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두견이가 울었다.
나는 두견이 소리를 분명히 안다.
호호호 호~ 하면서 운다.
정말 오랜만에 두견이 소리를 들었다.


두견이(杜鵑)는 뻐꾸기과의 새로 접동새, 귀촉도 또는 자규라고도 한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으로 유명하다. 몸길이 약 25㎝이고 등은 회색을 띤 파란색이고, 아랫가슴과 배는 흰색 바탕에 암갈색 가로줄무늬가 있다.
한국에서는 여름에 볼 수 있는 새로, 단독으로 생활하며 나뭇가지에 앉아 있을 때가 많고, 산중턱 또는 우거진 숲속에 숨어 결코 노출되지 않아 그 정체를 찾아볼 수가 없다. 날 때에는 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날고, 이 때 꼬리를 길게 수평으로 유지한다. 번식기인 4월-8월에 계속해서 울어대는데 그 최성기는 5-6월이다. 자기가 직접 둥지를 틀지 않고 휘파람새·굴뚝새·산솔새·검은지빠귀·촉새 등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새가 기르도록 내맡긴다. 알은 짙은 밤색의 타원형이다.
산란기는 6월-8월까지로 한 개의 알을 낳는데 다른 새의 둥지에 있는 알을 밖으로 밀어뜨리고 자기의 알을 산란한다. 부화 직후의 새끼는 깃털이 전혀 없으며 부화 뒤 2-3일 사이에 다른 새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둥지를 차지해서 다른 새로부터 먹이를 받아 먹고 자란다. 두견이는 주로 곤충의 성충·유충·알을 먹고 자란다. 대한민국에서는 천연기념물 447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촉(蜀:지금의 四川省)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느날 망제가 문산(汶山)이라는 산 밑을 흐르는 강가에 와 보니,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났다. 망제는 이상히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돌아와 물으니 “저는 형주(刑州) 땅에 사는 별령(鱉靈)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해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것이다. 망제는, 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하늘이 내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별령에게 집을 주고 장가를 들게 하고, 그로 하여금 정승을 삼아 나라일을 맡기었다.
망제는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약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본 별령은 은연중 불측한 마음을 품고 망제의 좌우에 있는 대신이며 하인까지 모두 매수하여 자기의 심복으로 만들고 정권을 휘둘렀다. 그때에 별령에게는 얼굴이 천하의 절색인 딸 하나가 있었는데, 별령은 이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일을 모두 장인인 별령에게 맡겨 버리고 밤낮 미인을 끼고 앉아 바깥일은 전연 모르고 있었다. 이러는 중에 별령은 마음놓고 모든 공작을 다하여 여러 대신과 협력하여 망제를 국외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망제는 하루 아침에 나라를 빼았기고 쫒겨나와 그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이라는 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뒷사람들은 그를 원조(怨鳥)라고도 하고 두우(杜宇)라고도 하며, 귀촉도(歸蜀途) 혹은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여 망제의 죽은 넋이 화해서 된 것이라고 하였다.→ 귀촉도, 망제혼, 소쩍새, 불여귀, 자규
두견이와 소쩍새(또는 접동새)는 예로부터 상당히 혼동되어서 사용되었다. 이 새들이 모두 구슬픈 소리로 운다는 점에서 그렇게 혼동되기도 하였고 중국 문화의 영향으로 그렇게 혼동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두견이는 중국인들에게 슬픔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새이다. 반면 우리 나라에서 밤 새워 슬피 우는 새는 소쩍새(또는 접동새)이지 두견이가 아니다. 두견이는 주로 낮에 활동하는 데 반해 소쩍새(또는 접동새)는 주로 밤에만 나와 활동한다. 우리 문학 작품에 두견이를 밤 새워 우는 것으로 묘사한 것들은 소쩍새(또는 접동새)를 잘못 표현한 것이다.
과거에는 접동새와 소쩍새를 동일한 동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에는 접동새가 곧 소쩍새라고 설명을 했다.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에서도 접동새는 경남 지역에서 사용하는 두견이의 방언이고, 소쩍새가 곧 두견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는 두견이는 우리말로 접동새라고 하고 한자어로 두우, 자류라고 설명한다. 일부 국어사전에는 소쩍새라고도 되어 있는데 그 생김새가 다르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송순창의 ‘한반도조류도감’(김영사)에서는 소쩍새는 올빼미과 동물이고, 두견이는 두견이과 동물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소쩍새의 북한 이름이 접동새라는 설명을 했다.
두견이는 대체로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서 한(恨)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시가문학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일찍이 고려시대에 정서(鄭敍)가 지은 〈정과정 鄭瓜亭〉에는 “내 님을 그리瑯와 우니다니 산접동새勘 이슷悧요이다.”라고 하여 유배지에서의 외로운 신세를 산접동새에 비기어 노래하고 있다.
또한, 이조년(李兆年)이 지었다는 시조에도 자규가 등장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아랴마는/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여기서 자규는 달 밝은 밤 삼경에 울어춘심을 자극하는 새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요 〈새타령〉에는 “성성제혈염화지 귀촉도불여귀(聲聲啼血染花枝歸蜀道不如歸)”라고 두견을 읊고 있다.
〈군밤타령〉에서는 “공산야월 두견이는 짝을 잃고 밤새어 운다.”라고 하였으며, 〈닐니리야〉에서는 “공산 자규 슬피 울어 아픈 마음 설레이네.”라고 하였다.
한편, 〈정선아리랑〉에서는 “어지러운 사바세계 의지할 곳이 바이 없어 모든 미련 다 떨치고 산간 벽절을 찾아가니 송죽 바람 슬슬한데 두견조차 슬피우네 귀촉도불여귀야 너도 울고 나도 울어 심야 삼경 깊은 밤을 같이 울어 새워볼까.”라고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두견이는 한결같이 공산야월의 시공(時空)에서 외롭고 슬픈 인간의 마음을 자극하는 새로 등장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두견이는 고려시대 이래 우리 시가문학에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소재로 지속적으로 등장하였고, 현대에 와서도 김소월의 시를 비롯한 많은 작품 속에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두견이에 관한 설화로는 〈접동새 유래〉가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조사된 자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아들 아홉과 딸 하나를 낳아 기르다가 죽었는데, 계모가 들어와서 전실 딸을 몹시 구박하였다. 그래서 그 딸은 혼인날을 받아 놓고 죽었는데 그 딸의 넋이 접동새가 되었다. 계모는 죽어서 까마귀가 되었는데 그래서 까마귀와 접동새는 원수지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접동새 울음소리가 “구읍 접동”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홉 오라버니 접동”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접동새는 억울하고 한 맺힌 새로 등장함을 알 수 있다.
아래는 소쩍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