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문열 작가님을 찾아뵈었다. 소설을 쓰는 이원우, 윤재용,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이천 마장동에 사시는 내외분에게 인사드렸다. 나로서는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내가 먼저 혼자 들어가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녹차를 내셨다. 오랜 시간 함께 해주셨고 내 인생에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자리였다.


어제 이문열 작가님을 찾아뵈었다. 소설을 쓰는 이원우, 윤재용,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이천 마장동에 사시는 내외분에게 인사드렸다. 나로서는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내가 먼저 혼자 들어가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녹차를 내셨다. 오랜 시간 함께 해주셨고 내 인생에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자리였다.


오랜만에 문학 친구 채교장과 바이킹을 했다. 집에서 출발하여 돌아오는데까지 25km의 여정이었다. 중간에 친구가 가져온 소주 담금주 넉 잔을 마셨는데 취기가 제법 올랐다. 그래서 기분이 더 좋았다.
채찬석 교장 과는 몇 년 전 둘이 안양천까지 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서 거기서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다녀왔는데 40km 거리였다. 그 때는 엉덩이가 아파서 혼났는데 오늘 25km는 힘들지 않았다. 바이킹 도중 채교장이 며칠 전에 보내준 글에 대하여 내 느낌을 말했다. 산문이었는데 운문적 느낌이 나는 훌륭한 글이었다. 바이킹을 끝내고 둘이 양평해장국을 먹고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채교장 지인이 쓴 좋은 수필책을 한 권 받았다. 읽어봐야겠다.
어제 이명주 수필가가 나에게 채찬석교장과 친하지요? 라고 물어서
내가 채교장을 만나는 이유를 이명주씨에게 말했다.
집에 들어와 시낭송대회 원서를 제출하였다. 평생 처음 시낭송대회에 나간다. 낭송 지도자인 내가 나가는 것이 과연 맞는것인가 하는 의문을 스스로 가지면서 잘못된 낭송풍토에 정통 낭송을 보여주기 위해 나간다. 녹음파일을 제출하면 15명을 선발하고 본선은 12월 22일에 치른다고 한다. 나의 준비는 이미 끝났다.
바이킹 도중 청음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가 음주상태에서 자전거를 탄다고 알렸다. 울진에 간다고 하는데 먼거리 운전이 걱정된다. 다음부터는 여주 나의 우거에서 지내라고 권유해봐야겠다. 가깝고 좋지 않은가!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 날을 만든 사람이다. 그걸로만 기억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32살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사람이지만 정말 짧고 굵게 살았다. 그는 많은 문학 작품도 남겼다. 어린이 관련 많은 영향을 후세에 끼쳤고 세계사적으로도 의미있는 공헌을 하였다. 1931년에 죽었으니 대부분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어떻게 저런 훌륭한 일을 했을까? 그가 존경스럽다.
이번에 세계방정환학술대회가 오늘 광교에 있는 수원컨벤션센터에서 3일간 열린다. 오빠생각의 작사자 최순애의 고향이 수원인 것도 개최에 영향을 끼쳤다. 외국에서도 많은 작가가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세미나를 갖는다. 모든 행사는 영어로 동시통역이 이루어진다. 좌석마다 통역기가 놓여있다. 나는 경기수필가협회장으로 자문위원 겸 둘째 날 방정환의 수필을 낭독하는 행사의 총 진행을 맡았다. 감사한 일이다.


수필가 김은주 교수.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한 최동호 전 고대교수, 학술원회원이다.

이스라엘 스탠포드대학교 라헬 펠드만 교수
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때 수원시내 동료들과 모임을 만들었다. 정확하게는 퇴직하면서 모임을 만들었다. 매년 가까운 곳으로 저가 항공으로 여행을 간다. 금년에는 태국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모두 두주불사형이다. 나만 빼고 다 술을 잘 먹는다. 이제 교장으로 지내던 시절은 다 잊었다. 그건 모두 과거다. 지금은 친구들만 남았다.
태국은 아시아에서 관광산업이 제일 발달한 나라다. 어느 곳을 가도 태국 특유의 특징이 보인다. 그래서 후진국이고 소프트웨어가 덜해도 관광객이 모이는 것이다. 치앙마이는 태국의 북부인데 넓은 평야가 부러웠다. 벼의 3기작이 가능한 나라이고 과거 쌀 수출 세계 1위였다가 지금은 인도 다음으로 세계 2위다. 음식도 아주 좋았다.

백색사원에서……

메콩강 유람선에서……
어제 경기시인협회와 경기pen에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가람문학관에 가는 길에 꿈에서도 보고 싶은 미륵사지 석탑을 보았다. 동아시아에서 석탑으로는 제일 큰 것이다. 17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해체 복원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해체 복원하는데 17년 걸린 사업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많은 전문가들의 수고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수 년 전에 완공하고 개방하였는데 바빠서 가보지 못하다가 어제 한을 풀었다.
해체 복원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세히 보니 원래의 석재를 살리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나무를 이은 것은 고건축에서 많이 보았지만 돌을 표시나지 않게 이은 것은 처음 보았다. 백제 멸망이 660년 이니 그 이전의 전성기에 지어진 것이라면 적어도 1500년 이상 된 오래된 탑이다. 보면서 가슴 깊이 다가오는 감동에 몸을 떨었다.
우리나라의 탑은 거의 통일신라 이후의 것이고 삼국시대 탑은 세 개만 남아있다.
경주 분황사탑,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 익산 미륵사지석탑이 그것이다.
미륵사지석탑은 규모도 엄청나게 크서 장대하지만 세공기술도 그 옛날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이 탑으로 인하여 원래의 탑은 돌이 아니고 목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목탑이 화재로 소실되니 돌로 탑을 만든 것이다. 아주 좋은 여행을 했다.
가람문학관도 아주 좋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주변이 지형과 어우러진 나즈막한 기념관이 인상적이었다. 시조는 내 장르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꼭 시조도 써보고 싶다. 감사한 하루였다.




