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기♠ 대화 ㅎㅎㅎ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듯이 나도 가족과의 대화는 주로 식탁에서 한다.

그런데 어머니, 집사람,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식사를 할 때는

대화의 중심이 나와 어머니다. 아내는 그저 듣고만 있는 편이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면 아내가 대답할 여유를 주지 않고, 어머니가 먼저 끼어든다. 쳐들어온다고 말하는 편이 적당할 정도로 순식간에 내 말을 받으신다. 도무지 아내가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다.

 

내 발언의 내용이 탤런트나 가수에 관한 것이면 물론 어머니 차지다. 집에서 텔레비젼을 많이 보시니 대중문화에는 어머니가 아내보다 당연히 한 수 위다. 사실 내가 어머니와 적조했다 싶으면 일부러 탤런트에 관한 이야기를 화제로 띄운다.

그러면 어머니는 신이난다. 누가 이혼을 했고, 어쩌구저쩌구…..당연히 어머니가 전문가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도 어머니가 끼어든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도 그러하다. 텔레비전에서 다 듣고 배우셨으니 일가견이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도 끼어드신다. 그러면 나는 알던 모르던 그냥 어머니와 대화한다. 그게 더 편하다. 그리고 나는 직장에서 일어난 일도 집에 와서 어머니 아버지와 이야기 하는 편이다. 공직에서의 비밀을 지켜야하는 분야는 물론 말하지 않지만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이야기는 스스럼없이 한다.

 

오늘 일어난 대화이다.

 

어제 교육원에서 내가 원어민교사 Bruce하고 옆에서 밥을 먹는데 내가 먹는 것처럼 고추장에 비벼서 먹어보라고 했더니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보로 놀랐다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어머니가 얼른 미국사람하고 말이 통하냐고 물었다. 나는 일상적인 간단한 회화야 통하지요.

 

 

마침 어제 총각김치가 나왔길래 Bruce에게 한국에서는 Before married man called 총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따라 해보아라 repeat! 했더니 Bruce가 ‘총각김치’라고 정확하게 발음하더라 내가 good! 이라고 칭찬해주고 총각김치 밑둥을 보면서 총각김치 like a penis 라고 말했더니 Bruce가 금방 알아들었다. 내가 야구 bat을 가지고 휘두르는 시늉을 하는 것을 보고 옆자리의 원장님이 웃으면서 맹연구사는 참 body language도 잘한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공교육은 받으신적이 없고 야학에서 한글을 깨우친 정도이다.

따라서 내가 영어까지 섞어서 하는 대화이니 이해하기 어려우실 것이다. 

그래도 나는 상관하지 않고 영어를 섞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냥 말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내가 분명이 확인한 것은

어머니가 이상의 이야기를 듣고 아주 유쾌하게 웃으셨다는 사실이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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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중요한 결정의 문제



 


어제 아빠의 붕우 남기완교수님하고 통화 하였다.


남교수님은 아빠의 일상일기를 읽어보았다고 하면서 


아산이가 전자공학을 계속했으면 한다고 말하였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영어로 강의를 시작하는 추세이고


(서울대, 고대, 포항공대 등에서 이제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포항공대는 금년 신입생 부터 모든 전공을 영어로 강의하기 시작하였음)


 


남교수님은 외국에서 아빠 일상일기에 네가 나열한 대학정도를나오면


국내에서 교수로 취업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전자공학을 계속할것을 권하였단다.


남교수님은 너도 잘 알지만 평생 학문을 하는 분이고 의지가 바위처럼 단단한 분이다.



아마도 영어로 강의를 하는 능력이 있으면 어느정도 대우를 받는 모양이다.


아들아! 금융쪽의 일을 하는 것도 순간 순간 피를 말리는 일임에는 틀림없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하여튼 아빠는 남교수님의 말처럼


네가 교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결혼도 잘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의 충고는 여기까지이다.


그래도 네가 가야할 길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네가 결정할 문제이다.


 


다만 아빠가 너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살아보았으니


아빠의 말을 명심해서 참고해야할 것이다.



