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관련 소설 [古根의 이젤]을 읽고 호는 정월(晶月)이며 고근은 수덕사 고승 만공스님이 지어준 불명이다. 수덕여관에 5년 이나 기거하면서 불문에 받아달라고 했으나 만공스님이 불허하여 그녀는 결국 비구니가 되지 못했다.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나혜석에 대한 어떤 평가는 어렵다. 미술가, 문학가, 독립운동가, 페미니스트, 너무 앞서간 여성 해방 운동가, 널리 용납해주기에는 어려운 여자 등으로 내가(맹기호) 평가하며 어찌 보면 나혜석은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너무도 일찍 주장하다가 불운하게 생을 마감한 여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이며 계몽사상가임은 틀림없다. 그의 주장은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오늘날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혜석의 작품 사진과 함께 나혜석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리투아니아 출신 프랑스 표현주의 화가 샤임 수틴의 그림도 올렸다. 샤임 수틴의 그림을 보면 나혜석의 거친 그림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나혜석관련 책은 3권 읽었다. 그녀의 이혼고백서, 소설 [경희]를 읽어야겠다.
![k232534386_1[1].jpg](https://anbindr.com/wp-content/uploads/xe_files/60/056/062/k232534386_1%5B1%5D.jpg)
그의 유명한 어록을 여기에 적어본다.
어떠한 결혼이든지 거기 연애가 있으면 그것은 도덕이고, 적법한 법률상 수속을 다해서 성립된 결혼이라고 하더라도 거기 연애가 없으면 그것은 부도덕이다. 결혼 후 다른 남자나 여자가 서로 좋아해 지내게 되면 부도적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남편과 배우자와 더 잘 지 낼 수 있는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여자는 새로운 남자를 만날 때 마다 다시 처녀가 된다. 배우자를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혼외 정사를 벌이는 것은 죄도, 실수도 아닌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의 행동일 뿐이다.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뺏으려 합니다.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한국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 누이, 어머니는 깨끗하고 순결한 여성이기를 바라면서도 남의 여자에게는 성욕을 품고 희롱하거나 성관계를 맺는 것은 이중적이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아 한 줌의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외다. 자신이 정조를 지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정조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남여가 평등해야하고 여성이 스스로 자립해야 하며 여성 역시 남성 못지 않게 중노동을 할 수 있다.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자립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사회활동을 해야하며 취직하고 일터에 나와야 한다. 정조는 그 사람과의 연애 혹은 결혼할 동안 다른 이성과의 외도나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다.
나혜석(羅蕙錫, 1896~1949) 24 세 때
아래 김우영과의 혼인 사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얼굴이 예뻐 남자들이 많이 꼬였다고 하는데 사진 상으로는 좋은 인물로 보인다.
김우영과의 혼인 사진
1920년 4월에 혼인
이혼 직후 사진이다.
1930년, 나혜석의 나이 34세
자화상
김우영 초상
봉천 풍경
나혜석의 작품 : 샤임 수틴의 영향을 받는 작품으로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다
나혜석 작품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나혜석의 작품 : 나부
수원 신풍초등학교 후문 부근 나혜석 생가터
샤임 수틴 작품
샤임 수틴 작품
샤임 수틴의 작품 : 붉은 스카프를 두른 남자
2007년 런던 소더비경매장에서 그의 작품 중에서는 최고가인 1720만 달러에 팔렸다.
모딜리아니와 사귀였으며
모딜리아니가 그려준 샤임 수틴의 초상이다.
샤임 수틴 본인이 그린 자화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