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호는 그의 신작소설 유림(儒林)에서 정암 조광조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면서 다루고 있다. 나는 유림의 조광조 편을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머릿속으로 계속 노무현대통령을 생각하였다.
이율곡은 조광조를 동방4현이라고 부르며 평생 존경하였고, 이황도 조광조는 학문에 뜻을 두어 옳은 정치를 하였으나 공의 뜻이 너무 속히 하고자 하는 데에 잘못이 있었다고 하였다. 성리학자 송시열도 평생 조광조를 흠모하였다.
그러나 조광조는 공자의 사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애를 썼던 구도자였다. 격랑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쳐 유가의 도를 실현하려다 산화한 유교적 이차돈인 것이다. 따라서 조광조의 실패는 정치적 실패가 아니라 구도의 궁극(窮極)이었으니 조광조야말로 순교자인 것이다.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조광조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면서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의 개혁 중심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낡은 풍습과 사상을 유교적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왕도정치에 따라 왕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이 몸소 유교의 이념을 실천 궁행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이다. 그러나 조광조의 급격한 개혁은 보수파인 훈구세력의 반발로 하루아침에 전라도 능주에 유배되고 그곳에서 37살의 젊은 나이에 사사됨으로써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노무현 대통령……
그는 고졸의 학력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으나 법조인의 길로 들어선 이후 주변인의 신세였을 것이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문제에 깊숙이 관심을 갖게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행보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가난한자, 힘이 약한자, 사회적 소수의 입을 대변하려 애썼다.
김영삼대통령의 천거로 정치에 발을 들이고,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인으로서 나섰다. 국회의원 당시 안전하게 다시 당선될 수 있었던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민주당 간판으로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부산에서 출마하여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정서를 온몸을 던져 타파해보려고 했지만 낙선하였다. 이 낙선은 지금도 인구에 희자되는 장열한 전사였다.
그러나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여러 가지 급진적인 개혁노선을 추구하였다. 토지공개념, 종합부동산세,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행정복합도시육성, 공무원노조의 허용,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법 등 주로 분배의 정의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을 시행하여 블루칼라층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신설, 확충하고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으며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일에도 힘을 기울여 최초의 한명숙 여성총리가 태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유경쟁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역할이 위축되고, 경제가 침체되고, 경제운용이 좌파적이라는 논쟁을 일으켰으며 언론에서는 공공연히 좌파정권으로 규정지어졌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작은 나라에서 과연 균형발전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의심스러우며 노무현 정권의 수도이전과 지방혁신도시 육성에 따른 땅값 상승은 전국을 부동산 투기 지역으로 만들었고,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집값은(서민용이라는 32평 국민주택 강남구 대치동 아아파크 아파트 15억)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만큼이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햇볕정책을 계승한다면서 미국의 정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실험이 인공위성이라고 우기다가 미사일로 판명된 후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남한을 공격할리 없고, 미국까지 가기에는 너무 거리가 짧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황당한 발언으로 안보불감증과 퍼주기식 대북정책을 합리화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언제까지 미국의 바짓가랭이나 붙들고 있을것이냐는 발언으로 자주성을 높이려했지만 세상에 자주하기 싫은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왕위 계승에서 중국황실의 승인을 받지못할까하여 전전긍긍한 것은 또 얼마였던가! 미국에는 작전권 단독행사하겠다고 큰소리 치면서 왜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는 수세적인가? 고구려는 물론, 백제와 신라까지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중국에는 왜 과감하게 대처하지못하는가? 지구상에 혼자서 자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나라는 없다. NATO의 회원국들이 우리나라만 못해서 집단방위체제를 역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놈의 헌법 발언이나 , 쪽팔려서 단임제 대통령 못해먹겠다. 는 등의 발언은 그렇다 치고, 대통령이 선관위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낸것은 억울한 백성은 누구든지 와서 두드리라는 신문고를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이 억울해 못살겠다고 두들기는 격이니 참으로 보기에 딱하다!
그러나 한편
좌파세력이건, 반미세력이건, 참여정부 실패세력이건 모두다 합쳐 한나라당과 1:1로 사생결단으로 정면 승부를 해야한다고 훈수하는 DJ에 대해서도 그것은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다시한번 편승하려는 것이며, 결국 호남을 고립시킬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노무현을 보면 지역감정 타파에 목숨이라도 걸듯한 그의 대국적인 면을 본다.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친북, 좌파, 반미로 규정하는 노무현정권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20%를 밑돌고, 현직대통령의 임기가 7개월이나 남아있는데 노무현과 결별하는 것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살길이라고 대통령이 만든 정당에서 보트피플 처럼 뛰어내리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오늘 나는 조광조가 훈구파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은 것과 노무현 대통령의 실책을 동일계열에 놓고 생각하게 된다.
옳은 정치가였지만 너무 일을 속히 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이황의 조광조 인물평을 떠 올리면서
노무현 대통령도 진보노선과 함께 대책은 부족하면서 무조건적 자주로 대변되는 그의 급진적 개혁정책이 적절한 시기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실패한 정치가 조광조……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
지금 20% 대의 지지도를 놓고 보면 노무현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인 것 같다.
그러나 더 자세한 평가는 조광조처럼 후세의 역사에서 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