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기♠ 당분간 어려운 일은 없고……

사랑하는 나의 아들 안녕!

아빠는 어제 아주 큰 행사를 치루었단다.

교육원에서 일년에 4번 열리는 장학협의회였는데

행사의 사령탑이 아빠였단다.

외부에서 많은 손님들이 오시고

행사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준비하느라 아주 힘들었단다.

행사는 아주 잘 끝났고

성공적으로 일을 치루었기 때문에

아빠를 다시 한번 드러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단다.

이제 한 일주일간은 어려운 일이 없고

5월 중순부터 또 다른 행사가 있는데

이제 서서히 그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해야한다.

공직 생활은 어쩌면 끊임 없이 과제가 있어

한가지 일을 해결하면 또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단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한번도 쉼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큰 아들을 생각하면 힘들지 않단다.

아들아 오늘 아침 너와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니

오늘 하루가 좋은 날이 될것 같구나

아들아 사랑한다.

조국에서 아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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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아들도 이 꽃을 알 것이다.



 



 



아들은 옥스퍼드 대학원에서도 최종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결국 7개 대학원 모두에서 합격소식은 없었다.


전자공학으로 지원했으면 가능했을 것이다.


갑자기 경영학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먼 타국에서 실의에 잠겨있을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격려전화를 하였다. 인생 80년에 입시에 한번 낙방한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해주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당부하였다. 아들은 매우 자신감에 차있었다.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뜻으로 들렸다. 다행이었다.




마루에 있는 난에 꽃이 피었다.


꽃이 어떻게 계절을 아는지 신비롭기만 하다.


마당에 내놓은 것도 아닌데 마루에서 어떻게 봄이 온것을 아는지……


 


20년 이상 집에서 기르고 있는 난이다.


아들이 5살 때부터 기른 것이다.


여러 번 새끼를 쳐서 집안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아들도 이 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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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멸공의 횃불


 


< 출발할 때는 아무런 빛이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고, 돌아와서 한참 지난 후에 동이 트는 붉은 기운이 보여 찍었다>



 



오늘부터 금년 학기 교육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동안 매일 아침 06:00에 산에 올랐지만


오늘부터는 06:00에 교육이 시작되니


05:00부터 운동을 시작하였다.




05:00 정각에 방에서 나와 마당에서 국민체조 2회 반복으로 몸을 풀고


500미터 쯤 도로를 걸었다. 사방은 고요하고 깜깜하였다.


다행히 동네의 불빛이 조금 있어서 그것에 의지하여 걸었다.




산에 오르는 지점에서부터 개사육장에서 수십 마리의 개들이 짖어대는데


오늘은 너무 이른 탓인지 한 마리가 두어 번 컹컹 짖어대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산에 오르다가 전진이 어려우면 다시 내려오리라 마음먹고 올라갔다.


그런데 끝까지 오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희미하게 나무가 없는 사이로 뚤린 공간이 보였는데 그게 길이었다.


결국 산길은 나무가 없는 사이를 연결한 것이었다.


낮에는 익숙한 길이었지만 밤에는 정말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몇 번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얼굴에 나뭇가지가 부딪쳤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사람이 나오면 어떻하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그래 노래를 부르자 무슨 노래? 씩씩한 군가를 부르자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폭탄의 불바다를 무릅쓰고서


고향땅 부모형제 내일을 위해


전우야 내 나라를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아래 목숨을 건다.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였다. 누가 전방의 등산로에서 내려온다면


내 발자욱 소리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이 시간에 산에 오르는 사람이라면 분명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무서워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안양초등학생 살해범과는 전혀 다른, 근처에도 가지 않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을 소리쳐 외쳐줌으로써 상대를 안심시키고


동시에 나 자신도 어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함이었다.




교육원 뒷산에는 산비둘기가 많이 사는데 올라가는 도중에 다섯 번 쯤 놀라서 날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깜깜한 밤이라 그런지 한번만 푸드득 날아 가고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둘기도 깊이 잠든 모양이다.




핸드폰이라도 가져올 것을…. 핸드폰을 열면 그 빛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 당장 랜턴을 하나 장만해야 겟다. 후래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중간 쯤 올라가니 사방은 더 어두워 졌다.