신부님이 우리집에 오셨다. 아주 젊은 신부님 이다. 동네 같은 구역에 사는 신자들도 함께 오셨다. 어머니는 정신 좋으실 때 성당에 다니셨다. 지금은 치매로 인해 주일 날 내가 모시고 가려해도 성당에 나가는 것을 완전히 잊으셨다. 가지 않으려 하신다.
이런 사정을 성당에 알렸더니 신부님께서 한 달에 한 번 방문하시겠다고 하여 오늘 우리집에 오셨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오늘 과거 역전의 용사들을 만났다.
매탄고등학교 교장 시절 최윤 교감님, 신현수 교무부장님을 만났다. 지금은 두 분 모두 교장선생님으로 봉직하고 있다. 최윤 숙지고등학교 교장님, 신현수 송탄고등학교 교장님이다.
신현수씨가 이번에 교장으로 승진하여 오늘 최윤 교장님과 함께 송탄고를 방문하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학교 급식이 먹고 싶어 급식을 달라고 했다.
코리아 학교급식은 전 세계 최고다! 정말 맛이 좋았다!

사실 밥 먹자는 전화는 부담스럽다. 어머니를 케어하고 사는 사람으로서 시간을 내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오늘 건도 제의를 받고 일단 다음으로 미뤘다가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만난 사람은 모두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과 식사하는 것은 정말 즐겁다.
이창식 수필 문학상 운영위원들이다. 금년 이창식 문학상은 유명한 수필가로 전국적인 브랜드를 가진 지연희 작가님이 수상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이창식 선생님이 수고했다고 운영위원들을 초대한 것이다. 사실 운영위원들이 수고는 했다.수상자 결정도 민주적 방법으로 결정되었다.
나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금년도 한국수필문학상에 빛나는 이경선 작가, 아동문학의 거장 윤수천 작가, 한글학자 밝덩굴 선생님, 경인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향토사학자 이창식 선생님이다.
초밥집에서 만났다. 12:00에 만나 점심 먹고 차를 마시러 이동하자는 제의를 마다하고 13:15분에 혼자 일어섰다. 14:00부터 시작되는 아름다운 가곡부르기에 가야 한다.
요즈음 식사 모임 후 2차로 찻집에 가는 풍속이 생겼다. 차 값도 음식 값 못지 않게 비싸다. 나는 음식점 한 군데서 끝내자는 주의다. 음식점에도 버젓이 아메리카노 커피가 있는데 자리를 옮겨 찻집으로 가는 것은 돈과 시간의 낭비다. 그리고 찻집에 가봐야 음악소리 때문에 대화하기 어렵다. 차라리 조용한 음식점이 대화하기 훨씬 좋다.


어제 경기도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베르디의 레퀴엠 공연을 봤다. 지휘를 맡은 오현규 선생님의 초청으로 경기수필 회원들과 함께 갔다. 오현규 선생님은 현재 수원 예총회장을 맡고 있는 분으로 난파음악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음악으로 경기지역사회에 수많은 족적을 남긴 대표적 음악가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88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정열적으로 지휘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연주 자체가 쉬는 공백이 없는 곡이어서 그런지 쉬는 시간이 없었다. 출연 성악가도 국내 정상급이었고 합창단 규모도 대단하였다. 아주 좋은 공연을 보았다. 감사하다^^
음악도 훌륭했지만 오현규 선생님은 단 한 음절도 말을 하지 않았다. 연주 끝나고 출연진 인사 시킬 때도 손짓으로 하였고 조용히 무대를 떠났다. 그 점이 훌륭하였다. 음악가는 연주로 말한다. 그걸 보았다.
같은 날 수원박물관 강당에서 김경옥 시인 출판기념회가 있었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시집도 훌륭하고 하객들도 모두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었다. 옥에 티라면 축하 시낭송을 하러 무대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모두 낭송 전에 일장 연설을 하고 낭송을 시작하였다. 나도 낭송을 했는데 나는 가볍게 목례만 하고 시를 낭송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의사는 진료로 말하며, 약사는 조제로 말하고, 음악가는 연주로 말한다. 낭송가도 당연히 낭송으로만 말해야 한다.

전기를 만지는 것은 사실 좀 두렵다. 가정용 전기가 220볼트로 승압된 후는 더욱 그렇다. 여주 우거에는 농업용 전기가 들어와 있는데 전봇대에 설치된 콘센트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전원차단기에 on, off 스위치가 있는데 그것도 먹통이다.
전기 전문가인 매제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새부속을 사서 교체하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더 꼈다. 다리에는 고무장화로 무장하였다. 집에서 전등을 설치하거나 전구를 갈아보기는 했지만 전봇대에 설치된 전기함을 고치는 일은 처음 하는 일이라 매우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하였다. 농기계를 사용하는 것을 가정하여 설치한 가정용 전기보다 더 쎈 산업용 전기라고 차단기에 써있어서 더 겁이 났다.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하였다. 전원차단기를 떼어내는데 오래된 것이라 드라이버로 나사가 풀어지지 않아서 힘이 들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고쳤다. 전봇대 콘센트에 기계톱을 꼽아보니 잘 돌아간다. 오늘 한 건 해냈다! 역시 감사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