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잃어버린 자식 찾듯이……

영덕중학교에 부임하여 독서교육을 열심히 하였다.

밤샘독서

독서퀴즈대회

독서마라톤대회

필독도서 읽기

독서신문발행

독서캠프

학부모독서클럽

독후감노트 작성 대회

정말 여러가지 독서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한권 빌릴 때마다 학생들에게 쵸코렛을 하나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매월 책을 많이 읽은 학급은 학년별로 학교장 상을 시상하고 부상도 주었다.(역시 초코바 ㅎㅎㅎ~)

수원시에는 50여개의 중학교가 있는데 학교도서관 운영평가에서 최우수 학교상을 수상하였다. 정말 기뻤다!

성호 이익선생은 “어머니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이 책을 읽으라” 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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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일요화가회 창립 29주년 기념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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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일요화가회 창립 29주년 전시회를 수원미술관에서 개최하였다.  나는 이런 일을 29년 동안이나 했다. 나도 참…….

아마도 다른 일을 했으면 어느정도 대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림은 이렇다할 뚜렸단 진전이 없다. 그림은 어렵다. 해도 어렵다. 언젠가는 되겠지…..

또 안되면 어떠랴!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플래카드 글씨는 내가 직접 썼다. 흘림체로 썼는데 보는 사람들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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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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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깝게 지내던 교장 4명이서 부부동반으로 호남 덕유산국립공원에 올랐다.

눈이 많이 내려 산악회버스가 제대로 갈까 걱정했는데 이미 고속도로는 완전히 녹아있었다.

나는 등반 중에 땀이나면 찬기운이 몸에 스며오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겨울철 등반에도

속옷을 거의 입지 않고 겉옷 위주로 입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잘못생각하였다.

너무나 추운 날씨탓에 등산 중에도 땀이 나지 않고 부실하게 옷을입어서 추위에 떨었다.

두꺼운 양말과 겨울 장갑을 준비했지만 손발이 시렸다. 얼굴도 몹시 시렸다.

눈꽃이 펴서 경치는 장관이었으나 너무 추워 경치 감상할 겨를도 없었다.

땅만 보고 걷다가 좋은 곳이 나오면 얼른 사진 한장 찍었다.

덕유산의 굽이치는 산맥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날씨가 추워 고생했지만 멤버들이 모두 인품이 좋은 존경하는 분들이었고, 나름대로 좋은 여행이었으며

특히 주말인데도 산악회버스는 버스전용차선으로 달려 교통체증이 전혀 없는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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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이병철의 질문- – 맹기호도 하고 싶은 질문

  

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천주교 신부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답변을 위한 만남은 이병철 회장의 폐암 악화로 연기되었다가 바로 세상을 떠나자 이루어지지 않았고,

질문지는 천주교의 원로 정의채(86)몬시뇰이 보관해오다 타계 24년 만에 어제 중알일보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2011년 12월 차동엽 신부에 의해 답변서가 만들어졌다.

재계의 거물,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 죽음을 앞둔 현대사 거목의 질문서는 무거웠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이회장이 던졌던 인간적 고뇌는 맹기호 평생의 고민이기도 하다.

질문은 모두 24개인데  여기에 몇개의 질문과 차동엽신부의 답변을 적어본다.

 

1. 첫 질문은 둘러가지 않았다. 바로 과녁의 중앙을 향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차동엽신부의 답: 우리 눈에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은 정해져 있다.

소리를 못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이다. 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

 

차동엽신부 답변: 창조주로서의 신의 문제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고 체험의 문제다.

결국 우리가 신을 어떻게 만날건가의 문제다. 만나면 증명이 되는 거니까. 그럼 신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카톨릭신학생 시절 고 최민순 신부님은아침 수업에서 이런 시상(詩想)을 내놓았다.

꽃을 본다/꽃의 아름다움을 본다/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이 구절을 듣는 순간 충격이었다. 이 아름다움을 신이 아니면 누가 만들수 있겠는가?

결국 한송이 꽃을 통해서도 신을 체험할 수 있고 그 체험이 자신에겐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것이다.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아닌가?

 

답변 : 하느님이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는 것은 3차원적 사고에 갇힌거다. 신앙적으로 큰 잘못이다.

