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대통령이 서거하신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65년 7월19일 오전 0시 35분 하와이의 노인요양원에서 나이 아흔의 노정객 이승만 대통령이 운명하였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국제정치의 변동을 알고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 없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그 없이 우리가 자유민주진영에 서고, 그 없이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그 없이 한,미동맹의 전략이 가능햇겠는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교육진흥, 제도 신설, 지주철폐, 등 지금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바탕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원자력발전조차 그에 의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무지몽매한 나라에서 태어났으나 그렇게 살기를 거부했다. 열아홉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나라 밖 신세계를 처음 경험하였다.
썩은 조정을 언론으로 개혁해보려다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감옥에서 낮에는 고문당하고 밤에는 영어사전을 만들었다.
이승만은 조선의 독립은 미국을 통하는 길 수 밖에 없다고 믿었다. 1905년 나이 서른에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하고 하버드대학원을 거쳐
프린스턴대학에서 국제정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1년 미국에서 Japan inside out(일본의 가면을 벗긴다)를 썼다. 이 책에서 이 대통령은
일본이 반드시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책이 나온지 넉달 뒤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였다. 미국 정치인들은 이승만을 다시 보았다.
물론 이승만의 잘못은 크다.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나라를 망쳤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그가 미국에 갈 때 일본땅을 밞는것 조차 치욕으로 여겼을 정도로 일본이라면 치를떨었다. 그가 살았으면 결코 일본과 화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오죽했으면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을까! 해방시국에 나라를 세우려니 여러사람의 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잘못을 모두 합해도
그가 목숨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공을 덮지는 못한다.
이승만의 하와이 생활은 겨울에 난방할 땔감도 없었다.
교포들이 조금씩 보태준 돈으로 연명하고 고국행 비행기표 살 돈을 모든다고 이발비 5달러를 아겼다.
이 대통령이 우리 음식을 그리워하자 부인이 서툰 우리말로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었다고 한다.
날마다 날마다 김치찌게 김칫국/날마다날마다 콩나물국 콩나물……
이승만 대통령 서거 50주년의 날에 대문에 조기를 달며 목이 메인다.
이승만! 그대가 있어 오늘의 코리아가 있습니다. 편히 영면하소서…..
< 오늘 일상일기의 많은 부분은 7월18일 조선일보에서 발췌하였다>
내집에는 지난 해부터 이승만의 사진이 마루에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