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가는 꽃

 

게발선인장이다. 다른 꽃은 대개 봄에 피는데

게발선인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말에 피었다.

나는 이런 꽃이 좋다. 엄동설한에 꿋꿋하게 꽃을 올리는 이런 꽃이 좋다.

시간 차를 두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 아침에 만발하였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기르시던 꽃이다. 사람은 가도 꽃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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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윤주, 맹유주

갤러리는 1개의 사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석영이가 딸 쌍둥이를 낳았다. 정확하게는 뚤째 며느리가 딸을 낳았다. 2020. 12. 24. 08:00 단국대학교 병원 산부인과에서 낳았다. 정말 사랑스럽고 예쁘다. 내가 딸이 없어 섭섭했는데 이번에 손녀를 쌍으로 보게 되었다. 태어 난 지 3시간 후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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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간

그동안 수원문학의 편집장을 맡아 왔는데 기실 편집장 보다는편집 주간이 편집회의를 주재하고 편집 방향을 제시하며 이끌어 나간다. 이번에 우여곡절 끝에 편집주간을 맡게 되었다.사실 내 자신 적임자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적임자가 맡는 날이 오면 언제든지 물러나겠다는 전제하여 떠밀려 맡게 되었다.

200여 명의 문인들이 모인 수원문학은 편안한 날이 없을 정도로 말이 많은 단체다.

어쩔 수 없이 편집 주간을 맡는 바람에 회원들의 원고를 두번 정독하였다. 책이 나오기 전에 편집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그리고 말미에 편집 후기를 써서 인쇄소에 넘겼다. 이제 인쇄 가본을 받아 몇 번 교정 작업을 거치면 12월 말 쯤 책이 나올것이다.

난필이지만 여기에 편집 후기를 올린다.   편집 후기를 올려본다.

수원문학은 2017년 이후 계간지로 이어져 왔다. 금년에는 외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계간을 이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정명희 수원문학 회장은 다른 것은 못해도 발표의 장을 제공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앞장서서 독려하였다. 감사하게도 오늘 겨울호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한 해 동안 좋은 작품을 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린다.

이창식 고문께서 원고지에 클래식한 느낌의 육필 시를 써주셨다. 먼저 가신 백봉 안익승 선생님께 인사를 고하며 머지않은 시간에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는 대목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든다.  구순의 나이에도 정론의 필력을 휘두르는 님을 보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배우게 된다. 이창식 고문님은 6.25 북한의 남침 전쟁에 국군 소대장으로 용맹을 떨친 참전 용사이기도 하다.

지상갤러리에는 경기 화단의 원로 이선옥 화백이 선뜻 그림을 내주어 수원문학의 품격을 높였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솔직한 사실화 풍을 견지하고 있어 후배들을 감동시킨다.

수원문학 대상은 30여 년간 꿈과 희망의 동화를 써온 임옥순 작가가 수상하였고,  가슴으로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시를 쓰겠다는 김순천 시인이 수원문학인상을 수상하였다. 밤늦게까지 책을 보시던 아버지를 따라 자폐아처럼 글을 쓴다는 김경은 시인이 수원문학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소시집은 이상정 시인이 그동안 발표한 11권의 시집에서 한 편씩 뽑았다.  시인이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끊임없이 탈출하려 했던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 문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탈출과 자유라 했다.

43호부터 수원문학의 평론을 맡아 섬세하고 예리한 눈으로 문학을 진단하는 윤형돈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그의 방은 엄청나게 쌓인 폐지 더미로 압사 직전이라 했다.

이혜정 시나리오 작가가 입원한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얼마 전 겨울호 편집 회의에도 참석하였다. 많은 문우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눈물을 뿌렸다.

