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파란투리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작곡, <기차는 8시에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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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스 테오도라키스( 1925729~ , 그리스 히오스 섬 태생)

그리스의 대중적인 음악가이다. 그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1964), Z(1969), 세르피코(1973)에 들어간 그의 음악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1970년대 말까지 그는 좌파 성향을 보였으나, 1990년 그는 중도 우파 신민주당 의원이 되었다.

자신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 테오도라키스는 후회한다면서도 한편으로 국가에는 정치적 위기를 막기 위한 질서가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그는 계속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며, 침략자에 대해 성토한다. 그의 공식 웹사이트에 팔레스타인 문제, 이라크 전쟁, 키프로스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나와있다.

그는 늘 억압적인 정권에 반대해왔으며, 1967년에서 1974년까지 지속된 그리스 독재 정권에 대한 주요 비판자이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 대통령 후보자로 거명되기도 했으나 이에 거부했다.

 

카테리니행 열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사 전문(신경숙 번안)

 

이 노래는 그리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음악가인 미키스 테오도리키스

(Mikis Theodorakis의 작품으로, 그는 이 노래를 작곡한 지 얼마 안 되어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국외추방을 당한다.

우리에게는 sbs의 드라마 <백야>의 주제가로, 또 조수미가 불러 친숙해진 노래인데, 비장하면서도 애절한 가락에 카테리니라는 기차역을 배경으로 남녀 간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운동가를 애인으로 둔 한 그리스 여성의 이별가다.

11월의 어느 기차역에서 애인을 만나기로 했지만, 지중해 연안의 한 작은 도시 카테리니로 가는 기차는 8시에 떠나고 애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잡혀서 투옥되거나, 아니면 계속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하거나 간에 어쨌든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떠난 시간과 공간인 이 11월과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원곡의 가사에는 그가 비밀을 간직한 채”, “가슴에 칼을 품고서떠났다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는 1974년 민주화되기까지 밖으로는 외세의 압박과 안으로는 왕정과 군부독재의 철권통치로 신음해 왔던 나라다.

이러한 그리스의 암울했던 현대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사람이 바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테네 음악원의 학생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청년운동을 시작하여

 수차례나 투옥됨으로써 그리스 현대사의 한 복판에 뛰어들게 된다.

 

종전 후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내전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왕당파의 승리로 끝나자 테오도라키스는

귀국 후 그리스 민속음악인 람베티카를 기본으로 민중의 정서를 담은 수많은 가요를 만들었다.

람베티카는 하층민으로부터라는 그 뜻이 말해 주듯 피억압계층의 민요이다.

이 람베티카가 테오도라키스에 의해 저항가요로 부활하자 군부독재는 이를 금지시켰고,

그러자 람베티카는 다시 지하클럽에서 청년계층에 의해 새 노래운동인 네오 키마(Neo Kima)로 발전하게 된다.

 

1963년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람브라키스가 한 괴한에게 암살당하자 테오도라키스는 람브라키스민주청년회(Lambrakis Democratic Youth)를 조직하고

의장으로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해나간다. 1967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테오도라키스를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추방하였다.

출판과 언론에 대한 검열도 강화해 테오도라키스의 작품판매와 방송은 물론 그의 작곡, 지휘, 연주를 포함해 그의 음악을 듣는 것까지도 금지시켜 버렸다.

 테오도라키스는 체포되어 국외망명의 길에 올랐고, 군정이 끝나고 민정으로 이양된 1974년까지 장장 7년간이라는 세월을 해외에서 떠돌아야 했다.

 

1992년 모든 공직을 사임한 테오도라키스는 작곡과 지휘에 전념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인권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1996년 그리스와 터기 양국 간 영토분쟁으로 전운이 감돌 때,

 터키의 대표적 음악인 줄푸 리바넬리와 함께 평화지대인 사이프러스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공동음악회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줄푸 리바넬리 역시 테오도라키스와 같은 시기에 터키에서 추방당했었고, 이들 두 사람은 해외에서 유랑생활 중 만나 자연스럽게 우정을 다져왔었다.

 

1967421일 새벽, 그리스는 모든 것이 정지되었습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비틀즈를 비롯한 서양음악과 축구, 미니스커트, 심지어는 그리스 남성의 상징인 콧수염을 기르는 것까지 금지할 정도로 모든 자유가 억압당하고,

예술가들은 군부의 탄압으로 설 곳을 잃었고, 타의로 자의로 조국을 떠나게 된다.

 

 

마리아 파란토리 (Maria Farantouri) 가수 출생1947114(67), 그리스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마리아 파란토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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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여가수 마리아 파란두리는 테오도라키스의 투옥에 항거하다 추방된 후 조국을 떠나 세계각지를 순회하며 노래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호소하게 된다다.

19757년간의 군부독재가 종식되자 귀국 음악 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렸는데 그 제일 중심의 가수는 마리아 파란두리였다.

이후 그녀는 그리스 민속음악과 다른 장르의 결합을 시도하는 한편, 역사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터키와의 평화를 위한 콘서트의 진행 등 결합과 평화를 위한 행보를 계속 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르죠. 그러나 저는 과거의 일들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작품의 바탕은 다 과거에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은 한 나라의 영혼이고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음악의 초상이고, 저는 단적으로 그런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게 있어 음악은 아주 중요합니다. 가족처럼 말이죠. 음악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기도하면서, 국경일에도 늘 노래를 해왔습니다. 저는 자유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스 자유의 상징이라는 그녀의 말이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이 노래의 가사처럼, 11월 어느날 밤의 쓸쓸한 기차역을 떠올리게 하는 부주키(그리스의 민속 현악기만도린과 비슷한 소리를 낸다)

의 애잔한 반주에 맞춰 파란두리는 촛불이 꺼져가듯 침침한 음색으로, 돌아오지 않는 레지스탕스를 기다리는 여심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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