사랑한다 아들아! 그리고 아빠는 언제나 네편이다.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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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희망이 있는 세상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그 주인이 너무 많아 자치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표를 뽑고

그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통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동시에 통치의 대상이 되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오늘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시골 소년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민주주의는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북한에서는 어디 언감생심 마음을 먹지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일성 생가을 방문하여 만경대 정신 이어받자라고 방명을 한 대학교수가 있다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 다음은 인터넷에 있는 이유주현기자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오늘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그의 삶은 ‘일’과 ‘성공’이라는 단어를 빼놓고선 설명할 수 없다. “굴껍데기처럼 가족에게 들러붙었던 가난”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생활전선에 내몰렸고, 고학으로 대학까지 마쳤다. 24살에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27년 동안 원없이 일했고, ‘성공한 CEO로 주목받았다. 서울시장 시절엔 밤낮으로 청계천 복원사업에 매달려 ‘대권행 티켓’을 따냈고, 마침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 당선자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아버지 이충우(1981년 작고)씨와 어머니 채태원(1964년 작고)씨 사이에서 4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태몽으로 밝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꿈을 꿨고 그에 따라 이름도 ‘명박(明博)’으로 지었다.이 당선자가 네살 때인 45년, 광복 직후 한국으로 돌아가던 이 당선자의 가족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무일푼 신세가 되는 불행을 겪는다. 고향인 경북 포항에 정착한 뒤 이 당선자의 아버지는 목장 일꾼으로, 어머니는 과일행상으로 하루종일 일했지만 가난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단칸방에서 한 식구가 살며 하루 두 끼는 술지게미로 때워야 했다. 그 때문에 학교선 “술 냄새가 풍긴다”며 구박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 당선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6·25가 터져 미군의 폭격에 바로 위의 누나(귀애)와 동생(상필)을 눈앞에서 잃는 비극을 겪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의 장삿일을 도왔던 이 당선자는 김밥·풀빵 장사로 학업을 계속했고,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를 졸업한 뒤 상경해 막노동에 나섰다. 일일잡부로 살아가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그는 “입학증이라도 받기 위해” 대학 입학을 결심했고, 청계천 상인으로부터 헌책을 얻어 밤늦게까지 노동자합숙소의 등불을 밝힌 결과 1961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에도 가난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행상을 하던 이태원의 상인들로부터 청소부 일을 얻게 된 그는 이른 새벽부터 리어카를 끌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일하느라 친구 사귈 틈도 없었지만, 그는 고려대 경영대 학생회장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64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6·3 시위를 주도하다 옥에 갇혔고, 2심에서 집행유예 3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여섯달 만에 풀려났다. 그는 옥중에서도 경영학 전공 과목에 매달렸고, 정치권에 입문한 운동권 친구들과 달리 기업행을 결심한다.

이 당선자는 현대에서 탁월한 추진력과 성실성으로 곧 정주영 회장의 눈에 든다. 어린 시절, 가난이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는, 가난을 이겨내고자 갖가지 실패를 견뎌낸 정주영 회장과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일에 대한 집중력에서도 정 회장과 ‘코드’가 맞았다. 68~69년 중기사업소에서 일할 당시, 중장비를 다루는 인부들이 부품값을 과다청구하자, 트랙터를 분해해 재조립하면서 기계의 원리를 죄다 습득해 엉뚱한 비용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정주영 회장이 젊은 시절 쌀가게 배달원으로 일할 때 사흘 밤낮으로 자전거타기를 연습한 끝에 쌀 서말을 싣고도 거뜬하게 달렸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공장 안에 ‘더 빨리’란 표어가 붙어있던 시절, 그의 능력의 요체는 ‘신속정확’이었다. 정 회장에게 보고할 때 미흡한 점이 있으면, 다른 간부들은 정 회장에게 ‘좀더 연구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내일 아침까지 보고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론보다는 현실적인 사고를 하고, 이를 쉬운 말로 표현했다는 점도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였던 정 회장의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어, 임원회의에서 정 회장이 “자재창고 담당자로 누가 적당하냐”고 물으면, 다른 간부들은 “자재의 성격에 대한 이해와 회계 능력을 갖춘 사람이 적당하다”고 말했지만, 이 당선자는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는 사람이면 된다”라고 답했다. 물품을 빼돌리지 않고, 화재 감독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또 정 회장의 아이디어를 구현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현대건설의 한 관계자는 “84년 충남의 서산 간척지 공사 때 가파른 물살 때문에 나머지 물막이 공사가 애를 먹자 정 회장은 유조선을 이용해 물살을 막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내로라 하는 토목 전문가들이 전복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며 말렸지만, 이 당선자는 홀로 정 회장의 편을 들었고 철저한 계획으로 이를 성공시켰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5년만에 공무담당 이사로 승진했고, 75년 부사장, 77년 사장, 88년 회장 임명장을 받는 등 동료·선배들을 제치고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샐러리맨의 신화’를 썼다. 그는 후일 자서전에서 당시를 돌아보며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때처럼 일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90년대 초 그는 이미 ‘스타’였다. 91년 방영된 드라마 <야망의 세월>은 운동권 학생 출신 ‘박형섭(유인촌 분)’이 각종 시대적 난관과 부대끼며 성공한 기업인으로 우뚝 서는 과정을 담아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가 야심차게 추진한 이라크 토목공사는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 등으로 수십억달러의 미수금을 남기고 막을 내렸고, 정 회장과의 사이도 삐걱거렸다. 결국 92년 초 창당을 결심한 정주영 회장과 결별하고, 민자당에 입당해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96년 총선에서는 ‘정치 1번지’ 종로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승리하지만 98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시련에 부닥쳤다.