맑은 햇살같이 환하게 웃던 그녀의 미소가 떠오른다.  회원들이 낸 겨울호 원고를 두 번 천천히 완독하였다. 읽으면서 작품에서 고독한 겨울을 보았다. 겨울은 천지간에 홀로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겨울은 나 자신이 혼자이며 그래서 고독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한다. 그것은 겨울의 힘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리 물어도 대답은 없고

여기가 어디인지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는 이 없고

왜 여기와 있는지 아무리 물어도 더더욱 말 없으니 —「정재희 무 (無)」 부분

대답이 없어도 좋다.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그 길을 가는 것이 문인이다. 겨울의 힘은 마지막 떨어지는 단풍을 보면서 그동안 묻어두었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차가운 바람이 가져다준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본질과의 해후는 눈물겹다.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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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건강 식품

 

 

미국의 건강 매거진 더 헬스지가 선정한 세계 5대 건강식품 중 하나가 김치다!

우리집은 1년에 김장 한 번 담그는 것으로 끝이다. 집사람이 김치를 여러번 담그는 것을 힘들게 여겨

1년에 딱 한 번 대공사를 한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석박지김치를 담갔다.

 

아주 맛잇게 김장이 완성되었다.

지금도 맛이 좋은데 앞으로 숙성되면 얼마나 더 맛있을지 겁이 날 정도로 맛있다.

올 해 김장은 대 성공이다. 하루 종일 걸렸다. 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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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다산 정약용 생가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양평 정약용 생가에 들렸다.

생가에는 여유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는데 그렇게 지은 연유를 다산이 설명하는 글이 있어 여기에 옮겨적는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 속에 담겨 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한다.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나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의 말에 여( 與)는 겨울의 내를 건너는 듯하고 유(猶)는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거라 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깍는 듯 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500여권의 저술을 남긴 다산 정약용도 자신에게는 만족함이 없었던 모양이다.

다산은 자신을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 위와 같은 표현을 썼으리라 생각했다.

나야말로 머리에 들은 것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는 그런 사람이다.

다산이 자신을 저렇게 표현했을 진데 그렇다면 나는 어쩔것인가? 상상하기 두렵다.

500권의 저서를 남긴 다산에 비하면 나는 앞으로 남은 내 생에 몇 권이나 더 낼까?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더하여 2세기 이상 새로운 문명 생활을 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한량없다.

과거 목민심서를 학생용으로 읽었는데 언제 제대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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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 성당

수원문인협회에서 시낭송, 시창작 강의를 하고 있는데 12일 연수를 가자고 하여 강원도에 다녀왔다.

팬션에 머무르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강의도 했다.

그리고 팬션 주변에 있는 풍수원 성당을 보았다. 성당은 한국에서 4번째로 지어진 성당이고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풍수원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또는 1803년 무렵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우촌이다. 이후 풍수원 교우촌에서는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 왔으며,

1866(고종 3, 병인년) 교회 대박해(병인박해)1871(고종 8)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하여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프랑스인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대주교가 1888620일 이곳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프랑스 출신 르메르(Le Merre)이 신부가 부임하여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 후 고종 33(1896)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18931943) 신부가 부임하여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 진 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벽돌 연와조 120)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건축 양식은 고딕 양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게끔 줄눈을 그려 넣었다. 

풍수원 성당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 현양 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1회 성체 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한국전쟁으로 인해 건너 뛴 3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왔다.

성당 건물은 아름다웠다. 이런 오지에 성당이 있는 것도 신기하였고 1888년 프랑스 신부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크리스트교도는 아니지만 보다 더 낮은 곳으로 임하여 복음을 전파하려는 성직자들이 정신이 새삼 존경스럽다.

풍수동 성당. 성당 유물관을 구경하고 팬션으로 돌아와 한우 불고기를 곁들인 저녁을 먹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을 보고 고마웠다. 맥주와 막걸리도 마셨다.

팬션에는 노래방 기계가 있어 모두들 흥겹게 놀았다. 이상정 부회장의 색소폰 연주도 좋았고

한미숙 시인의 신랑은 성격이 정말 좋아보였다. 사회적 친화력이 대단한 분이셨다.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노래실력이 대단하였다.

 식사와 노래를 끝내고 나서 문학 연수에 들어갔다.

