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귀족 처녀


 



 


어제 밤에 신경림씨가 쓴 노천명의 시와 생애를 읽었다.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이나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이 시에서 사슴은


모가지가 길고, 언제나 점잖은 편이고, 무척 높은 족속이고,


물속에서 잃었던 전설을 생각하고,


말할것도 없이 사슴은 노천명을 의미하며


한마디로 노천명 자신이 귀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먼 데 산은 노천명이 가고픈 유토피아이다.


 


 


노천명은 1912년 황해도 장연군 비석리에서 부농 집안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를 따라 서울에 와서 진명고녀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다.


 


졸업 후 신문사 기자 및 잡지사 기자로 10여 년 간 복무하면서 엘리트 의식을 갖게 된다.


내 생각에 27세에 첫 시집을 내면서 귀족의식은 더해가는 것 같다.


신문사에서 남자들이 한담하면서 선배 여기자를 화제로 험담을 하는 것을 보면서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고 했는데 결국 남성들이 보기에


노천명은 찬바람이 휭휭 부는 것 같은 여자라고 해서 접근하지 않아 결혼하지 못하고 처녀로 살았다.


 


천연두로 못생겼을 것이라는 소문은 완전히 헛소문이고,


어려서 홍역으로 사경을 넘었다하여 천명(天命)으로 개명하였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니 아주 예쁜 얼굴이다.


재생불량성뇌빈혈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하였다가


호전되자 입원비 조달이 어려워 집으로 퇴원했다가 운명하였다.


아마도 요즈음 백혈병이 아닌가 한다.


1957년 6월 47세의 아까운 나이로 외롭고 쓸쓸했던 삶을 끝마쳤다.




그의 고독(孤獨)이라는 시가 마음에 와 닿는다.


고고한 처녀로 살았으니 얼마나 고독하였을까?


이 시가 내 마음에 와 닿는다……






[고독]




                  노천명


 


변변치 못한 화(禍) 를 받던 날


어린애처럼 울고 나서


고독을 사랑하는 버릇을 지었습니다.




번잡(繁雜)이 이처럼 싱크러울 때


고독은 단 하나의 친구라 할까요




그는 고요한 사색의 호숫가로


나를 달래 데리고 가


내 이지러진 얼굴을 비추어 줍니다.




고독은 오히려 사랑스러운 것


함부로 친할 수도 없는 것


아무나 가까이 하기도 어려운 것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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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잠만 자지말고 책좀 읽자!


<옆자리에 앉은 김호철선생님이 찍어주셨다. 옆 얼굴은 언제나 낯설다> 그리고 맹기호 살좀 빼라!


 



봄이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정말 날씨가 좋다.


 


책을 읽어야겠다.


매일 잠만 자면 어떻게 하나!


정말 한심하고 한심하다……


 


오늘 내가 근무하는 교육원 도서관에서


삼국유사를 빌렸다.


고려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


그냥 읽고 싶어졌다.


 


이것을 읽고나서 삼국사기를 읽을 것이다.


두 권을 모두 빌리려 했는데 이상하게 삼국사기가 없었다.


삼국사기는 책방에 가서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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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나는 그냥 그렇게 살 것이다.


 


광교산 정상에 올랐다. 아내에게 함께 찍자고 했더니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사코 거절하였다.


 



 


광교산 중턱에 두견새가 피를 토하고 울어 붉게 물들었다는 진달래가 피었다


 



 


 어제 내린 봄비로 광교산 계곡에 물이 불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광교산 물이 우리집 부엌으로 온다.


 



 


붕우 박도식 사장이 보리밥을 샀다. 보리밥집 창고 벽이 아름다웠다. 나는 이런데 눈길이 간다. 



 



 



 


비비기 전에 찍을 걸…. 보리밥을 먹다가 사진을 찍었다.


 



 


광교산을 내려오다가 정말 오랜만에 보리밭을 보았다.


헉,가서 자세히 보니 아무리 봐도 보리가 아니다 내 눈은 못속인다.


음……소에게 먹이기 위해 사료용으로 키우는 서양 밀 종류인것 같다.


 



 


오리는 추운줄도 모르나? 차가운 겨울 저수지에서 연신 자맥질을 한다. 하산길 광교저수지에서……


 



 


1999년 아름다운 화장실 전국 대상을 받은 수원 광교산의 반딧불이 화장실이다. 호텔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오늘 14540 보 걸었다. 내가 보는 뒷모습은 언제나 낯설다. 낯설지않게 내가 나를 사랑해야겠다. 


 


 



아내가 늦은 아침잠을 즐기는 것을 알면서도 1부 예배에 가자고 졸랐다.


