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를 지내기 위해 부산에 다녀왔다.
종손되는 형님이 수백년 동안 살아온 터전인 충청도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가셨다.
하여 난데없이 부산으로 명절을 쇠러 다닌다.
새마을 열차를 왕복으로 끊어 가다보니 이건 완전히 여행이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열차여행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두권이나 읽었다. 맥주도 마시면서 아주 룰루랄라였다. ^-^
아내 역시 부산가서 할 일이 없다. 부산 형수님이 차례 준비를 다 해놓으셨을 것이다. 아내도 열차 안에서 책만 읽은다.
가끔 내다보는 열차밖의 황금 벌판은 너무나 아름답다. 내가 언젠가 돌아가야할 고향같은 마을이 창밖에 천지로 널려있다.

아버지가 오래 전 쓰신 8폭 병풍을 보았다. 지금 보아도 약간 흘림체가 아주 명필이다. 명심보감을 쓰셨다.

부산 형수님은 차례상을 아주 정갈하게 차리셨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아주 적당한 차례상이다.
차리느라 수고하신 형수님에게 감사하다.

복생어 청검 : 복은 청검에서 나오고,……..

병풍의 8번째 폭에 아버지의 이름이 보인다. 정축년이면 1997년….아버지가 74세 일 때라면 붓을 놓으신지가 한참 되었을 때다.
이상하다. 아버지는 60대 까지만 글을 쓰시고 그 후로 쓰시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74세에 쓰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글쎄 그러고 보니 어쩐지 병풍의 길이가 약간 짧은 느낌이 든다. 평상시에 쓰시던 종이보다 길이가 짧다. 첫번째 사진을 보면 글 밑에 비단 여백이 너무 길게 남았다.
그렇다면 부산의 조카에게 주기 위해 74세에 오랜만에 다시 쓰신것인가? 여쭈어 보아야겠다.

나는 제사에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물론 조상님이 강신하여 음식을 드신다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냥 조상님을 생각하고 고마워 하는 민족 문화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스스로 아무런 종교적 갈등이 없다.
김수한 추기경은 벌써 30년 전에 한국천주교의 반성이라는 기자회견을 통해
조상에 제사지내는 것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여 거부했던 100년 전의 행위에 대하여 깊이 참회한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30년 전 쯤의 일이다. 불교계 아주 큰 스님이 돌아가셨는데 김수한 추기경이 문상을 갔다.
기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과연 추기경이 망자에게 절을 할것인가?
추기경은 주저하지 않고 성큼 들어서더니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하였다.
기자들이 물었다. 아니 크리스트교도가 장례식에 와서 절을 하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추기경의 답은 명쾌했다.
” 자네는 친구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절도 안하나? “
무서운 일이다. 제사 지내는 것이 우상숭배라고 하여 금지한 선교사들의 가르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였는가!
오늘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집단인 카톨릭보다 개신교 쪽이 더 폐쇄적인 점이다.
개신교도들이 상차림 앞에서 절하지 않고 기도만 하고, 그것이 우상숭배 금지의 10계명에 따르는 것이라고 믿는것은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한 생각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명절에 차례를 지내면서 신을 경배한다는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을까?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나는 차례 지내는 문화가 좋다.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모이고 서로 대화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정을 다지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감사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물론 이번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나는 차례상 앞에서 당당히 절하는 크리스트교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