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

통일신라 토기 두 점이 들어왔다.  두 개 다 마음에 들지만 특히 위에 것이 더 마음에 든다.  명칭은 그냥 신라토기장경호 라고 이름을 붙였다. 비교적 덩치가 큰 물건이다.  둘 다 1300년 이상 된 물건이다. 난 이런 토기를 만지면서 멀고 긴 시간의 깊이에 고인 사랑을 느낀다.  박물관에 가면 눈으로만 보는데 나는 이걸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싶어서 샀다.

흙으로 빚은 그릇 중에서 기면(器面)에 유약을 바르지 않은 것을 통칭해서 토기라고 부른다.유약을 입힌 것은 도기나 자기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약 12000년 전에 발명된 토기는 인류문화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날것으로 먹거나 구어먹는 방식에서 벗어나 삶거나 쪄서 먹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물을 담아 부엌이나 일터에 옮길 수 있어 인간 활동 공간을 넓혔다. 토기로 신석기시대 농경으로 생산된 곡식을 저장할 수 있었다.  토기는 점토를 가열해서 물에 용해되지 않는 소성물로 변화시키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점토는 500도 이상 열을 가하면 수분이 증발하여 흙 용기가 된다. 토기는 손빗기, 띠쌓기 후 회전력을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무늬를 새기고 그늘에서 말린다. 직사광선에서 급하게 말리면 토기의 모양에 변형과 뒤틀림이 온다. 그 후 불에 구우면 토기가 된다.

가소성이 있는 점토는 500도 이상이 되면 점토의 수분이 이탈하여 흙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다른 물질로 바뀐다.  막음 장치가 없는 가마에서 700~850도의 열을 가하면 선사시대의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가 된다.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의 연질토기이며 구울 때 산소가 차단되지 않아 붉은 색을 띤다.

막음 장치가  있어도 수평으로 이루어진 가마에서 구우면 850~950도 이며 이 온도에서 구운 것이 와질토기이다. 산화알루미늄이나  규산 등이 용융되지 않으므로 토기 표면에 피막이 형성되지 않아 손을 대면 묻어난다.  이 와질토기가  원삼국시대 취사와 저장용기, 제사용기, 묘지 부장품으로 사용되었다.

가마를 경사진 곳으로 옮겨가면서 경사진  터널식 가마가 등장하여 11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바탕흙에 들어있는 산화알루미늄과 규산이 견고한 결정으로 바뀌면서 도질토기가  만들어진다. 가야, 백제, 통일신라시대까지 생산되었다.  도질토기는 바탕흙 속에 있는 산화알류미늄과 규산 등이 용융되면서 점토 밖으로 흘러나와 토기 표면에 피막을 형성하는데 표면이 묻어나지 않고 아주 단단하고 반짝 거린다. 이후 고려로 진입하면서 도기로 대체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제주도 고산리에서 발견된 무늬가 없고, 토기를 만들 때 풀과 같은 것을 더해서 만든 ‘고산리식 토기’이다. 대략 1만 년 전에 사용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후 기원전 6000년 무렵 부산, 김해, 양양, 고성 등 우리나라의 동남해안에서 덧무늬 토기, 누른무늬토기 등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된 토기가 바로 빗살무늬토기. 지역적으로 약간씩의 차이가 있지만, 점차 토기 겉면을 가득 채웠던 무늬가 간단해지고 불규칙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기원전 1500년경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빗살무늬토기를 대신해 민무늬토기가 사용되게 된다. 

 

 

이 글은 카테고리: 일상일기(워드프레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