2부 예배 끝나고 어영부영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휴일을 바람처럼 보내는 것은 정말 아쉽다.


재빨리 샤워하고 1부 예배에 참석하였다. 목사님의 설교는 좋았다.


대학 동창인 박도식 사장 부부와 함께 광교산 등반을 하기로 하였다.


촉촉한 봄비가 내린 탓으로 산길은 먼지 한 점 없이 상쾌했다.




온 산에 봄기운이 돋았다. 그래! 봄이구나!




아내는 오랜만의 등반이어서 약간 힘들어했다.


이 사람이 지쳤나? 학교에서 힘들었나?


그래도 우리 일행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정상에 올랐다.


아직 네 명 모두 건강한 편이다. 그 사실이 즐겁고 감사하였다.




박사장은 대학 졸업 후 증권회사에 몇 년 근무하다가


사표를 내고 줄곧 식당을 크게 해서 아주 많은 돈을 벌었다.


그가 죽을 때 까지 써도 남을 만큼 벌었지만  본인은 늘 더 벌어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나는 돈을 그렇게 많이 벌수도 없지만 그렇게 많이 벌 욕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그냥 그렇게 살 것이다.




내려오면서 보리밥을 먹었다. 고기를 곁들일까 하다가


그러면 도로 살이 찔것 같아서 참았다.


보리밥도 사실 내 몸에 넘치는 양인데


돼지고기 불고기를 더 시킬까 고민하는 나를 생각하면


내가 과연 지식인인지 의심이 간다.


식탐을 누르기는 쉽지 않지만 하여튼 오늘은 성공하였다.




하산하는 길에 동료 장학사들이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소주한잔 하자고…… 거절하기 어려운 만남이어서 아구찜을 안주삼아 서너 잔 기울이고 들어왔다.




오늘 밤은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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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온통 녹색 천지의 볏논이었다.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동생네 가게는 생생한 프로의 현장이다. 다른 경쟁 업체들은 문을 닫은 시각이었다.  


 


 



 


수원천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서울의 청계천 보다 10년은 앞서서 깨끗한 생태 하천으로 바뀌었다.


아내와 가끔 산책을 하는 길이다.



 


프래쉬를 터트려 사진을 찍었다. 낮에 보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수원천은 요즈음 완전 꽃밭이다.



 


우리집 살구나무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꾸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운전 중에 전화가 오는 경우에


전화기를 열지 않고 받은 기능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핸드폰 바꿀 좋은 기회가 있으니 나오라고……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비오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비오는 거리를 걷는 것이 좋다.


우산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정말 좋다.


우산 없이 천천히 걸으면서 맞는 비는 더욱 좋다.


 


투명한 우비를 입고 마구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걷는것도 정말 좋다


우비에 콩볶는 빗소리가 튀고, 눈썹 위에서 비릿한 물이 매끄럽게 얼굴에 번지면


어린 시절 여름날 넓은 강변에서 소를 몰고 들어오면서 소나기를 만나던 그 때가 생각난다.


온통 녹색 천지의 볏논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낮에 나일남교장님을 만나러 걸었던 길을 다시 걸었다.


동생네 가게에 가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계수씨도 나와 있었다.




돌아오는 수원천변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벌써 튜울립이 올라왔다.


낮에 보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집 살구나무에 꽃망울이 부풀었다.


밤에 찍으니 사진이 더욱 아름답다.


며칠 내로 활짝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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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11:40 – 15:40 ( 4시간 동안 )



 


저 높은 곳이 방화수류정이고, 밑에 수문과 누각이 화홍문이다. 조선 중기 건축의 백미이다. 불수록 아름답다.


나일남 교장님과 여기서 만났다.


 



 


마침 가까운데 전시장에서 여류조각가와 판화전시가 있어서 전시장에 들렸다. 전시장 로비 모습이다.


 



 


이윤주 판화전 방명록에 서명하였다.


 



 


여류 조각가전에 전시된 소년상이다. 실물은 더 귀여웠다.


 



 


전시장 옆의 식당의 야외식탁에서 고등어 묵은지찌게를 시켰다. 나일남교장은 입맛에 맞다며 좋아했다.


소주도 두병 시켰다. 나는 3잔 밖에 마시지 않았다. 나일남교장은 한 병을 다 마셨다.


 



미술전시장 입구에서 한 장 찍었다.


 


 


 



 


음식점을 나서면서 산보를 하자고 하여 수원천으로 나서고 있다.


