焉知, 問仁, 新雨, 多情, 騎牛, 牛夫, 牽牛

붕우 남기완으로 부터 내 雅號를 몇개 지었으니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쓰라는 연락이 왔다.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내게 보내온 편지글 전문을 실어본다.

아내와 의논하여 수일내로 결정할 것이다

전부 다 맛좋은 것이어서  어떤 것을 먹어야할지 그저 행복한 고민이다.

내가 무슨 복이 많아 이런 호사를 누리는지

기완아! 고맙다. 기다려라 이 웬수 기필코 값겠다!! ㅎㅎㅎ~


< 적당한 사진이 없어 몇 년 전 마라톤에 출전한 사진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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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기호의 雅號를 지어보려 생각은 줄곧 해왔으나, 정말 어려워서 미루고 미루어 왔는데,
요즘 맹기호 시가 나오기 시작하여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몇 개 생각해 봤어.

마음에 들면 골라 쓰고 마음에 안 들어도 좋고 : 

맹기호 아호
짓기
:


1. 焉知


焉知 : 논어 ‘未知生 焉知死’



‘어찌 알겠는가?’로
끝없이 묻고 진리를 찾아가는 정신의 표현.



*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계로문사귀신. 자왈: 미능사인, 언능사귀? 왈: 감문사. 왈: 미지생, 언지사)”



論語(논어) 先進(선진)편에 출전한다.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도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감히 죽음에 대해 여쭙습니다.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



공자가 말했다. 뒤에 태어난 사람이 가히 두렵다. 어찌 오는
사람들이 이제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으랴.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될
뿐이다.



 2. 問仁



어떻게 하면 어질고 멋지게 살 수 있을까 늘 고뇌하는 모습을 담아서



 司馬牛問仁. 子曰 : “仁者其言也?.”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問仁, 子曰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也



: 번지(樊遲)가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거처함에 공손하며 일을 집행함에 공경하며 사람을 대하기를 충성스럽게 함을,

비록 이적(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자로편(子路篇) 19장(章)-



3. 新雨(막 내린 비)



늘 새롭고 상큼함을 추구하는 마음, 늘 일신우일신하는 마음을
담아서



 唐詩, 王維의 오언율시 ‘山居秋暝’ :



空山新雨後, 天氣晩來秋. …………..



* 新月 :
초승달



 4. 多情



소동파가 詞를 삼백여 수 썼는데 ‘多情’이란 말을 유난히
많이 썼으며, 이는 매우 특이한 점이다.

호방한 문인임에도 ‘多情’이란 말을 매우 좋아 했다는 것인데,

맹기호의 ‘다정함’(정이 많음)과 혹시
통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름도 그렇지만 ‘최고로 좋은’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아.
내가 좋아해야지 좋은 것이지.

더 생각해 볼게~~


from  기완


<또 기완이가 오늘 아호를 또 보내왔다>


 

맹교장,

최고의 정승 고불 맹사성의 후손으로 사는 것을 늘 잊지 않으려 :  
5. 騎牛, 牛夫,
牽牛

– 騎牛 : 맹사성의 ‘騎牛’를 본받는
의미에서

– 牛夫 : 맹사성의 마부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소를 끄는 것이니馬夫가 아니라 牛夫

– 牽牛 : 소를 끈다는 뜻을 직접 표현

* 두산백과 :

기우[ 騎牛 ]

소를 타고 다니는 일. 소를 타고 다니는 풍습은 교통수단으로 이용한
경우와 순전히 풍류적인 멋으로 되는 경우가 있다.

기차나 자동차 같은 교통기관이 출현하기 전에는 주로 말[馬]을 타고 다녔으나,

가까운 거리나
바쁘지 않은 용건으로 왕래할 경우에는 소를 타고 다니기도 하였다.

소의 걸음은 말보다 느리지만, 소를 타는 재미는 느릿느릿한
걸음에 있다고 한다.

소를 탈 때 안장을 얹으면 소의 등에 사람이 앉게 되지만, 안장 없이 탈 때는 소의 등줄기 엉덩이 위에 앉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독좌문견일기(獨坐聞見日記)》에 보면, 세종 때에 좌의정을
지낸 맹사성(孟思誠)은 고향인 온양을 왕래할 때 늘 소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또, 《기문총화(記聞叢話)》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하고
있다. 맹사성이 소를 타고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용인에서 비를 만나 어느 여관에 묵었는데, 먼저 들어온 선비가 불러서 장기를 한 판
두고,

심심풀이로 공(公)자 당(堂)자로 문답을 했는데, 먼저 맹정승이 “무슨 일로 서울에 가는공” 하니, 선비가 “녹사시험 보러 간당”
하였다.

녹사(錄事)란 의정부에 딸린 아전벼슬이므로, 맹정승은 “그러면 내가 좀 도와줄공” 했더니,

정승인 맹사성을 알아보지 못한 선비는 화가
나서 “아니꼽당” 하였다.

그 후 선비가 시험을 치르는 차례에 따라 좌의정 앞에 나온 것을 맹정승이 알아보고 “어떠한공” 하였더니

선비는 깜짝
놀라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죽여 주사이당” 하였다.

그래서 의아해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맹사성이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한바탕 웃었다는
것이다.

그 선비는 맹정승의 도움으로 벼슬에 올랐으며, 이 일은 ‘공당문답(公堂問答)’이라고 전한다.

《해동잡록(海東雜錄)》 《동문선(東文選)》
《양촌집(陽村集)》에도 기우설(騎牛說)이 나오는데,

평해(平海)사람 이행(李行)은 호(號)를 기우자(騎牛子)라 하며,

달밤에 소를 타고 호리병에
술을 채워가지고 산수 좋은 곳에 가서 놀며 사나이의 호탕한 기개를 길렀다고 한다.

《패관잡기(稗官雜記)》에도 진사 이별(李鼈)이 소를 타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필원잡기(筆苑雜記)》에는 조석간(趙碩澗)도 날마다 소를 타고 왕래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매산잡지(梅山雜識)》에는 안주 서촌에 사는
김(金)이라는 사람이 저자에 갔다가 소를 타고 밤에 집으로 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나 해치려고 덤비는 것을 소가 나서서 호랑이를 상대하여
싸웠는데,

새벽에 이르러 소도 호랑이도 다 죽고 사람만 살아나서 그 소를 의리 있는 소라고 하여 의우총(義牛塚)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삼연집(三淵集)》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율곡집(栗谷集)》 등에는 기우가(騎牛歌)가 실려 있다.

소를 타는 풍습은 그림의 소재로도 다루어져서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목동의 한가로운
모습을 묘사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기우목동(騎牛牧童)》이나,

해질녘에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농부의 그림, 너울 쓴 여인이 소를
타고 나들이하다가 나귀를 타고 가는 남자들과 마주친 광경 등은

한국의 기우 풍속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우
[騎牛] (두산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마부[ 馬夫 ]

말을 타고 갈 때에 고삐를 잡고 앞에서 끌거나 뒤에서 따르는 사람.

[네이버 지식백과] 마부
[馬夫]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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