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 순간 하늘도 도와주었다.
정말 아름다운 탑이었다. 전탑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장중하고 감동적인 탑이었다.
사방 1m 정도의 감실이 하나 있는데 화강암으로 이맛돌과 문기둥으로 짠 문틀을 조각하였다.
옛날에는 문을 달고 그안에 부처를 모셔놓았을 것이다. 누가 작은 옹기 하나를 들여놓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 따라나선 아들이 고마웠다. 아들도 말은 안하지만 탑을 찾는 아비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역광으로 찍은 윗사진이 더 보기에 좋다. 그러나 자세히 보기 위해 밝은 쪽에서 한장 더 찍었다.
쌓은 돌 사이의 줄눈에 회를 발랐다. 빗물에 녹아 군데군데 흰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1박 2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휴가를 낸 것이다.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했다.
6개월의 1학기 동안 고생하여 얻은 방학인데 남들 다가는 해외여행도 가지 못하고
그것도 1박2일의 짧은 국내여행이라니…..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아픈것이 문제였으며
나라가 어렵다고 공직자의 해외여행을 자중하라는 메세지도 있고 하여 국내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기간이 짧은 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사실 떠나기 이틀 전에도 어머니 때문에 결정하지 못할 정도였다.
어디로 갈것인가?
이것도 순전히 내가 결정하였다.
가장의 의사를 존중하여 내가 경북지방의 탑을 보러 가자는 제의에 동의해 주었다.
무엇 보다 둘째아들 석영이가 여행에 동참해준 것이 고마웠다.
자연과학도에게 1300년 전 돌탑을 보러간다는 것이 무에 반갑겠는가?
석영이도 영양의 돌탑에 도착했을 때 ‘이게 뭐야’ 이걸 보러 400km를 달려왔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경북지방의 전탑을 보러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전탑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모든 탑의 종착역은 단순철창의 극치미를 보인 불국사 석가탑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었다.
떠나기 전 책을 통해 그림을 보면서 안봐도 되지않을까? 그냥 지나쳐 버릴까? 이런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전탑을 보러 떠난것은 우리나라의 웬만한 중요한 탑은 모두 보았으니 이제 전탑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쇠고기 먹다 물린 사람이 돼지고기 찾듯이……
전탑이란 흙으로 벽돌을 구어 만들고 그것으로 건물을 짓듯이 차곡 차곡 쌓아올려 탑을 만든 것이다.
경주의 분황사탑, 신륵사의 전탑을 본적이 있는데 볼 때마다 예쁘지도 않고 그저 그렇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180도 바꾸어 놓은 탑을 이번 여행에서 발견하였으니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391-5번지에 있는 국보 187호 봉감모전5층석탑이다!
오!! 보는 순간 물건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 이런 탑을 이제야 보다니 나의 우둔함은 정말 끝이 없다. 집에서 그림으로 보고 말았다면 어쩔 뻔했나?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처럼 네모지게 다듬어 탑을 만든것이다.
수성암의 검붉은 색도 아름다웠으며 강이 굽이쳐 흐르는 냇가의 풍경과 어루러져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탑인데 그렇다면 불국사 석가탑과 시대가 별로 차이도 없다.
석탑의 완성이라는 불국사 석가탑을 만든 시기에 전탑을 고집했던 천재적 장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 진것이 틀림없다.
1990년 해체 수리할 때 사리구를 보관했던 석함의 일부를 발견하였는데 아마도 언젠가 해체 수리된 경험이있고
그 때 안에 있던 사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깨진 사리구 석함을 탑안에 채우는 돌로 이용했던것 같다.
원래 탑이란 그 안에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보관하기위해 만든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전탑을 두개 더 보았는데 이것을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은
나머지는 전탑에서 석탑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는 탑이고
이 탑이 순수한 전탑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을 찍는 순간 하늘도 맑고 아름다웠다.
1300년 전에 이렇게 장대한 탑을 만들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 이탑을 만든 장인은 탑을 완성하고 나서 하늘 높은 맑은 가을날
전체 높이 11m의 탑을 우러르며 얼마나 감격했을까! 볼수록 아름답고 장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