1년여 넘게 미국에서 ‘야인’으로 살았던 그는 2000년 미국에서 돌아와 다시 ‘노병의 성공신화’를 쓰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잘나가는 금융맨으로 알려진 젊은 재미동포 김경준씨와 함께 손잡고 인터넷금융업에 뛰어들었지만 쓰라린 실패로 끝이 났다. 이 대목은 대선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행운의 신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2002년 청계천 복원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서울시장에 당선됨으로써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서울시청 광장 조성, 세종로 사거리 건널목 조성 등 역대 시장의 숙원사업을 신속하게 마무리짓는 한편, 광역 재개발사업이랄 수 있는 ‘뉴타운사업’을 시작하고, 개발사업이 예정돼있던 뚝섬경마장 부지를 서울숲공원으로 바꿔냈다. 대규모 버스체계 개편작업을 통해 버스공영제, 환승시스템을 수립해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그의 일하는 스타일을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이라고 표현한다. 프로젝트의 목표를 설정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제한된 시간 안에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짚어내는 ‘행정마케팅 능력’, 강력한 추진력, 짜임새있는 업무 관리능력은 그를 ‘일머리를 아는 리더’로 부각시켰다. 특히 2년4개월의 짧은 공사기간 끝에 청계천 5.84km에 맑은 물을 흘려보낸 청계천 복원은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자리잡았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와 청계천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목도한 유권자들에겐 ‘이명박’이라는 이름이 깊숙히 각인됐다.

‘실천하는 대통령’을 공언한 이 당선자 앞엔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새로운 도전들이 놓여 있다. 이제 그의 능력은 또다른 ‘검증대’에 올랐다.

 

내가 오늘 그의 일생을 읽어보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시골 소년이 대통령이 되었다.

어린시절에 김밥장사, 풀빵장사, 청소부(본인말로는 환경미화원) 등

허드렛일을 해보았고,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열심히 살았지만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서

민주주의는 누구든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제도라는 감탄을 하게된다!

 

오늘 아침 관사에서 텔레비젼으로 이명박 당선자의 당선 첫날 생중계방송을  보았는데

현충원을 방문한 이명박 당선자가 방명록에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라고 썼다.

 

맹기호의  희망은 무엇인가?????

희망이 있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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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새로운 세상

 

좌파정권 10년의 고리를 끊다




사실 어제 붕우 송기원 사장을 만나 좌파정권 종식을 기념하는 축배의 잔을 들었다.


대선 하루 전 날에 축배부터 드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지만 퇴근하면서 둘의 마음이 맞아 미리 축배를 들게 되었다. BBK동영상이 선거 이틀 전에 발표되어 당선이 불확실하기도 한 상태여서 혹, 김치국부터 마시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마셨다.




내가 좌파정권의 정책을 싫어하는 몇 가지를 논하고자 한다. 컴퓨터에 앉아서 아무런 계획없이 단편적인 생각을 타자하니 혹, 얕은 생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다.




첫째 좌파정권의 경제정책에 관한 내용이다.


