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다고 다 님이 오시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처연한 눈! . 슬프다. 슬픔은 시인의 밥이다. 슬퍼서 문학이 된것이다.
전) 수원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였으며 경기도문학상, 수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수필가 이경선님의 [하얀비]를 읽었다.
읽으면서 성장과정에서 착한 성정이 잘 갈무리된 사람만이 갖는 깊은 내공을 느꼈다.
수필처럼 확실한 자기고백의 장르가 또 있으랴?
단 한번도 자신의 내면세계를 확실하게 드러낸 적이 없는 나는 수필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찾기’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 우울했다고 적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것이 어린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고 말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가난한 동네였다. 모두 가난했다. 30여 호의 마을이었는데 서울 구경을 해본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차를 타보니가 했을까?
내가 칫솔을 처음 갖게 된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기억한다. 여름에는 맨발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동네 아이들이 모두 그랬다. 맨발로 마루를 걸으면 소리가 났다.
꿈은 없었고 무엇이 되고자 하는 희망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희망이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자랐다. 작가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겨주는 이가 없어 서운했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겨주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가족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제도권 교육을 포기하였다. 아산에서 수원으로 이사오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학교를 챙기지 않으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학업 중단이 내 인생에 문제거리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16살! 자전거를 배웠고 그렇게 시장에서의 배달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한심한 시절이었다. 나중에 어머니의 정성 때문에 고등학교를 갔지만 정말 암울한 시절이었다.
중국 항주에 자신의 옥탑방에 선조의 유골함을 모시는 장소를 만든다고 하는데 내 생각도 그렇다.
나는 평소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유골함을 집으로 가져와 다락에 놓고 제사를 지낼 때 꺼내 제사상 위에 놓은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늘 해오고 있다.
돈!
작가는 돈 문제를 언급하면서 돈은 모든 일의 해결사처럼 보일 뿐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 수 없다고 설파하고 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아들은 미국 MIT대학에서 금융공학을 전공하였는데 돈에 관심이 많다.
젊어서 짧은 시간에 돈 왕창 벌고 그 돈으로 평생 놀면서 먹고 살겠다는 주의다.
아들의 혼인식에 내가 주례를 섰다. 주례사로 엄청난 말을 했다.
돈이 안벌리는 곳으로 가라!
돈과 명예가 상충되거든 서슴없이 명예를 택하라.
내가 말하면서도 아들이 잘 듣기나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내가 실천하지 못했으니 청출어람청어람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너만는 돈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고 말했다.
너, 나 알어 몰라?
묻는 내 말에 짖진 않고 꼬리를 마구 흔들어 대며 낯설어 하진 않는 걸 보니 알긴 아나 보다.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휴머니즘이 동물에 까지 미친 경우다.
나도 사실 어찌보면 그렇다.
나는 동물의 경계를 넘어 동물과 식물,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미물 그리고 자연에까지 마음이 쓰인다.
오늘 시간 관계로 여기서 중략~~한다. 다음에 또 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