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공연보러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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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힘들어하셨다.

 

우리집에 오는 파출부 아주머니들은 두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과거 회상형이다. 과거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았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오늘날 파출부까지 하게 되었다면서 과거 잘살았던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마음 착한 어머니는 맞장구를 치며 잘 들어주신다.

 

둘째는 자기 과시형이다. 큰아들은 어디 좋은 회사에 다니고, 둘째는 돈이 많으며

파출부는 자식들 몰래하는것이라 자식들이 알면 큰일난다고 말하며 파출부는 심심해서 취미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어머니는 틀림없는 사실로 믿고 잘 들어주신다.

아들이 교장이니 파출부들이 자식 자랑을 해도 덕담으로 화답하며 좋게 들어주신다.

 

그런데 어느날 퇴근하여 어머니를 보니 심기가 불편하시다. “파출부가 이미자 노래쇼를 구경했다는데!!!!

다른 자랑은 넘겨보냈는데 이미자 공연을 봤다고 자랑하는 파출부에게 문화적 자존심이 상하신 것이다. ㅎㅎㅎ~

 

지난 달 출근하는데 전봇대에 이미자 데뷔 55주년 수원공연! 플래카드가 붙었다. 학교에 도착하여 어머니에게 전화하니 가시겠단다.

하여 오늘 경기도문화의 전당에서 이미자 노래 공연을 보러갔다. 가기 전에 어머니가 갑자가 없어지셔서 큰 난리를 치루었다.

아버지가 튀김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갑자기 말도 없이 시장에 가신것이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이미 첫곡이 시작되었다.

결례를 무릅쓰고 안내원의 유도로 자리를 잡고 어쨌든 공연은 보았다. 어머니도 대부분 아는 노래라고 하셨다.

 

대부분 자녀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온 경우가 많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길잃은 기러기” 를 부를 때는 전율을 느겼다.

아빠는 어디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아~아  아~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잃은 기러기~

바이브레이션이 정말  최고다. 그 나이에 고음처리가 너무나 훌륭하다.

보통사람보다 호흡량이 2.5배로 탁월하게 많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2시간 공연에 1시간30분 쯤 되었을 때

어머니가 시간을 물으셨다. 약간 힘들어하셨다.

 나갈까요?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셨다.

끝까지 공연 잘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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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문화의 전당이 넓어서 자동차에서 내려 많이 걸어야하는데  어머니가 감내하시기 어렵다.

하여 집에 있는 휠체어를 자동차에 실고 가서 주차장에서 부터는 휠체어로 이동하였다.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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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명예의 전당^-^

수원 영화예술인협회 박병두회장님이 답사여행에 함께 가자고 여러번 제의하였다.

 연휴에 마땅히 다른 계획도 없어 회원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하루 답사 여행을 다녀왔다. 양평에 있는 영화마을이다.

몇가지 영화촬영세트를 구경하고 영화인 명예의 전당 게시물을 관람하였다.

신상옥감독, 황정순, 김지미, 엄앵란 그리고 몇명의 영화감독이 명예의 전당에 걸려있었다.

여러 배우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 김지미관에 제일 관심이 있었다.

김지미! 올해 만74세, 한국영화사에 최고 미녀라고 말해도 반대할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그녀의 젊은 시절 사진이 있어 카메라에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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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70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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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4년전 70세의 모습이다. 아직도 좋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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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가 이니고 세트장에 있는 모형 출렁다리에 올라 사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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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의 젊은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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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지미 젊은 시절! 조각 같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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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타이트한 옷을 입지 않는 집사람이 큰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오랜만에 새옷을 장만하였단다.

지난 해 입국하였던 큰 아들이 강제로 제 엄마를 끌다시피 하여 꽉끼는 옷을 사놓고는 걱정이 태산이다.

