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무리 사진이다. 눈부시다.

고려청자 햇무리다완이다. 비색이 아름답다. 인터넷에서 따온 사진으로 투명한 비색이 환상적이다. 최고 명품이다. 밑굽에 3개의 흰색은 구울 때 여러 개를 포개고 붙지 않게 넣은 규석 받침이다. 언젠가 이런 명품을 한 개 갖고 싶다^^ 중국 청자에는 없는 투명하고 청아한 한 비색이 일품이다.

내가 갖고 있는 햇무리 다완이다. 11C 전남 강진에서 만든 것이다. 형태는 햇무리굽다완이 맞는데 빗깔이 좋지않다. 산화가 많이 진행된 것이다. 대부분의 도자기는 무덤 출토품인데 흙에 오랜동안 뭍혀 있다보니 산화된다.

안쪽을 찍었다. 왼편에 쪼개진 것을 접착제로 붙인 흔적이 보인다. 산화가 되기는 했지만 11C 강진에서 생산된 햇무리청자다완이 틀림없다.

세워놓고 찍었다. 유약이 덜 뭍은 곳이 보인다. 1000년 가까이 된 물건에서 이 정도는 흠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도자기는 색깔이 제일 중요한데 이건 산화되어 청자의 빗깔이 많이 변했고, 수리한 것이다. 깨진 것을 붙인 자기는 아주 헐값이다. 그래도 좋은 기회가 있어 아주 싸게 구입하였다. 흠이 있는 도자기는 정품에 비하여 말도 못할 정도로 싸다. 5만원에 구입하였다. 흠이 있지만 1000년 된 물건을 만져보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중국 9C~10C 월주청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집트의 고대유적지에서 월주청자의 햇무리굽 다완이 발견되었는데 그만큼 월주청자는 세계에 귀중품으로 수출되었다. 9C 중국은 세계를 경탄시키는 자기를 만드는 유일한 나라였다.
그런데 중국에만 있다고 믿었던 청자가 11C 고려에서 생산되었고 미륵사지에서도 출토되었다. 11C 고려햇무리다완은 굽이 약간 좁은 형태였다. 바다 속에서 발굴된 청자에서 중국 청자와 같은 명문이 나온 것으로 보아 고려에서는 처음에 월주청자를 모방하여 청자를 만든것으로 보인다.
고려청자가 중국청자와 다른 것은 중국 청자는 비색이 불투명한데 비하여 고려청자는 투명한 물빛이라는 점이 장점으로 다르다. 강진은 고려청자에 알맞은 흙과 물을 가진 곳으로 500여년간 왕실에 청자를 공급하였다. 고려청자 비색의 비밀은 불과 공기의 싸움에서 흙가마에서 소성시 공급되는 산소의 양을 통제하는데 있다.
12C 고려는 태토를 칼로 파내고 그 속에 다른 색의 흙을 집어넣어 만드는 상감기법을 개발하여 그 유명한 상감청자를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고려청자가 송의 기술을 뛰어넘자 남송시대에는 고려 귀족들이 중국 청자를 수입하지 않고 고려청자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남송의 수도 항저우 발굴에서 고려청자들이 출토되는 것을 보면 오히려 고려상감청자가 남송으로 수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2C 고려청자는 중국 관요에 영향을 주어 형식과 모양에서 고려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고려 주전자에 있는 뚜껑 결합 고리가 중국에 나타나게 되고 중국이 자랑하는 명의 명품 청화백자의 형태와 문양에서 고려자기 형태가 나타난다.
필리핀에서 고려청자가 발굴되었는데 규석받침으로 특징되는 증거가 확실하다. 또 일본의 무사계급 상류계층에서는 고려청자를 갖고 있는 것이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징표였을 정도 였으며, 몽고지역에서도 고려청자가 출토되는 등 당시 고려청자가 일본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