아래 녁은 그래도 동네의 불빛이라도 있었으나 이제는 아무 빛도 없다 하늘에는 달은 물론 별도 없다.


정말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그래도 나는 전진하였다. 여기서 말수는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걷고 또 걸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려오는 길도 어두웠다. 경사로를 내려오면서 미끄러질 위험은 더욱 컸다. 군가를 계속 불렀다. 중간 쯤 내려왔을 때 무언가 변화가 감지되었다. 딱히 날이 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검은 공간에서 짙은 회색의 기운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빛이다!


 


태초에 빛도 이렇게 왔을까? 여명이었다. 해가 뜨기 전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돋는 것은  해돋이 일것이지만 이것은 해돋이와는 달랐다. 무언가 어두움 속에서 빛이 생긴다는 회색의 느낌 ! 이것이 분명 여명일 것이다. 여명을 통해 걸음은 쉬워졌다. 군가를 계속 부르는 내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시인인 내가 30년 전의 군가만 계속 부른대서야 말이 되는가? 바꾸었다. 돌아오라쏘렌토로를 목청껏 불렀다. 10 번 쯤 부르니 산 아래 길이 보였다. 드디어 길로 내려섰다.




여전히 길도 어두웠다. 그런데 어둠속에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그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돌아오라쏘렌토로를 계속 부르면서 따라갔다. 그 사람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자전거 도로를 걷던 그 사람이 갑자기 차도로 들어섰다.


나에게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길을 바꾸는 것이었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 지고……순간 그가 나를 불렀다. “연구사님!” 식당에서 일하는 강계순씨였다. 아침을 지으려 새벽에 출근하는 중이었다. 앗 강계순 아주머니! 무서웠지요? 네 조금….그러나 찬송가를 부르셔서 덜 무서웠어요. 네! 아아! 네(찬송가 아닌데……ㅎㅎㅎ) 집에서 걸어다니세요? 네,  20분 걸려요, 왕복 40분 걸리는데 매일 걷는 것이 좋아요 네, 맞습니다. 걷는 것이 제일 좋지요.




교육원 마당에 도착하였으나 아직도 어둠이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부원장님이 물으셨다.


혹, 아침에 산에 오르셨습니까?


네, 다녀왔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50 넘으면 먼저 가는 사람이 형님입니다.


혹, 어두운 산길에서 무슨 일이나 생기면 어쩌실려구요


혼자 밤길에 산에 오르지 마세요 조심하세요……




별 문제 없다.


이봉주는 40세에마라톤 풀코스도 뛰는데


그까짓 뒷산을 60분 오르는 것이 뭐 대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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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breakfast


배추김치,


배추김치와 함께 있는 무우상치,


계란말이 두개,


고등어조림,


오징어국,


콩밥


오늘 아침 선비의  아침 식사다.


이렇게 반년을 먹고 나니 4kg 늘었다.


 


식사량이 많은가?


왜 체중이 늘지?


아마도 운동량이 부족하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지난 두 달 동안 다리 부상으로 운동을 중단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것이다.


 


나는 이렇게 3끼를 먹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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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morning training



 



 



내가 매일 아침 06:20-07:30분까지


 


70분 동안 올가갔다 내려오는 산길이다.


 


마지막 사진은 덕정산 정산에서 찍은 일출이다.


 


내려 올 때는 어제부터 뛰어서 내려온다.


관절에 약간 무리가 가는 느낌이 든다.


아프다고 생각되면 뛰어내려 오는 것은 바꿀 생각이다.


 


어제가 경기마라톤 신청 마지막 날인데


하루 종일 생각하다가


오후에 관절이 아픈듯 하여 그만두었다.


꼭 달리고 싶었는데….


 


다리 부상만 아니면 충분히 연습했을 것이고


출전이 가능햇을 것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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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현무[玄武]를 찾아가다.


 



 




현무를 떠나보낸지 한달만에


오늘 정무학 교장선생님 댁을 방문하였다.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셋이 찾아갔는데


사실 가면서 현무가 우리를 몰라보면 어떻게하나 하고 내심 걱정하였다.