교장으로 정년한지 꼭 한 달 되었다. 뒷모습이 쓸쓸하다. 무엇을 해야 되냐고 물어서 나같으면 우유배달을 하겠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절대 못한다고 하였다. 무슨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싶다고…..발음이 옛날발음이어서 안된다고 했더니 발음은 아직도 자신있다고 하면서 화를 냈다. 교장을 하면서 운동장 조회를 할때 영어로 훈화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자기가 주한미군사령관 초병이었다나? 40년 전에…..마음대로 하라지….쩝……


 



 


술을 따르고 있는 내 모습이다.


 



수원천에 이름모를 꽃이 피었다. 수원시에서 정성껏 가꾼 화단이다. 예쁘다.



매주 토요일은 언제나 휴일이다.


교육전문직에 들어온 이후 매주 토요일 쉬는 것이 참 좋다.


일선 학교는 격주로 쉬지만, 교육전문직은 토요일마다 쉰다.


아침 일찍 수원역까지 자동차로 아내를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늘어지게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2층으로 올라오셔서 캔버스를 사달라고 하신다.


 


11:40분


몸을 일으켰다.


시내에 나가서 캔버스를 사고,


그 참에 정년퇴임식에 가지 못했던 나일남 교장님과 점심을 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일찍 서두르면 휴일이 알차다.




봄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가벼운 짐을 등에 메고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인 수원성의 방화수류정까지 걸어서 갔다.


 


가까이 있는 미술전시장에 가서 조각전시회, 판화전시회를 구경하였다.


이윤주씨의 판화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었다. 긴말이 없었다.


 


고등어묵은지 찌개를 점심으로 먹었다. 소주를 두병 곁들였다.


점심 후 나일남교장과 함께 수원천을 걸었다.


수원천에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돌아오는 길에 수원화방에 들렸다.


화방에서 캔버스를 사고  차를 마셨다.


화방 주인은 중견 서양화가이다. 이하균화백! 그는 묘사력이 뛰어나다.


 


그의 딸이 들어섰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화방을 하는 엄마 옆에서 일기를 쓰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보고 오늘 처음 보았다. 


피아노곡을 듣고 싶다고 했더니 쇼팡의 즉흥환상곡을 한번 들어보라고 권했다.


고전음악 시대에 표제가 없는 절대음악에 대하여 유익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가 집에 도착하였다. 수고가 많았을 것이다.


어제밤  2시30분까지 연간지도계획안을 짜는 것을 보았다. 얼마나 피곤할까!


 


집까지 걸어왔다. 오늘 걸은 거리는 약 8km, 운동 잘했다!


 


집에 오니 아내는 점심을 먹고 벌써 낮잠이 들었다.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비몽사몽 중에도 헬스장에 가야한다면 잠시 후 깨워달라고 한다.


 


나는 잠자는 사람은 절대 깨우지 않는다.


아내는 실컷 잠을 잘것이다. 음……지금 15:4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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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세번째 찾아가서 만났다. 삼고초려인가?


 



 



 



 



 


인간이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든 것은


신석기 시대 농경을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대략 1만년 전으로 보면 된다.




구석기 시대는 열매를 따먹고, 사냥하는 경제생활을 하였는데


이것을 자연의 약탈경제라 하고, 신석기 시대의 농경은 생산경제라한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와 농경을 하면서 


인간의 생활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래서 농경의 시작을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역사적 사건이라 하여


‘신석기 혁명’이라고 역사학자들이 명명하였다. 


 


농경을 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


먹을 것이 남아돌게 되었다.


그리하여 먹고 남는 잉여생산물을 저장할 그릇이 필요했기 때문에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니토기’가 그것이다.


우리 한반도에서도 여러곳에서 출토되었다.


 


그리고 농경으로 잉여생산물이 생겨나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도 먹고 사는사람이 생겼는데


그 중에 전체적인 질서를 잡고, 지배자와 지배받는자의 역학관계인  정치가 생겼다.


또 농사짓지 않고  뼈바늘이나 돌도끼 등 다른 물건을 만들어 바꾸 었는데


이것을 포함한 소득의분배 체계가  경제다.



 


엊그제 내가 근무하는 교육원 옆에 도예가 한 분이 산다. 


두번이나 찾아갔다가 주인이 출타하여 만나지 못했는데 세번째 찾아가서 만났다. 삼고초려인가?


그의 아호는 ‘벽전’ 나보다 댓살 아래였는데 첫눈에 그가 쌓은 내공이 범상치 않음을  알수 있었다.


전시장도 갖고 있어서 그의 많은 작품을 둘러보았다.


순수작품도 많이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도 무시하기 어려워 생활자기도 만들고 있었다.


