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천주교 신부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답변을 위한 만남은 이병철 회장의 폐암 악화로 연기되었다가 바로 세상을 떠나자 이루어지지 않았고,
질문지는 천주교의 원로 정의채(86)몬시뇰이 보관해오다 타계 24년 만에 어제 중알일보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2011년 12월 차동엽 신부에 의해 답변서가 만들어졌다.
재계의 거물,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 죽음을 앞둔 현대사 거목의 질문서는 무거웠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이회장이 던졌던 인간적 고뇌는 맹기호 평생의 고민이기도 하다.
질문은 모두 24개인데 여기에 몇개의 질문과 차동엽신부의 답변을 적어본다.
1. 첫 질문은 둘러가지 않았다. 바로 과녁의 중앙을 향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차동엽신부의 답: 우리 눈에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은 정해져 있다.
소리를 못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이다. 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
차동엽신부 답변: 창조주로서의 신의 문제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고 체험의 문제다.
결국 우리가 신을 어떻게 만날건가의 문제다. 만나면 증명이 되는 거니까. 그럼 신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카톨릭신학생 시절 고 최민순 신부님은아침 수업에서 이런 시상(詩想)을 내놓았다.
꽃을 본다/꽃의 아름다움을 본다/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이 구절을 듣는 순간 충격이었다. 이 아름다움을 신이 아니면 누가 만들수 있겠는가?
결국 한송이 꽃을 통해서도 신을 체험할 수 있고 그 체험이 자신에겐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것이다.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아닌가?
답변 : 하느님이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는 것은 3차원적 사고에 갇힌거다. 신앙적으로 큰 잘못이다.
초월적 존재인 신을 인간의 3차원적 사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걸 떠나신 분이다.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축약했다고 봐도된다.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신이 창조한 생명체도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진화해야한다.
그런 진화를 인정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창조론이란 더 큰 울타리 안에 포함된 개념일 뿐이다.
4.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답변: 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고통이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
우리는 선택을 한다. 신을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 조차도 선택의 대상이다.
고통의 뒤에는 선택이 있고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리고 고통은 주로 자유 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가령 불에 손을 집어넣으면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뺀다. 만약 고통이 없으면 손이 다 타고 만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한 신호다. 고통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신의 섭리, 우주의 존재 원리를 벗어났을 때 그 궤도를 다시 찾으라는 신호다.
5.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답변: 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을 짜맞추고 모자이크 해보니 어떤 그림이 나왔다. 그 그림을 봤더니 하느님의 그림이 나왔다.
긴세월, 여러사람, 다양한 음성을 통해 나온 말이 어쩌면 그렇게 합치될 수 있을까? 물론 표본오차 정도의 편차도 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어투와 성격 때문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기조가있다.
그걸 볼 때 성경의 원저자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성령이고 이 밑에 있는사람들이 입과 손과 가슴을 빌려준 것이라고 본다.
6.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타종교인, 무신론자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답변: 예전에는 천주교밖에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의 구원이 없다는 수준으로 얘기했다.
그러나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환점이었다.
천주교가 좀 더 합리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다른 종교의 면면을 보니
천주교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던 거다.
그 후 입장이 바뀌었다. 타 종교인의 구원여부는 신이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7.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것 같다. 이처럼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답변: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고 오히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의 섭리가 과학을 통해 더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다.
8.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답변: 죽음 너머의 세계는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 물음에는 나의 주관적 신념으로 답할 수 밖에 없다.
예수의 12제자는 모두 자발적 죽음을 택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안드레아는 엑스형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12사도가 모두 그랬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죽음을 불사했을까?
답은 하나다.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12사도의 죽음이야말로 강력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