살쪄서 못입으면 어떻하냐고 ㅎㅎㅎ~

서울에 혼인식에 참석할 일이 있어 문제의 그 옷을 입고 갔다가 예식장 로비에서 찍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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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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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아산이가 사준 엄마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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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의 남북국 시대?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교학사에서 나온 한국사 고등학교 교과서를 읽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선사시대에서 부터 노무현정부와 이명박 정부까지 다루고 있다.

우선 내용이 방대하였다. 그리고 내가 역사전공이 아니다 보니 한시간에 20쪽 이상 읽기는 불가능했다.

여러날에 걸쳐서 자세히 읽었다. 우선 많은 공부가 되었다.

 

특히 기억할만한 내용은 실학자 유득공이 지은 발해고(1784)에서 통일신라시대를 한반도를 완전히 통일한 것이 아니고 고구려의 영토 대부분을 잃었고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합하여 세운 발해가 엄연히 존재하였기 때문에 통일신라시대라고 부르지 않고 남북국시대라고 불렀다.

또 역사학자 신채호는 독사신론(1908)에서 다른 종족을 끌여들여 같은 종족을 멸망시키는 것은 도적을 불러들여 형제를 죽이는 것가 다를 바가 없다고 신라의 김춘추를 욕하고 있다.

발해는 698년 건국하여 926년 망할  때까지 228년이라는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진 왕조였다.

발해는 건국이후 정복활동을 벌여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을 회복하였고 남쪽의 신라와 함께 공존하는 남북국 시대를 열었다.

발해는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자신들의 나라이름을 고려라 하고 왕을 고려국왕이라 하는 등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명백히 하였다.

발해의 건국은 고구려가 망한 후 만주지역을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로 유지하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 책에서는 발해의 역사를 여러지면을 할애하여 자세히 다루고 있고 본문에서 남북국시대라는 표현으로 자주적 역사관을 보이고 있다.

 

고려의 광종도 자주적인 왕이였다.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준풍 등 독자연호를 썼다.

이러한 정책에 반대하는 공신과 호족세력은 숙청하였다.

고려말에 논농사의 경우 노동력을 절감시켜주는 이앙법(모내기법)이 보급되었다.  이앙법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많고 제초작업도 수월하여 농민들이 선호하였다.

그러나 이앙법은 벼가 뿌리를 완전히 내리기 전에 가뭄이 발생하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었다. 이앙법은 제초작업의 노력을 줄일수 있는 당시 최고의 농사법이었다.

모내기를 할 때 줄을 맞추어서 심기 때문에 벼와 잡초가 구별되어 김매기를 쉽게 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농부가 한여름 내내 하는 일은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직파법의 경우에는 벼가 무질서하게 자라 김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앙법은 물이 부족하게 되면 한해 농사를 망치게 되는 위험이 있었다.

 

고려 때는 무반에 비하여 문반이 우월한 위치에 있었으며 무반은 실제로 3품까지 밖에 승진할 수 없었다.

고려시대 주식으로는  쌀보다 보리 조의 비중이 컸고 백성들은 하루 식사를 조석으로 두끼니를 먹었다. 나도 정년퇴직하면 하루에 두끼만 먹으려 한다. ㅎㅎㅎ~

고려 때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3심제로 재판한 후 마지막으로 국왕의 재가를 얻어 사형을 집행하였다.

고려는 918년 건국하여 1392년까지 474년이나 존속한 왕조였다. 조선은 518년의 단일왕조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왕조다.

훈고학이 한에서 당까지 성행하였던 유학인것도 알게되었다. 훈고학-성리학-양명학–고증학으로 변해왓다.

 

오늘날 삼국사기는 보물이고 삼국유사는 국보인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하여 써졌지만 일연의 삼국유사,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단군을 시조로 인식하는 민족의식과 자주성이 드러나 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스님이었기 때문에 집필에 자유스러웠겠지만 읽어보면 일연의 자주적 생각이 넘치는 책이다.