좌파정권의 여러 정책 중에서 경제적 분배 정의에 관한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경제 정책의 초점은 생산성 향상에 바탕을 두고 분배정책을 수립해야하는데 지난 10년간의 좌파정권은 모든 사회현상을 두 개의 집단으로 분류하고 집단 간의 대립현상으로 파악한 결과 이른바 양극화 논리가 정책의 기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양극화는 사회 구조를 통합과 협동으로 파악하지 않고 계급적 대립으로 설명하게 된다. 따라서 좌파정권의 경제정책은 혁신을 통한 기업생산성 향상이 아니고, 이웃 부잣집에 벼락이 떨어져 못사는 내 집과 같이 가난의 평등을 이루도록 기도하는 정책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경제적 평들을 위하여 국토 균형발전을 꾀한다는 명분으로 국책기관을 지방으로 강제 이전하고 지방에 혁신도시를 육성한다는 정책을 발표하여 혁신도시마다 전국적으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천문학적인 토지보상비는 다시 수도권으로 몰려 아파트 값의 폭등을 가져온 것이다. 전 국토를 부동산 투기지역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중앙과 지방을 따로 놓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전 국토가 일일 생활권인데 무슨 중앙과 지방이 따로 있단 말인가! 정말 답답하고 답답한 일이다! 며칠 전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을 발표하면서 임기 내에 대못질을 해서 후임자가 변경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을 보면서 왜 저토록 대립각을 세우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저는 국민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습니만 부족한 제가 국정을 이끌어 오면서 혹, 잘못한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후임 대통령께서 더 큰 지혜를 발휘하셔서 선정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뭐 이렇게 덕담을 하면서 정권을 넘기면 얼마나 보기에 좋을까……




좌파정권의 정책 중에서 내가 실망을 금치 못하는 분야 중의 하나가 국방과 외교이다.


대통령이 “NLL은 영토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헌법의 영토조항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라고 되어있으니 NLL은 영토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을 만나서 백두산을 달라고 말해볼 생각은 못하였나? 금강산 관광의 대가로 엄청난 돈을 북한에 주고 있는데 내 땅을 돈 내고 빌리는 사람도 있나?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외교에 있어서도 우리가 미국의 바지가랭이나 붙들고 있어야 하느냐는 말을 했는데 발언의 저급성은 둘째 치더라도 세상에 자주국방하기 싫은 민족이 어디 있는가! 우리 민족 5000년 역사에 나라의 운명을 보전하고자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으며, 피를 말리는 외줄타기 외교가 한 두 번이었던가?




6.25전쟁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5만명의 젊은 미국 병사가 전사하였다. 그런데도 맥아더장군 동상을 철거하려는 좌파 시민단체의 행동에 대통령은 물론이고 여당의 어떤 당직자도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들도 수수방관하였다. 오죽하면 미국정부가 맥아더 동상을 본국으로 가져가겠다는 말까지 했을까!




오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탄생시킴으로서 10년 좌파정권의 꼬리를 잘랐다. 이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 대립과 갈등의 양극화가 아닌 통합과 화합, 그리고 협동하는 사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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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애송 詩

< 노천명 사진>

 

노천명의 시 고향은 하도 많이 읽어 오래 전부터 외우고 있다.

나 보다 훨씬 먼저 세상을 산 사람이지만 내 정서에 꼭 맞는다.

읽고 또 읽어도 좋아서 스무살 때부터 외우고 있으며

길을 걸으면서 늘 소리내어 읽는다.

 

 

고향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아이들 하눌타리 따는 길머리엔
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둥글레 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접중화 싱아 뻐꾹새 장구채 범부채
마주재 기룩이 도라지 체니 곰방대
곰취 참두릅 홋잎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개암살을 까며 소년들은
금방망이 은방망이 놓고 간
도깨비 얘기를 즐겼다.

목사가 없는 교회당
회당지기 전도사가 강도상을 치며
설교하던 산골이 문득 그리워
아프리카서 온 반마(斑馬)처럼
향수에 잠기는 날이 있다.

언제든 가리
내 마지막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메밀꽃이 하이얗게 피는 곳
나뭇짐에 함박꽃을 꺽어오던 총각들
서울 구경이 원이더니
차를 타보지 못한 채 마을을 지키겠네.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 속에서
찔레순을 꺽다 나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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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천재


 


오늘 서류철을 보다가 내가 근무하는 교육원 건물을 찍은 아주 좋은 사진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찍은지 여러 해가 지난 사진인것 같다. 사진파일의 용량이 매우 적은 것을 보니


초창기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도가 아주 좋아서 여기에 올린다.


 


오늘 다시 건물을 보니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다.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잘 살렸다.


지붕은 우진각 형태를 띠고 있으며,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창에 나무 문살도 넣었다.


 


설계자가 누군지 알아보려했지만 아직도 찾지못했다.


그는 한마디로 천재다!


아마도 고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30년 전에 지은 건물인데도 불구하고


어디 하나 금이 간곳이 없다. 아주 튼튼하게 지었다.


 


산과 어우러진 전체적인 배치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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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일 상


 


<색계의 포스터>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2박3일!


주말에만 집에 오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황금연휴이다!