초월적 존재인 신을 인간의 3차원적 사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걸 떠나신 분이다.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축약했다고 봐도된다.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신이 창조한 생명체도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진화해야한다.

그런 진화를 인정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창조론이란 더 큰 울타리 안에 포함된 개념일 뿐이다.

 

4.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답변: 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고통이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

우리는 선택을 한다. 신을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 조차도 선택의 대상이다.

고통의 뒤에는 선택이 있고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리고 고통은 주로 자유 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가령 불에 손을 집어넣으면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뺀다. 만약 고통이 없으면 손이 다 타고 만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한 신호다. 고통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신의 섭리, 우주의 존재 원리를 벗어났을 때 그 궤도를 다시 찾으라는 신호다.

 

5.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답변: 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을 짜맞추고 모자이크 해보니 어떤 그림이 나왔다. 그 그림을 봤더니 하느님의 그림이 나왔다.

긴세월,  여러사람,  다양한 음성을 통해 나온 말이 어쩌면 그렇게 합치될 수 있을까? 물론 표본오차 정도의 편차도 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어투와 성격 때문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기조가있다.

그걸 볼 때 성경의 원저자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성령이고 이 밑에 있는사람들이 입과 손과 가슴을 빌려준 것이라고 본다.

 

6.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타종교인, 무신론자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답변: 예전에는 천주교밖에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의 구원이 없다는 수준으로 얘기했다.

그러나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환점이었다. 천주교가 좀 더 합리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다른 종교의 면면을 보니 

천주교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던 거다. 그 후 입장이 바뀌었다. 타 종교인의 구원여부는 신이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7.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것 같다. 이처럼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답변: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고 오히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의 섭리가 과학을 통해 더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다. 

 

8.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답변: 죽음 너머의 세계는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 물음에는 나의 주관적 신념으로 답할 수 밖에 없다. 

예수의 12제자는 모두 자발적 죽음을 택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안드레아는 엑스형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12사도가 모두 그랬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죽음을 불사했을까?

답은 하나다.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12사도의 죽음이야말로 강력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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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성공 ^-^

나는 허리가 약하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옛날부터 그러했다.

등산을 하고 나면 다음 날 허리가 아프다. 무거운 것을 들어도 여지없이 허리가 아프다.

늘 걱정이다. 사실 인간은 직립하면서부터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상체의 하중이 허리에 집중되면서 요통이 생긴것이다.

나는 훌라훌프를 한 바퀴도 돌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꾸준히 연습하다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동작이 요란하였는데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된 모습으로 돌린다. 하긴 본격적으로 연습한지 5년은 족히 되었느니 늘만도 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10분씩 하는데 아마 365일 중에서 330일 이상 한다.

 

나의  훌라훌프 돌리기 목표는 허리와 목에 하나씩 두르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지금 허리에 하나 돌리면서 목에는 훌라훌프를 감지 않고 빈목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것까지 성공하였다.

그런데 목에 두르고 돌리는 것이 아주 어렵다. 치아에 부딫치기 일수이고 손가락에도 부딫쳐 여러번 다쳤다. 입술에서 피가 나기도 하였다.

오늘 점심 후 오랜만에 훌라훌프를 목에 감고 연습하다가 드디어 성공하였다. 20바퀴까지 돌리는데 성공하였다. 기분 아주 좋다!!!

 

오늘 목으로 훌라훌프 돌리기를 성공하였다.

이제 다음 목표는 허리와 목에 훌라훌프를 두르고 동시에 돌리기다.

그 다음 최종 목표는 허리와 목에 훌라훌프를 두르고 반대 방향으로 돌리기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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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허리에 훌라훌프 감고 돌리기다. 사진처럼 허리를 쭉펴야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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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공한 목에 훌라훌프 감고 돌리기다. 오늘 성공하였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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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에 훌라훌프를 감고 목을 훌라훌프와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있다.  작년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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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목으로 훌라훌프 돌리기다. 입술에 부딫쳐 여러번 피가 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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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생각하며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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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완교수와 함께 Hi-Seoul 마라톤 half course에 출전하였다.