그가 없었으면 단군신화는 없었을 것이다. 중국도 그러하고 어느 민족이든 신화로 시작하며 신화가 없는 민족은 없다고 말하며 우리의 단군신화도 그래서 의미가 있기에 서술한다고 말하고 있다.

광종의 연호사용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김부식은 작은 나라가 연호를 쓰는 것은 부당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1145년에 쓰였고 보물 722호다. 삼국유사는 1285년에 쓰였고 국보 306호다. 제왕운기는 1287년에 쓰였고 보물895호다.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새로운 형식의 시로써 현대시의 출발점이 된 시이다. 고정된 정형시의 운율에서 탈피하였다.

신체시가 무언지도 모르고 외우기만 했다. 新體詩! 한문을 알았다면 단숨에 이해했을텐데…..

 

우리 역사의 타율성과 정체성을 주장하는 일제 식민사관의 역사 왜곡에 맞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역사발전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역사연구가 이루어졌다.

박은식의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샌채호의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사, 정인보와 문일평 등의 민족주의 사학의 계승과 발전

이병도와 손진태 등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한다는 실증사학 등의 학풍이 있었다. 이들의 역사 연구는 모두 일제식민 사학을 비판하고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했다.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은 개화기 문학을 이어받아 계몽적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였는데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 등은 인간 본능과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문예활동을 전개하였다.

 문학이 드디어 목적성을 띤 계몽수단을 넘어 순수예술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노천명은 일제말 일본군에 입대하라는 친일시를 썼고,

1919년 2.8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이광수는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주필로 활동했지만 1939년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을 맡는 등의 친일행동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암울한 시기에 살기위해 지조를 꺽고 일제에 협조하는 글을 쓴 문인들이 누구인가 교과서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목숨이 하나인 까닭에 평생 지조를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편적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인생 전체를 놓고 진중한 판정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인촌 김성수에 대하여도 다루고 있다. 1940년 동아일보를 일제가 폐간시키자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김성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광복 때까지 숨어지낸다.

그는 창씨개명도 거절하였고, 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절하였다.

보성전문학교 교장이었던 김성수는 학생들이 창씨개병 거부와 학도병 징집거부가 이어지자 학생들에게 자신이 믿는 바 대로 행동하라며 학생들의 창씨개명 거부와 징집거부를 방관하였다.

 1943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김성수 명의로 징병에 찬성하는 글이 실렸는데

이 글은 매일신보 김병규기자가 김성수의 명의를 도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라고 김성수의 친일관련 내용을 중립에서 벗어난 약간 김성수 옹호 쪽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부분을 문제삼은 사람들이 많고 친일교과서라고 배척하는 것이다. 아! 지금의 논리로 일제강점기를 흑백논리로 재는 것이 과연 맞는가?

이 역시 그 사람이 평생에 걸쳐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를 봐야하는것 아닌가? 저자는 5000년 역사를 서술하면서 김성수를 책에 넣어 왜 이런지엽적인 문제로 분란의 소지를 주었는지 모르겠다.

 

 광복직후 미군정은 일본인 관료들을 대체할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여 치안공백이 우려되자 총독부에 근무하던 관료와 경찰을 그대로 재고용하였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8년 9월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제정하고 실행하려 했지만 경찰은 치안유지와 공산세력 저지의 공을 주장하며 반발하였다.

저자는 이승만 대통령이 공산세력 소탕에 경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반민족행위자 처벌 문제를 강력히 추진하지 못했다고 이승만의 과오를 지적하고 있다.

 이것이 두고두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과오로 남은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는 이승만의 공은 누락하고 있다.

6.25북한의 남침 때 미군사고문단 500명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미군의 파병을 요구했던 배짱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으며

반공포로를 과감하게 석방한 일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통일을 누구보다도 바랐으며 결코 휴전협정에 도장찍지 않았다.

