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엌에서 밥을 지으려면 아궁이에 불을 땠다. 나무가 타고 남으면 뜨거운 숯이 남는데 그걸 그러모아 화로에 담아 방에 들여온다. 추운 겨울에 난방이 부실한 시골집의 화롯불은 여러가지 용도로 쓰였는데 화롯불 주위에 모여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아버지는 식사하시면서 식은 된장투가리를 화롯불에 얹으셨다. 아침 화롯불을 헤치지 않고 잘 다독이면 점심 이후까지 거의 저녁 밥을 지을 때가지 화력을 유지하곤 했었다.
10년도 더 전에 골동품상을 지나다가 화로를 보았다. 어려서 쓰던 무쇠 주물화로 였다. 그걸 집에 사가지고 왔더니 아버지는 뭘 그런걸 사오냐고 하셨다. 아마도 엿장수에게 주면 쇠값으로 1000원도 안줄 것을 비싸게 주고 사왔다고 지청구를 하셨다. 그날 가게 주인은 이왕이면 백동화로를 사라고 권했다. 백동화로는 주물화로의 3배 값이었다. 나는 그런 화로는 써본적이 없기 때문에 값싼 주물화로를 샀다.
집에 와서 거실에 주물화로를 놓고 보면서 그 안에 내 고향 충남 아산 땅이 들어있는 것을 본다. 추운 겨울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화롯불을 앉은 다리로 감쌀 때 허벅지에 전해오던 따끈한 감촉이 살아나곤 했다. 그 따스함을 어찌 잊으랴! 겨울방학 숙제를 할 때도 방 가온데에서 화롯불이 우리 삼남매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그 날 백동화로를 사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물화로를 볼 때마다 백동화로 생각이 났다. 두개를 다 샀어야 했다.
오늘 수원 행궁근처를 지나다가 새로 골동품점이 생긴것을 보고 들여다 보았더니 쇼윈도에 백동화로가 있지 않은가! 들어가 이리저리 살펴보니 물건이 마음에 든다. 지금은 돈이 없고 나중에 다시 들려 사겠다고 말하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카드도 받는다고 한다.
두말 않고 팍! 긁었다!

집에 가져와 마루에 놓고 보니 내 마음이 기쁘다. 왼 쪽이 오늘 구입한 백동화로이고 오른쪽이 주물화로이다. 백동화로 부젓가락은 제짝이 아니다.

백동화로도 주물제작 형태인데 몸체와 다리는 별도로 만들고 끼워넣기로 결합한 것이다. 오늘 산 이것은 부착 수법으로 보아 조선말에 제작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만들어졌는데 당시 것은 몸체와 다리를 나사로 결합하였다.

우리집에서 사용하던 무쇠화로다. 정확하게는 우리집에서 사용하던 것은 아니고 그와 형태가 같은 것이다. 이물건은 백동보다는 더 근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940년 경으로 약 8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될것이다. 동정을 다리는 인두로 쓰이기도 했던 화롯불 다듬이라 할까? 적당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내놓고 보니 녹이 많이 슬었다. 식용유(콩기름)를 발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