21.0975km 하프코스의 결승라인에 들어오고 있는 남기완교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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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4번! 하필 6.25에 4번이냐? ㅎㅎㅎ~ 매우 지친모습으로 내가  결승선에 들어오고 있다.

19km지점에서 무릎관절이 아파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미국에 있는 아들을 생각하였다.

아들이 16살의 어린 나이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캐나다로 떠나던 날이 생각났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도 타본적이 없는 아들은 영어도 잘못하면서 혼자서 태평양을 건널 때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을까?

아들이 처음 가는 캐나다는 당시 아는 사람이라곤 한명도 없는 나라였다.   넓은 미국 땅에도 아는 이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비행기를 타러 거침없이 국제선 탑승구로 향하던 아들의 그날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19km, 20km, 21km 안내판이 점점 다가왔다. 마침내 21.0975km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2개월 전부터 몸을 만든다고 연습했지만 한마디로 연습 부족이었다. 참담하다. 2시간29분35초……

앞으로 얼마나 더 뛸수 있을까? 10km로 주행거리를 낮추어야하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뛰는 동안 관절이 아파왔다. 다행이 마라톤이 끝나고 하룻밤을 자고 나니 관절은 아무렇지도 않고 다리 근육통만 남았다.

정말 괜찮을까? 며칠 쉰 다음 천천히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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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 끝나고 한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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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남기완 교수와 함께 덕수궁에 들렸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던 조선의 정궁이다.

고종 때 근대화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지은 석조전도 구경하였다.

붕우 남기완교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평생을 함께하며 정을 나누고 사는 그는 형제보다도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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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8

Last Plan

 

10월 1일: 15km

10월 2일 : 휴식

10월 3일 : 5km

10월 4일 : 5km

10월 5일 : 8km

10월 6일 : 5km

10월 7일 : 휴식

10월 8일 : 휴식

                  10월 9일 : D-day, 21.095km

 

지난번 슬럼프 이래 며칠 쉬었다가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5km씩 3일을 달렸다.

어깨통증을 유발하는 위로 들어올리기 근육운동은 생략하고 체력단련기 10개 코스를 3회씩 하던 것을 2회로 줄여서 15분동안만 하였다.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15km를 달렸다. 붕우 남교수가 최소한 15km는 연습을 해두어야 본게임에 문제가 없다고 하여 15km를 달린것이다.

10km를 넘어서면서 무릎이 아파왔지만 참고 달렸다. 트레드밀에서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간단하게 15분 동안 근육운동으로 마무리하고  걸어서 집으로 왔다. 걸어오는 동안 아무렇지도 않았으며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문제는 집에와서 1시간 정도 지난 후 2층에서 내려오는데 다리가 아파 어기적거리면서 내려왔다. 음…..뛰고나서는 이상이 없었는데…

그런데 6시간 자고 일어나 다음날 걸어보니 몸은 거의 회복되었다. 오르막 계단에서 아주 약간 다리에 근육통증이 있지만 90%는 회복되어있었다.

어제 15km를 달리고도 다음날 아침에 90% 회복되었다면 어느정도 연습은 된것이다. 하룻밤 잔 뒤에 회복해주는 내 몸에 감사한다.

다만 체중이 문제다 운동전 체중은 64.1kg, 운동 후 체중은 62.6kg,

정상은 56.7kg! (64.1-56.7=7.4) 7.4kg을 빼야한다!  한계샹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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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9월 18일 : 5km를 천천히 달렸다. 근육운동 20분 했다.

                                                 9월 19일 : 5km를 천천히 달렸다. 근육운동 20분 했다.

                                                 9월 20일 : 5km를 천천히 달렸다. 근육운동 20분 했다. 

                                                 9월 21일 : 5km를 천천히 달렸다. 근육운동 20분 했다. 무릎과 골반이 아프다.

                                                 9월 22일 : 6km를 천천히 달렸다. 근육운동 20분 했다. 무릎과 골반이 아프다.

                                                 9월 23일 : 7km를 천천히 달렸다. 근육운동 20분 했다. 무릎과 골반이 아프다.

                                                 9월 24일 : 10km를 천천히 달렸다. 어깨가 너무 아파 근육운동 못했다. 무릎과 골반이 아프다.