미군 36000명이 전사하는 등 피해가 너무커 발을 빼기 위해 서둘러 휴전하려는 미국을 거의 협박하다시피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것도 이승만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군사적 안정의 토대가 있었기에 외국이 남한을 믿고 투자한 것이다. 그러한 군사적 안정의 바탕위에 2012년 수출5479억불로 세계 7위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인도, 브라질, 캐나다 등의 큰 나라도 모두 수출실적이 대한민국보다 아래다. 이건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자원이있나 나라가 크기를 한가!

백범도 훌륭한 독립의 지도자이며 투사이다. 암살당해 그의 인생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김구에 비하여 이승만은 너무 저평가 되어있다.

내 생각에 박정희의 단속도 한목했으리라 하와이 망명지에서 조국에서 죽고 싶다고 병든 몸으로 여러번 탄원했으나 끝내 박정희는 허가하지 않았다. 죽은 몸으로 입국했으며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혔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지도자가 어디 있겠는가? 5.10총선거를 반대하고 남북협상을 하겠다고 북으로 간 김구의 충정을 모르는바 아니며 폄하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김일성에 의한 정부가 수립되어있었고 남한은 박헌영을 비롯한 공산당의 활개로 나라는 혼란했다. 그 때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지 않았다면 남한은 벌써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이승만은 그런 국제적인 정치감각을 갖고 있었다. 공산당과 대화해봐야 소득이 없다는 것은 오늘날 북한 핵문제를 위한 6자회담만 봐도 알수 있지 않은가?

맨날 질질끌고 알맹이 없는 회담만 하는 가운데 핵실험을 계속되고 북은 이미 핵을 완성하였다. 미국은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시절 차라리 클린턴 생각대로 원자탄 생산시설을 폭격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답답하기만 하다.

김구의 주장대로 5.10총선거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북한은 이미 김일성 정권이 사실상 세워졌는데 남한은 정부도 수립하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면

과연 오늘날의 남한 정부가 자리를 잡았을까? 생각해본다. 이승만은 탁월한 지도자였다. 그가 있었기에 민족사의 정통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승만이 친미라고? 친일이라고? 모르는 소리다. 미국도 제거할려고 했던 상대가 이승만이고, 

 6.25 후에 떠나려던 미국에게 휴전회담에 서명도 안하면서 까지 미국이 발을 빼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도 체결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얻어낸 것이다.

사실 우리가 미국이 위태로울 때 도와줄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 상호방위조약이지 상호가 아닌 일방적 방위조약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었다면 김일성이 다시 제 2의 6.25남침전쟁을 일으켰을 것은 자명하다.

 이 참에 1990년대 중반에 소련 비밀외교문서의 공개로 스탈린과 모택동의 협조로 김일성이 6.25남침전쟁을 일으킨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는데도

아직도 6.25는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남한에 있는것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런 내용은 교과서에 없는지 모르겠다.

이승만이 친일이라고? 모르는 소리다.

이승만은 일본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죽는 날까지 일본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탄적이 없다. 일본땅을 밟는 것도 스스로  허락하지 못한 것이다.

 

타자치기도 힘들다…..ㅠㅠ~

오늘은 그만 써야겠다. 이제 좌파성향 교과서로 이름난 금성출판사간 한국사 교과서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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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아버지가 식사를 못하신다.

여러날 아침 점심으로 과일만 드시고 저녁에만 곡기를 취하셨다.

과일은 바나나 사과 등을 야쿠르트를 넣고 믹서에 갈아서 드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냉면은 드신다. 회냉면을 즐겨드신다.

오늘 저녁에 아버지, 어머니, 나, 집사람, 석영이 이렇게 다섯이 함흥냉면집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회냉면을 시키셨고 아내는 비빔냉면, 나와 어머니 석영이는 물냉면을 시켰다.

아버지가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시니 걱정이다. 그런데 회냉면은 한그릇을 다 비우신다.

아마도 냉면도 계속해서 드시면 싫어하실 수도 있다.

