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씨!
그러니까 내가 성안중학교에서 평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어느 날 정무학교장선생님께서
인터폰으로 교장실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내려가 보니 50대 후반의 남자가 앉아 있는데,
허름한 잠바 차림에 서민적인 인상이었다. 특히 눈에 핏빛이 보여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세파에 찌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교장실을 찾은 것은,
세상을 살면서 나이가 들다보니 봉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혹, 가난한 학생이 있으면
돕겠다는 것이었다. 이름은 이희용, 직업은 한양대학교 내에서 기능직으로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학교 소사인 셈이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부부가 함께 매점을 운영한다고 했다.
물론 부자가 아니라는 말도 하였다. 자식이 한 명인데 이제 다 컷고, 별로 돈 쓸 일도 없으니
봉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도와주는 학생을 만날 필요도 없고 그저 구좌번호만 가르쳐 주면
매달 돈을 입금시킨다고 하였다. 내가 우리 학교에 마침 양부모가 모두 없는 학생이
두 명 있다고 했더니 이 사람이 “한 학생에 월 50만원씩 모두 1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나는 놀랐고 그 사람의 형색으로 보아 신뢰를 가지기 어렵고, 너무 자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히 두어 달 지원하다가 중단하면 아이들 마음만 상할 것 같아서
한달에 20만원씩만 지원해주셔도 감사하다고 금액을 깎아주었다.
10년 전에 이렇게 해서 이희용씨를 알게 된것이다.
이희용씨는 그 후 두 여학생의 중, 고등학교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제공하였다.
두 여학생은 학교에서 아프면 이희용씨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오늘 약속했던 이희용씨와 만남을 가졌다.
정무학교장님, 변난훈교장님, 이희용씨, 나 이렇게
넷이 안산의 토담이라는 한정식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희용씨는 양복차림이었는데 두어달 전에 본 얼굴과는 딴판으로 건강해보였다.
두달 전에는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15년전에 간의 2/3를 잘랐고 쓸개도 일부 잘랐다고 했으며
이미 간경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했는데 오늘은 건강이 좋아졌다고 했다.
놀랐다. 두달 사이에 그렇게 건강해질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9살 때 철이른 작은 고구마 3개를 쪄놓고
아버지와 어린 아들 둘이 서로 먹으라고 권했다고 배고픈 시절을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말문이 터지자 어린시절 밥굶고 못살던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번 눈물을 글썽였다. 나도 같이 눈을 지물거렸고, 변난훈교장님도 아마 그러하셨으리라.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남을 도울 생각을 했을까?
이희용씨에게 어떻게 남을 도울 생각을 했느냐고 변난훈 교장님이 묻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오늘의 화제가 이루어 진것이다. 주로 변난훈 교장님이 물으시고
이희용씨가 대답하는 것으로 2시간 동안이나 대화가 이루어졌다.
들어보니 군대에서도 고아원봉사를,
성안중에서 3명의 학생을,
성안고에서 3명의 학생을,
강원도에서 19명의 학생을,
충청도 서산에서 학생 6명을….
또 장애학교인 명혜원에서도 여러명의 학생을 후원하고 있었다.
독거노인돕기까지….
그의 봉사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정무학교장님은 우리 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공감한다.
내가 내고 싶었는데 점심값은 변난훈 교장님이 내셨다. 감사하다.
나를 포함한 3명의 교장급 인사가 무명의 봉사자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진것인데
이것도 적선이 라면 적선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의미있는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