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의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었다.

사실 오래 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었다.

한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데도 낯설다. 처음 읽은 책처럼 스토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늙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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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좋은 글귀를 적어본다.

 

제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 지요? 늘 마음에 밀알처럼 품고 있던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만난 것은 다행입니다. 당신이 내게 있을 때는 내게 세상은 친숙하고 걱정 없어 보였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그 육체를 지닌 인간이 어떤 자세를 가장 많이 취하느냐로 변해간다.

여인의 육체는 재래식 부엌모양을 연상시켰다. 겨우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에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콩나물을 다듬거나

감자를 깎거나 아궁이에 불쏘시개를 넣느라 수없ㅣ 오르리고 폈을 그녀의 등은 하늘색 투피스 속에서 적막한 마을의 능선처럼 굽어 있었다.

부친은 여일하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여일 如一

처음부터 끝까지 꼭 같거나 변하지 아니하다)-굳이 이런 한자표현을 해야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언니는 참 아름다웠다. 처녀들의 연약함과 자존심, 총명함을 두루지니고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윤정은 선생님을 생각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는 좀 이상하다는 것을 맨 처음 눈치챈 것도 언니였다.

된장국에 풀어넣은 멸치 냄새가 정답게 집안을 흔들고 있다.

미란은 나뭇잎 한 장처럼 조그많게 웅크리고 잠이 들어 있다.

권태로운 여름 볕이 서류더미가 쌓인 남자의 알루미늄 책상에 스멀거렸다.

 

설핏 잠이 깰 적마다 나는 그의 손을 찾아 쥐고 그의 턱에 내 뺨을 갖다 댔다. 그런 어떤 순간에 내 마른 입술에 그가 입술을 갖다 댔다.

그의 입술은 따뜻했다. 나는 몸을 뒤척여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내 가슴을 찾아 쥐었다. 그의 몸이 내 몸 같다. 우리는 빗소를 들으며 한번 더 서로의 몸 속으로 파고 들었다.

당신 몸이 내 몸 같아. 그가 중얼거렸다. 사람의 몸이 이처럼 위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지. 그와 동시에 나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신경숙(1963년 1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정읍에서 보냈으나,

 1979년 구로공단 근처의 전기회사에 취직하여, 서울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산업체특별학급에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에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3년 출간된 《풍금이 있던 자리》가 평단과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약 스타 작가로 도약, 등단 후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대표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8년 발간된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미국, 영국, 폴란드 등의 22개국에서 출판되었다.

1999년 <문학동네> 편집위원이자 시인, 문학평론가인 남진우(시인)와 결혼]하였다.

 

이 책은 여대생이 군사정권시절 야학에서 불우한 청소년에게 공부를 가르친다.

남자 친구와 음악다방에서 만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이태리 노래를 자주 신청한다.

원래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이탈리아 좌파 운동권의 노래다. 나도 많이 들어 귀에 익숙한 노래다.

운동권으로 몰려 남자친구의 소재를 대라는 경찰에게 머리채를 쥐어 뜯기고 정강이를 구둣발로 얻어맞는다.

경찰은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무슨 암호냐고 묻는다. 구둣발에 채이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다.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한 여주인공은 기억을 잃는다.

소설은 여주인공이 자신이 누군지 그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적고 있다.

 

신경숙……훌륭한 작가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의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정말 많은 책을 썼다.  나도 좋아하는 작가다.

다만 이 책에 대해서는 나도 할말이 좀 있다. 1963년 생이면 1979년 10.26 때 16살이다. 민주화의식을 갖기에는 어린 나이다.

 10.26 이후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시절을 16살 나이로 시작하였다면 어린 나이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을 나는 민주투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적어도 민주투사라면 박정희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투사다.

 내 젊은 날, 나는 박정희를 싫어했다. 그러니 지금 박정희에 대한 나의 개인적 평가는 많이 변했다

억눌인 자유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 저런 사람은 우리나라에 다시 나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박정희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저항적이었다.

내가 박정희의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때 24살의 나이로 모금 운동에 참여한 것을 보면 지금 생각해도 내 젊은 날에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빅정희 대통령이 백성을 얼마나 먹이고 싶었으면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했을까!

지구상에 백성의 배고품을 이토록 고민한 지도자가 박정희말고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는 개나 소나 다 데모를 했다. 할만했으니까! 그러나 박정희 독재는 달랐다.

나는 젊은 시절 박정희 통치를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두 시대의 차이를 피부,로 경험으로, 역사로 알고 있다.

박정희시대는 감히 민주화를 입에 담기 어려웠다.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만이 목숨을 걸로 민주화를 외쳤다.

그래서 그 두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숨이 두려워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10.26으로 박정희가 죽으니

천지사방에서 민주화투사를 자처하고 나서는 꼴이라니…..나는 그꼴을 보았다.

 이런 류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1980년대 10대를 보내면서 군사정권의 압제를 보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 역시 나는 인정하기 어렵다. 10대면 어린 나이고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그래도 견딜만 했다.

불러다 사람 두들겨 패고 정신을 잃고 기억상실증에 걸릴정도로 사람을 다루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사실이 당시에 보통으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책의 느낌은 나치 하의 폴란드나 김일성 김정일 하의 북한 실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내가 20대의 나이로 겪은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박정철 고문치사 사건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숨도 못쉬는 그런 사회는 아니었다.

박범신의 책을 봐도 이런 느낌이 드는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에 이런 책에서, 이런 생각에서 자유롭고 싶다.

좀더 높은 이상의 세계로, 평화와 봉사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올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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