                                                                             아무래도 왼쪽 어깨 인대가 파열된것 같다. 아프다.

 

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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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나온 뱃살……동탁이 죽은 후 배에 심지를 밖고 불을 켰더니 한달을 탓다고 하던데…..

남말 할 때가 아니구나! 내 꼴이 이게 뭐냐? 하여 달리기를 하면 뱃살이 빠질까하고 며칠 열심히 달렸더니

몸에 이상이 왔다. 하긴 내나이 벌써 60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낡을 때도 되었지 스스로 안타까운 마음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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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 마라톤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집에 마라톤 메달을 세어보니 10개나 된다.

어떤 이는 달리기보다 걷는것이 좋다고 하지만 충청도 말로 걷는것은 시부정찬어서 못하겠다. 걷는것은 오래해도 운동한 맛이 맛이 나지 않는다.

나는 달리고 싶은 마음을 꺾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나는 관절에 이상이 와서 더 이상 달릴수 없을 때 포기할 것이다.

얼굴 살도 늘어지고 쳐졌다.  앞으로 조용히 받아들여야 하는데…..받아들이는것!  그것이 공부다.

며칠 동안 근육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나름대로 상체가 단단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왼쪽 어깨가 너무 아프다.

오늘 근육운동 못했다. 가만히 있어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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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3일 했다고 자책하지말아라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두번 째 읽었다.  좋은 부분이 너무 많아 적어본다.

 

감사에 행복의 길이 있다. 혹시 그대가 깊은 나락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을 때가 오면 이 한마디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죽고 싶도록 힘든 오늘의 그대 일상이 그 어느 누군가에는 간절히 염원한 하루라는 것을……

 

한달에 한가지라도 전혀 돈이 되지 않는 것을 찾아 시도해보라

 

체험만큼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것은 없다. 특히 감수성이 민감한 청춘시절 쌓은 체험은 무척 소중한 것이다. 자기를 돌아보는데 이만 한 게 없다.

그러니 다양한 체험을 해보려고 노력하라. 그러나 시간과 여건 때문에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읽는다.

신문에서, 잡지에서, 우리는 성공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인터뷰나 체험담처럼 세상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간접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읽을것,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읽을것, 그리고자신에 대하여 생각할것이다.

 

연애 감정은 청춘이 가질수 있는 가장 강렬하고 원초적이며 순수한 감정이다. 그 감정을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예술을 알고 학문을 알고 인생을 알려고 하는가?

젊은 그대가 해야하는 수많은 경험 중에서 역시 으뜸은 사랑이다.

 

많은 바보들은 결의와 각오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정작 실천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나태와 타성으로 포기하기 일수다.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실천이요. 용기다. 그것이 혁명이다. 인생의 차꼬가 옥죄일수록 그보다 더 단단한 삶의 지지대가 있어야 한다.

몰두가 그 지지대다. 몰두가 나를 만든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가 몰두하는 그것이다.

 

죽고 싶도록 힘든 오늘의 그대 일상이 그 어느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염원한 하루라는 것을…

 

슬픔이 시인의 양식이듯 불안은 치열함의 방부제다.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적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1-1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하루에 1시간 씩 1년간 투자하면 무엇이든 꽤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원칙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다. 빌게이츠나 비틀즈 같은 비범한 천재들은 모두 1만 시간의 연습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우리 소박한 삶에서 나름의 성취감을 느끼면서 살기에 1-1원칙이란 하나의 최소한이 아닐까? 연습하는 자와 저축하는 자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그리고 1만시간의 무지막지한 시간이 아니더라도 365시간은 충분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대도 한번 실천해보지 않겠는가?

기적이란 천천히 오는 것이다. 김연아를 만든 것은 한번의 멋진 점프가 아니라 천번의 엉덩방아였을 것이다.

 

우리는 대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먼저 작심, 즉 마음을 먹는다. 삶을 사는 방식이 결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면 실천은 따라온다는 식이다. 그리고 그 실천에 실패하면 자신의 의지가 나약하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삶의 방식은 결의가 아니고 연습이다.

