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중씨가 엮은 “청소년 시와 대화하다”를 읽었다.
우리 나라 시인 60명의 시를 한 작품씩 실었는데 청소년 필독도서로 목록에 낄만한 책은 아니다.
그냥 한번 읽어볼만 하기는 하다. 책에서 마음이 가는 시 두편을 적어본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
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초등학교 5학년 때
콩밭 열무가 실하였다. 밭에서
뽑은 다음 가지런히 키를 맞추고 짚으로 허리를
동여매어
열무단을 만들었다.
잎은 초록빛 삼태기 산을 닮아 녹색물이 뚝뚝 떨어질듯 진했고 뽀얗고 날씬한 허리와 다리는 눈부시게 예뻐서 훗날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본 아까씨들의 캉캉 춤 다리 보다 더 빛났다
.
새벽에
열무 100단을 리어카에 실고 천안 장터까지
9km를 끌고갔다.
어디서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랐던 소년 맹기호는 손쉽게 야채 도매상에 한 단에 7원씩 넘겼다.
700원을 손에 쥐고 다시 9km 거리를 비포장 도로에 털렁거리는 리어카를 끌고 오면서 열무가 7원이면 너무 싸다는 생각을 했다. 음…기형도 엄마도 열무를 이고 장에 갔구나
기형도의 시를 읽으면서 나를 이세상에 맨 처음 데려온 그녀…..맹기호의 엄마 공정숙을 생각한다……
평생을 병객으로 사시면서 늘 나를 애태우는 분이다. ㅎㅎㅎ~
좋은 일은 늘 터저나가게 하지만 남의 험담을 하지 않으며 남의 나쁜 일은 절대 소문내지 않는 분이다.
작은 키에 한없이 마음이 너그러우신 분,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분이다.
지금도 김치통을 들고 동네 혼자 사는 노인들의 집을 몰래 드나드신다.
학교도 안다닌 분이 어디서 그런 인품이 길러졌을까? 시골에 살 때 부억에서 끓는물은 식혀서 버리셨다. 부억물 나가는 곳에 벌레가 죽은다고…..
엊그제는 부부가 모두 가출하고 남매만 남은 집에 김치를 주랴고 물었더니 아직 3통이나 있다고 하여 그만 두셨단다.
감나무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 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튀워 보는 것이다.
감나무가 집을 떠난 주인이 그리워 가지를 사립문 밖으로 뻗는다고? ㅎㅎㅎ~
충청남도 아산에 내가 심은 밤나무는 내 생각을 할까? 40년이나 지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