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헌수장군 >
병인양요(1866년)는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이유로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에 쳐들어온 일이다.
강화는 외적의 침략을 받을때마다 왕이 피난을 갔던 중요한 섬이었다.
해군 군함을 몰고 신식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 군은
파죽지세로 밀려와 강화를 순식간에 점령해버렸다.
조선군은 강화섬에서 밀려 김포에 진을 치고 있었다.
프랑스 군은 강화도를 점령하였지만
기습을 우려해 밤이 되면 바다에 떠있는 군함으로 돌아가서 잤다.
그런데 겨울철이 되자 배에서 더이상 지내기 어려워
강화도의 정족산성 안에 있는 전등사로 거처를 옮긴다는 첩보를 전해듣고
양헌수 장군이 부하 370여명을 데리고 미리 정족산성에 매복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조총으로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당시 조총부대는 사냥군으로 급조한 부대였지만
양헌수장군의 탁월한 용별술로 프랑스를 이겼다.
프랑스군은 6명이 전사하고 70명이 중상을 입었으나
조선군은 한명도 사망자가 없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정족산에 있던 정족산사고를 지켰다.
그 사고에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된것이다.
양헌수! 그가 있어 고마울 뿐이다.
다만, 이 전쟁에 이겨서 대원군의 쇄국의지는 더욱 강해졌고
이것이 개국을 늦추었으며 결국 10년 뒤 일본에 의해 강제개국되고 말았다.
그 때 프랑스에 졌다면…….일본이 아닌 서양세력에 개항되었을 것이고
일본보다는 좀 덜한 지배를 받지 않았을 것아닌가 아는 가정을 해본다. 물론 역사에 가정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