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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기호

소크라테스도 죽었다

유한함보다 더 큰 벽은 없다

살아온 날은 고통이었다

슬픔은 시인의 양식이었고

고독 속에서 울며 먹었다

드물게 기쁜 날 그동안의 고통이 두 배였다

기쁨의 뒷벽엔 언제나 슬픔이 똬리를 틀고 있어

좋은 날도 눈물을 뿌렸다

떠나는 날 슬프다 해도

살아있는 시간에 기쁘고 싶은 것은

내가 날 사랑하는 때문일까

버리면 얻는다 했는데

절명의 날

날 버리면 얻어질까

시작 노트 :

청마 유치환의 시집 서문에 보면

신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나는 신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불행하다.” 라는 말이 나온다.

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고민을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다. 살아오면서 내가 죽는다는 사실보다 더 큰 벽은 없었다.

그래서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찿아다녔다.

붓다가 인생의 참모습을 고통이라 한 것처럼 내 인생도 그러하였다.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무엇이든 댓가와 기회비용을 요구하였다.

시 한 편을 쓸 때도 슬픔 없이는 글이 써지질 않았다.

지불해야할 댓가라면 줄만큼 줬다. 이제 인생을 반 이상 살았는데 언제 진리의 반석 위에 설 수 있을까?

적어도 세상을 버리는 날, 그날은 알 수 있을까?

<힘든 이야기라 사진은 즐거운 표정을 올렸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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