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병검사 통지서에 12시까지 병무청에 도착해야한다고 써있었다.
아들은 시내에가서 볼일이 있다면서 10시에 집을 나섰다.
아내는 징병검사 받기 2시간전에 어디를 나가냐고 하면서 말렸지만
아들이 어디 말을 들을 녀석인가!
아무리 늦어도 11시까지는 돌아온다고 하면서
몇가지 물건을 산다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11시 40분이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애간장이 탔다.
집에서 병무청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나는 전날 아들에게 걸어서 20분이면 충분히 병무청에 갈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11시 50분에 아들과 통화한 아내가 너 어디있냐? 제정신이냐? 라고 소리치면서
빨리 택시 타고 병무청에 가라고 말했더니
아들왈 “이것 저것 물건 사느라고 돈이 다 떨어져서 택시를 탈수 없다”고 하더란다.
정말 기가 막혔다. 아내는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아들이 서 있는 곳까지 달렸고 중간에 택시에 아들을 실고
12시 10분에 병무청에 도착하였다.
아들을 징병검사장에 들여보내 놓고
아내는 시쳇말로 거품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세상에 이렇게 태평한 녀석이 어니 있냐고!
이런 녀석은 특수부대에 배치되어 뼈빠지게 훈련을 받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하면서
공수특전단에 끌려가야한다고 말하는데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1등으로 달려온 경주마의 콧김 처럼 뿜어져 나와
이게 말소리인지 아니면 거친 콧김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귀에서 전화기를 멀리 떼고 들어야했다. 이런 경을 칠녀석 같으니라고……
저녁에 걸려온 전화에 의하면
아들은 어려서 병치레를 한 것 때문에 걱정했는데
모든 신체등급은 전부 1등급이었다.
다만 아주 어린 나이에 안경을 썼고, 책을 너무 많이 보았으며
컴퓨터를 끼고 살았고, 대학에서까지 컴퓨터를 전공(전자공학과 컴퓨터 전공 병행)해서 그런지
눈 건강을 지키지 못하였다. 시력이 형편없었다.
결국 보충역인가 뭔가 하는……하여튼 공익으로 근무하게 될것이다.
왜 이봉창 의사 사진이냐고?
1932년 김구로부터 일본 국왕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국왕 관병식 때 도시락 폭탄을 던졌다. 비록 국왕 암살에는 실패하여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사형당했지만 그가 독립운동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이봉창의사의 거사에 힘입 조선사람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독립군의 대열에 섰다. 일설에 의하면 방위들이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도시락 폭탄인줄 알고 김일성이 남침하지 못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있다 ㅎ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