수영을 배우는것과 비슷하다. 내일부터 수영을 잘할테야 하고 결의하면 박태환선수처럼 잘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수영을 잘하려면 연습해야한다.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바꾸어 나가야한다. 중간에 일이 생겨서 하루이틀 거르더라도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해가면서 …..

아직 3일 연습해서 수영을 잘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작심3일 했다고 자책하지말아라. 중요한 것은 처음의 결심을 며칠 실천하지 못했더라도 실망하지않고 다시 계속해나가는 태도다.

공부, 금연, 절주, 다이어트 등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습관들은 결의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해나가야할 문제다.

중간에 다소 태만해지더라고 지키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계속해서 자신을 다잡아가면서 이어나간다.

 

한두번의 작심3일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말고 다만 멈출것을 염려하라. 그러면 오늘이 중요해진다. 많은 사람들은 내일부터 실천하겠다고 한다.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 처절한 다이어트를 해야지 하는 식이다. 내일부터의 결의는 마음의 위안일 뿐이다. 수많은 작심3일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는 그 결의가 실은 오늘의 나태를 합리화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연습은 많은 오늘이 모여 이루어진것이다. 내일은 없다. 그러므로 내일부터가 아니고 오늘 조금이라도 한번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지금부터 하라.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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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살고 가족도 사는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사회 이전에 가족적 동물이다.  가족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사랑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내 생각에 이러한 가족애적 특징은 여성에게 더 강하다. 모성애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것이 아닐까? 물론 자식을 버리는 여성도 있다. 

동물의 경우 숫사자는 새끼가 있어 교미하지 않으려는 암사자 때문에 새끼를 물어죽이기도 한다.

내가 부성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어머니를 보면 모성애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  

그것은 남자에게 필연적인 오이디프스컴플렉스가 있어서 내가 모성애를 부성애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두아들을 가벼이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인영, 석영은 나에게도 끔찍한 아들이다.   

 

 가족을 위한 경제적 활동보다  자신의 개인 생활을 중시하여 직업생활을 그만두려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 가치 를 중시하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책임이나  인내의 부족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심각한 결함이다. 직업이 주는 물질적, 사회적 안정이 개인의 행복을 이루는 토대가 되는데 그것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런식으로 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소중히 여겨온 개인적 삶마저 위태롭게 된다. 

이 길이 내길인가? 지금이라도 새로운 일을 모색해야 하는게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거의 모든 직장인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매우 일반화된 문제다. 

그렇다면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통째로건 가치로운 전생애적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상에 매몰되어 자기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파묻어 버리는 것도 문제다. 용기와 비전이 부족하여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상상만 하다가 세월을 허비하는 것도 비겁한 일이다. 결국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것은 자식을 돌보는 책임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자식에 대하여는 무한책임을 져야한다.

아니 그것은 책임이 아니고 사랑이다. 미국 포드 대통령이 16살 때 아르바이트 하는 현장을 찾아와 같이 살자고 말하는 생부를 매몰차게 내치고 다시는 찾지 않았다.

평생 자신을 사랑한 양부에게 감사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80살이 된 생부가 만나자고 여러차레 메일을 보내도 연락도 취하지 않는다.

스티브잡스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가난한 양부모가 자신을 사랑으로키워준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부는 스티브잡스의 생모에게 대학을 보내기로 약속한 것을 지키기위해 평생 모든 돈으로 스티브잡스를 대학에 보냈다.

양부는 자동차를 수리하며 살아가는 생계수단인 차고를 스티브잡스가 애플을 창립할 때 선뜻 내주었고

손님에게 차를 끓이고 청소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사업을 도왔다. 스티브잡스는 양부모가 양부모라고 불리우는 것도 싫어했다.

 

아들은 딸과 달라서 어떤 때는 없는 것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행동하는 때도 있다. 그것이 수컷의 한계다. 수컷은 원래 아버지를 어머니를 쟁탈하기위한 경쟁자로 생각한다.

나는 다행히(?)양부가 아니고 행복한 생부다.  그리고 나는 다행이 이미 어른이다. 우리가 숫사자 처럼 살 수는 없다.

인간은 가족적 동물이다. 그러나 개인적 생활도 역시 중요하다. 자아 실현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내 가족도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살고 가족도 사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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