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공부

방학 중에 고려사 공부를 하고 싶어서 경기도박물관에서 시행하는 교원연수를 신청하였다.

40명 정원인데 인기있는 연수여서 연수 첫 날 선착순으로 받는데 그날 놓치면 끝이다.

사이트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신청했는데 15번째로 신청하여 당첨되었다.

39명이 평교사였고 교감도 없었다.  교장은 나 한명이었다.


고려왕조실록이 불탄 것이 정말 아쉽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왜놈들이 나쁜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려는  475년의 조선 다음으로 긴 왕조였다. (조선은 518년으로 세계에서 단일왕조로 역사상 가장 긴 왕조다)

중국에서도 이렇게 긴 왕조는 없는 것으로 안다.

중국 문명의 기반을 이루었다는 한나라도 전한, 후한을 합쳐야 420여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나마 중간 왕망으로 단절된 기간이 있었다.


고려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때 불탄는데

그나마 세종 때 고려사, 문종 때 고려사절요을 편찬한 것이 전해져 고려역사를 엿볼 수 있다.

그 2권은 모두 고려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고려가 제후국 즉 왕이 아닌 황제 즉, 천자의 나라였음을 확실하게 알았다.

나는 그것이 그냥 소문으로만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알았다.

고려가 황제의 국가였던 증거는 아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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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박물관의 계단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느 천재에 의한 설계다. 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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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도 있었는데 강화의 선원사지다.

팔만대장경을 조판했다고 알려진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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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선원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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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시내의 고려궁이 있었던 곳이다.

이 건물은 그 유명한 외규장각이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문서를 약탈해간 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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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손님

45년 만에 열리는 천안중학교 19회 졸업생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학교에서 큰 사고가 나서 수습하느라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오랜만에 동창회가 열리는데 참석하지 못하여 아쉬웠다.


그런데 최용섭이가 내게 전화를 하여 만나자고 하였다.

자신이 수원사는데 동창회가서 맹기호가 수원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반갑다고 전하를 해서 만나게 되었다.

놀랍게도 수원부근에 사는 친구 네명이 나왔다

한정식집에서 모였는데 중소기업하는 최용섭이가 밥값을 냈다.

다음에 또 만날것을 기약하면서 아쉬움을 남긴채 헤어졌다.

최용섭은 주물회사 대표였고, 박한순이는 수원주택은행지점장에서 퇴직하였으며

남상철은 중견기업 전무이사였고, 유제석은 유통회사 상무로 재직하고 있었다.

모두 사회 각 분야에서 맡은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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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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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낭송용)

맹기호

정축년 2월 24일

예판 김상헌의 수염에 눈물 어름이 창끝처럼 빛났다.

전하! 오랑캐가 산성을 포위했지만 충성스런 조선군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것이며

조선 팔도에서 의병이 너나할것 없이 일어나 전하를 구하러 올것입니다.

일천만 백성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면 능히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부디 성심을 굳건히 하소서!

 

이판 최명길이 말했다.

전하! 종사와 백성을 살리기 위해 굴욕을 견디셔야하옵니다.

강도가 목에 칼을 대면 돈을 줘야합니다. 목숨을 주면 세상도 없는 것입니다.

군왕은 종사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백성의 목숨을 살리는 일에 군왕이 못할 일은 없습니다.

오늘 출성 항복하여 청의 연호를 택하고 훗날을 기약하소서!

 

한양에서 심양까지 2천리길 60만 포로가 끌려간 정축년 2월

도망가다 붙잡히면 귀를 뚫고 엮었으며 아이들은 손바닥을 뚫어 철사로 엮었다

파아란 하늘은 팽팽했다. 2월의 칼바람은 쇠처럼 울며 능선으로 싸락눈을 퍼올렸다

울면 채찍이 날아와 살점을 뜯었고 행군 대열의 아무 골짜기나 조선 여인의 정조가 울었다

포로는 물건이었다 돈이 필요하면 시장에 팔고 주인이 죽으면 산채로 함께 묻었다.

 

오늘 다시 바람 불어 하늘을 우러르니

고려와 조선을 쳤던 몽골은 게르 안에서 700년 동안 잠자고

신해혁명으로 청과 만주족 떼놈은 세상에 흔적도 없다

 

산자에게 묻겠다

남은자에게 묻겠다

누가 더 강한가

자신을 더 사랑한 자 누구인가

 

시작노트 :

병자호란 6년 후인 1642년(인조20년) 조선의 인구는 1076만이었습니다.