 


그러나 기우였다.


현무는 우리를 보자 마자 반가워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정무학 교장님은 한달이나 밥을 주고 산책을 함께 했는데도 불구하고


잘 따르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으르렁거린다며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는 진돗개의 습성이


그대로 나타난 개라고 하며 손사레를 치셨다.


아직도 현무를 다룰 때는 팔꿈치 까지 올라오는 대형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새끼를 나면 새끼를 기를것이니 현무는 도로 가져가라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이 저녁마다 산책을 시킨다면 좋은 집에 입양을 시킨것이 틀림없다.


복에 겨운줄도 모르고 새주인을 따르지 않는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도로 가져다 기를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오늘 다시 보니


정말 한마리 검은 표범을 연상케하는 날렵한 모습이


너무도 늠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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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말씀


 


내가 결혼식을 올린 교회는 수원성교회다.


결혼 후 오랜동안 수원성교회를 다녔다.


 


그런데 수원성교회는 도심에 위치한 관계로


주차시설이 부족하여 여러가지 불편이 많고


또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주거 인구가 감소하여


결국 수년전에 아파트가 새로이 들어서는 외곽으로 이전하였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오고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여러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그리하여 작년에 집 가까이에 있는 교회를 찾아갔는데 수성교회였다.


수성교회의 장점이라면 김용국목사님의 말씀이 좋다.


그는 스피치의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말씀도 깊이가 있다.


그리고 덜 교회스러운 점도 좋다(?)


언젠가 목사님에게 덜 교회스러운것이 좋다고 했더니


요즈음은 교회스럽게 설교를 하기도 한다.


하여튼 이 교회가 좋다.


교회의 규모는 크지 않고 중간정도인데 예배시간에 빈자리가 없어서


보조의자를 놓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찬다. 조금 늦게 가면 편한 자리는 없다.


교회가 규모는 보통이나 활력이 넘친다.


 


그런데 예배 끝나고 나오면


맨 앞에서 목사님이 악수을 청하고(목사님하고 악수하는 것은 아주 좋다)


지하 예배당에서 올라오는 계단에서


알지도 못하는 장노 10여 명이 높은 계단에서 내려다 보면서 악수를 청하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는다.


그냥 조용히 나가게 내버려두면 좋을텐데…..


장노들도 그냥 인사만하면 좋을텐데 왜 손을 잡으려 하는지모르겠다.



 


내가 인품도 알지 못하는 장노들에게 매주마다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하 예배실 계단에서 올라오면서 


위쪽 계단에 서서 손을 내미는 장노들과 악수를 하다 보니


머리를 숙이면 자동으로 허리까지 숙여지게 된다.


올라오는 등구부린 자세에서 고개를 숙이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생각다 못해 요즈음은 꼿꼿 장수 김장수 처럼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장노들과 악수한다. 오히려 머리를 뒤로 제키고, 그대신 미소는 지으면서


바쁜데 수고들 많이 한다는 표정으로 악수를 해준다. ㅎㅎㅎ


 


폼잠고 있는 장노들! 조낸 짜증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기도하러왔지 장노들 모시러 온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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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냉이 캐는 할머니


<철종외가 바깥 모습>


 



 





 <겨울에도 우물은 온기가 있어서 이끼가 살아있었다>


 


엊그제 철종외가에 다녀왔다.


철종4년(1854년)에 지어진 집으로


철종의 외숙 염보길이 살았던 집이다.




내가 원래 한옥을 좋아하여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함께 근무하는 동료 곽봉준 연구사님이


딸의 교과서에 철종외가 사진이 나온다고 하면서


한번 같이 가자고 하여 일과가 끝나고 방문하였다.




곽봉준 연구사님은 지덕을 겸비한 분으로 전공분야에도 내공이 깊지만


무엇보다도 인품이 훌륭한 분이다. 좀처럼 나서지 않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실력이 드러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동료들이 닉네임을 곽진국으로 붙였을까!






철종외가 옆 밭에서 냉이를 캐는 75세의 할머니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염보길의 후손이었다.