 


금요일은 강화에서 퇴근하면서 수원에서 저녁약속이 있었다. 


전에 같이 근무하던 정재필선생님과 몇 선생님들을 만났다.


만남의 이유는 다른 뜻도 없고 그냥 얼굴 본지 오래여서 보고싶다는것이다.


한정식집에서 약간 늦은 저녁을 먹었는데 오랜만에 뜻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니 기분이 좋았다.


 


적당히 취한 후 선생님들과 혜어져


대리운전수를 불러 집까지 차를 타고 왔다.


도착 직전에 대문을 열어달라고 아내에게 전화하였는데


아내는 반소매차림으로 대문을 열고 있어서 놀랐다.  


 


동네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다가 내 전화받고 달려왔단다.


아내는 대문을 열어주고 다시 헬스장으로 갔다.


주말에 집에오는 남편을 위해 운동하다가


튀어 나온것이다. 뭐 그렇게 까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토요일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수원미술관에 갔다. 25회 수원일요화가회 정기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내 작품을 출품했기 때문에 다녀왔다.


 


토요일 점심에는 내가 교감으로 근무하던 망포중학교선생님들과


송년회가 약속되어있었다. 홍천골한정식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역시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 반가웠다. 유도형교장님은 역시 말이 많았다.


백세주을 여러 잔 마셨다. 역시 대리운전수를 불러 집으로 왔다.


주말에 나의 개인적인 모임만 있는것 같아 아내에게 미안하였다.


전화로 야간 영화관에 예약하라고 아내에개 말하였다. 영화본지도 오래되었다.


 


점심을 먹고 집에 오니


이우정 장학사 동생이 보행 중 차에 치어 숨졌다는 연락이 왔다.


조금 쉬고 다시 정례식장에 가서 조문하였다. 슬픈일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가기 마련인가!


슬픈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집에서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고 쉬다가


밤 10:30-01:10까지 심야영화를 보았다.


이른바 요즈음 논란이 되고있는 영화 “색계”를 보았다.


영화는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진한 베드신이 인상적이었다. 토요일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니가 장례식에 가자고 한다.


아내는 교회에 가자고 하고……교회는 다음 주일에도 갈수있느니 어머니를 모시고 장례식장에 갔다.


 


어머니의 외사촌 언니가 78세로 운명하셨다.


어제 왔던 같은 장례식장에 오늘 다른 사람을 조문하기 위해 또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의 외4촌 언니는 여성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평생 책임져온


참으로 힘들게 세상을 살아온 분이셨다.


남편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한량이었다. 이승에서 하직하면서 생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신 것이다.


어머니와 장례식장을 다녀와 집에 오니 12:30분이었는데 어머니는 점심을 준비하려 하셨다.


어머니의 수고도 덜고, 외식의 즐거움도 누리고 일석이조! 내가 나가서 먹자고 제의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나, 아내 이렇게 4명이 외식에 나섰다.


자동차를 몰고 4km 쯤 떨어진 곳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이천영양돌솥밥을 먹었는데 식당은 손님이 아주많았고, 음식은 좋았다.


3인분만 시켜도 된다는 아버지와 약간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원래 소식하는 분이니


그런 생각이 들법도 하다. 그러나 4명이서 3인분을 시키는것은  손님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와서 낮잠을 잤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내가 코를 골면서 잠을 잤다고 한다.


2시간 30분 쯤 잔것 같다. 낮잠을 자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아! 잘 잤다!


 


낮잠에서 깨어나


다시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청국장, 고들빼기나물, 갈치튀김, 김치 등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2층에 올라와 아내와 함께  텔레비젼을 보았다.


 


저녁을 먹고 또 속이 허전한것 같아


아래층에 내려가 먹을 것을 찾았다.


마침 한과와 생밤을 까놓은 것이 있어서 2층으로 가져와


아내와 함께 먹었다.


 


그리고는 뒹굴거렸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며 빈둥거렸다.


텔레비전에서는 대선 뉴스가 한창이다.


 


이렇게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2 박3일의 휴일은 갔다.


이제 잠을 자고 새로운 한 주일을 위해 내일 아침 05:30에 출근해야한다.


 


오늘 이렇게 주말의 일상을 적어본 것은


이런 일상적인 일들이 모여 행복을 엮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특별하게 걱정되는 일도 없었다.


범사에 기뻐하라고 햇던가! 일상적인 주말이었고, 그래서 행복한 생각이 드는 주말이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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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an exhibition


 


토요일이다. 아침에 전시장에 들렸다.