왕만두도 한접시 시켜 먹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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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이 엄마는 사진 찍느라 화면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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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견학프로그램으로 헤이리마을…….

율곡교육연수원에서 열리는 학교장 회계전문연수에 현장견학 프로그램으로 헤이리마을에 갔다.

예술가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했는데 건물은 모두 3층이내로 제한한다고 했다. 그리고 건물마다 커피숍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했든데 거의 모든 건물이 상업적 행위를 하고 있었다.

예술가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인가? 가끔은 판매는 하지 않고 전시만 하는 건물도 있기는 했다.

피카소의 도자기를 전시하는 곳이 있었는데 입장료도 받지않고 판매도 하지 않았다. 그냥 전시만 했다.

 

전체적으로 건물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건물외곽 조경은 지저분했다. 무언가 손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만 예쁘다고  헤이리 마을이 돋보이지는 않는다. 주변 공간도 입주민들이 힘을 모아 아름답게 가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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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음악감상실이다.  그냥 콘크리트 구조말이라는 느낌밖에 없는데 손님이 많다고 하니 이해가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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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인데 벽면에 책이 꽉찾다. 나는 딸기스무디 한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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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전직대통령 두분이 드시고 가셨다는 식당에서 메기매운탕을 먹었는데 민물참게를 넣어서 맛이 좋았다.

나는 메기매운탕을 잘 먹지 않는데 여럿이 어울려 먹으니 그냥 먹게되었고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1인분에 15,000원이고 4명분 한상에 60,00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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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 회계 전문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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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은 학교의 교육과정에 책임을 지지만 학교회계에 대한 최종 책임도 학교장에게 있다.

그런데 교단 출신인 나로서는 회계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 하여 이번에 학교장 회계전문연수를 다녀왔다.

파주에 율곡 묘소가 있는 넓은 산이 있는데 덕수 이씨 집안에서 땅을 기증하여 율곡 묘 옆에 경기도율곡교육 연수원이 1980년대에 건립되었다.

나는 여러번 이곳을 방문했는데 젊은 시절에는 연수에 참가하기 위해 주로 왔고, 최근에는 교감이나 교장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에 강사요원으로 온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연수생으로 참가하였다. 율곡연수원 건물을 볼 때마다 설계자에 대한 존경심을 금할 수 없다.

지붕 처마선은 내 생각에 석가탑의 지붕선에서 따온것으로 생각된다. 큰크리트로 지었지만 한국전통 건물의 느낌을 나타내려 2 층에 검은 난간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콘크리트 건물의 둔중함을 감소시키기 위해 앞에 열주를 배치하여 경쾌한 느낌을 주었다. 설계자는 정말 천재다^-^

일주일 동안 회계연수를 받았는데 시간투자 대비 효과는 거두지 못한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배움은 있었다. 떠나기전 행정실장이 웃으면서 하는 말

 “그렇잖아도 맹기호교장선생님이 알뜰하신데 교육받고 오시면 더 알뜰하게 학교살림하실까봐 걱정됩니다.”

내가 그렇게 짤돌이였나? ㅎㅎ~ 그냥 국가의 돈을 효율적으로 쓰려했던 것이 아닐까?

내가 학교 예산을 쓰는 기본 원칙은 확실하다. 나는 학생들에게 들어가는 직접교육비는 절대 아끼지 않는다.

시설투자도 중요하지만 직접교육비가 우선입니다. 학교 지출의 1순위는 직접교육비 입니다. 이건 내가 선생님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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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묘소를 둘러싼 송림이 아름다워 사진기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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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시간에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아주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사진을 부탁했는데 밑에 기물을 찍지않고 인물 중심으로 찍어버렸다. 원 이렇게 사진못찍는 사람이 있나…..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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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팔자에 바리스타 도구들 사서 알커피 사다가 갈아서 먹을 여유가 있을까? 정년이나 하고 나서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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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father, grand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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