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물론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아직 어리기도 했거니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확립되지 못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막무가내였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이후에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난감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 내방에 들어와서는
무릎을 꿇고 앉아 “ 나중에 물려줄 것이 있으면 물려주시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 유학을 보
내주셔요” 라고 말하였다.
물론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한편으로는 녀석을 믿고 싶었다.
겨우 달래서 억지로 1학년 2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친척 한 명 없는 곳에 비행기 표 한 장 달랑
들고 김포공항을 빠져나갔다.
나는 걱정이 되어 초조하였으나 녀석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냈다” 라는 의기양양한
걸음걸이로 비행기에 올랐다.
녀석은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적어도 녀석이 컴퓨터에 중독되기 전 까지는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모의고사에 전교 1등을 한 것도 스스로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
이다.
녀석은 사유(思惟)의 영역이 깊고 넓었다.
1년 반이 지났으나 나도 아내도 가보지 못했다.
심지가 깊은 녀석이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 특별한 학생을 만나게 되는데
녀석이 그런 아이다.
녀석은 무엇인가 해낼 것이다.
녀석은 아주 특별한 놈이다.
녀석의 18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아들과 신라문화 답사를 하였다.
불국사에 같이 간 생각이 난다.
석가탑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하였다……
진평왕릉 밑에서 라면도 끓여먹었는데 기억할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