나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이승하교수가 뽑은 우리나라 아름다운 시를 해설과 곁들여 읽으면서

시 창작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금년에 경기수필 작품상을 받는 나의 수필 ‘겨울이야기’를 수강생들이 돌아가면서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팬션 주변 산길 산책으로 5000보 걸었는데 이상정 수원문협 부회장님이 동행하였다.

팬션에서 아침 밥을 먹었다. 양평에서 제일 좋은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셨고 돌아오는 길에 다산 정약용 생가에 들렸다.

잠자리도 괜찮았고 여러 끼 좋은 음식을 대접받았다.

고맙고 감사한 연수였다. 

집에 와서 씻고 무게를 재보니 너무 잘 먹어서 체중이 늘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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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뒷면도 아름다웠다. 110년 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짓다니 놀라웠다.

나는 제대로 된 내 집을 지어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 한심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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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얻어서 집을 사면……

 

 

아들은 원래 아파트를 갖고 있었는데 펀드매니져가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은 치욕이라고 하면서

아파트를 팔고 그 돈을 굴리면 더 수익이 난다고 하면서 아파트를 팔았다.

거주를 위해 아들은 단독주택 월세를 구해 들어가 살고 있다. 월 200만원 이상 내고 산 지 여러 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집 값이 오른다면서 은행 이자보다 더 가파르게 집 값이 오르니 단독주택을 사야겠다는 말을 했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주거 시설은 대세가 아파트다.

그러나 서양은 다르다.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어느정도 안정된 중년 이후의 사람들은 거의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선호한다.

그런 단독주택은 대개의 경우 아파트보다 비싸다. 아들은 성장하는 자녀를 위해서도 단독주택을 선호해 왔다.

 

오늘 아들에게서 그동안 월세 살이를 끝내고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샀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나라도 30년 동안 분할 상환하는 제도가 유행인데 서양도 그런 모양이다.

집 값의 40%를 내고 나머지 60%는 25년 동안 분할 상환한다고 한다.

빚을 얻어서 집을 사는 격인데 이게 잘 하는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집값이 오르면 좋지만 내려가면 낭패를 본다.

 

집값이 너무 가파르게 올라 하는 수 없이 지금 집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샀다고 하니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1층은 거실 공간이고 2층이 침실이라고 한다. 반 지하에도 한 가구가 살 수 있는 시설이 있다고 한다.

반 지하에 월세를 놓으면 매월 불입금의 40%는 충당이 된다고 한다.

우한 코로나 끝나면 가볼 일이다.

아들도 빚을 갚아 나가려면 힘겨우리라 생각된다.

아들! 아직 젊으니 힘내라! 수고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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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산 집의 전경이다. 멋있어 보인다. 집 앞의 나무가 너무 커 보인다. 자르거나 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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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낙엽이 떨어져 쌓인 부분이 정원이다. 정원이 조금 좁은 듯하다.

왼쪽 맨 밑에 보이는 지붕이 차고이다. 검은 분리수거함이 보이는 면적에 2대의 노상 주차도 가능하다고 한다.

옛부터 울안에 큰 나무를 심지 말하고 했다. 담장 안의 나무가 너무 커 보인다. 베어내고 적당한 관목으로  바꾸는 것이 맞다. 분리수거함 옆에 있는 침엽수도 너무 크다.

담장 안에 교목을 심는 것은 바람직 하지않다. 교목을 베어 내고 관목으로 교체해야 한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개나리, 남천, 나무수국 등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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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가 보여 장작을 때느냐고 물었더니 그것 아니고 전기로 점화하는 전기 난로라 한다. 우리나라 보다 전기 요금이 비싼데 요금이 많이 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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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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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름 정원의 모습이다. 오른편에 바베큐를 할 수 있는 도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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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전경이다.

도시 계획이 잘 되어있는 구역으로 보인다.

도로의 코너에 있는 집이다.

지붕 꼭대기에 수평면이 있는 것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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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

일반적으로 아침은 07;00에 내가 차린다. 어머니와 둘이 겸상이다.

아침 밥을 먹고 난 후 소반에 아내의 아침상을 차려준다.