그곳을 방문하여 초벌한 그릇에 그림과 글씨를 썼다.


백자 유약을 발라서 재벌구이를 했는데 그런대로 잘 나왔다.


백자는 정말 희고 깨끗하여 깔끔하고 정갈한 매력이 있다.




오랜만에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다.


기운찬 물고기를 한마리 그렸는데 옛날부터 물고기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금년을 빨리 보내고, 2009년에 새로운 변화를 기원하면서 그렸다.


깨지만 않으면 1만년도 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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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너는 대접 받을 자격이 있다.


 




 



일주일 동안 산에 가지 못했다.


다리가 아파서 휴식이 필요했다.


다행이 쉬고 나니 통증은 없어졌다.




일주일 전에 마지막으로 산에 올랐을 때


산수유 한그루를 발견했는데 꽃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당시는 카메라를 휴대하지 않아서 촬영하지 못했다.




산수유! 봄의 전령사다.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핀다.


다른 모든 꽃이 잠들어있을 때 홀로 제일 먼저 핀다.


개나리, 진달래보다 더 일찍 핀다.




사실 산수유는 아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이름이지만


실제 꽃은 아주 볼품없다.


꽃송이도 작고 나무에 가득 달리는 것도 아니고,


드문드문 달려 더욱 볼품이 없다.


색깔도 진하지 않고 엷은 노란색이어서 화려하지도 않다.


이렇다 보니 관상수로 심는 사람도 없고(열매는 약재로 쓴다)


그저 야산에서 제멋대로 자라면 그만이다.


이런 산수유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피는 꽃이라는 것이다.


남은 추워서 세상으로 나올 생각도 못할 때 그 추위를 참고 제일 먼저 나왔으니


대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리가 아파서 산에 오르지 못한 일주일 동안 걱정했다.


아마도 산수유는 다 피었을 것이고 혹, 그 옆에 진달래가 피어서


산수유가 지닌 봄의 전령사 지위가 퇴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였다.




오늘 부지런히 올라 보니 산수유가 활짝 피었고,


아직 다른 꽃은 피지 않았다. 다행이다. 얼른 사진을 찍었다.


교육원 뒷산에서 산수유는 아직 1등으로 건재하였다.


 


코를 대보니 향기가 그만이다. 향기가 있는 줄은 몰랐다.


꽃이 볼품없어서 향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직 날이 추운 탓인가 벌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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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당분간 어려운 일은 없고……

사랑하는 나의 아들 안녕!

아빠는 어제 아주 큰 행사를 치루었단다.

교육원에서 일년에 4번 열리는 장학협의회였는데

행사의 사령탑이 아빠였단다.

외부에서 많은 손님들이 오시고

행사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준비하느라 아주 힘들었단다.

행사는 아주 잘 끝났고

성공적으로 일을 치루었기 때문에

아빠를 다시 한번 드러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단다.

이제 한 일주일간은 어려운 일이 없고

5월 중순부터 또 다른 행사가 있는데

이제 서서히 그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해야한다.

공직 생활은 어쩌면 끊임 없이 과제가 있어

한가지 일을 해결하면 또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단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한번도 쉼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큰 아들을 생각하면 힘들지 않단다.

아들아 오늘 아침 너와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니

오늘 하루가 좋은 날이 될것 같구나

아들아 사랑한다.

조국에서 아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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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아들도 이 꽃을 알 것이다.



 



 



아들은 옥스퍼드 대학원에서도 최종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결국 7개 대학원 모두에서 합격소식은 없었다.


전자공학으로 지원했으면 가능했을 것이다.


갑자기 경영학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먼 타국에서 실의에 잠겨있을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격려전화를 하였다. 인생 80년에 입시에 한번 낙방한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해주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당부하였다. 아들은 매우 자신감에 차있었다.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뜻으로 들렸다. 다행이었다.




마루에 있는 난에 꽃이 피었다.


꽃이 어떻게 계절을 아는지 신비롭기만 하다.


마당에 내놓은 것도 아닌데 마루에서 어떻게 봄이 온것을 아는지……


 


20년 이상 집에서 기르고 있는 난이다.


아들이 5살 때부터 기른 것이다.


여러 번 새끼를 쳐서 집안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아들도 이 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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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멸공의 횃불


 


< 출발할 때는 아무런 빛이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고, 돌아와서 한참 지난 후에 동이 트는 붉은 기운이 보여 찍었다>



 



오늘부터 금년 학기 교육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동안 매일 아침 06:00에 산에 올랐지만


오늘부터는 06:00에 교육이 시작되니


05:00부터 운동을 시작하였다.