그리고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는데 금년 93세라고 하였다.




철종외가는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가서 자세히 보았는데


우물이 인상적이었고, 매헌서당 현판이 붙은 건물의 솟구친 처마가 아름다웠다.


 



철종! 사도세자의 증손자다.


사도세자의 세자빈 혜경궁 홍씨가 낳은 아들은 훗날 정조임금이 되고


사도세자의 후실에서 낳은 아들이 3명 있었는데


두 아들은 귀양 가서 죽고 나머지 하나가 살았다.


그가 아들 둘을 낳았는데 큰아들은 역모로 몰려 죽고,


아버지와 작은 아들이 강화로 귀양을 오게 되고


부인과 며느리가 천주학을 믿는다 해서 참수당하고 시아버지도 함께 죽임을 당한다.


졸지에 작은 아들이 낳은 두 형제는 고아가 되었는데


형은 똑똑하고 동생 이원범은 무지랭이 총각이었다.




안동김씨 외척의 세도가 떨치던 시절


똑똑한 왕손은 모두 학살의 대상이었다.


결국 원범의 형은 역모로 몰려 죽었다.


헌종임금이 후사가 없이 죽자


안동김씨들이 힘없는 왕을 모시려 궁리한 끝에


강화도에서 부모도 없이 거지처럼 살고 있는 이원범을 왕으로 옹립하니


이가 강화도령 즉, 철종이다.


머리에 있는 기억으로 글을 쓰니 고증이 부족하다. 나중에 고치겠다.




철종은 19세에 왕이 되어 33세의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데 부인을 여럿 두었지만 불행하게도 자식을 두지 못하였다. 안동김씨의 세도아래 바보 흉내를 내면서 숨죽이며 살던 흥선대원군이 아들을 고종으로 올립하고 나서  상갓집 개처럼 살던 대원군의 복수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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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충격

그러니까 지난 3월 1일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에서 3.1절 기념식이 열렸다.


경기교육자원봉사협회에서 주관하고 보훈청에서 후원하는 행사였다.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참석하였다.


 


오늘 관련 사진을 메일로 받았는데


사진에 나온 내 모습을 보고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요즈음 나는 사진의 피사체로 서 있는 것이 불편하고 걱정스럽다.


사진을 볼 때마다 너무 낯선 사람을 보는 듯 하다.


하긴 50대 중반이니 이제 중년을 넘어서 아주 늙어가는 단계인데


나 자신이 늙은 내 얼굴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사진은 너무 늙게 나왔다.


 


멀리서 촬영한 것은 그런대로 봐 줄만한데


가까이서 찍은 것은 끔찍할 정도로 늙었다.


음……늙은 사진도 내가 틀림없으니 그냥 올려본다.


 


내 모습이 이런걸 어쩌랴,


하긴 엊그제 인터넷에서 가수 신중현을 보았는데


머리가 백발의 할아버지였는데도 그런대로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남이 늙은 것은 그런대로 봐주면서


왜 나에게는 용서가 안되는 걸까?




 


 


고개를 숙이고 있다보니 볼 밑으로 주름이 잡히고 목에 여러겹의 주름이 잡혔다.


 


 



 


멀리서 찍으면 잘 모른다!



역시 멀리 보이는 사진이라 주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멀리서 찍어야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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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아름다운 꽃을 바람처럼 날렸고,

30 여년 전 아버지는


마당가에 살구나무 한 그루를 심으셨다.


이른 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온 몸을 붉게 물들이며 아름다운 꽃을 바람처럼 날렸고


어머니는 매년 동네 사람들에게 살구를 따서 날랐다.


 


살구나무는 크게 자라 가지의 절반이 동네 골목길로 뻗어나가


동네 사람들 눈에 낯익다.


먹을 것이 넘치는 이 시절에도


동네 사람들은 빼곡히 열리는 살구나무에 다정한 눈빛을 보낸다. 


 


그 살구나무가 외로울까하여


가로등에 빛이 올랐다.


 


흥! 재개발 한다고……


 


< ixus400 canon 카메라로 후레시 없이 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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