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동안 경기도박물관에서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를 다녀왔다.
주제는 ‘고려와 동아시아 사회와의 소통과 교류’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장남원교수님의 강의가 아주 좋았다. 명강의 였다. 그 분이 맡은 주제는 ‘고려와 요, 금의 도자교류’ 였는데 단순히 도자기에 관한 내용만 갖고 강의하는것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와 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강의를 하셨다. 여성의 나이를 짐작하기는 어려웠는데 50대 중반 쯤으로 보였다. 아는것은 100인데 짧은 시간에 함축하여 20정도를 강의한다는 인상을 보였다. 거기에다 언어가 고급이었다.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없었으며 마이크사용법도 정확하여 바람소리 한번 들어가지 않았다. 흔히 어줍잖은 식자층에서 많이 쓰는 했다라면, 영향을 주었다라는, 열심히 싸웠다라는, 용감하다라는, 좋았다라는 등의 했다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연륜이 보였는데 멀리서 보면 아주 젊은 인상이었다. 인터넷에 나온 사진은 실물보다 못했다. 좋은 강의는 결국 공부를 많이 해야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의 내용은 우리가 알기에는 고려자기가 송나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문화는 동시대의 여러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듯이 남송과 동시대에 존재했던 거란족이 세웠던 요, 여진족이 세웠던 금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요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물론 송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지만 요의 영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강의 도중에 여러가지 용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질문해서 알았다
우리가 보통 도기라고 하는 것은 비교적 낮은 온도, 1000도 이하에서 굽는 토기, 도기, 석기 등을 말하고 자기는 10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굽는 청자 백자 등을 말한다른 것을 알았다. 가만이 있으려다 진짜 몰라서 물었다.
그리고 고려 상감청자가 세계 최초의 상감기법을 쓴 것이 아니고 이미 기원전 2000년에 이집트에서 상감기법을 썼으며 중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상감기법을 사용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받아들여 고려에서 상감청자를 만들었고 그 상감청자가 세계최고의 품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세계최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최초도 두번째 사람이 더 잘만들면 별거아니라는 것이다.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세계 최초의 고려상감청자 이렇게 말하면 중국이나 일본의 학자들이 어이없어 하니 앞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말하고 하였다.
그리고 고려에서 청자에다 금을 입히는 등 사치가 심하여 국왕이 이를 금하고 나서부터 금을 못쓰게 하니 비싼 재료가 아니면서도 화려한 상감기법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의 점토가 입자가 곱고 좋아서 즉 처음의 태토가 좋아야 상감을 해도 곱게 나온다고 했다. 중국이 상감을 일찍 개발 했어도 흙이 우리만큼 곱지 못하여 고려청자만큼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발견된 상감청자 도편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