 청에 끌려간 포로가 60만이었고 이는 전체 인구의 6%에 해당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거기에 3만명이나 참전한 몽고군에게 붙잡혀간 포로는 몇명인지 알지 못해 포함되지도 않았으니 정확한 전체 포로의 숫자는 더 많았을 것입니다. 정말로 참혹한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지구상에서 영원이 소멸하고 오늘날 만주족도 한족에 동화되어 그 흔적도 없으니 누가 진정한 승자입니까?

얼마전 신문에 보니 서울에 있는 몽골대사관이 7년 동안 집세를 내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고려 때 39년이나 쳐들어와 우리를 괴롭혔던 몽고, 병자호란 때도 3만명이나 쳐들어왔던 몽고군!

지금은 초원의 천막 게르에서 염소 젖이나 먹으면서 마치 700년 전에 문명이 스톱한 원시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2014년 수출실적 세계 7위 코리아!, 외환보유고 세계 7위! 누가 더 강한 것입니까? 진정으로 살아남은 자가 누구입니까?

 

 

8.15광복70주년 기념행사로

수원문인협회에서 나라사랑 시낭송 시간을 갖는다.

여기서 창작시를 낭송하기로 하였다.

오늘 그날 낭송할 시를 썼다.

 병자호란을 주제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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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문협출판기념회


수원문인협회 출판기념회 및 문학상 시상식이 화성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수원문인협회 행사로 인하여 천안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실 학교에 이삿짐 운반용 20층 고가사다리차가 운동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

사고를 간신히 시간 안에 수습하고 문인협회 행사에 간신히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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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학생

 

복도를 바쁘게 지나가는데 앞에 걸어가던 학생이 휴지를 줍는 것을 뒤에서 보았다.

학생들은 휴지를 줏으라고 시켜야 줍는다. 자발적으로 줍는 학생은 없다고 보면 된다.

 학생들에게 복도에 떨어진 휴지를 줏으라고하면 “제가 버린거 아닌데요” 이렇게 답하는 학생도 있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보는 사람도 없는데 휴지를 줍는 학생을 보았다.

왜 줏었느냐고 물어보니 휴지가 떨어져 있어서 휴지통에 버릴려고 줏었다고 한다.

1학년 9반 차범준학생이다. 교감에게 차범준 학생을 다음 번 정기표창 때 표창하라고 하였다.

이런 학생을 보는 것은 좋다. 이 모두가 교육의 힘이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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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추모하며

오늘은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대통령이 서거하신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65년 7월19일 오전 0시 35분 하와이의 노인요양원에서 나이 아흔의 노정객 이승만 대통령이 운명하였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국제정치의 변동을 알고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 없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그 없이 우리가 자유민주진영에 서고, 그 없이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그 없이 한,미동맹의 전략이 가능햇겠는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교육진흥, 제도 신설, 지주철폐,  등 지금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바탕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원자력발전조차 그에 의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무지몽매한 나라에서 태어났으나 그렇게 살기를 거부했다. 열아홉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나라 밖 신세계를 처음 경험하였다.

썩은 조정을 언론으로 개혁해보려다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감옥에서 낮에는 고문당하고 밤에는 영어사전을 만들었다.

이승만은 조선의 독립은 미국을 통하는 길 수 밖에 없다고 믿었다. 1905년 나이 서른에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하고 하버드대학원을 거쳐

프린스턴대학에서 국제정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1년 미국에서 Japan inside out(일본의 가면을 벗긴다)를 썼다. 이 책에서 이 대통령은

일본이 반드시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책이 나온지 넉달 뒤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였다. 미국 정치인들은 이승만을 다시 보았다.

 

물론 이승만의 잘못은 크다.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나라를 망쳤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그가 미국에 갈 때 일본땅을 밞는것 조차 치욕으로 여겼을 정도로 일본이라면 치를떨었다. 그가 살았으면 결코 일본과 화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오죽했으면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을까! 해방시국에 나라를 세우려니 여러사람의 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잘못을 모두 합해도

그가 목숨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공을 덮지는 못한다.

 

이승만의 하와이 생활은 겨울에 난방할 땔감도 없었다.

교포들이 조금씩 보태준 돈으로 연명하고 고국행 비행기표 살 돈을 모든다고 이발비 5달러를 아겼다.

이 대통령이 우리 음식을 그리워하자 부인이 서툰 우리말로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었다고 한다.

날마다 날마다 김치찌게 김칫국/날마다날마다 콩나물국 콩나물……

이승만 대통령 서거 50주년의 날에 대문에 조기를 달며 목이 메인다.

이승만! 그대가 있어 오늘의 코리아가 있습니다. 편히 영면하소서…..

< 오늘 일상일기의 많은 부분은 7월18일 조선일보에서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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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에는 지난 해부터 이승만의 사진이 마루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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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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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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