수원일요화가회 25주년 전시회가 열리는 수원미술관에 갔다.


지난 화요일 오픈일에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촬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사진을 찍었다.


 


10시부터 12시 20분까지 전시장에 있는 동안 


주인수 건축사를 만나서 차를 마셨다.


 


미술관 2층의 문헌화방에 들려 최광천선생의 소식을 물었더니 지금도 청계산의 움막에


산다고 하여 정말 놀랐다. 20년 전에 그가 거쳐하는 청계산의 토담집을 방문한적이 있다.


지은지 100년도 넘은 흙집에 살고 있었는데 벽의 이곳 저곳에는 말벌이 살고 있었고


난방은 나무를 때는 온돌이었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도 아니고 전통 토담집 그대로에서 살고는것을


보고 놀랐는데 세상에! 아직도 그곳에 산다니 놀랍다. 


 


문명이라고는 전혀 느낄수 없는 산속의 토담집에서 사는 최선생을 보고


그 당시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20여년 넘게 자연을 만끽하고 살고 있을것이다.


 


최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설치미술을 개척한 천재적 화가이다.


그의 드로잉 실력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는 나와 동갑인데 아직도 장가를 들지 않은 숫총각이다.


예술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20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2시 20분에 전시장을 나와 전에 근무하던 선생님들하고 점심 약속이 있어서


영통으로 갔다.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동지들을 만나서 아주 반가웠다.


유도형교장님, 고민환선생, 최태영선생, 이진희선생, 유덕준선생 등을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이우정 장학사의 동생이 새벽 1시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세상에 34살 먹은 가장이 죽다니!


잠시 집에 들려 쉬었다가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을 하였다.


 


고인은 외국어고등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는 사람인데


학교 직원들하고 회식이 늦게 끝나고 헤어졌다고 하는데 길을 건너다가


승용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한다.


 


새벽 1시에 도로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가기위해


길을 건너다가 25살 젊은이가 모는 아반테승용차에 치여 30미터나 끌려가다 숨졌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일이다. 아들은 4살이고, 미망인은 젊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정적만이 흘렀고 이따금 이쪽 저쪽에서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우정장학사도 울고있었다. 참으로 슬픈일이다.


밤길의 교통상황은 정말 위험하다.


내가 운전을 해보면 밤에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보행자가길을 건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밤에는 나가 길을 건널때는 정말 조심해야하고


밤에는 반드시 밝은 옷을 입어야한다.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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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기로에 서있다



교육원으로 발령나서 생활하면서


빨랫감을 집으로 가져갔었는데


지난 주일부터 손수 빨래를 하기 시작하였다.




교육원에는 빨래를 위해 세탁실이 있고,


다림질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있기는 하지만


그냥 내 숙소에서 손빨래를 했다.




오랜만에 빨래를 해보니 그런대로 할 만하였다.


총각시절 초임 발령난 학교 앞에서 하숙을 할 때


빨래하던 생각이 난다. 그 때는 이불까지 빨았다.


여기서는 이불은 얼마든지 교환해서 쓴다. 세탁실에서


아주머니들에게 언제든지 말만하면 세탁한 이불로 교환해준다.




빨래의 양이 많은 것도 아니고,


월요일부터 목요일 까지 입은




메리아스 4장,


팬티 4장,


양말 4켤레,


수건 3장 정도가 전부이다.


 


뒤에 보이는 주황색 셔츠는 조깅할 때


체육복 속에 입었던 옷인데 땀이 나서 빨았다.


와이셔츠는 집으로 가져간다.




금요일 오후는 집에 가기 때문에


결국 4일분의 속옷을 세탁하는 것이다.


집으로 가져가면 아내가 빨래를 하게 되니


여기서 내가 하면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내가 ” 그냥 집으로 가져오세요,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집에서 세탁기에 넣으면 금방 세탁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음……내가 보기에도


나이 오십 넘어서 조금 궁상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크게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것 같지도 않다.




어떻게 할지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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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제25회 수원일요화가회전

오늘 집에 왔다.


 


정확히 말해 수원일요화가회 25주년 전시회 오픈식이 있어 수원에 왔다.


 


근무시간에 조퇴하고 자동차를 몰아 수원에 왔다. 전시장에 아버지, 어머니, 아내와 함께 갔다.


 


요즈음에는 정말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마음이 그림을 그릴만큼 여유롭지 못한 탓이다.


 


조금 더 시간을 보내면서


 


그림 그릴 여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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