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씨!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내가 성안중학교에서 평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어느 날 정무학교장선생님께서 인터폰으로 교장실에 내려오라고 하셨다. 내려가 보니 50대 후반의 남자가 앉아 있는데, 허름한 잠바 차림에 서민적인 인상이었다. 특히 눈에 핏빛이 보여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세파에 찌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교장실을 찾은 것은, 세상을 살면서 나이가 들다보니 봉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혹, 가난한 학생이 있으면 돕겠다는 것이었다. 이름은 이희용, 직업은 한양대학교 내에서 기능직으로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학교 소사인 셈이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부부가 함께 매점을 운영한다고 했다. 물론 부자가 아니라는 말도 하였다. 자식이 한 명인데 이제 다 컷고, 별로 돈 쓸 일도 없으니 봉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도와주는 학생을 만날 필요도 없고 그저 구좌번호만 가르쳐 주면 매달 돈을 입금시킨다고 하였다. 내가 우리 학교에 마침 양부모가 모두 없는 학생이 두 명 있다고 했더니 이 사람이 “한 학생에 월 50만원씩 모두 1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나는 놀랐고 그 사람의 형색으로 보아 신뢰를 가지기 어렵고, 너무 자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히 두어 달 지원하다가 중단하면 아이들 마음만 상할 것 같아서 한달에 20만원씩만 지원해주셔도 감사하다고 금액을 깎아주었다.
그 사람이 교장실을 나간 후 정무학 교장선생님은 사기꾼 같은 인상이 든다고 말씀하시며 믿을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밑져야 본전입니다. 자기가 돈을 주겠다는데 우선 믿어보시지요. 안주면 그만이구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 후 확인해보니 몇 달 동안 두 학생들에게 돈을 꼬박 꼬박 입금 시키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파악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한번 학교로 오라고 해서 학생을 만나게 해주었다. 두 명의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다. 교장실에서 만나게 해주었다. 두 가족 모두 부모가 없이 할머니와 살고 있는 아이들인데 모두 마음이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그것이 내가 중간 역할을 해준 전부이다.
그리고 두 여학생들에게는 혹, 무슨 일이 생길까 하여 혹, 이희용씨가 밖에서 따로 너희들을 만나자고 하면 아무리 독지가라 해도 경계해야할 것과 가능하면 할머니를 데리고 함께 만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당부하였다. 그 두 학생이 중학교 2학년의 어린아이였고, 가르치는 교사로서 그 정도는 보호해야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끔 그 아이들을 불러서 이회용씨와의 관계를(?)점검하였다.
그런데 들은 얘기로는 이희용씨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 밖에서 따로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할머니와 함께 만나고, 만나면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할머니가 병이 나면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그리고 이런 행동을 대부분 이희용씨 부인이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감사하여 이희용씨에게 전화로 가끔 안부를 전하고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언젠가는 한번 만나자고 하여 저녁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이희용씨가 이야기에 의하면 자신은 초등학교 3학년이 학력의 전부이고, 너무 가난하게 살다가 무작정 상경하여 신문팔이, 우유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하였다. 군에 입대하여 미군부대에 배치되었는데 그 당시 겨울철에 미군들이 수박을 먹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으며 자신도 그런 진귀한 음식을 먹고는 밖에 사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군병사들은 개인적으로 신문을 보기 때문에 폐지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을 팔아서 파주근교의 고아원을 찾은 것이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경로당의 노인봉사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고 현재 돌보고 있는 중고등 학생이 9명이나 된다고 하여 놀랐다. 지난번 강원도 수해에는 돈 300만원을 갖고 강원도교육청에 가서 지원대상을 물었더니 도와야 할 학생이 하도 많아서 여섯 명의 학생에게 50만원씩 나누어주고 도망치듯 돌아와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몇 년 전에 한양대학교 기능직을 정년퇴직하여 아이들을 돕는 것이 힘에 부치지만 그래도 맡은 일이니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돌보아야한다고 했다. 세상에 이런 훌륭한 분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야말로 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산 것 말고 무엇이 있단 말인가?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어제 그 이희용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한양대학교라고 하여 잘못 걸린 전화라고 하며 끊으려 했더니 상대방이 자꾸 맹선생님이면 맞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희용이라고 하는데 바로 알아듣지 못한 내가 미안하였다. 그러고 보니 성안중학교를 떠나고 한번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 나마 내가 가끔 가물에 콩 나듯 전화로 격려하고 존경심을 표하곤 했는데 아마도 그것을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정말 훌륭한 사람이니 내가 전화를 가끔 걸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희용씨의 전화 용건은 정무학교장선생님, 당시 교감이었던 변난훈 교장선생님, 그리고 나를 모시고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침 시간이 비는 날이어서 정무학교장선생님에게 연락하여 이희용씨의 초대로 우가촌에서 갈비를 먹었다.
이희용씨는 얼굴이 더 좋아보였고 생활이 즐겁다고 하였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를 정성껏 대접하였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두 여학생은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으며 모두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그 동안 이희용씨 덕분에 두 학생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핸드폰도 사주었으며 엊그제는 그 중의 한명인 김○○학생이 학교 양호실에 누워있다고 전화가 와서 급히달려가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했다는 말을 듣고 감격하여 나는 “이희용선생님 존경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내가 그 학생들과 다리를 놓은 것은 지금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이희용씨는 처음에는 학생들을 만날 필요도 없고 구좌만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내가 직접 만나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당시 정무학 교장선생님께 진언 드린 일도 지금생각하면 잘한 일인 것 같다.
이희용선생님에게 신의 은총이 있으리!!!!!
정말로 감사한 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