05:00 정각에 방에서 나와 마당에서 국민체조 2회 반복으로 몸을 풀고


500미터 쯤 도로를 걸었다. 사방은 고요하고 깜깜하였다.


다행히 동네의 불빛이 조금 있어서 그것에 의지하여 걸었다.




산에 오르는 지점에서부터 개사육장에서 수십 마리의 개들이 짖어대는데


오늘은 너무 이른 탓인지 한 마리가 두어 번 컹컹 짖어대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산에 오르다가 전진이 어려우면 다시 내려오리라 마음먹고 올라갔다.


그런데 끝까지 오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희미하게 나무가 없는 사이로 뚤린 공간이 보였는데 그게 길이었다.


결국 산길은 나무가 없는 사이를 연결한 것이었다.


낮에는 익숙한 길이었지만 밤에는 정말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몇 번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얼굴에 나뭇가지가 부딪쳤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사람이 나오면 어떻하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그래 노래를 부르자 무슨 노래? 씩씩한 군가를 부르자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폭탄의 불바다를 무릅쓰고서


고향땅 부모형제 내일을 위해


전우야 내 나라를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아래 목숨을 건다.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였다. 누가 전방의 등산로에서 내려온다면


내 발자욱 소리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이 시간에 산에 오르는 사람이라면 분명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무서워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안양초등학생 살해범과는 전혀 다른, 근처에도 가지 않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을 소리쳐 외쳐줌으로써 상대를 안심시키고


동시에 나 자신도 어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함이었다.




교육원 뒷산에는 산비둘기가 많이 사는데 올라가는 도중에 다섯 번 쯤 놀라서 날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깜깜한 밤이라 그런지 한번만 푸드득 날아 가고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둘기도 깊이 잠든 모양이다.




핸드폰이라도 가져올 것을…. 핸드폰을 열면 그 빛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 당장 랜턴을 하나 장만해야 겟다. 후래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중간 쯤 올라가니 사방은 더 어두워 졌다.




아래 녁은 그래도 동네의 불빛이라도 있었으나 이제는 아무 빛도 없다 하늘에는 달은 물론 별도 없다.


정말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그래도 나는 전진하였다. 여기서 말수는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걷고 또 걸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려오는 길도 어두웠다. 경사로를 내려오면서 미끄러질 위험은 더욱 컸다. 군가를 계속 불렀다. 중간 쯤 내려왔을 때 무언가 변화가 감지되었다. 딱히 날이 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검은 공간에서 짙은 회색의 기운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빛이다!


 


태초에 빛도 이렇게 왔을까? 여명이었다. 해가 뜨기 전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돋는 것은  해돋이 일것이지만 이것은 해돋이와는 달랐다. 무언가 어두움 속에서 빛이 생긴다는 회색의 느낌 ! 이것이 분명 여명일 것이다. 여명을 통해 걸음은 쉬워졌다. 군가를 계속 부르는 내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시인인 내가 30년 전의 군가만 계속 부른대서야 말이 되는가? 바꾸었다. 돌아오라쏘렌토로를 목청껏 불렀다. 10 번 쯤 부르니 산 아래 길이 보였다. 드디어 길로 내려섰다.




여전히 길도 어두웠다. 그런데 어둠속에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그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돌아오라쏘렌토로를 계속 부르면서 따라갔다. 그 사람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자전거 도로를 걷던 그 사람이 갑자기 차도로 들어섰다.


나에게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길을 바꾸는 것이었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 지고……순간 그가 나를 불렀다. “연구사님!” 식당에서 일하는 강계순씨였다. 아침을 지으려 새벽에 출근하는 중이었다. 앗 강계순 아주머니! 무서웠지요? 네 조금….그러나 찬송가를 부르셔서 덜 무서웠어요. 네! 아아! 네(찬송가 아닌데……ㅎㅎㅎ) 집에서 걸어다니세요? 네,  20분 걸려요, 왕복 40분 걸리는데 매일 걷는 것이 좋아요 네, 맞습니다. 걷는 것이 제일 좋지요.




교육원 마당에 도착하였으나 아직도 어둠이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부원장님이 물으셨다.


혹, 아침에 산에 오르셨습니까?


네, 다녀왔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50 넘으면 먼저 가는 사람이 형님입니다.


혹, 어두운 산길에서 무슨 일이나 생기면 어쩌실려구요


혼자 밤길에 산에 오르지 마세요 조심하세요……




별 문제 없다.


이봉주는 40세에마라톤 풀코스도 뛰는데


그까짓 뒷산을 60분 오르는 것이 뭐 대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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