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도(孤島)
맹기호
오랫동안 대학에서 강의하던 친구가 이번에 정년퇴직을 맞게 되었다. 퇴직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교수 연구실에서 만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친구 셋이서 찾아갔다. 연구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소박하였다. 작은 공간이었으며 이름 옆에 강의, 재실, 출장, 퇴근을 알리는 돌아가는 표찰이 없다면 보통 사무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빽빽하게 꼽혀있는 전공서적이 학문하는 사람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하나같이 일반인이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전문서적들이었다. 책상에는 공자의 시경(詩經)이 펼쳐져 있었다. 친구는 2000여 권의 책을 모두 학교에 기증하고 떠난다고 하였다.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와는 한 학년에 한 학급 밖에 없는 산골 초등학교에서 동문수학한 붕우다. 함께 간 친구들도 모두 같다.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 네 명은 6학년 때 담임선생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일찍 돌아가신 것이 정말 아쉽다. 정말 훌륭한 스승이셨다. 나와 친구들은 그분의 공덕비를 세우자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과거에 그 스승님 관련 수필을 쓴 적이 있다고 했다.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돌아와 나도 내 책에 그 선생님에 관하여 쓴 글이 있는데 우편으로 보낼 것이니 친구가 쓴 글도 보내달라고 했다. 그 분에 관련된 글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읽고 싶어서였다.
우리 집에는 장가간 막내아들이 쓰던 어깨에 메는 가방이 있는데 사각형 모양으로 내 생각에는 최신 유행이 아닌가 싶다. 봉투에 내 책을 넣고 주소를 썼다. 그리고 그 책을 가방에 넣고 우체국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날은 더웠으며 여름날의 거리는 흐느적거렸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면서 농삿일을 도왔고 그 과정에서 과도한 노출로 인하여 얼굴과 신체에 기미가 많이 끼었다. 그래서 여름이 와도 짧은 팔을 입지 않고 가능한 긴팔 옷을 입는다. 가장 얇은 옷으로 긴소매 티셔츠를 구해서 입는다. 수십 년 만에 왔다는 폭염으로 목에 흐른 땀을 건물 골바람이 스치며 말렸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 바람의 하수인처럼 보였다. 바람이 주인이었다. 바람은 정말 자유로운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옷차림은 닥스 전통 문양의 체크무늬 긴팔 셔츠에 며칠 전에 산 여름 바지를 처음 입었는데 칼처럼 벼린 날이 걸을 때마다 바람을 갈랐다. 내가 아끼는 하얀 런닝화를 신고 사각 가방을 양어깨에 메었다. 친구에게 내 수필집을 보낸다는 마음에 더운 날이지만 발걸음이 장에 간 어머니를 마중하러 포플러 나무가 경회루 열주처럼 늘어선 고향 강변 둑을 걸어가는 느낌으로 기분이 좋았다. 코에 부딪치는 포플러의 푸른 냄새를 지금도 기억한다.
수원역 로데오거리에 있는 우체국 가는 길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한코로나 여파로 집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로데오 길은 싱싱한 젊은이들로 넘쳤다. 젊은이들의 걸음은 경쾌했고, 무에 그리 우스운지 깔깔 웃음을 하늘까지 던졌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50대 아주머니가 내 앞으로 얼굴을 숙이고 들어오며 하는 말 “인상이 아주 좋습니다. 복과 재물이 넘쳐나는 인상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처를 잘못하여 복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 그냥 지나치고 우체국으로 들어가 책을 부치고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는 어떤 50대 남자가 나를 또 붙잡으며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 남자는 중국 연변 사투리까지 쓰면서 내가 복이 많은데 빠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 짧은 시간에 거리에서 두 번이나 낚였다. 내가 어수룩해 보였나?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 나만 붙들고 말을 건넨다. 나는 어이없어 하며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은 사람들을 손사래를 치며 간신히 떼어냈다.
나는 평생 교단에 서면서 매일 양복을 입었다. 검은색 계통의 양복에 스프라이트 넥타이를 좋아했다. 셔츠는 거의 흰색을 입었다. 그리고 퇴직한 다음에는 특별한 날에만 양복을 입고 주로 가벼운 차림의 옷을 입고 다닌다. 옷의 사전적 의미는 ‘몸을 싸서 가리기 위하여 피륙 따위로 몸에 맞게 만들어 입는 것’이다. 그런데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다. 옷이 좋으면 사람이 한층 돋보이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내가 어떤 차림이기에 나만 붙들고 말을 거나? 그제야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 거리에 내 차림 같은 사람은 없었다. 일단 여름날에 긴팔 옷을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무릎이 헤진 청바지를 입은 사람, 짧은 윗도리로 배꼽이 드러난 아가씨, 바지인지 팬티인지 구분이 안가는 짧은 옷을 입고 늘씬한 다리를 내놓고 걷는 여성들이 옆을 스쳐갔다. 고도였다. 고도에서 비로소 나를 보았다. 많은 군상 중에서 나는 외롭게 서있었다.
꼰대란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을 부르는 말이며 소통이 어려운 늙은이도 포함한다. 갑자기 내 차림이 꼭 꼰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차림만 그런게 아니라 주름진 얼굴도 천상 꼰대다. 등에 멘 가방도 꼰대다. 아들이 15년 전에 산 가방이라고 한다. 거기에 말투도 꼰대다. 병원에 가면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옷 벗을게요’라고 말하면 참지 못하고 ‘벗지 마세요’라고 소리치는 꼰대다. 층층이 겹쳤다. 그래 나는 꼰대다! 어쩔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