08:30에 아내를 깨운다.

주간보호센터에 가시는 어머니의 옷차림은 아내의 몫이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내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 담당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어느날 백화점에서 어머니 내복을 사야겠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감사한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어머니 목욕을 도와주는 것도 아내의 몫이다.

내가 어머니 아침 식사를 책임지지만 아내의 역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08:50이 되면 나는 어머니를 길가 차량 탑승지점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나간다.

그 시간에 아내는 아침을 먹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이다.

점심은 주로 아내와 둘이서 간단한 외식을 한다.

비빔국수집에도 가고 어떤 때는 김밥집에도 간다.

저녁식사는 아내가 차린다. 아무래도 아침식사보다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수고가 많다.

아침에는 저녁에 아내가 만든 반찬으로 식사하는 경우가 많고 저녁에 비해 아침 식사는 간단하다.

점심에 가끔 우리동네 아파트 공사현장 근처에 있는 함바집에 가기도 한다.

집에서 먹기 어려운 반찬이 골고구 있어서 좋다.

많은 사람이 먹는 함바집의 재료는 싱싱하다. 그래서 또 좋다.

다만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 건설 노동자들이어서 여성이 거의 없는 식당에서

아내는 시선을 부담스러워 한다. 오늘도 큰 식당에 점심을 먹는 여성은 두명 뿐이었다.

아내를 공사장 식당으로 데려오는 것에 대하여 나도 약간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런데 주변 식당의 대부분이 고기집이고 맨날 고기만 먹을 수도 없고

이런 함바집은 집밥과 같은 부류여서 가끔 오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 새로 찾은 함바집은 부페한식 스타일인데 접시도 크고 종류도 정말 많다.

나는 아주 좋았다. 반찬 숫자가 너무 많아서 전체 종류의 2/3만 담았다.

다만 백미밥이 아쉬웠다. 나는 집에서 100% 현미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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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태탕에 짜장소스도 있다. 짜장에는 돼지고기가 충분하게 들어있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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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vorite food

곱창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살아생전 곱창을 잘 드셨다.

사람은 자라면서 가족 안에서 음식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평생의 입맛에 영향을 끼친다.

 

소곱창은 쫄깃한 식감도 좋고 안에 있는 곱이 아주 고소하다. 그래서 나는 곱창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돼지곱창은 먹지 않는다. 돼지 곱창 특유의 분변 냄새 때문이다.

또한 요즘 유행하는 막창이나 대창도 먹지 않는다. 막창, 대창은 사실 안에 곱이 없고 창자를 뒤집어 밖에 있는 기름을 안쪽으로 위치하게 하여

마치 그 안에 있는 기름을 곱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방을 먹으니 맛은 고소하지만 기름 중에서도 아주 나쁜 기름이다.

단언컨데 막창이나 대창은 인간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 재료 자체를 버리는게 맞다.

 

사실 소곱창에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름이 붙어있다.

그러나 자주 먹는 것도 아니고 일년에 두세번 먹는 것이니 크게 문제는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맛있게 먹는다.

 

수원에 곱창요리로 유명한 ‘입주집’이라는 음식점이 있는데 몇 년 전에 갔을 때 개인당 1인 분 이상은 팔지 못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놀랐다.

곱창 재료가 딸려 1인 분 이상은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후 수입곱창이 늘어나 창고에 재고가 엄청나게 쌓였다는 텔레비젼 뉴스을 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잘 드셨는데 집사람은 신랑이 만든 요리이니 정성을 생각해서 한 첨 먹는다며 징그럽다고 호들갑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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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 2

    가을의 기도     / 맹기호

마지막 단풍마저 떨어진
앙상한 고목 옆에 섰습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쇳소리를 내며 내달립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천지 간에 홀로임이 느껴집니다

지난여름 동굴 속에서의
저의 오만한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차가운 바람이 가져다준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본질과의 해후는 눈물겹습니다

이제 아무도 없는 밤으로 가겠습니다
제가 살아온 깊이만큼만 앉으려 합니다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45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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