낀다.  난 그 느낌이 좋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숨결이 좋다. 아버지가 주신 것도 있다.  하나만  빼고  모두 진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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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통일신라 토기 두 점이 들어왔다.  두 개 다 마음에 들지만 특히 위에 것이 더 마음에 든다.  명칭은 그냥 신라토기장경호 라고 이름을 붙였다. 비교적 덩치가 큰 물건이다.  둘 다 1300년 이상 된 물건이다. 난 이런 토기를 만지면서 멀고 긴 시간의 깊이에 고인 사랑을 느낀다.  박물관에 가면 눈으로만 보는데 나는 이걸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싶어서 샀다.

흙으로 빚은 그릇 중에서 기면(器面)에 유약을 바르지 않은 것을 통칭해서 토기라고 부른다.유약을 입힌 것은 도기나 자기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약 12000년 전에 발명된 토기는 인류문화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날것으로 먹거나 구어먹는 방식에서 벗어나 삶거나 쪄서 먹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물을 담아 부엌이나 일터에 옮길 수 있어 인간 활동 공간을 넓혔다. 토기로 신석기시대 농경으로 생산된 곡식을 저장할 수 있었다.  토기는 점토를 가열해서 물에 용해되지 않는 소성물로 변화시키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점토는 500도 이상 열을 가하면 수분이 증발하여 흙 용기가 된다. 토기는 손빗기, 띠쌓기 후 회전력을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무늬를 새기고 그늘에서 말린다. 직사광선에서 급하게 말리면 토기의 모양에 변형과 뒤틀림이 온다. 그 후 불에 구우면 토기가 된다.

가소성이 있는 점토는 500도 이상이 되면 점토의 수분이 이탈하여 흙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다른 물질로 바뀐다.  막음 장치가 없는 가마에서 700~850도의 열을 가하면 선사시대의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가 된다.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의 연질토기이며 구울 때 산소가 차단되지 않아 붉은 색을 띤다.

막음 장치가  있어도 수평으로 이루어진 가마에서 구우면 850~950도 이며 이 온도에서 구운 것이 와질토기이다. 산화알루미늄이나  규산 등이 용융되지 않으므로 토기 표면에 피막이 형성되지 않아 손을 대면 묻어난다.  이 와질토기가  원삼국시대 취사와 저장용기, 제사용기, 묘지 부장품으로 사용되었다.

가마를 경사진 곳으로 옮겨가면서 경사진  터널식 가마가 등장하여 11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바탕흙에 들어있는 산화알루미늄과 규산이 견고한 결정으로 바뀌면서 도질토기가  만들어진다. 가야, 백제, 통일신라시대까지 생산되었다.  도질토기는 바탕흙 속에 있는 산화알류미늄과 규산 등이 용융되면서 점토 밖으로 흘러나와 토기 표면에 피막을 형성하는데 표면이 묻어나지 않고 아주 단단하고 반짝 거린다. 이후 고려로 진입하면서 도기로 대체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제주도 고산리에서 발견된 무늬가 없고, 토기를 만들 때 풀과 같은 것을 더해서 만든 ‘고산리식 토기’이다. 대략 1만 년 전에 사용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후 기원전 6000년 무렵 부산, 김해, 양양, 고성 등 우리나라의 동남해안에서 덧무늬 토기, 누른무늬토기 등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된 토기가 바로 빗살무늬토기. 지역적으로 약간씩의 차이가 있지만, 점차 토기 겉면을 가득 채웠던 무늬가 간단해지고 불규칙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기원전 1500년경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빗살무늬토기를 대신해 민무늬토기가 사용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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